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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버이주일] 가정과 교회의 축복 (엡 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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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에게 가르침을 주는 탈무드에 보면 사람에게는 3단계의 시기가 있다 하였습니다.
첫째는 소년기, 둘째는 청년기, 그리고 셋째는 장년기를 살면서 그 단계마다 역할이 다르다 하였습니다.
소년기는 부모를 위해 살고
청년기에는 자신을 위해 살다가
장년기가 되면 자식을 위해 산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소년기에 "부모를 위해 산다"는 말이 쉽게 납득이 가질 않습니다. 우리 자녀들을 보세요. 자녀들의 의지나 생각이나 원하는 것은 무시를 당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부모의 의사대로 자녀들을 이끌어 갑니다. 하루의 일과를 보세요.
요즘은 아이들이 놀이터에는 없다질 않습니까
학교에서 돌아오면 적게는 3군데 많게는 5군데를 돌고 집에 오면 학교 숙제하고 그러면 밤 11시가 넘으니 자야되지요.

우리 초등학교 때 정문 앞에서 번데기를 팔던 분이 계셨죠. 아이스크림도 했고.
그분들이 뺑뺑이라는 걸 돌려요.
주택복권을 작게 축소한 모양이죠.
그리고 아저씨가 그 원반을 손으로 돌리면 우리는 깃털이 달린 그 앞에는 날카로운 침이 꽂힌 그땐 그걸 찍기라고 그걸 가지고 찍습니다. 그래서 똑같은 돈을 내고도 1봉지 찍히면 번데기 1봉지 10봉지 찍히면 10봉지 그런데 10봉지 잘 찍으려면 아저씨가 그 원반을 돌리기가 무섭게 딱- 찍어야 10봉지가 찍히는데 그걸 잘 찍는 애가 있어요. 그럼 돈은 다른 애가 내고 찍기는 그 애가 찍는데 그 애가 하도 잘 찍으니까 나중엔 아저씨가 자기 돈 안내면 못 찍는다 그래서 반에서 아예 돈을 미리 주고 계약 아닌 계약을 맺죠.
10봉지 찍으면 반은 네 꺼다. 아니다 3봉지만 가져가라. 나중엔 10봉지가 자꾸 줄어들어서 말만 10봉지 자리지 실제로는 3-4봉지 정도밖에는 안되게 만들던 아저씨도 생각나십니까?
길거리 리어카에다 멍게, 해삼 팔던 아저씨. 옷 핀을 길게 펴서 꼭 찍어서는 너도 찍고 나도 찍고 먹고 나면 사과에 푹 찔러 놓고 가고.
입술에 뻘건 고추장 물 묻히고는 좀더 큰 거 고르려고 하던 그 때 그 시절을 아십니까?
이제 그런 추억은 박물관에나 있죠.

요즘은 그렇게 자녀 교육을 하였다가는 아마 아동학대죄로 걸릴 줄로 모를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분들이 우리 나라를 살려낸 분들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아이들을 가르치고, 돌보고, 공주님, 왕자님처럼 양육을 하지마는 막상 "자녀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하는 문제에 부딪히면 할 말이 막히고 맙니다. 그러나 진짜 더 불행한 것은 그리스도인들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입으로는 지혜와 지식의 근본이 되시며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시는 하나님! 하면서도 실제적으로는 세상적인 방법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지 않습니까?

도대체 어떻게 해야 5월! 이 가정의 달에 자녀다운 자녀, 부모로서 부모다운 모습 그래서 우리의 가정을 이 지상의 천국으로 만들어 갈 수 있겠습니까?

이스라엘을 보세요!
그들은 너무나도 많은 환난을 겪었습니다.
'잔인'이라는 단어가 제일 어울릴 정도로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역사적인 비극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녀들을 얼마나 얼마나 훌륭하게 키웠는지 정치, 경제, 문화, 예술 모든 분야에서 세계적인 인물들을 배출하였습니다.
그래서 어떤 역사가는 이스라엘을 가리켜서 "저들의 뒤 속에는 그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무서운 피가 흐르고 있다. 그 피는 바로 정열의 피다"라고 하였습니다.
어떻게 그런 잔혹한 역사 속에서도 위대한 이스라엘이 될 수 있었을까요?
이 역사가는 이스라엘을 두 개의 수레바퀴로 비유하면서 이스라엘이라는 수레의 한 바퀴는 교육이요 또 다른 한쪽의 바퀴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심장에서 흐르고 있는 그 열정의 피를 분석해 보면 신 6:4-9절에서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4절.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5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6절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7절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8절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9절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 찌니라"

어디서든지, 언제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라. 이것이 바로 그 엄청난 박해와 역경 속에서도 이스라엘을 위대한 민족으로 만든 근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공적인 교육으로 우리의 자녀들이 승리하기를 원하시면 아멘!

그러면 이렇게 교육해 보세요.

첫째> 교육을 시킬 기회를 잡아야 합니다.

둘째> 상징적 도구를 사용해야 합니다.
자녀들에게 상상의 나래를 펼쳐 주어야 합니다.
독일의 발도르프라는 교육을 보니까 아이들을 고정관념에서 상상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도구들을 많이 사용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인형 하나를 만들어도 얼굴엔 눈, 코, 입, 귀를 만들지 않아요 왜냐하면 아이들이 스스로 그 얼굴을 그리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웃는 인형, 우는 인형, 미운 인형, 예쁘게 만든 인형을 보면 아이들은 더 이상의 상상을 그릴 수 없기에 vision이 없는 아이가 된다는 거예요.

셋째> 일관성 있게 반복적인 교육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세 가지를 다 교육의 장으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명절이 되어보세요!
늦잠도 자고, 아니면 여행을 떠나고 그도 안되면 방콕하고 방에 콕 박히는 것을 방콕이라 하죠.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명절을 자녀 교육을 위한 기회로 삼았습니다.

가령 장막절이 되면 자녀들을 데리고 나가 들판에 천막을 칩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1주일 동안이나 지나게 합니다. 이것도 하루 이틀이나 1주일 이상 계속되면 얼마나 힘이 들고 귀찮겠어요.
아이! 아버지! 우리 T.V봐야 되는데
아이! 아빠! 나 컴퓨터 해야 하는데
아이! 아빠! 나 샤워하고 싶어
아이! 아빠! 나 갈래 왜? 비데 해야 되는데
그러면 그때 아빠가 얘들아! 옛날에 우리 조상님들이 이런 천막을 치고 40년 동안이나 광야에서 사셨단다 그러니 얼마나 힘이 드셨겠니
너희는 고작 1주일도 힘들다고 하는데 그분들은 40년이야 40년. 그런데 그런 천막 생활 속에서 고생을 하면서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찾으며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단다.
편안한 것만 좋아하면 사람이 나태해지고 교만해져서 절대로 하나님을 만날 수 없을 뿐 아니라 아예! 하나님을 찾지 않게 되는거야.
너희들은 살면서 어려울 때면 하나님! 우리를 도와주세요. 라고 기도하면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께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반에는 불기둥이 되셔서 우리를 지켜 주시는 거야!
이번엔 유월절입니다.
유월절이 되면 한밤중에 한참 곤하게 자는데 아이들을 깨웁니다. 깨울 때 어떻게 깨울까요?
일어나! 일어나! 어떻게 깨우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아! 곤하게 잠든 사람을 깨우니 얼마나 짜증이 납니까.
자녀들이 온 몸을 비틀면서 우~~~~~아아아아 아이고 아빠! 왜 깨우고 그러세요. 지금 몇 신데 이 정도일까요? 아빠! 지금이 몇 시야. 왜 그래
아버지가 대답을 합니다.
얘들아 옛날에 우리 조상들께서 이집트에서 종살이를 하시다가 하나님의 인도로 이집트 땅을 떠나실 때 한 밤중에 이스라엘 민족을 깨우시고는 허리띠를 띠게 하시고 자유를 주셨단다. 이 유월절은 해외로 놀러 가는 주간이 아니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신 것이야!
졸리고 피곤해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크신 복을 내리시는 거란다.

이렇게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와 축복을 기억하게 하고 옛날의 일을 명절과 무교병과 텐트라는 도구로서 상상 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수 4:1에도 이와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갈라진 요단강을 다 건넌 후에 그 강바닥에 있는 돌을 12개 골라서 강 언덕에 쌓아둔 다음. 여호수아가 이런 말을 합니다.
후대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와서 이 강 언덕에 쌓여 있는 이 돌들이 무엇이냐고 묻거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 요단 강물에서도 하나님께서 발바닥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서도 구원해 주신 징표라고 가르치라.
하나의 돌을 보면서도 하나님의 구원을 하나님의 축복을 상상할 수 있고 기억할 수 있게 하였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집에는 하나님을 기억할 수 있는 하나님의 축복을 생각하고, 그려낼 수 있는 물건이 얼마나 있습니까?
물건이 있다면 그것을 가지고 어떻게 가르치고 있습니까?
가르치고 있으십니까?
아니면 T.V 화면만 점점 커진 채 T.V 속으로 빠져들고 있습니까?
금요일 저녁 10:30을 어떻게 가르치고 있습니까?
매일 새벽 5시에 무엇을 가르치고 있습니까?
주일날이 놀러 가는 날로 가르치고 계시지 않습니까?
왜 어버이날 카네이션을 달아 주는지 가르치십니까?

어버이날 카네이션을 달아 드리는 이유는 1910년경 미국의 한 여성이 어머니를 추모하면서 교인들에게 하얀 카네이션을 나누어 드린 것이 기화가 되어서 어머니에 대한 사람을 나타내는 상징의 꽃으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는 1925년도에 이 카네이션이 도입되어서 어버이날이나 스승의 날이 되면 자녀들과 학생들이 부모님과 스승님에게 붉은 카네이션을 내 심장에서 흐르는 피처럼 사랑합니다. 라는 의미로 달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또 이런 일들은 반복적으로 계속되어질 때 그것이 교육인 것입니다.
어버이에게 효도하라. 입이 마르도록 말로 가르치는 것보다 바로 5월 8일에 이런 의미를 가르쳐 준 후에 어머니 가슴에 꽃을 달아 드린다면 우리의 후손들이 이것을 보고 우리가 늙어서도 성문에서 원수와 말할 때 수치를 당하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 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될 줄을 믿습니다.
이제부터라도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상징적 도구를 잘 사용하세요.
            그리고 실망하지 말고 반복적으로, 일관성 있게 가르치면 그 위에 하나님의 축복이 넘치게 임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버이 주일이 되면 전 어버이 주일이 아니더라고 참 어머니가 그립습니다. 8남매를 모두 공부시켜주신 어머니, 어머니가 아니었다면 지금 무엇이 되었을까? 매일 매일 쓰시던 일기장에는 하루도 빠짐없이 이 목사 아들을 위해 기도하시면서 글을 쓰셨던 어머니. 손마디가 굵어지셔서 손가락 안에서는 빙글빙글 돌지만 손가락 밖으로는 빠지지 않던 반지를 비눗물까지 바르시면서 너 결혼하거든 네 아내에게 주어라. 하시던 가슴에 뼈만 남으셨던 어머니. 지금도 어머니 보고 싶은 내 어머니. 어머니 그러면 제 아내에게 좀 미안해요. 왜냐하면 아직 장모님께선 생존해 계시니까요.
그래서 여보 폰뱅킹으로 용돈이라도 보내드려. 그리고 전화해서 장모님 죄송합니다 찾아 뵙지도 못하고요. 괜찮아! 박 목사님 장모님께선 저에게 꼭 목사님이라고 부르셔요. 이젠 83세시라 정말 많이 늙으셨는데도 오히려 건강 조심하라고 하시면서 역으로 위로하시던 어머니.

이번 어버이날을 교육의 기회로 삼지 못했다면 스승의 날에는 그날을 기회로 꽃 한송이 속에 있는 사랑의 모습으로 나의 자녀들에게는 교육의 기회로 활용하시기를 바랍니다.
필요하다면 어버지 날도 우리 만드십시다. 더 필요하다면 고모의 날. 이모의 날, 권사님의 날, 집사님의 날 그래서 내 모든 삶의 자리에서 교육의 기회가 되고 내 집안에 놓여지는 장식물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상상할 수 있도록 놓여지고 살아 있는 동안 꾸준히 반복해서 가르치면 내 삶 속에서 부모님을 공경하고 아내를 사랑하는 모습을 남편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지내면 우리 후손 대에는 이 땅에서 천국을 가꾸어 가는 복된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가정과 교회의 축복 중에 가정의 축복에 대해서 말씀을 선포할 때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우리 가운데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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