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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이주일] 아이들의 천국 (마 18: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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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김상복목사 (할렐루야교회)

...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마18:1-10)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5월 첫 주일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지난주에 어떤 할아버지와 세 살 박이 손자의 대화를 들었습니다. “할아버지, 집에 갈 때 장난감 사 줄 거지요?” “안 사줘.” “왜요? 왜 안 사줘요?” “너 할아버지 말 안 들었잖아.” 그리고 할아버지는 옆으로 가버리셨습니다. 이 손자가 머리를 푹 떨군 채 슬픈 얼굴로 앉아있는 모습이 얼마나 재미있던지…. 저 쪽에 있던 할아버지는 겨우 웃음을 참고 빙그레 미소를 머금은 채 손자를 바라보셨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아이들을 주신 것 하나님께 감사드립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밝은 얼굴, 행복한 웃음, 사랑으로 가득 찬 부드러운 마음을 주시기 위하여 아이들을 주셨습니다. 며칠 전에 6,7세 정도 된 두 아이가 노는 것을 보았어요. 저는 아이들이 노는 것을 주의 깊게 보는 편입니다. 두 아이가 잘 놀다가 한바탕 싸우더니 금방 다시 함께 놀아요. 어른들은 한 바탕 싸우면 평생 원수가 되기 십상입니다. 어른들의 세계는 딱딱하고 힘들지만 하나님께서 아이들을 통해 어른들의 세계를 부드럽고 아름답게 해주시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조상을 바꾸어놓을 수는 없습니다. 이미 가셨으니까요. 그러나 부모로서, 할머니 할아버지로서 우리의 후손들에게는 결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이들을 참 좋아하셨습니다. 아이들이 예수님께 몰려들자 제자들이 막았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어린 아이가 내게 오는 것을 말리지 말라” 하시고 한 명씩 무릎에 앉히시고 손을 얹어 안수하시고 축복하셨습니다. 아이들이 예수님의 축복을 받고 돌아왔을 때 그 부모가 얼마나 행복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왜 아이들을 좋아하셨을까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아이들은 예수님이 부르시면 쉽게 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누가 가장 위대한 자인가에 대해 논쟁을 벌이다가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천국 가면 우리 중에 누가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어른들의 문제입니다. 경쟁심으로 서로를 무시하고 욕하고 괴롭히고 힘들게 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지나가던 아이에게 “얘야, 이리 오너라” 하시자 그 아이가 왔습니다. 아이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거부감 없이 쉽게 옵니다. 아이들 중에는 무신론자가 없습니다. 전문가에 의하면 5살에서 10살까지의 어린이가 예수님을 쉽게 믿을 수 있고, 따라서 가장 쉽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대상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어른들은 “하나님이 왜 날 불러? 하나님이 어디 있어? 있으면 내가 왜 이렇게 고생을 해?” 등 별 이유를 다 대면서 하나님께 오지 않으려 합니다. 심지어 핍박까지 합니다.

우리가 조심할 것이 있습니다. 어릴 때 교회에서 상처를 받은 아이는 평생 하나님을 멀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떤 사람은 중학교 1학년 크리스마스 때 교회에서 선물을 준다고 해서 처음 교회에 갔더니 선생님이 “너는 처음 온 아이라서 선물이 없어” 하고 그냥 돌려보냈답니다. 그것이 한이 되어서 그는 평생 교회 근처에 가고 싶지 않았고 예수 믿는 사람을 재미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답니다. 또 어떤 사람은 고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교회에서 장례식을 잘 치러주었지만 장례식 도중에 목사님이 말 한마디를 잘못하여 그 아이의 자존심을 건드렸답니다. 그것으로 인해 그는 평생 방황을 했다고 합니다. 어린 아이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상처를 주면 그것이 평생 갑니다. 그런 경험 때문에 하나님을 싫어하고 멀리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영문학자 찰스 디킨스는 말했습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많이 사랑해주어야 한다. 어린 아이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금방 쪄낸 찐빵처럼 말랑말랑하다.” 어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온지가 오래 되어서 딱딱한 찐빵처럼 되어 사랑을 잘 못하는 것 같습니다. 어른들 중에는 상처를 많이 받아서 하나님과 이웃도 사랑하지 못하고 심지어 자기 자식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해서 자녀를 일생 방황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가 가르친 대학원생 중에 세 아이의 엄마가 있었는데 행동이 이상해서 주위 사람들에게 자꾸 말을 들었습니다. 필시 무슨 이유가 있을 것 같아서 제가 어느 날 그 학생을 불렀습니다. 어릴 때 어떤 가정에서 자랐는지, 부모와 형제는 어땠는지, 학교생활은 어땠는지를 모두 물었더니 과연 그의 이상한 행동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불어 선생님이었던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우리 집안에 B학점이란 없아”고 하며 A학점 받기를 강요했던 것입니다. 공부를 잘 하는 아이였는데 어쩌다 B를 받아오면 아버지는 집안 망신을 시킨다며 혁대를 풀어 딸을 때렸던 것입니다. 그것이 평생 그의 마음에 상처로 남아 이상한 행동을 일으킨 원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아이를 너무 사랑하면 공주병, 왕자병에 걸리므로 엄하게 키워야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가정에서 부모와 조부모에게 충분한 사랑을 받고 자란 사람에게는 평화와 자존감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주일학교 아이들에게 말을 걸어보면 어떤 아이들은 편안하고 즐겁게 대화를 하지만 어떤 아이들은 무서워서 도망갑니다. 성격차이도 있지만 사랑을 충분히 받고 자란 사람은 어른을 무서워하거나 경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랑을 많이 주는 쪽이 낫습니다.

예전에 시카고에서 40대 후반의 아름다운 부인을 만났는데 아버님은 장로님이시고 어머님은 권사님이셨습니다. 제가 누구의 영향을 더 받았느냐고 물었더니 어머니라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너무 엄해서 무서운 기억 밖에 없는데 어머니는 자기가 잘못했을 때도 숨겨주고 끌어안아주고 보호해주었기 때문에 돌아가신 두 분을 생각할 때면 어머니가 더 생각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꼭 어머니가 아니라 사랑을 준 부모를 말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일 수도, 할머니일 수도 있습니다. 사랑을 충분히 베풀어준 그 분을 통해 우리의 마음이 따뜻해지고 우리가 새롭게 되는 축복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어릴 때는 오라면 옵니다. 하나님께도 잘 옵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어릴 때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18세기 미국 예일 대학교의 총장 조나단 에드워드는 7살에 부모를 통해 예수님을 만났고, 현대 선교의 아버지 진젠도르프는 4살 때 하나님을 만났으며, 세계적 주석가 매튜 헨리는 11살에, 스펄젼 목사는 12살에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아이들은 쉽게 하나님을 만나고 그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도 느끼기 힘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데 그의 아버지가 너무 엄격한 분이었다면 아버지라는 말이 싫고 무섭고 도망가고 싶을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아이들을 좋아하신 것은 아이들의 겸손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서로 자기가 최고라고 했지만 예수님은 겸손한 자가 천국에서 가장 크다고 하셨습니다. “너희가 변하여 이 어린 아이처럼 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 하셨습니다. 사람의 생각과 예수님의 생각은 참 다릅니다. 여러분, 우리도 아이들처럼 겸손해야 하나님께서 우리를 좋아하시고 기뻐하십니다. 아이들이 어른의 선생님일 때가 있습니다. 내 자녀든, 손자든, 남의 아이든, 우리는 순수하고 겸손하고 사랑하는 그들의 마음을 닮아야 합니다. 아이들을 거울삼아 우리 자신을 돌아봅시다. 그래서 굳고 억세진 마음으로 서로에게 상처 주는 일이 없도록 합시다. 아이들로부터 도움을 받고 배우고 변화되어 하나님의 나라에서 큰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교회가 성남 복지관을 운영하던 어느 날 점심 때 방문을 하니 어르신들이 길게 줄 서서 식사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제일 연세가 많아 보이는 분께 “할아버지, 잘 오셨습니다. 안녕하시지요?” 인사했더니 그 분이 저를 쳐다보고 “왜 나한테 인사해요?” 하는 것입니다. 인사하고 야단맞은 것은 제 일생에 처음이었습니다. 저는 저 분이 왜 저렇게 되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분의 얼굴은 인생이 귀찮고 힘들고 사람이 싫다는 표정이었습니다. 우리는 아이를 키우면서 이 아이가 80세에 어떤 사람이 될지를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말랑말랑하고 순수하고 겸손한 아이들이 점점 굳어져서 나중에는 인사를 해도 면박을 주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작은 아이 하나도 소중히 여기셨습니다. 작은 아이 하나를 잘 대접해주면 예수님 자신에게 해준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10절) 하셨습니다. 아이들을 보호하는 천사들이 있어서 늘 아이를 바라보고 있다가 그 아이에게 잘못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바로 하나님께 아뢴다는 말입니다. 상징적인 이야기지요. 하나님께서 아이들을 사랑하셔서 부모를 통해 세상에 보내셨는데 그 아이들에게 사랑을 베풀지 않고 오히려 상처를 입히는 것은 매우 큰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7절) 하였습니다. 어린 아이 하나를 억울하고 슬프고 낙담하고 죄짓게 만드는 죄는 너무 크다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냐 하면,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는 것이 나으니라”(6절) 하셨습니다. 아주 극단적인 표현입니다. 아이에게 잘못했다고 모두 목 매 죽으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사건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극단적인 표현을 쓰신 것이지요. 이것은 하고자 하는 말의 중심 사상을 잘 깨닫도록 하기 위해 유대인들이 잘 썼던 과장법인 것입니다. 이 말씀의 뜻은 사람은 누구나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른은 소중히 해도 아이들은 함부로 대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옛날에는 훨씬 더 했지요. 1980년에 제가 미국에서 처음 한국에 나와 부산에서 버스를 탔는데 한 젊은 엄마가 아이가 운다고 귀를 잡아당기고 뺨을 때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어찌나 안타깝던지. 여러분, 작은 아이 하나라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그 아이는 하나님께서 주신 아이요, 하나님께서 영원히 사랑하시는 아이요,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 보호하시고 보고를 받으시는 아이입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그렇게 소중한 아이들입니다. 그러므로 아이들이 조금 잘못한다고 심하게 다루어서 그들의 자존감을 떨어뜨려서는 안 됩니다. 인간은 누구나 다 귀합니다. 아이들을 비판하기보다 아이들이 좋은 어른의 모습을 보고 배우도록 좋은 본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지난주 아세아교회대회에서 방글라데시 목사님 한 분을 만났습니다. 방글라데시 남쪽에는 자기와 같은 계급의 사람이 100만 명이 있다고 합니다. 힌두교는 사람의 계급을 1천개로 나누는데 그 천 번째가 ‘달리트’라는, 손도 대면 안 되는(untouchable) 천민계급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 집단은 달리트에도 못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아예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전부 문맹인데 자기 혼자 겨우 글을 배워서 성경을 읽고 목사가 되었다는 그 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과 예수님이 최고의 희망입니다.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셨고 사람으로 취급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어린이 하나도 소중하게 여기고 사랑하고 축복해주고 사람 취급해주는 종교가 기독교입니다.”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돌아가서 힘껏 전하세요. 여러분 모두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영원히 가치 있는 존재입니다. 이 세상에 인간보다 가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여러분도 사랑의 대상입니다. 가서 강하게 전하십시오.” 여러분, 어린이들은 하나님의 사도들입니다. 우리에게 희망과 사랑과 평화를 줍니다. 딱딱한 세상 속에서 우리는 아이들 때문에 웃고 기뻐하고 위로를 받지 않습니까? 어릴 때 잘 키우는 것이 어른이 된 다음에 고치려 하는 것보다 쉽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을 과잉보호하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실수하면 하도록 두어야 합니다. 실수를 통해서 지혜를 배우고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탕자의 이야기를 아시지요? 작은 아들이 집을 나가서 마음대로 살고 싶으니 아버지의 재산을 미리 달라고 합니다. 저 같으면 나가지 말라고 말렸을 텐데 그 아버지는 한 번 해보라고 하지요. 아들은 나가서 과연 재산을 탕진하고 죽도록 고생한 다음에야 아버지 생각을 합니다. ‘아버지 집에는 먹을 것도 많고 하인도 많은데 내가 왜 이렇게 고생을 하는가?’ 하고 돌아와 “아버지와 하나님 앞에 내가 범죄하였습니다” 하고 회개하였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이 실수를 통해 스스로 깨닫게 해야 됩니다. 실수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지만 그렇다고 과잉보호를 하면 아이들이 성숙해지지 못합니다. 아이처럼 행동하는 어른을 심리학자들은 “어른아이”(adult-child)라고 합니다. 이들은 제대로 사랑을 받지 못했고 정서적으로 충분히 성장하지 못했기 때문에, 어른인데도 어린 아이처럼 직장이나 가정이나 이웃에서 자꾸 문제를 일으킵니다. 나이는 들었는데 어린이처럼 보채며 삽니다. 그런 사람은 어른이 되어서 자기 아버지마저 싫다고 한답니다. 그러므로 아이들을 평소에는 부드럽게 다루지만 엄격할 때는 엄하게 하십시오. 부모가 한 번 자식에게 권위를 잃으면 회복하기 힘듭니다. 부모의 부드러움과 엄격함이 잘 조화되어야 아이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습니다.

한 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아이에게 가만있으라고만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아이의 활동을 유익한 방향으로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얼마 전에 어느 젊은 엄마가 자기 아이의 생일파티 주제가 ‘과학’이라고 하더군요. 생일파티에 무슨 주제가 있나 했더니 그 엄마의 말이, 이번 기회에 자기 아이가 과학의 세계에 흥미를 갖도록 친구들과 함께 생일파티를 하는 자리에 과학 전문가를 데려다가 만들기도 하고, 노래도 하고, 재미있는 활동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요즘 엄마들은 얼마나 똑똑한지 모르겠습니다. 놀이를 통해 아이들을 자극시키고 성장시키는 것은 참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린이 전문가 마이어 파인은 아이들의 아이큐를 높이는 세 가지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첫째, 갓난아기 때 자극을 많이 주라. 둘째, 책을 읽어주고 대화를 많이 하라. 셋째, 책 읽는 훈련을 시켜서 기회만 있으면 혼자서 책을 읽도록 만들라.

그리고 아이들 이름을 잘 지어주어야겠습니다. 룻기에 나오는 나오미의 아들들의 이름을 보세요. 큰아들은 ‘울보,’ 작은 아들은 ‘병신’입니다. 어떻게 아버지가 그런 이름을 지어줄 수 있습니까? 모두 자기를 울보야, 병신아 하고 불러서 그랬는데 그들은 결혼 하자마자 죽고 말았습니다. 이름이 좋지 않으면 바꾸세요. 아이들에게 좋은 이름을 지어주면 아이들의 자긍심과 자기가치(self-worth)를 높여줍니다. 자기가치가 높아질수록 아이들은 해방감과 자신감을 갖고 세상의 그 무엇이라도 정복할 수 있는 사람들로 성장합니다. 좋은 이름을 지어주는 것은 부모와 조부모의 책임입니다. 이름을 들을 때마다 즐거워하고 기뻐하고 자랑스러워하게 하는 것이 유익합니다.

또한 어릴 때부터 영적인 가치관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흔히 아이의 외모를 갖고 칭찬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가 예쁘고 키가 크기 위해 스스로 한 것이 무엇입니까? 또 몸매가 안 좋거나 키가 작더라도 그 아이가 잘못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런 것을 지나치게 칭찬하거나 트집 잡으면 안 됩니다. 겉모양을 강조하면 자만심이나 열등감을 일으킬 뿐입니다. 우리가 강조해야 할 것은 근면, 인내, 사랑, 정직 등 영적인 자질들입니다. 아이에게 이런 자질이 나타날 때마다 부모가 까무러치게 좋아하고 칭찬해주면 더 정직해지고 더 사랑하는 사람으로 성장할 것입니다.

끝으로, 아이들이 어릴 때 좀 부진해도 인내하십시오. 프랑스 황제였던 나폴레옹은 자기 반에서 42등이었답니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은 꼴찌에서 둘째였답니다. 유명한 문학가 조지 엘리엇은 어릴 때 글을 제대로 읽지 못해서 이 아이가 문학가가 되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할 수 없었답니다. 제임스 왓튼은 학교에서 아이들의 조롱의 대상이었답니다. 전기를 발명한 에디슨의 선생님이 어머니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이 아이는 너무 바보 같아서 공부할 능력이 없으니 집으로 데려가십시오.” 그런 아이가 후에 유명한 발명가가 되었습니다. 본 브라운 박사는 중학교 때 수학과 물리학에서 낙제를 했지만 후에 미우주항공국의 국장이 되었습니다. 알 수 없습니다. 어릴 때 좀 흔들린다고 해서 영원히 그러리라고는 아무도 말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누구라고 단정을 합니까? 하나님은 언제든지 그 아이를 꽃 피게 하실 수 있습니다.

어느 부모의 기도문을 갖고 여러분과 함께 기도함으로써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를 좀 더 좋은 부모로 만들어 주옵소서. 저희 아이들을 이해할 수 있게 저를 먼저 가르쳐 주옵소서. 아이들이 하려는 말을 참을성 있게 듣게 하여 주옵소서. 아이들의 질문에 친절히 답할 수 있게 도와주옵소서. 아이들의 말을 중간에 막지 않게 하시고 아이들의 말에 반박하지 않게 하옵소서. 아이들이 제게 예의 있기를 바라는 것처럼 저도 아이들에게 예의 있게 하옵소서. 아이들이 실수할 때 비웃거나 수치감을 주지 않게 하시고, 제가 불쾌하다고 아이들을 조롱하지 않게 하옵소서. 저의 이기적인 만족과 제 힘의 과시를 위해 아이들을 함부로 벌주지 않게 하옵소서. 내 아이에게 거짓말하거나 물건을 훔치라고 유혹하지 않게 하옵소서. 매 시간 저를 이끌어주셔서 행복은 정직에서 온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게 주옵소서. 제 아이들이 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게 하시고, 아이에게서 어른의 판단력을 기대하지 않게 하옵소서. 아이들이 결정할 수 있는 기회를 제가 빼앗아가지 않도록 인내심을 주옵소서. 온당한 요구를 하면 다 수용할 수 있는 큰마음을 주시고, 아이들에게 해가 되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라도 거절할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 매사에 공정하고 친절한 부모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오 주님, 저를 빚어주셔서 자녀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고 그들이 닮고 싶어 하는 부모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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