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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버이주일] 인생의 아름다운 관(冠) (잠 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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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중 8절 말씀에서는 자녀들이 부모의 훈계에 귀를 기울여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한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고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이 말씀은 부드러운 권면이라기보다는 지엄한 명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같은 잠언 30:17에 보면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 했습니다. 눈이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힌다는 것은 장사도 치러지지 않은 채 골짜기에 내다 버려짐을 뜻합니다. 다시 말하면 부모를 공경하지 않고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는 자는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없으며 따라서 장사를 치를 가치도 없는 자라는 말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를 나타내는 비유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아버지와 아들의 비유임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아버지에 비유하셨다는 사실만으로도 부모님의 존재는 우리 모두에게 하늘과 같은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종종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하시는 일을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하는 일과 나란히 놓거나 거기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잠3:11-12에 보면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7:11) 하셨습니다. 따라서 부모님에 대한 공경과 순종은 하나님에게 하듯 해야 하는 것입니다. 십계명에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제5계명이 우리가 사람들을 향해서 지켜야 할 계명들 중 첫 번째 자리에 오는 것은 그래서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할 때의 "공경하라"는 말은 "여호와를 경외하라", "여호와를 영화롭게 하라" 할 때의 "경외하라", "영화롭게 하라"는 말과 같은 단어입니다. 이것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얼마나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것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6:1-3) 했습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부모의 말씀에는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첫째로 부모에게는 긴 세월이 남겨준 삶의 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잠16:31에서는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했고, 20:29에서는 "젊은 자의 영화는 그의 힘이요 늙은 자의 아름다움은 백발이니라" 했습니다. 백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노인의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요 아름다운 것입니다. 백발은 하나님으로부터 장수의 복을 받은 증거이고 지혜의 표시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서 긴 세월을 사는 동안 하나님께서 축적시켜주신 온갖 지혜를 갖고 있는 어른들에게 순종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부모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부모님은 자녀들을 무조건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이 하시는 모든 말씀과 일은 다 자녀를 위한 사랑 때문에 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하시며 아무리 악한 자라도 제 자식에게는 좋은 것으로 줄 줄 아는 것이 부모라고 말씀하신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마7:9-11). 부모는 자녀를 징계할 때에도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잠3:12). 또 부모가 자녀를 징계할 때에는 자녀에게 희망을 두고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라 했습니다(잠19:18). 이렇게 어디까지나 사랑과 지혜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에 부모님의 훈계는 늘 감사함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인생길을 가장 안전하게 가는 방법입니다. 잠6:20-23의 말씀을 봅니다: "내 아들아 네 아비의 명령을 지키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고 그것을 항상 네 마음에 새기며 네 목에 매라. 그것이 네가 다닐 때에 너를 인도하며 네가 잘 때에 너를 보호하며 네가 깰 때에 너와 더불어 말하리니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 부모님의 말씀을 항상 마음에 새기고 그대로 행하는 것은 우리를 지키는 인생의 등불이고 빛이며 생명의 길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마땅히 부모님을 공경하고 그 말씀을 잘 받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잠4:1에서는 "아들들아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명철을 얻기에 주의하라" 했고, 23:22에서는 "너를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 했으며, 23:25에서는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를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사람의 도리입니다.

따라서 이 하나님의 명령을 잘 듣고 좇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며, 그렇지 않는 자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잠10:1에서는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기쁘게 하거니와 미련한 아들은 어미의 근심이니라" 했고, 13:1에서는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의 훈계를 들으나 거만한 자는 꾸지람을 즐겨 듣지 아니하느니라" 했습니다. 15:5에서도 "아비의 훈계를 업신여기는 자는 미련한 자요 경계를 받는 자는 슬기를 얻을 자니라" 했으며, 15:20에서는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즐겁게 하여도 미련한 자는 어미를 업신여기느니라" 했습니다.

이렇게 자녀들은 마땅히 부모의 훈계를 들어야 한다는 것은 뒤집어 말하면 부모들에게 자녀들을 바로 가르칠 책임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잠22:6에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했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고 기뻐한다면 자녀를 징계하면서까지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잠3:12). 잠13:24에서도 "매를 아끼는 자는 그의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했습니다. 부모는 자녀들을 가르치고 필요할 때에는 징계하기도 하며, 자녀들은 부모의 그 가르침과 징계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따르는 것이 부모자식 간의 올바른 관계이며 온 가족이 기쁨과 평안과 영광을 누릴 수 있는 길입니다. 잠29:15에서는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행하게 버려 둔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 했고, 29:17에서는 "네 자식을 징계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평안하게 하겠고 또 네 마음에 기쁨을 주리라" 했습니다. 자녀를 바르게 훈계하는 것은 평안과 기쁨을 거두는 일입니다. 자녀를 바르게 훈계하지 않는 것은 불안과 슬픔과 치욕을 자초하는 일입니다.

이렇듯 성경은 일방적으로 자녀들에게만 부모의 가르침에 무조건 순종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이 부모에 대한 자녀들의 순종을 명할 때에는 언제나 부모가 자녀들에게 바르게 가르칠 것을 동시에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모가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것이 무엇이며 부모의 자녀훈계가 바로 서는 길은 어디에 있습니까? 오늘 본문 7절 말씀이 그 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8절에서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했거니와 부모의 모든 훈계와 법의 출발점이며 궁극적인 목표가 되는 것이 다름 아닌 하나님 경외입니다. 부모들은 그 무엇보다도, 또 그 무엇에 앞서 하나님 경외하기를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 경외하기를 가르치지 않고 하는 훈계나 명령은 다 헛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의 자식교육이 바로 되기 위한 가장 확실한 길은 하나님 경외하기를 제대로 가르치며 그 본을 보이는 것입니다.

본문 9절 말씀이 무엇입니까? "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사슬이니라" 한 것입니다. 머리에 쓰는 관과 목에 거는 금사슬은 아름다움과 권위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하나님 경외하는 것을 최고의 지식이요 지혜로 확실하게 가르치고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복된 삶의 근본원리임을 분명히 깨닫게 해주면 그것이 바로 우리의 인생에 관을 씌우고 금사슬을 걸어주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부모로부터 그런 교육을 받고 그 배운 바대로 행하는 사람에게는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 씌워지고 "목의 금 사슬"이 걸릴 뿐 아니라, 같은 아름다움과 권위가 그 부모에게도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가르치고 배우는 것은 우리 인생을 가장 아름답게 하고 가장 존귀하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부모들이 먼저 하나님 경외하기를 그 어떤 세상적 부귀영화에 우선시키고 인생의 최고의 가치요 본분으로 여기며 자녀들이 그 가르침을 잘 따르는 것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먼저 좋은 학교 가고 좋은 직장 얻고 좋은 배필을 얻고 좋은 집을 갖고 평생 먹고 즐길 것 넉넉히 장만해 놓은 후에 하나님 경외하겠다는 생각처럼 어리석은 것은 없습니다. 그것은 앞뒤가 잘못된 생각이며 이루어질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시편 128편의 기자가 뭐라고 했습니까?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친히 일 복, 먹을 복, 아내 복, 자식 복 다 주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인생만사 중 첫 번째 일이며 가장 크고 중요한 일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만사에 참 의미를 부여하고 만사를 복되게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이 행하는 모든 일은 허사가 되고 말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하나님 경외하기를 그 무엇보다도 힘껏 가르치고 삶으로 그 본을 보여야 하며, 자녀들은 그 어떤 가르침보다도 이 가르침을 잘 받들어야 합니다. 잠17:6에 "손자는 노인의 면류관이요 아비는 자식의 영화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손자는 노인의 면류관"이라는 것은 손자들로 인해서 할아버지가 영예롭게 되는 것을 뜻합니다. "아비는 자식의 영화"라는 것은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자랑거리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3대가 다함께 존귀와 영광을 누리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될 수 있는 길은 바로 하나님 경외하기를 대대로 잘 가르치고 배우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힘씀으로써 어른으로부터 젊은 세대에 이르기까지 다함께 행복한 공동체를 이루어가는 우리 새문안교회와 각 가정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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