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본이 되는 교회 (살전 1:1-10)

  • 잡초 잡초
  • 248
  • 0

첨부 1


- 설교 : 박춘수 목사 (강동교회)

어떤 설교자가 교회에 대해서 이런 설교를 한 적이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완전한 교회를 발견한다면 부디 그 교회에 가입하지 마십시오.만일 가입한다면 더 이상은 완전한 교회가 아닐 것입니다.”

이말은 결국 지상에 더 이상 완전한 교회가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하여 좋은 교회로 소문난 서울의 모교회를 섬기는 교역자를 만나서 대화를 한 적이 있습니다. “좋은 교회를 섬기셔서 행복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물론 감사하지요.그러나 남모르는 어려움이 많습니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적어도 목사님이라면 목사안수를 받고 목회를 하면서 목회를 잘하고 싶고 교회를 잘 이루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꿈을 안고 목회를 시작하지만 현실은 그렇세 생각한 것같지 못할때가 많습니다. 또 성도라면 무엇보다도 좋은 교회를 출석하여 신앙 생활을 즐겁게 행복하게 하고 싶을 것입니다.그러나 현실의 교회생활은 기대한 것과 같지 않을 경우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저는 이제 24주년을 맞은 우리 강동교회를 하나님의 은혜로 만3년을 섬겼습니다. 강동교회 역시 불완전한 교회입니다. 그래서많은 약점과 문제점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좋은 장점도 봅니다. 이제 3년여를 섬기면서 우리 강동교회의 시점은 비상하기 직전의 비행기와 같이 많은 수고와 에너지를 요구하는 때입니다. 여러분들이 비행기를 타보시면 알겠지만 비행기는 하늘을 날기 이전에 그 준비시간이 있습니다. 활주로에서 충분히 엔진을 가동시키고 날 수 있는 준비를 합니다. 그리고 날기위해서 모든 비행기의 힘을 최대한 쏟고 결국 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두날개로 비상하고 나면 그 뒤부터는 순조로운 항해를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날기까지의 과정입니다. 지금 우리는 날기직전의 비행기처럼 여러 가지로 힘을 모으고 준비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어려운 부분도 있고 더 집중해야 할 부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기를 겪게 되면 우리 교회는 분명히 비상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지역교회로서 우리 교회가 가장 먼저 회복해야 할 과제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지역 속에서 좋은 본이 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역 속에 좋은 소문을 내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지역 속에서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목회자인 어떤 한 지도자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든 성도들의 힘과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소개되는 데살로니가 교회는 지역에 좋은 소문을 내는 본이 되는 교회였습니다. 바울도 인정하고 칭찬하는 교회였습니다. 이 데살로니가 교회는 주님이 원하시는 좋은 본이 되는 모습이 있었습니다.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주님께서는 데살로니가 교회를 외적인 기준으로 언급하여 보지않았습니다. 데살로니가교회가 얼마나 많은 수의 성도가 모이는 지 언급히 없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어떤 외적인 건물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어떤 좋은 프로그램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철저하게 여기서 데살로니가 교회가 본이 되는 요소는 영적인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제 회복해야 될 교회는 조직적인 교회의 회복이 아닙니다. 본이 되는 교회는 법대로 세우는 교회보다도 어떤 조직위에 세우는 교회보다도 주님 위에 영적으로 세우는 유기적인 교회의 회복이요 영적인 교회의 회복입니다. 우리는 이런 교회의 본을 회복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2차 전도여행때에 세웠습니다. 사도행전 17장에 보면 바울이 데살로니가 회당에서 복음을 증거합니다. 그때 어떤 사람들 즉 경건한 헬라인과 적지 않은 귀부인들이 전도가 되어 데살로니가 교회를 세우게 됩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시기하여 바울은 그곳을 떠나게 됩니다. 나중에 바울은 디모데를 보내어 데살로니가 교회의 형편을 듣게 됩니다. 디모데가 갖고 온 소식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본이 되는 소식을 갖고 온 것입니다. 바울은 디모데로부터 소식을 듣고 난 뒤에 이 서신을 기록하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라고 했습니다. 자랑이라고 했습니다.왜냐하면 너무나 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강동교회가 하나님의 나라에 영광과 기쁨과 자랑이 되는 본이 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강동교회는 개척되어 오늘 24주년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과연 추구해야 할 교회의 모습은 무엇입니까?과연 데살로니가 교회를 통하여 우리가 어떤 본이 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까?

1. 구원받은 교회였습니다.

1절
4절
여기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가 하나님 안에 있음을 인해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를 향해서 확신있게 4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라고 말하고 있고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고 하고 있습니다.
여기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구원받은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구원받은 성도인 것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오늘 교회가 교회다와지는 데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문제가 무엇입니까? 그 교회가 좋은 본을 끼치고 좋은 소문을 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본질이 무엇입니까? 개인적으로 성도들이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고 구원받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철저하게 기본이요 이것이 먼저 이루어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님께서는 마태복음 13장에서 이땅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는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있을 것임을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누가 알곡이고 누가 가라지입니까?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은 사람들은 알곡입니다.구원이 없다면 가라지인 것입니다.그러나 저는 우리 강동교회 모든 성도들이 알곡이 되기를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먼저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나를 구원하여 주신 이 귀한 소식을 믿으시고 구원의 확신에 거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교회 속에서 항상 반복하여 다시 들어야 할 말씀이 바로 복음입니다.
이시간 다시 들려주고 싶은 것은 바로 복음입니다.우리가 죄를 용서받고 죄로부터 건짐을 받는 구원은 오직 복음을 듣고 믿을때 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구원을 위하여 정하신 약속입니다. 저는 오래 교회 생활을 하였지만 구원의 확신이 없는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롬10:9-10을 말씀을 읽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마음에 영접하고 믿게 되었습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요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인 십자가의 일을 믿게 되었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습니다. 그것이 기독교의시작이요 핵심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내가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지금이 바로 구원받을만한 때요 지금이 바로 은혜의 날인 것입니다.

여러분 중요한 것은 내가 구원받은 것을 적극적으로 확신하면서 감격스러운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기 데살로니가 교회는 구원받고 난 뒤에 그 구원의 감격이 있었던 교회였습니다. 그 구원을 현실 속에서 누리면서 살고 있었습니다.
지역교회 속에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 믿음 생활을 할때 우리가 본받아야 할 것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구원받은 성도가 믿음 생활을할 때 최소한으로 나타나야 할 개인적인 외적인 삶의 모습이 무엇입니까?
3절을 보십시오.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라고 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이런 외적인 구원받은 증거의 삶이 있었습니다.
믿음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여기 “믿음의 역사”란 “믿음의 사역”을 말합니다.데살로니가 교회는 믿음으로 행동하는 삶의 구체적인 결단과 행동의 모습들이 있었습니다. 우상을 섬기던 그들이 믿음으로 우상을 끓고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드렸습니다. 믿음으로 어떤 고난 속에서도 손해속에서도 믿음의 사람으로 자기를 지켰습니다. 오늘 우리 속에서 믿음의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말로만 주여 주여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삶 속에서 믿음의 분명한 사역과 행동들이 따라야 합니다. 믿음으로 철저하게 살아가는 삶이 되십시오.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예배하기를 힘쓰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기도하면서 믿음으로 어떤 고난 속에서도 결단하면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믿음의 역사가 있는 교회로 우리 강동교회가 본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구원받은 자로서 데살로니가 교회는 사랑의 수고가 있었습니다.데살로니가 교회는 살아계시고 참된 하나님을 사랑하는 교회였습니다. 성도 서로간에 그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고 적용하는 본이 있었던 교회였습니다. 여러분 진정 구원받은 주님의 사람들은 사랑받으려고만 하지 않습니다. 사랑하고 싶어합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의 뜻이요 바람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도 가정에서도 세상 속에서도 내가 어떻게 하면 저 사람을 사랑할꼬? 사랑의 삶을 살기를 힘쓰면서 살아갑니다.

구원받은 자로서 데살로니가 교회는 소망이 있었습니다. 그 소망은 세상적인 부귀와 성공의 소망이 아니라 주님의 재림에 대한 소망 예수님을 만날 그 임재에 대한 영적인 소망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내 삶 속에서 영적인 소망의 삶이 있습니까? 진정 구원받아 본이 되는 자의 삶은 주 예수님에 대한 소망 주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이 있습니다. 특별히 이제 우리 교회가 더욱 21세기 이 시대 속에서 영적인 비젼을 갖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구원받았습니까? 이제 누리면서 이제 그 구원의 풍성함을 내 삶속에서 적용하면서 살아가는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2. 본받는 교회였습니다.

6절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해서 바울은 ‘너희는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라고 인정합니다. 여기서 ”본받은 자“란 말에서 영어의 ”흉내내다“라는 말이 파생되었다고 합니다.데살로니가 교회는 단지 말로만 따라하는 자가 아니라 삶을 본받는 자였습니다.

여기 데살로니가 교회의 상황은 한가한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환난 가운데서” 주님과 바울을 본받는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이들이 구체적으로 받은 고난은 어떤 것일까요?
데살로니가 2장 14-16절에 보면 바울과 같이 동일한 고난을 데살로니가 교회가 고난을 받았습니다. 사도행전 17장 5-6절에 보면 바울일행이 데살로니가 교회에서 당한 고난이 소개됩니다. 한마디로 그 고난은 유대인들이 바울의 복음 증거를 시기하여 어떤 괴악한 사람들을 떼를 지어 모아가지고 바울일행을 죽이려고 성을 소동케하여서 결국 바울일행이 쫓겨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런 고난이 일어날 때 믿음을 부정하거나 교회를 떠나지 않고 오히려 고난 속에서 주님을 본받았습니다. 고난 속에 주님을 본받는 삶을 통하여 많은 교회에 본이 되었습니다.온 교회가 고난 속에서 주님을 본받으면서 얼마나 교회가 아름다운지 그 소식이 사방에 퍼진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 교회는 아시아 지역에 본이 되는 교회로 좋은 소문을 끼쳤습니다.

여기 데살로니가 교회가 인정받고 좋은 소문을 낸 것은 사람의 수가 아니었습니다. 교회재정이 많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좋은 건물도 아니었습니다. 어떤 사회적인 좋은 사업을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여러분 교회가 무엇으로 좋은 소문을 내어야 할까요? 그것은 많은 사람이 모이는 것도 아닙니다. 좋은 건물도 아닙니다. 그것은 오랜 역사도 아닙니다.  많은 사업도 아닙니다.
진정으로 교회가 자랑하고 본이되는 것은 바로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이 모이면 좋지요.그러나 아무리 많은 사람이 모여도 주님 닮은 사람이 없다면 소용이 없습니다. 좋은 건물이 있으면 좋습니다. 그러나 주님 닮은 사람이 없는 건물이라면 의미가 없습니다. 좋은 사업을 많이 하면 좋지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주님닮은 사람이 없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사람을 자랑할 수 있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닮은 사람,바울을 닮은 사람이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교회의 가장 핵심적인 사역은 바로 주님닮은 사람,주님따르는 제자가 더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땅에 오신 주님께서는 12명을 제자삼아 주님닮기를 양육하시고 훈련하셨습니다. 주님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주님닮은 제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그리고 그것을 오늘 우리 교회에 위임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세상을 떠나시면서 마태복음28:19-20을 보십시오. 가장 중요한 지상명령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하라”는 것입니다. 여기 가장 중요한 부탁은 “가서 제자삼으라”는 것입니다. 제자삼기 위해서 전도하라는 것입니다. 제자 삼기위해서 세례주라는 것입니다. 제자삼기 위해서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의 핵심사역으로 제자훈련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제가 하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고 주님께서 “제자삼으라”는 말씀을 하셨고 이것이 바로 교회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제자훈련의 목적은 바로 주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인격을 본받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역을 우리가 본받아 행하는 것입니다. 감사한 것은 제자훈련을 통해서 주님을 본받는 사람들이 되어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물론 그 속도가 완만하고 때로는 실망스러운 모습이 나타나지만 중요한 것은 변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변하고 습관이 변하고 말이 변합니다. 주님을 대하는 태도가 변합니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변합니다. 변한다는 것 자체가 사실은 은혜요 기적입니다.
그러나 어떤 분들은 굳이 제자훈련을 해야 하는가?

의문을 제기하고 반기를 드는 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제자훈련을 하면 피곤하고 힘이 듭니다. 주일날 같은 경우에는 제자훈련하는 것이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그렇게 하지 않아도 무어라고 하는 분이 없습니다. 내가 목회하는 것은 나를 위해서 목회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주님을 위해서 목회하도록 나는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제자훈련을 하는 것이 교회가 성장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자훈련을 하는 것은 어떤 목회프로그램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께서 교회를 향하신 뜻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제 교회창립24주년을 맞이하여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여기 데살로니가 교회가 주님을 본받아 변화되어 교회가 좋은 소문을 낸 것같이 여러분 우리 교회가 좋은 소문을 내는 교회로 세워지는 복을 경험하기를 원합니다.
변화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본받는 참된 제자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 속에 주님의 참된 제자로 변화된 사람의 수가 더해갈 때 이 교회는 이 지역에 좋은 소문을 내고 좋은 본이 되고 이 민족 속에 세계속에 인정받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댓가를 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를 본받는 과정은 분명히
댓가가 지불되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주를 본받기 위해서 고난의 댓가를 지불했습니다. 오늘 강동교회가 주님을 본받기 위해서 댓가를 지불하기를 바랍니다.
때로 새벽을 깨우면서 잠을 참는 고통의 댓가를 지불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때로 주님을 위하여 자기의 몸과 마음과 생각을 쳐서 몸과 시간을 드려야 하는 훈련의 댓가를 지불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나는 하기 싫지만 주님 뜻이기 때문에 순종해야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때로는 내가 먹고 싶고 쓰고 싶고 하는 것을 절제하고 주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서 물질을 드려야 하는 댓가를 지불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 이 댓가를 우리가 다함께 지불하시기 바랍니다.


3. 영혼을 건지는 교회였습니다.

8절
여기 데살로니가 교회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면서 그것으로 사실 전도가 되었습니다. 삶과 인격으로 좋은 본을 보이는 전도 참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상을 버리고 변화된 데살로니가 신자들을 보면서 주님께로 돌아오는 은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8절에 보면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각처에 퍼진고로“라고 합니다.여기 ’퍼지다‘는 원어를 통해서 영어의 ’메아리친다‘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즉 데살로니가 교회를 입술로 주님의 복음을 증거한 것입니다.
우리는 일차적으로 우리의 인격과 삶을 통해서 전도해야 합니다. 때로는 우리의 변화된 인격과 삶을 통해서 주님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입술을 통해서 복음의 역사,구원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그래서 롬10:14-15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엿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고 합니다.여기 데살로니가 교회는 복음을 외치는 전도를 통해서 영혼을 건지는 교회였습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가 내적으로 가장 집중하는 사역이 제자훈련이라고 한다면 외적으로 가장 힘을 모으고 순종해야 하는 사역이 바로 영혼을 구원하는 전도와 선교사역입니다. 과연 데살로니가 교회는 어떻게 전도했을까요?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전도에 좋은 도전을 주었습니다.데살로니가 전서2장 7절에 보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전도하였습니다. 11절에 보면 아비가 자기 자녀에게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듯이 전도하였습니다. 여기 아비가 되어 어미가 되어 사랑의 전도를 했습니다.데살로니가 교회는 이런 바울을 본받아 전도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여러분 전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방법일까요?프로그램일까요? 물론 좋은 방법,프로그램이 중요합니다. 우리교회에서도 해마다 태신자전도방법을 동원해서 전도합니다. 태신자란 어미가 해산할 아기를 품듯이 전도대상자를 품고 기도하면서 해산하게 하는 전도법입니다. 그래서 먼저 기도하면서 내가 전도할 대상자를 잉태합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주님께로 인도하는 해산을하게 합니다. 저는 이 전도방법이 굉장히 좋고 성경적이라고 봅니다. 육신의 아기를 얻는데도 하나님은 10달의 시간을 요구합니다. 그 기간동안 아기를 잉태한 어머니는 건강한 아기를 해산하기 위해서 열심히 음식을 먹고 운동을 하면서 아기를 잉태합니다. 그래야 때가 되면 건강한 아기를 해산할 수 있습니다. 전도를 통해서 한 영혼을 해산하는 것도 이런 수고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미와 아비의 심정으로 사랑의 마음을 품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도는 방법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가정에서 대학교 나왔다고 아기를잘 해산하고 중학교 나왔다고 아기를 잘 해산하지 못합니까?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중요한 것은 어미에게 아기에 대한 사랑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랑이 있는 어미는 좀 지식이 모자라도 방법이 서툴러도 아기를 잘 해산하고 잘 양육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누가 전도할 수 있습니까?

어미의 심정,아비의 심정을 갖는 것입니다. 그것은 한 영혼에 대한 사랑이 있는 사람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갖고 그 영혼을 해산하기를 그 마음에 소원하는그 사랑이 있는 사람만이 해산의 열매를 맺을 수있습니다.
여러분 정말 본이 되는 교회는 우상을 섬기던 영혼이 주님께로 돌아오는 교회입니다. 세상을 따라 육신을 따라 살던 영혼이 주님께로 돌아오는 교회입니다. 우리가 24주년 창립주일을 맞이하면서 다시 기억해야 할 것은 개척자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처음 개척교회를 시작할 때 여러분 그때 복음에 대한 열정과 구령의 열정으로 교회가 개척되었을 것입니다.

종종 요즘 수평이동에 의해서 교회가 성장되어지는 경우를 봅니다. 물론 그렇지 못한 것보다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수평이동의 성장은 우리 주님께서 보시기에 많은 아쉬움과 안따까움이 있습니다. 우리 주님이 기뻐하는 것은 길잃고 헤매던 한 영혼이 주님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때 하늘나라에서는 의인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 기뻐할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이 기쁨이 주님만의 기쁨이 아니요 우리 교회의 기쁨이 되고 나의 기쁨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복음으로 돌아가기를 바랍니다.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용서의 복음, 피흘림의 구원의 복음이 우리 모두의 복음이 되기를 바랍니다.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그 용서의 복음 구원의 복음이 들려지기를 바랍니다. 이 교회를 통해서 복음이 마른 광야에서 샘이 솟듯이 항상 샘솟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가는 곳마다 복음이 들려지고 그 복음 때문에 구원받는 자의 수가 더해가며 우리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의 소리가 더해지는 귀한 교회가 되어지는 은혜와 복을 우리 모두가 경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