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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이주일] 어버이의 믿음과 한계 (출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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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유재명 목사 (안산빛나교회)

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더 좋은 자식으로 욕심을 부리기보다는 더 좋은 부모가 되어 주리라
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먼저 아이의 자존심을 세워주고 집은 나중에 세우리라
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아이와 함께 손가락 그림을 더 많이 그리고 손가락으로 명령하는 일을 금하리라
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아이를 바로 잡으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아이와 하나가 되려고 많이 노력하리라
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더 많이 안아주고 더 적게 다투리라 덜 단호하고 긍정하리라
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시계에서 눈을 떼고 눈으로  아이를 더 많이 보리라

지금 말씀드린 이 이야기들은 [다이아나 주먼스][잭 긴핀스] 등이 편집한 “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이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 중 한토막입니다.
우리는 이 글속에서 그 아름다운 사간들을 훌쩍 보내버린 모든 부모들의 아쉬움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자녀양육에 대한 소망을 엿보게 합니다. 내게 자녀를 다시 기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이런 부모가 되어 주리라’는 다짐을 참으로 소중하다고 여기면서 오을 어린이 주일을 맞아‘자녀를 향한 어버이의 믿음과 한계’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음성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우리 모두는 행복한 가정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행복한 가정을 꾸미기 위해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어보기도 합니다. 명예의 부자가 되는 것도 자식으로 부자가 되는 것도 소망해 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부족하다해도 자식들로 부요함을 누리는 가정은 많은 것의 부족함이 부족함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가정에서의 부모의 역할은 절대적이니 가정교육의 중심이기도 합니다.
지식이나 기능을 중심으로 한 것이 학교교육이라면 가정교육은 태도, 감정, 가치, 습관들을 심어주는 인격의 장입니다. 학교에서는 귀로 듣고 배운다면 가정에서는 눈으로 보고 배우는 곳입니다.
신기한 것은 대학원까지 공부한 딸이 시집가서 사는 것을 보면 학위 받은 것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엄마가 산 것처럼 산다는 것입니다.
삶 속에서 눈으로 읽혔던 엄마의 삶이 묻어나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배운 기능과 지식은 쉽게 잊기도 하고 늘 새로운 지식으로 바뀌지만 가정에서 받은 영향은 평생 지속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한 사람의 생애는 부모의 말 한마디, 보여주는 행동에서 시작되는 경우를 봅니다.
부모의 말하는 습관들 보여 주는 행동들은 자녀들의 평생에 가치관을 형성하고 세계관을 형성하는 기본이 되는 것입니다.

좋은 자녀에 대한 욕심 이상으로 좋은 부모가 되고자 하는 욕심이 있어야 합니다.
좋은 부모가 되려는 노력 없이 아이가 잘 자라주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마이클 케빈]이라는 사람은 “피아노를 가졌다고 해서 누구나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은 아닌 것처럼 자녀를 낳았다고 해서 저절로  좋은 부모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자동차를 구입했으면 좋은 운전을 하도록 배워야 하듯  좋은 부모가 되려고 노력하고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성도님들은 우리 자녀가 이렇게 되었으면 하는 성경의 모델인물 하나를 고른다면 누구를 고르겠습니까?
아브라함,이삭,야곱,요셉,모세,바울,베드로,요한 등등 생각이 나겠지요?
오늘 본문에는 모세의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아니 위대한 믿음의 영웅인 모세의 탄생과 성장 과정 속에서 보여지는 모세 부모들의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첫째로 모세 부모들의 믿음을 볼 수 있으니

모세가 참으로 복 되었던 것은 모세는 믿음, 신앙안에서 출생하였다는 것입니다.
모세의 출생에 대해 출애굽기 2:1절에 ‘레위족속의 한 남자 한 여자가 결혼하여 낳았다’고 말씀합니다..모세는 레위지파 사람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12지파 중에 레위지파는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경건한 신앙을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아 그 신앙을 그대로 지키고 있던 사람들입니다. 레위지피는 비록 애굽에서 힘든 생애를 살았지만 애굽의 우상문화에 젖어들지 않고 진실 되게 하나님을 섬겼던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 살면서 하나님의 사람들로써 경건을 유지하고 지켜 간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쉽게 사는 방법은 그들의 문화와 습관 그리고 그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거부하고 경건을 지켜간다는 것은 그것 자체가 좁은 길이요 삶의 울타리를 제한하는 삶인 것입니다.
레위 지파가 경건한 지파임을 알 수 있는 것은 광야생활 중에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만든 것입니다. 애굽에서 섬기던 것입니다. 이때 금송아지를 만드는데 동참하지 않는 지파가 있었으니 레위지파입니다.

모두가 금송아지를 만드는데 어쩌다 보니 참예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조상대대로 우상을 배격하며 경건을 유지하며 하나님을 섬겨온 결과물인 것입니다.
우리 부모들이 자녀들을 보면서 자유 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인가 잘해주지 못한 것 때문에 죄인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할 수만 있으면 집도 사주고 취직도 시켜주고 공부도 대신해 주고 부정 입학이라도 좋으니 합격시켜주고 싶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어느 정도 해줘야 합니까? 언제쯤 마음이 편한 해질까요?
모세의 부모는 태어난 모세 속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고 있었습니다.
출2:2에 ‘그 여자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아 그 준수함을 보고’
행7:20절에 ‘그때에 모세가 났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 ’
히11:23에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알고’
자식이 태어나면 예쁩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마누라는 남의 것이 더 커 보이고 자식은 내 자식이  더 커 보인다.’는 말입니다. 초등학교에서 가을 운동회 같은 것을 하다보면 수많은 학생들이 뜁니다. 그 많은 숫자 중에 내 자식만 보이는 것이 부모의 심정입니다.

그러나 모세가 태어났을 때는 그냥 예뻐 만 할 수 없을 때였습니다.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하수에 던져 죽여야 할 때였습니다. 이것은 임금의 명령이었기에 어길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부모는 태어난 아이를 ‘아름다운 아이’‘준수한 아이’‘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라고 표현했습니다. 어쩌다 태어난 것이 아니라 애물단지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아이였습니다.
위기속에서 환란속에서 태어난 아이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본 것입니다.
절박한 환경 속에서 태어난 아이안에서 하나님의 심정, 하나님의 뜻을 본 것입니다. 아니 본 것이 아니라 믿었던 것입니다.

모세의 부모가 가지고 있던 믿음의 눈은 우리가 사모해야 할 믿음입니다.
부모는 이 아이를 하수에 던져야만 하는 염려로 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보았고 그 믿음은 그 아이를 아름다운 아이로 보게 한 것입니다.
모세의 부모가 가지고 있던 믿음의 눈을 우리가 사모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눈은 실패와 아픔이 아니라 하나님을 뜻 하나님의 작정을 보고 우리 자녀를 바라보는 눈은 아이를 보고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뜻을 믿어야 합니다.
자녀들이 제일 좋아하는 말은 바로 “너를 믿는다”라는 말입니다.
모세의 부모는 그 아이를 준수함을 보고 석달동안 숨겼으니 히브리서 기자는 ‘임금의 명령을 무서워 아니하고’라 했습니다.

저들은 아들을 낳으면 아들을 하수에 던지라는 임금의 명령도 두렵지 않아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고 하나님의 뜻을 믿으니 두려워 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세상의 소리보다 하나님의 소리를 세상의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으로 아이를 본 것입니다.
모세가 모세가 되기까지는 절대 역할을 했던 부모의 신앙적 교훈을 봅니다.
임금의 명령을 무서워 아니하고 염려를 무서워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했습니다.


둘째로 석달동안 숨겨

저들은 인간입니다. 저들에게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석달이 지난 뒤에는 사랑하는 아이와 헤어져야 합니다. 아이들 숨겨놓고 있다가 발각되면 가족 모두가 죽어야 했으니 저들의 인내나 한계점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갑니다.
참으로 믿음으로 살지만 내 힘으로는 끌어안기에 힘들 때가 있습니다. 모든 것을 놓아버려야 할 때가 있습니다.
자식을 키우다 보면은 부모는 한계를 느낍니다.
내 힘으로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최선을 다하지만 어렵습니다.
이때 모세 부모는 더 숨길 수 없자 그를 위하여  갈 상자에 담아 나일강에 띄워 보냅니다.

출2:3절에 보면 “ 더 숨길 수 없이 되며 그를 위하여 갈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진을 칠하고 아이를 거기 담아 하숫가 갈대 사이에 두고”
여기에서 신기한 것이 있습니다.‘그를 위하여’입니다.
아이를 그냥 데리고 있으면 아이도 아이지만 부모들, 가족들아 위험합니다. 그렇다면 이 아이를 보내는 것은 자신들을 위하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를 갈 상자에 담아 보내며 성경은‘그를 위하여’‘모세를 위하여’‘아이를 위하여’그리했다 합니다.
부모가 아이를 정말 위한다면 죽더라도 끌어안고 있어야 하는데 성경은 그를 위하여 그리했다 합니다.
모세의 부모가 아이를 나일강에 보낸 것은 그냥 보낸 것이 아니라 갈 상자에 담아 보낸 것입니다. 이것이 그를 위한 것입니다.

갈상자란 히브리어로 [갈]은 갈대 즉 성경을 기록한 파피루스를 말하는 것입니다. 상자는 히브리어 [테바]로 노아방주와 같은 단어입니다. 그런즉 갈상자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차선책으로 모세를 갈 상자에 담아 보낸 것이 아니라 최선책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예수그리스도께 아이를 맡긴 것입니다.
내가 끌어안고 있는 것이 이 아이를 위한 것이 아니라 갈 상자인 하나님의 말씀에 예수그리스도에게 맡기는 것이 그를 위한 것입니다.


세 번째로 이제 부모로서 우리의 역할을 어떠해야 합니까?

좋은 부모는 자녀에게 보여지는 부모였습니다. 모세 부모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하는 부모입니다,
시련가운데서 흔들리지 않은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아이를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하나님은 그 모세를 미디안 광야로 내던지십니다.
하나님의 손에 이끌린 모세는 철저히 훈련받고 광야에서의 혹독한 경험이 웬만한 바람에도 백성들의 원망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요즘세대를 보면 너무나 마음이 아픕니다.
지난해 일천삼백5명이 자살했다는 것입니다. 수치상으로 보면 40분마다 한 명씩 하루 36명씩 자살했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지도층들이 자살을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명심하십시오
어떠한 명목이 있더라도 자기 자신 스스로가 목숨을 끊는다는 것은 하나님께도 그리고 나이 드신 부모에게도 잘못하는 것입니다.
정몽헌 회장, 부산시장, 대우사장, 전남지사등 사회지도층이 자살하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문제가 생기고 그렇습니다.
죽은 사람은 나쁜 사람입니다. 어떤 명분이 있어도 말입니다. 명예가 어떻게 목숨보다 귀하고 부모보다 귀하다는 것입니까
죽은 사람을 동정해서는 아니됩니다. 이들은 아마도 실패를 몰랐고 왕자처럼 추대만 받아와서 일반인들의 소리나 어려움을 이겨내는 자생력이 결핍되어서 그랬을 것입니다.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행복하고 우리자신은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들의 자녀들을 그렇게 키워야 합니다.

미국의 부모들이 자주 쓰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남과 나누어 가지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미국 봉사정신의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주고, 봉사하고, 남을 위해서 사는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일본 부모들은 남에게 폐 끼치지 말라 합니다. 남에게 싫은 소리 듣지 않는 행동을 하라는 것입니다.
한국부모들은 이렇게들 이야기 합니다. 공부해라 공부해서 남주냐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공부해서 남 주어야 합니다. 더 많이 공부해서 지식을 공유하고 나누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더불어 사는 사회입니다. 


네 번째: 아이들이 많이 닮고 싶어 하는 부모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자녀들에게 부부가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자녀들 앞에서 애정표현을 자주하십시오
자녀들이 가장 힘들 때가 언젠인 줄 압니까? 바로 부모가 다툴 때입니다. 부모 눈치 볼랴 죽을 맛일 것입니다.
자녀들을 늘 안아 주십시오 어릴 때부터 사랑한다고 이야기를 자주 해주어야 장성하여 남자친구를 고를 때에도 분별력이 생깁니다.
그렇지 않으면 평생 듣지 못한 사랑한다는 말에 아무남자한테나 정을 주기 쉽상입니다.
특히 딸 가진 아빠들은 명심하십시오
웃고 사는 방법을 보여 주십시요 웃음은 하나님이 선물입니다. 많이 웃는 자가 성공합니다.
자녀들에게 실패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실패를 모르는 자는 진정한 패배자입니다.
두레마을의 김진홍 목사의 일화입니다. 아들이 대학에 떨어져 상심해 있을 때 이런 말을 했답니다.
너가 떨어져 다른 사람이 붙었으니 얼마나 행복하냐 라고 말입니다.
식탁에서의 행복을 보여 주십시오 저녁시간에 가족들이 모여 함께 정담을 나누고 서로의 고민을 이야기 하며 가족 공동체의 진정한 사랑의ㅡ모습을 보인다면 그 가정의 아이들은 바르게 성장할 것입니다.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 되게 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 법을 가르치십시오 내가 이해해 줄려 하지 말고 나로 한계가 있다 떠나야만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살게 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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