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우리가 있어야 할 곳(교회) (롬 12:3-5)

  • 잡초 잡초
  • 426
  • 0

첨부 1


-  설교자 : 김형준 목사 (동안교회) 


사람은 누구나 어떤 모임 혹은 단체에 소속되기를 원합니다. 특히 소속되어 있기만 해도 사람들이 부러워하고, 특권과 혜택이 많은 모임을 원합니다. 그래서 수준 높은 클럽에 가입하고자 공부를 열심히 하고 돈을 모으고 명예를 쌓습니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저는 우리가 진짜 소속되기 원하는 곳과 그 곳에 기대하는 바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삶의 의미와 목적 그리고 가치를 일깨워주고, 목적을 따라 살수 있도록 서로 도와주며 나태해질 때 붙잡아 주는 동료가 있는 곳이라면 사람들이 앞 다퉈 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여러분도 이런 제 생각에 반대하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세상에 이런 공동체가 있을까요? 만약 있다면 저는 두 곳이 있다고 대답하겠습니다. 하나는 가정이요, 다른 하나는 교회입니다. 그 중에서도 오늘은 교회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교회에 다니는 많은 사람들은 교회를 그저 현상적으로만 이해합니다. 교회는 어떤 곳이고, 왜 교회에 소속되어야 하며, 교회에서 교인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등 본질을 알지 못하고 있다면 교회는 세상 단체와 다를 점이 없습니다. 교회는 교회대로 교회 다니는 사람은 교회 다니는 사람대로 본래 영향력을 잃고 전락하게 될 것입니다.

패러다임의 전환과 리더십의 변화에 관한 책 ‘누가 내 치즈를 옮겼는가’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라 생각되는데, 마이크 나파가 쓴 ‘누가 우리 교회를 옮겼는가’ 라는 책이 나왔습니다. 책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느 날 조용한 곳에 있던 한 교회를 옮기십니다. 옮기고 나서 교인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천사를 시켜 적어오게 합니다. 어느 날 교회가 없어진 것을 발견한 교인들이 난리가 났습니다. 몇 팀이 조를 짜서 교회를 찾기 시작했는데, 교회가 시내 한복판에 옮겨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거기다 환락가 근처라 교회 주변 환경이 말이 아닙니다. 교회를 찾았으니 일단 들어가 예배를 드리기는 하는데, 출입하는 사람들이 마약을 하고, 술집에 드나들고, 좋지 않은 환경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교인들 중 일부는 “이건, 교회가 아니야. 교회는 하나님이 계시는 거룩한 곳인데, 이렇게 죄인들이 와서 교회분위기를 망치다니.”, 불평하며 교회를 방어하다가 견디지 못하고 교회를 떠나게 됩니다. 또 한 무리는 “이곳에 우리를 두신 이유는 선교 때문일 거야.” 하면서, 청소년들에게 콘돔을 나누어 주고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피켓을 들고 캠페인을 벌입니다. 마약 장사하는 사람들도 수용하고 교회이름도 바꾸고, 결국 교회 복지재단을 만들어 운영하게 됩니다. 그 중에 어떤 교인들은 창녀들과 문제가 생겨 어려움을 겪고, 또 청년들은 마약을 하게 되면서 교회가 몰락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남은 한 부류의 교인들은 사회를 바꾸려는 마음도, 교회 들어오는 사람을 간섭하려는 마음도 갖지 않습니다. 다만 예수님 사랑을 조용히 묵상하고 함께 성경공부 하며, 이웃을 포용하고 수용하되 말씀과 더불어 교회를 이끌어 갑니다. 신기한 것은 사람들이 변하고 치유되면서 교회가 더욱 새로워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 모습을 본 천사가 보고서 마지막 끝에 이렇게 기록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다. 진정한 교회란 건물 자체가 아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마음과 삶 속에 들어와 계신 예수님의 존재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에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을 알려 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함께 예배드리고 있는 이 곳, 교회는 어떤 곳일까요? 성경에서는 교회를 두고 뭐라고 말합니까? 교회의 본질을 알고 이루어 드리는 우리 삶이 되어야 할 줄 압니다.
 
첫째 교회는 가족입니다. 성경은 가족으로서 교회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본질상 혼자 계신 존재가 아닙니다.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 삼위 하나님께서는 한 목적을 두고 한 마음과 한 생각으로 조화를 이루며 친밀하게 교제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해 놓으시고 다 좋다고 말씀하셨는데, 단 한 가지 사람이 홀로 있는 것은 좋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에게 아담을 도울 가족을 주셨습니다. 늘 교제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의 속성상, 사람도 혼자 있기보다 가정 안에서 교제하기를 바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는 백성들이 한 가족이 되어 친교하는 것을 ‘코이노니아’ 라 합니다. 신약에서는 교회가 친교하는 곳임을 많이 나타내고 있습니다. ‘코이노니아’ 는 단순히 ‘친교’로만 번역할 수 없습니다. 굉장히 깊은 뜻을 갖고 있이 때문에 번역을 못하고, 편의상 ‘친교’라 하는 것입니다.

이방인과 유대인, 남자와 여자, 주인과 노예 등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는 우리는 한 가족이 되기에 서로 너무나 다릅니다. 다름에도 불구하고 코이노니아가 가능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아버지가 되어 주셨고, 한 아버지를 사랑하며 섬기는 자녀로서 우리는 형제라는 관계로 묶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로 인해 끊어졌던 아버지와의 관계를 피로 사해 주시고 연결체가 되셔서 한 형제자매로 만들어 주셨음은 말씀을 통해서 잘 알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2장 19절에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또 에베소서 2장 12-13절에서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한 가족으로 얼마나 사랑하시는가에 대해서도 바울은 고백합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신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내가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일이나 장래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기쁨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롬 8:31-39)”세상의 가족은 이혼하기도 하고 죽기도 해서 헤어지고 다시 볼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랑했다가도 마음에 안 들면 언제든지 돌아서는 것이 세상의 가족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세상의 어떤 것도 끊을 수 없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이시기에 당신의 자녀들끼리도 서로 사랑하고 교제하기를 원하십니다. 요한일서 1장 7절에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요한복음 13장 34절-35절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라고 말씀합니다. 서로 사랑하고 사귈 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과 교회의 본질이 나타납니다. 예수님은 가족의 개념을 가르치시고자, 육신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찾으러 왔을 때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2장 48절 이후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 …(중략)…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나님 뜻 안에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어 자녀된 자들끼리 사귐을 갖는 바로 이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교회의 본질이 이런 것이라면 주일날 교회에 와서 예배만 잠깐 참석하고 돌아가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됨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랑의 관계를 통해 우리 신앙이 성숙하기를 원하십니다. 구원은 각 개인 개인이 얻는 것이지만, 각자의 구원은 교회 공동체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점검하고 확인하며 이뤄가는 것입니다. 사랑의 교제가 있을 때에 공동체를 축복하시고, 속한 개인을 축복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둘째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사도 바울은 신약성경에서 15차례 이상이나 교회는 몸과 같다고 했습니다. 몸은 몸인데 그리스도의 몸, 그리스도는 우리 머리요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입니다. 에베소서 1장 22-23절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에베소서 4장 15-16절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찌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할 때, 몇 가지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지체는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몸의 각 지체는 각자 하나님과 관계를 잘 맺고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친구나 주변 환경 때문에 교회 오기도 하지만 그 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우선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잘 아는 사람들이 서로 서로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지체들끼리 성장하도록 격려하고 도와주는 것이 그리스도의 몸 된 모습입니다. 신약성경을 보면 ‘서로’ 라는 말이 무려 50번 이상 나옵니다. 서로 사랑하고, 서로 위해 기도하고, 서로 격려하고, 서로 권고하고, 서로 문안하고, 서로 섬기고, 서로 가르치고, 서로 받아들이고, 서로 존경하고, 서로 짐을 나누어지고, 서로 용서하고, 서로 복종하고, 서로 헌신하고,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 등, 진정한 성장은 관계 안에서 사랑할 때 이루어집니다.

또 다양성이 전제됩니다. 교회는 다양한 멤버로 구성되어 있는데, 모두 몸을 구성하는 지체로 존재합니다. 머리에서 명령을 내리면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여러 지체들이 최선을 다해 자기 역할을 합니다. 예를 들어 머리에서 사과가 먹고 싶다고 하면, 먼저 사과를 찾습니다. 눈이 사과를 보고, 발은 사과가 있는 쪽으로 걸어갑니다. 손이 뻗어 사과를 입에 넣으면, 입에서는 가지고 있는 모든 도구를 이용해 깨물고 맛을 보고 삼킵니다. 소화기관은 입에서 전달 받은 것을 소화시킵니다. 이렇게 각각 하는 일이 다 다르지만 한 가지 목적을 위해서 합니다. 머리가 보낸 하나의 명령을 따라 각자 자기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몸 된 교회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각 사람들에게 저마다 다양한 은사를 주셔서 연합하게 하셨습니다.

내가 교회의 한 부분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때 겸손할 수 있습니다. 몸의 한쪽이 말을 듣지 않을 때는 몸에 병이 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데 이 사람도 필요하고 저 사람도 필요하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만이 다른 지체들이 제 자리에서 자기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섬길 수 있습니다.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를 하나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머리가 두개 있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이 두 사람이냐 아니면 한사람이냐를 두고 논쟁이 붙었습니다. 머리는 두개인데 몸은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한 랍비가 “한 사람 머리 위에 뜨거운 물을 부어봐라. 두 머리에서 비명이 나오면 두 사람이고 한 머리에서만 나오면 그건 한 사람이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고린도전서 12장 26절에서도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말씀하면서, 병든 사람이 있으면 찾아가 병에서 놓임 받도록 도와주는 것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모습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유기체가 되어 다른 지체의 아픔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면 교회됨의 본질을 잃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아픔이 있을 때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고 도우며, 하나님 앞에서 다시 설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교회는 하나님의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일종의 공동사회로 ‘나’라는 개인이 ‘우리’로 변모되는 과정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나를 위하여’, ‘나의 것’, ‘나만 위하여’ 하던 모든 것을 ‘우리’로 바꿔갑니다. 공동체는 다양한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지만 그렇다고 군중과 같은 것은 아닙니다. 모인 사람의 수는 많을지라도 군중과는 달리 공동체에는 추구하는 목적이 있고, 목적을 위해 함께 일합니다. 또한 목적을 이뤄가는 과정 중에도 지켜야 할 원리와 원칙을 갖고 있습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독특한 역할이 각 사람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교회는 말씀으로 삶의 목적을 끊임없이 일깨워 주며, 목적을 이룰 수 있도록 소망을 주며 동기부여를 합니다. 믿음의 형제˙자매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각자 맡은 사역의 귀하고 아름다움을 격려하는 곳입니다.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께 집중할 수 있게 해 주며, 신앙 훈련을 통해 믿음을 굳세게 합니다. 서로 사랑하며 함께 문제를 대처하고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 줍니다. 우리의 재능을 발견하도록 해 주며 전도를 통해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해 줍니다.

공동체는 다음과 같은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해서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를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2:10)” 공동체가 가족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가족이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하며 마음을 나누는 곳이라면, 공동체는 그에 더해 목적과 사명을 더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가족의 단위를 넘어서서 사명과 방향을 가져야 합니다.

공동체의 본질을 잃게 만드는 것이 있는데, 바로 죄입니다. 죄가 들어오면 공동체는 깨지고, 교회는 그 본질을 잃게 됩니다. 죄란 하나님을 의지하고 섬기는 대신, 스스로 하나님이 되어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어 살아보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이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니 이웃과의 관계가 끊어집니다. 이웃과의 관계가 끊어지니 이 땅에서 이룰 사명도 희미해져버립니다.

죄는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특징이 있습니다. 아담이 하와를 보고 살 중의 살이요, 뼈 중의 뼈라고 사랑을 고백했건만, 죄가 들어오고 나서 아름다운 관계도 깨지고 맙니다. 죄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공급받는 통로를 다 잘라버리는 무서운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며 격려하지 못하도록 시기와 질투의 통로를 만듭니다. 자기 본래 자리를 찾지 못하게 하고, 분량에 넘는 일을 하게 하면서 공동체를 어렵게 만듭니다.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게 하고 들어야 할 것을 듣지 못하게 합니다. 죄는 감사하는 마음을 빼앗아, 불평과 원망 가운데 세상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거짓말로 교회 공동체에 들어오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죽이셨습니다. 그 이유는 죄가 들어와 공동체를 변질시키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죄로부터 교회 본질을 지키고 보호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와 사랑을 따라, 우리 각 지체도 서로가 죄로부터 승리하며 나가도록 보호해줘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어디에 소속되어야 할까요? 여러분은 어디에 소속되기를 원하십니까? 계모임이나 아주 이름 있는 단체에 장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습니다. 서두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소속되기만 해도 자랑스러운 그런 모임에 속하고 싶어합니다. 삶의 의미와 존재가치를 깨닫게 해 주고, 나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할 수 있는 친구와 동역자를 만날 기회를 주며, 성취해야 할 일들이 있음을 날마다 확신시켜줄 모임 말입니다. 반가운 소식이 있습니다. 주님은 이러한 우리 바램에 대해 교회를 통해 응답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주님께서 오늘 우리를 교회로 부르셨습니다. 우리 자신도 교회이지만 함께 모인 공동체도 교회입니다. 건물의 개념이 아닙니다.

여러분, 교회에 나오면서도 한 몸 된 것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면 어딘가 병들어 있다는 증거입니다. 교회가 한 몸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모두 교회에서 이 땅을 살아가는 이유와 목적을 일깨워주시는 하나님을 만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옆에 있는 이웃이 단순한 이웃이 아니라 목적을 향해 걸어가는 동안 희망과 기쁨을 나눌 동역자, 한 가족이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더 나아가 오늘 왜 우리가 지금 이 모습으로 살아야 되는지 말씀을 통해 권면하시는 하나님께 기쁨으로 나가는,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교회의 한분 한분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