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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새로운 피조물 (창 1:1~4, 고후 4:16~18, 요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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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박종화 목사 (경동교회)

<구약의 말씀: 창세기 1:1 ~ 4>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둠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 위에 움직이고 계셨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빛이 생겨라" 하시니, 빛이 생겼다. 그 빛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셔서

<서신서의 말씀: 고린도후서 4:16 ~ 18>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 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나날이 새로워 갑니다. 우리가 지금 겪는 일시적인 가벼운 고난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영원하고 크나큰 영광을 우리에게 이룩해 줍니다. 우리는 보이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봅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복음서의 말씀: 요한복음서 15:1 ~ 8>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내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다 찍어 버리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열매를 더 많이 맺게 하려고 손질하신다.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말한 그 말로 말미암아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 언제나 내 안에 머물러 있어라. 그러면 나도 너희 안에 머물러 있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과 같이, 너희도 내 안에 머물러 있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사람이 내 안에 머물러 있고, 내가 그 사람 안에 머물러 있으면, 그는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사람이 내 안에 머물러 있지 않으면, 그는 쓸모 없는 가지처럼, 버림을 받아서 말라 버린다.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서 태워 버린다. 너희가 내 안에 머물러 있고 나의 말이 너희 안에 머물러 있으면, 너희가 무엇을 구하든지 다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어서 나의 제자가 되면, 이것으로 나의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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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년 일년에 한번씩 독일인 교회의 형제자매와 연합예배를 드려왔습니다. 오늘이 그날입니다. 연합예배를 드리는 뜻은, 비록 인종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언어가 다르지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는 점을 확인하고, 이렇게 하나가 되게 하심을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오늘 한국과 독일의 양쪽 말로 예배를 드려야 하고, 또 성만찬 예식도 있고 해서 아주 짧게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이 이런 말을 합니다.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지만 속사람은 날로 날로 새로워집니다.” 인간에게는 겉사람이 있고 속사람이 있는데, 우리의 겉사람은 깨어질 수 있지만 속사람은 깨어지지 않습니다. 속사람은 새롭게 창조됩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복을 받아 이 세상에 태어났지만, 고통 받고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 생명의 당연한 이치입니다. 사람이 고통을 받고 죽으면 그것으로 끝인 것 같지만, 아닙니다. 사람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은 새로 살아서 새로운 역사를 시작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보았습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 낡아가고 깨지는 그릇과 같은 몸으로 오신 예수가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렇지만 그분이 죽은 것은 끝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라 이름하는 인간의 몸속에 담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살아나셔서 부활의 주, 생명의 주가 되셨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말은 예수의 길이 우리의 길로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예수가 받은 고난을 같이 받고, 예수와 같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면, 우리는 예수와 같이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인데, 그때 사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것은 예수를 믿는 신앙이 없이는 고백할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말을 잇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겉사람, 깨어질 그릇, 질그릇과 같은 사람은 고난을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그 말은 오늘 고난 가운데 있는 이 질그릇 속에 영원한 생명이라 미래가 이미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오늘을 오늘이라는 눈으로만 보지 말고, 아직은 보이지 않고 아직은 손으로 만질 수 없으나 신앙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미래의 눈으로 오늘을 보십시오. 내일의 안경을 끼고 오늘을 보십시오. 십자가를 예수의 탄생에서 보지 마시고, 십자가 사건을 부활의 눈을 가지고 보십시오.

오늘이라는 현실을 내일이라는 눈으로 보십시오. 그럼 오늘 속에 내일이 이미 조금씩 들어와 있음을 보게 될 겁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말은 하나님의 미래가 오늘의 인간의 현실 속에 들어왔다는 뜻입니다. 지금도, 오늘 5월 이 순간에도 우리에게 약속된 내일의 밝은 미래가 조금씩 들어와 있습니다. 이것이 인카네이션일 겁니다.

인간의 역사 속에 미래의 하나님이 들어오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약속된 미래가 조금씩 임하고 있으므로, 고통스럽고 죽을 맛인 오늘의 현재도 보람 있게 살 수 있습니다. 오늘 속에 있는, 고통 속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맛볼 수 있는 기쁨이 크기 때문입니다. 이걸 누가 가능하게 합니까? 하나님이 가능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렇게 하십니다.

오늘 속에 내일이 임해야 구원이 있습니다. 오늘로 끝나고, 내일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내일이 오늘 속에 임재해야 오늘 구원받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그런 방식으로 임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마치 영원한 미래인 것처럼 오늘을 살라고 합니다. 오늘이라는 그릇 속에 내일의 보화가 담깁니다. 그 보화의 이름은 하나님의 사랑.

예수께서는 또다른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라는 것입니다. 포도농사에는 포도나무 줄기만 필요한 게 아니라 가지도 있어야 합니다. 열매를 맺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포도나무와 가지는 하나로 이어져 있어야 합니다. 가지가 줄기에서 떨어지면 그 가지는 시들어서 열매를 못 맺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에 연결되어야 되어야 합니다.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가 되게 하는, 연결하는 힘은 무엇입니까?

성서는 말씀합니다. 포도나무와 가지가 한 몸이 되게 이어주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구원을 베푸시는 사랑으로 나무와 가지를 연결하십니다. 그분의 사랑 때문에 오늘과 내일이 연결됩니다. 미래와 현재가 연결되고 포도나무와 가지가 연결되는 겁니다.

사랑은 고난을 받습니다. 사랑은 아픔을 당합니다. 미래가 잉태하기 때문입니다. 미래를 창출해내는 기쁨은 고통의 그릇에 담겨 있습니다. 고통의 그릇이 깨어지면 그 속에 담긴 생명의 기쁨이 빛을 발합니다.

오늘 여러분께서 우리 가운데 움트는 생명의 역사를, 그 기쁨을 다시 한번 맛보시기 바랍니다. 그러지 않는다면, 오늘을 살아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늘의 기쁨은, 오늘의 가치는 바로 오늘이라는 그릇 속에 생명의 보화, 하나님의 내일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 기쁨이 오늘 여러분에게 충만히 임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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