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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버이주일] 잃은 아들과 찾은 아들 (창 45:2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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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안다는 것을 말할 때에 배워서 아는 것이 있고 배우지 않아도 아는 것이 있습니다. 배워야만 아는 것은 후천적 지식이라고 볼 수 있고 배우지 않아도 아는 것을 선천적인 지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선천적 지식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심어 놓으신 지식을 말합니다. 지식이라는 것은 저절로 얻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선천적 지식이라는 말도 하나님이 인간의 의식 속에 심어 놓은 것을 말씀하는 것이지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은 결코 아닌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은 하나님이 생명 속에 심어 놓은 사랑입니다. 누구에게 배워서 하는 사랑이 아니라 생명 속에 심어놓은 사랑이 나타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자신의 사랑을 자식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속에 심어두신 사랑이 나타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내가 미워하고 싶다고 미워지는 것이 아니고 내가 포기하고 싶다고 포기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잘 나타내는 사랑이 바로 부모님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할 때에 부모님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부모의 본능 속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부모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시고 하나님의 은혜와 도움을 구체적으로 드러내실 때가 많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부모님의 몸을 통해서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부모님의 손길을 통해서 우리를 양육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부모님의 마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부모님의 희생을 통해서 하나님의 희생을 우리에게 가르치신 것입니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가 느끼는 가장 큰 고통은 자녀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이것보다 더 큰 고통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잃었을 때 가장 큰 고통을 느끼는 것에는 영적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이 느끼는 가장 큰 고통이 바로 그의 자녀를 잃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어떤 희생을 지불하고서라도 잃어버린 자녀를 찾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모에게 자녀보다 중요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자녀를 잃어버린 부모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탕자의 이야기가 바로 아들을 잃어버린 아버지의 아픔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들을 잃어버린 아버지는 그 날부터 모든 관심은 오직 아들에게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어떤 것도 아들이 돌아오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집도 아들의 자리는 메우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도 아들이 주는 기쁨을 넘어설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의복도 아들이 곁에 있는 것보다 좋을 수는 없었습니다. 아들이 돌아 왔을 때 그는 비로소 웃음을 찾고 감사를 찾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하나님 아버지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탕자의 이야기에서 보이는 집을 떠나 살고 있는 아들을 말씀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이 말씀은 이 땅에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기다리시는 하나님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인 교회를 떠나서 살고 있는 우리 식구들을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볼 때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삶은 마치 탕자가 타국에서 아버지의 모든 것들을 다 잃어버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보면 자녀에게는 두 종류의 부모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먼저 육신적인 부모입니다. 육신적인 부모란 자녀의 육신에 관한 책임을 감당하는 부모입니다. 꼭 필요한 부분입니다. 예수님은사람이 비록 악할지라도 자식에게는 좋은 것을 준다 했습니다. 이러한 부모 책임은 이방인들도 한결같이 감당하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 어느 부모가 자식에게 나쁜 것을 주느냐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육신적인 부모의 책임을 감당하는 일에만 매달렸다면 하나님께 칭찬을 받을 것이 전혀 없습니다. 이것은 오히려 짐승들도 사람보다 더 잘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상급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다음으로 영적인 부모가 있습니다. 자녀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는 부모입니다.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믿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도록 양육하는 부모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이 쓰심에 합당한 사람으로 양육하는 부모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녀에게 아무리 좋은 것을 주고 아무리 좋은 환경에서 생활하도록 배려한다고 해도 영적 환경을 만들어 주지 못한다면 우리의 자녀는 잃은 자의 자리에 버려둔 부모인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영적으로 볼 때에 부모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통해서 두 종류의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아버지 야곱이 잃어버린 아들 요셉을 다시 만나는 장면이 나오고 있습니다. 아버지 야곱이 요셉에게 있어서 두 종류의 아버지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먼저는 육신적인 아버지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영적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야곱은 사랑하는 아내 라헬을 통해서 요셉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라헬은 일찍 죽었기 때문에 야곱의 관심은 항상 요셉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요셉에게는 좋은 옷을 입혔습니다. 요셉은 일하는 현장에 보내지 않았습니다. 요셉의 말이라면 모두 들어주었습니다. 전형적인 육신적인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모든 부모는 자녀를 이러한 마음으로 양육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육신적인 부모로만 살 때에는 하나님 앞에서 볼 때 그 자녀는 잃어가는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가 육신적인 부모의 역할에만 충실할수록 그 아들은 영적으로 볼 때 점점 멀어지는 자녀가 된 것입니다. 많은 부모들이 이것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많은 부모들이 여기에서 아픔을 느끼고 있습니다. 내가 자식에게 정말 사랑하고 정말 희생하면서 키웠는데 자녀는 내 마음에서 멀리 있는 것입니다. 오늘 부모가 육신적인 부모로만 살 때에는 하나님이 나를 부모의 자리에 세우시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야곱이 요셉을 다시 만날 때에는 영적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야곱은 창세기 49장 전체를 통해서 열 두 아들을 앞에 두고서 한 사람 한 사람 그 믿음의 분량을 따라서 축복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오직 믿음으로 자녀를 보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 대표적인 내용이 바로 베냐민에 대한 축복입니다. 야곱은 육신적으로는 베냐민에게 가장 깊은 사랑을 베풀었지만 베냐민에 대한 기도를 할 때에 베냐민은 물어뜯는 이리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영적인 아버지가 되어 있을 때 잃어버린 아들을 다시 찾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교훈입니다. 우리가 자녀를 진정 찾기를 원한다면 내가 영적인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영적인 부모가 되어 있을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식을 돌려주시는 분이십니다. 야곱이 외삼촌의 집에서 나올 때도 그는 육신적인 부모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몸부림을 쳤습니다. 그러나 얍복강에서 자기 자녀를 하나님께 맡길 때에 하나님은 그에게 자녀들을 다시 돌려주신 것입니다.

애굽에 가서 바로 앞에 설 때에 바로는 야곱의 나이를 물었습니다. 야곱은 바로에게 나의 일생이 험악하였다고 고백했습니다. 야곱은 애굽에서 요셉을 만났을 때 요셉의 두 아들을 축복했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자리를 찾은 것입니다. 아버지란 자녀를 축복하는 자리입니다. 아버지는 믿음을 자녀들에게 물려주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육신적인 아버지 일 때 잃어버린 아들을 영적인 아버지 일 때 둘을 찾은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통해서도 참 아버지의 모습은 영적 아버지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백세에 아들 이삭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정말 하나님에게 아들을 얻은 자리는 영적 아버지가 되었을 때였습니다. 하나님은 모리아 산에 가서 아들을 바치라고 아브라함에게 말씀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모리아 산의 아브라함은 육신적인 아버지는 아니었습니다. 육신적 아버지는 결코 설 수 없는 자리에 아브라함이 섰을 때 하나님은 아들 이삭을 그에게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잃어버린 아들을 주신 것입니다.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압살롬에게는 육신적인 아버지였습니다. 그는 가장 귀한 자식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에게는 영적인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솔로몬을 통해서 그는 자식을 얻은 것입니다. 인생에게는 잃은 자녀가 있고 찾은 자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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