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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버이주일] 하나님의 기준에 맞는 자 (전 3: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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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서정호 목사 (영암교회)

목적을 따라 지으심

우리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누구든지 그 사람이 적당한 때를 따라서 지으셨습니다. 오늘의 본문 1절 이하에서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날 때와 죽을 때, 심을 때와 뽑을 때, 죽일 때와 치료시킬 때, 헐 때와 세울 때, 울 때와 웃을 때, 슬퍼할 때와 춤출 때, 돌을 던져 버릴 때와 거둘 때, 안을 때와 멀리 할 때, 찾을 때와 잃을 때, 지킬 때와 버릴 때, 찢을 때와 꿰맬 때, 잠잠할 때와 말할 때, 사랑할 때와 미워할 때, 전쟁할 때와 평화할 때"가 있다고 본문에서는 나열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결론적으로 11절에서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지으시되 모든 것을 때를 따라 지으셨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가장 적절하게 지으셨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즉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누구든지 하나님의 목적에 맞게 지으시고 데려가시고 섭리하신다는 것을 말씀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아무런 목적도 없이 그냥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각자의 사명을 주시고 이 세상에 보내셨고 여기에는 빈부의 귀천이나 신분의 고하가 있을 수 없으며 하나님 앞에서는 만민이 평등합니다. 또한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의 사명을 깨달아 알고 그 사명에 충실한 것이 아름다우며 어떠한 분야이든지 자기만의 독특한 분야가 있어야 성공할 수 있는 것도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각자 다 자신의 위치에 알맞게 목적에 맞게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받은 은사가 아름다워 보여서 다른 사람의 흉내를 내게 되면 그 인생은 평생을 노력해도 2류 인생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하여 성공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어떠한 분야이든지 자기만의 독특한 분야가 있어야 성공할 수 있는 것도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각자 다 자신의 위치에 알맞게 목적에 맞게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사실은 누구든지 자신의 사명을 끝이 나고 나면 하나님께서 데려가신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생각할 때에 그 사람의 사명이 끝이 나지 않았는데 어떻게 데려 가실 수 있는가를 말하여도 그것은 아무런 항변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목적에 따라서 살아가기에 그의 삶 자체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가라고 하셨기에 이 세상에 왔고, 또 하나님께서 오라 하시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적을 따라서 살아가는 삶이 아름다운 삶인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의 성공 여부는 바로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살았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지금 어떠한 일을 하든지 간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성공적인 인생임을 믿기 바랍니다. 그리고 지금 내가 하나님의 목적을 따라서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아닌가를 늘 점검하면서 살아가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심

또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본문 11절에서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본성에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누구에게나 주셨다는 것입니다. 기왕에 우리가 이 생명으로 끝이 아님을 분명히 알진대 우리는 우리에게 영원성을 우리의 마음에 심어주신 하나님의 의도대로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최선을 다하도록 하심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만일 사람이 누구든지 자신이 미래를 안다면 그는 자신의 미래를 위하여 투자하고 노력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만을 바라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운명이란 스스로 개척하는 것이지 정해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아무도 당장에 이 예배가 끝이 난 후에 어떠한 일이 일어날 것인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최선을 다 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입니다. 본문 13절에서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을 또한 알았도다"라고 전도자는 말합니다. 우리들 중에는 부자들을 무조건 매도하는 분도 있는데 이것도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그만한 부를 누릴 수 있도록 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만일 그가 그만한 것을 누릴 자격이 없다면 하나님은 그 부로 인하여 그의 인생을 파멸시킬 것입니다. 그러나 부를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라면 그 누구도 그에게 손가락질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의 순간 순간을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들이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인생으로서의 직무유기이며 하나님을 향하여 충성하지 않는 악하고 게으른 종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톨스토이는 말하기를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바로 지금 현재이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내가 하는 일이며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은 지금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톨스토이는 인간은 누구든지 순간 순간을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어떤 분이 미국에서 유학하는 시절에 어떤 분과 한 기숙사에서 살게 되었는데 그분의 성격이 조금 유별나서 적응하기가 참으로 힘든 분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후배라서 어떻게 할 수도 없고 해서 참고 1년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새 학기가 되어서 다른 사람과 살겠다고 방을 바꾸어 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그 선배는 졸업을 해서 한국으로 귀국을 하고 이분은 남아서 열심히 공부하여 박사학위를 받아서 한국에 귀국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연구단체에 지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까무러치게 놀란 것은 면접관이 바로 자기가 그토록 싫어서 방을 바꾸어 달라고 했던 그분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이제는 다 틀렸다고 생각하고 낙담을 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다른 회사에 이력서를 다시 지원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연구단체에서 함께 일해 달라고 연락이 와서 출근을 해보니 면접을 보던 그분이 자신의 상사로 함께 일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미국의 기숙사 이야기를 하면서 사과를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분은 별일이 아니라는 듯이 그냥 넘어갔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분의 마음에는 함께 있을 때에 조금만 참고 조금만 더 잘할 걸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분과 함께 일을 하면서 두고두고 그 일이 마음에 걸려서 항상 조심하게 된다고 합니다. 참으로 사람은 이렇게 자신이 지금 만나는 사람보다도 더 소중한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최선을 다하여 그 사람과의 관계를 가지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절약하고 최선을 다하고 주어진 일에 대하여 최선을 다하며 지금 만나는 그 사람에게 최선을 다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인생은 어느 날 어느 때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실지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여 어떠한 계획을 가지고 계신지 우리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날마다 최선을 다할 때에 정말 우리는 엄청난 일을 하게 됩니다.

본문 12절에서 "사람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다"고 전도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하나님의 목적에 맞게 지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으심의 목적에 따라서 살아가십시다. 그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시다. 우리의 마음에 영원성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온전히 나아갑시다. 그리고 그 하나님만을 마음에 모시고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여건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자가 됩시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들을 하나님의 뜻대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함량미달이 되지 말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실 때에 하나님의 기준에 온전히 맞는 자가 됩시다. 그래서 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를 통하여 나타내는 자들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지난주일 교회 창립 50주년을 기념하면서 전교인 야외예배를 서울여자대학교에서 감동적이고 은혜롭게 드린 바 있습니다. 갓 태어난 어린생명에서부터 80세 이상 되신 어른에 이르기까지, 교회 나온 지 며칠 되지 않는 새 가족들에서부터 교회창립 때부터 50년 동안 또는 20년, 30년, 40년 이상 영암교회를 기도와 헌신으로 눈물겹게 지켜 오신 장로님들과 권사님들에게 이르기까지 참으로 은혜롭게 한마당을 이룬 예배요 잔치요 축제였습니다. 전체교인들이 함께 모인 자리에서 베풀어진 유아세례와 수많은 어린이들이 영아부에서부터 유아부, 유치부 어린이들이 장로님들로부터 안수기도 받는 장면을 지켜보면서 어린이들이 해맑게 웃으며 기뻐하는 모습은 50년을 축하하는 잔치이면서 새로운 50년을 향하여 힘차게 복음의 행진을 새롭게 시작하는 시그널처럼 감격스런 희망의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어린이들이 있는 곳에 희망이 있음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희망을 오늘에 가능케 한 것은 눈물겹게 기도와 희생과 사랑으로 섬겨 오신 어른들이 계셨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오늘은 특별히 어버이주일입니다. 육신의 어버이들에게 감사를 표시할 뿐만 아니라 교회의 신앙의 어른들에게도 특별히 감사를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70평생을 시골에서 흙과 더불어 살아오신 한 어머니가 칠순이 다가오자 6남매가 모여 회의를 하였습니다. 10년 전 어머니의 회갑 때도 그냥 넘긴 것을 안타깝게 여긴 6남매는 불효를 만회할 겸 이번 어머니의 칠순에는 금강산 구경을 시켜드리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무슨 금강산 여행이냐? 간단히 식사나 하고 남은 건 내 용돈으로 주라”는 것이었습니다. 자식들은 맥이 빠지고 속이 상한 딸이 “어머니는 돈이 그렇게도 좋으세요? 지난 회갑 때도 잔치할  돈을 달라해서 그 돈으로 시멘트를 사서 시골 마당을 포장하시더니, 이번에도 못하게 하세요. 왜 자식들에게 아쉬움만 남기려고 그러세요.”하고 전화를 끊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잠시 뒤에 다시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너희는 에미를 돈만 아는 늙은이로밖에 생각 못하냐? 멀쩡한 아들이 마흔이 넘도록 혼자인데 유람이 웬 말이냐!”하며 무척 노여워하셨습니다. “동생만 자식이예요? 우리도 엄마 자식이잖아요.” “그렇긴 하다마는, 하지만 알아서 잘살고 있는 너희보다 홀로서기를 못하는 자식 하나가 이 에미에게는 더 마음 쓰이는 걸 어쩌겠냐. 그리고 내 회갑 때 마당 한 게 두고두고 너희에게 고맙게 생각한다. 그게 얼마나 나를 기쁘게 했는지 밤이면 혼자서 춤을 추듯 마당을 서성댄단다. 추수 때가 되면 옆집 마당을 종종 빌렸는데 하루는 술 한 잔 하신 그 집 어른이 ‘이곳이 당신네 마당이야. 그리 좋으면 당신네 마당도 포장해서 쓰면 될 것 아니야.’ 하는 말에 이 에미는 너무도 서러웠단다. 그런데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 어머니가 회갑 잔치할 돈을 왜 달라고 했는지 그 이유를 알고 난 자식들은 어머니의 뜻을 따르기로 했고 육남매가 이번 칠순에는 가족체육대회를 열어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기로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아이가 어눌한 말로 표현하는 것을 사람들은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해도 엄마는 알아듣습니다. 하지만 열 명의 자식이 있어도 부모의 깊은 마음을 헤아리는 자식은 많지 않습니다. 해서 옛말에 부모님은 열 자식을 보살피고 양육하지만 열 자식은 한 명의 부모님도 모시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어머니 

당신은 내가 만난 맨 처음의 사람입니다.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란 것을

몸으로 가르치신 분도 당신입니다.

당신은 언제나 5월의 웃음

주고도 떨어지지 않는 바다여.


우리는 너무 늦게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당신이 우리에게 너무 먼 곳에 계신 뒤에야

사랑은 이토록 강물 되어 흐르고

우리 또한 당신이 되어

이제야 그 사랑을 깨닫습니다.

고훈 목사가 쓴 [어머니]란 제목의 時입니다. 

칼릴 지브란 “어머니는 모든 것이다 슬픔속의 위안이며 불행속의 희망이고 나약함 속의 힘 그것이다. 어머니는 사랑과 자비 동정과 용서의 뿌리” 라고 말했습니다.


은혜를 알 때 비로소 철이 드는 것이다

여러분은 부모님이 여러분 곁에 가까이 계신 것 같습니까? 아니면 여러분이 부모님 곁에 가까이 있습니까? 사람은 철이 들고 나서야 비로소 부모님 곁으로 가까이 다가가는 것 같습니다. 전문 지식을 가졌다고 해서 철이 든다거나 나이가 들어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낳았다고 해서 철이 드는 것이 아니며 은혜를 알 때 비로소 철이 드는 것입니다. 사랑의 깊이를 깨달을 때 철이 드는 것입니다. 철들기 전에는 뭐든지 떨떠름합니다. 깊은 맛이 없어요. 철없는 사람에게 사랑은 아래만 보입니다. 내리 사랑만 하는 사람은 아직도 철없는 것입니다. 인간은 철들고 나서야 비로소 위를 바라보는 것이고 부모를 공경할 줄 아는 것입니다. 철든 신앙인만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경외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립니다. 어떻습니까? “나는 철들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철들지 못한 사람은 청개구리처럼 비가 올 때마다 웁니다. 철들지 못한 사람은 어버이날이 다가올 때마다 불효자로서 우는 것입니다. 복은 받았지만 복을 누리며 살지 못하는 거예요.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들이 복을 받고 복을 누리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복을 누리며 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밴 하겐은 말하기를 “어머니는 하나님이 세상에 보낸 대사요 최초의 스승이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자의 매력은 짧지만 어머니의 감화는 긴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믿음의 제자들에게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신 첫 번째 계명입니다. 이 계명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축복의 길이 여기에 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다’는 말은 순종하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공경한다는 말은 이기적인 동기에서 나오는 순종이 아닙니다. 부모님의 재산 때문에 공경하는 척 하는 자식들이 적잖게 있지만 공경은 이기적인 동기에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공경은 자식으로서 어쩔 수 없기 때문에, 마지못해서 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공경은 의무감에서 나온 순종이 아닙니다. 의무감에서 나온 순종은 불평이 따릅니다. 공경은 부모를 잘못 섬겼을 때 해를 받을까 하는 두려움에서 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종종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부모가 살아계실 때는 구박하고 소홀히 하다가 죽고 나면 제사를 아주 정성껏 드리는데 왜 그런지 아십니까? 살아계실 때는 힘이 없는 부모가 도움이 되지 않고 죽고 나서 귀신이 되어서는 힘이 강해지는데, 정성스럽게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 부모가 죽은 귀신이 되어 해를 입힌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제사 드리는 것도 얼마나 이기적입니까? 자신이 해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 두려움 때문에 순종하는 척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까? 부모님의 존재를 늘 인정하는 것이 공경입니다. 가정의 행복은 이미 맞춰놓은 기성품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가정에 내려진 여호와이레의 복은 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들 이삭의 합작품입니다. 이삭의 효도는 힘(능력)이 아니라 아버지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절대순종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려고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했을 때, 이삭이 ‘아버지 정신 나갔다고...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 하고 불순종했다면 그 가정에 여호와이레의 복은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믿음 안에 있는 아버지께 절대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어머니의 희생적인 사랑과 수고를 인정하고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빅터 후고는 말하기를 “한 훌륭한 어머니는 백 사람의 교사보다 낫다. 어떤 마귀라도 기도하는 어머니에게서 자녀를 빼앗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가정에 기도하시는 부모님이 꼭 필요하다고 그 실체를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경건한 어머니를 둔 자는 결코 가난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도하는 어머니가 여러분의 곁에 있을 때 그는 결코 가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아버지가 그 곁에 있을 때 자녀는 결코 가난하지 않습니다. 그 기도는 하나님의 약속을 이어갈 힘을 제공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아는 복의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약한 생물 중에 가시고기와 우렁이가 있습니다. 가시고기는 산란기에 암컷이 알을 낳고 떠나면 수컷이 알이 부화될 때까지 신선한 공기를 제공하고, 침입자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 하다가 새끼들이 둥지를 떠날 때에 생(生)을 마감하는 작은 물고기입니다. 이 가시고기의 모습은 가족을 위해 수고하다 조용히 세상을 마감하는 아버지의 모습과 같습니다. 우렁이는 제 몸에다 알을 낳고 새끼들이 어미의 살을 파먹으며 성장한다고 합니다. 한 점의 살도 남김없이 새끼들에게 먹이로 주고 빈껍데기가 되어 조용히 물에 떠내려가는 것이 우렁이의 삶입니다. 어쩌면 이 모습이 어머니의 삶이 아닌가 싶습니다.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 있는 계명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신 5:16) 이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지키는 자가 되어 하나님께서 형통케 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약속 있는 계명을 지킴으로 믿음의 가정이 평화를 누리고 생명과 축복이 임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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