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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확실한 멘토 (창 3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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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서해원 목사 (대광교회)


  오늘 말씀의 제목을 ‘멘토(Mentor)’라고 정했습니다. 멘토라는 말은 조언자, 영향을 주는 자, 스승, 선생, 상담자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 말의 처음 시작은 고대 그리스의 역사에서 비롯됩니다. 그리스에 ‘오디세우스’라는 왕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트로이 전쟁을 떠나면서 자신의 아들인 ‘텔레마코스’를 보살펴 달라고 한 친구에게 맡기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의 이름이 바로 ‘멘토’였습니다. 그는 텔레마코스의 아버지처럼, 때론 스승처럼 잘 돌보아 주었습니다. 텔레마코스는 멘토의 지대한 영향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그러나 20년이 지나도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자 아들은 아버지를 찾아 나섭니다. 그런데 쉽지 않았습니다. 우여와 곡절이 있었고, 힘들고 어려웠습니다. 그때마다 그의 앞에 멘토는 삶을 잘 지도해 주는 사람의 모습을 늘 나타나곤 했습니다. 그 이후로 멘토라는 이름은 한 사람의 인생을 이끌어 주는 스승의 의미로 사용되었고, 그 말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게 된 것입니다.

  사람이 인생을 살면서 삶을 이끄는 멘토, 즉 스승이나 조언자가 있다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없습니다. 사람은 자라면서, 커가면서 누군가의 영향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좋은 사람을 만나 좋은 영향을 받으면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고, 나쁜 영향을 받으면 나쁘게 되는 것입니다.

  야곱의 생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30년의 파란만장했던 그에게도 역시 삶에 영향을 주었던 사람들이 있었고, 성공의 삶에 결정적인 힘이 되었던 것이 많았습니다. 그러니까 그의 삶에도 멘토가 있었다는 말입니다. 부정적, 긍정적인 측면에서 그 멘토는 확실한 것이었습니다. 그가 뛰어나 사람으로 서기까지 인생을 통해 배우고 영향을 받았던 확실한 멘토가 무엇이었을까요?

  우선, 사람이었습니다. 본문은 야곱이 외삼촌의 집에서 살다가 이제 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결심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우리는 지금 야곱의 생애를 주제별로 살펴보고 있습니다. 단란한 가정을 이루며 행복하게 살던 어느 날 야곱은 형을 속이고 장자권을 뺏습니다. 이 일로 형의 분노가 하늘까지 치솟습니다. 더 이상 살 수 없을 상황이 되자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에게 집을 떠나라고 권면합니다. 야곱은 어머니의 말에 따라 고향을 떠나 하란에 사는 외삼촌의 집으로 갑니다. 형의 분노가 그치기까지 잠깐이면 될 시간이 무려 20년이 흘렀습니다. 참 긴 세월동안 야곱은 이민자의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기간동안 야곱은 큰 축복을 받았고, 성공하는 인생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그는 많이 배웠고, 많이 알았습니다. 어머니 품에서 조용히 지내던 야곱이 인생의 진한 맛을 보면서 단단한 사람으로 변해간 것입니다. 이 기간동안 그의 인생에 무엇보다도 빼놓을 수 없는 멘토는 바로 외삼촌 라반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그가 인생을 통해 배운 것은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처음 야곱에게 라반은 의지할 대상이었습니다. 가족도, 친구도 없고, 또 외롭고 힘든 낯선 곳에서 오직 외삼촌만 믿고 살았습니다. 외삼촌은 야곱의 생애에 부모보다 더 많은 영향을 주던 사람입니다. 처음 라반은 야곱을 잘 대해 주었습니다. 야곱도 성실히 일했습니다. 일한 만큼 대가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점점 야곱이 강성해지자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라반은 조카인 것도 잊어버린 채 적대감을 갖게 됩니다. 주기만 하다가 이제 뺏으려고 합니다. 물질 앞에 혈육도 가족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토록 의지할 대상이던 외삼촌이 이제는 못 믿을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7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그대들의 아버지가 나를 속여 품삯을 열 번이나 변역하였느니라”

  야곱은 사람을 통해 속고 속이는 삶을 배웠습니다. 그는 처음 형을 속여 축복권을 빼앗았습니다. 그러다가 이제는 외삼촌에게 속았습니다. 아내 라헬의 사랑하는 일로 속았고, 품삯을 받는 일로도 속았습니다. 그의 속고 속이는 삶은 거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야곱은 나중에 그의 자녀에게까지 속습니다. 요셉의 형제들은 요셉이 죽은 것으로 감쪽같이 아버지를 속이는 것을 봅니다. 이것이 야곱의 생애였습니다. 이것이 그가 사람을 통해 배운 것입니다. 속고, 속이면서 사람을 통해 배운 그의 인생은 결국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게 됩니다. 세상에 믿을 대상은 오직 하나님뿐이라는 것, 그렇게 그는 사람을 통해 많이 배우면서 믿음의 사람이 되어 간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인생에 확실한 멘토입니다. 야곱처럼 사람을 통해 배워야 합니다. 사람은 의지할 대상이 아닌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은 믿을 대상이 아닙니다. 사람 믿다가 큰 코 다칩니다. 사람 믿다가 배신의 아픔을 맛봅니다.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힙니다. 사람은 믿을 대상이 아니라, 사랑할 대상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용서하고 품어야 합니다.

  사람을 보면서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사람을 통해 하나님 의지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시편 146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사람을 의지하지 마십시오.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야곱의 하나님으로 도움을 삼아야 합니다. 사람을 통해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며 사는 여러분들의 신앙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경험입니다. 야곱 인생에 확실한 멘토는 사람 말고 또 경험이었습니다. 야곱은 인생을 살면서 귀한 경험을 하였고, 그것이 인생을 떠받치는 귀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본문에서도 그것을 잘 나타내 줍니다. 2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라반의 안색을 본즉 자기에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아니하더라” 이 말은 이제는 야곱이 라반의 얼굴만 보아도 어떤 마음인지 알게 되었다는 뜻으로서, 그만큼 경험을 통해 배우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야곱은 많은 경험을 했습니다. 그것이 또한 그를 성공의 인생으로 이끄는 원동력이었습니다. 인생의 확실한 멘토는 경험입니다. 경험이 필요하고, 경험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내 삶에 경험되지 않은 것은 사실 내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이론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경험으로 삽니다. 경험이 확실한 멘토입니다. 삶은 경험하고, 체험하고, 뭔가 당해야 아는 것입니다.

  제가 어느 책에서 본 내용입니다. 은행에서 고급 인력으로 일하는 60대 어느 분이 계십니다. 이 사람은 중학교 중퇴의 학력을 가진 분입니다. 이런 사람이 은행에서 일하고, 그것도 높은 위치에서 있는 것이 예사로운 일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가 은행업무와 연관을 맺게 된 것은 카튜사에 있던 시절 20달러의 위조 지폐를 밝혀내면서부터였다고 합니다. 그는 제대한 이후, 이 일에 더욱 연관을 맺으려고 무조건 은행에 찾아갔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정식직원이 아닌 일용직으로 채용되어 돈을 세어주는 일부터 시작했는데 점점 그의 능력을 인정받아 정식 직원이 되었고, 나중에는 무시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하는 일은 주로 위조 지폐를 감지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정교하게 만든 위조지폐도 그 사람의 손에만 쥐어지면 정확하게 감별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종종 그에게 어떻게 기계보다 정확하게 감별하느냐고 묻는다고 합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우선 돈을 많이 만져보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물론 타고난 재능도 있겠지만, 돈을 만지면 감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가 나름대로 성공한 인생을 살면서 존경을 받게 되어 이제는 종종 자기를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그는 이렇게 늘 말한다고 합니다. “성공은 경험이 있습니다. 자신의 분야에서 더 많은 경험을 하는 것이 성공하는 길입니다.”

  경험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돈으로 살 수 없고, 노력해서 얻는 것도 아닙니다. 경험보다 인생에 더 큰 선생, 스승이 없습니다. 그래서 경험을 많이 한 노인이나, 연륜이 깊은 원로들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그들은 삶의 경험을 통해 얻은 것이기에 무엇보다도 값진 것이요, 소중한 것입니다.

  신앙도 그렇습니다. 신앙은 철저하게 체험입니다. 신앙은 이론이나 지식이 아닙니다. 아무리 성경을 많이 배웠다고 해서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이론으로 성숙을 이룰 수 없습니다. 성경을 평생 연구하는 학자들이라고 해서 모두 성숙하지 않습니다. 전도서의 말씀처럼 많이 배우면 몸만 피곤합니다. 한 구절을 알아도 그것이 내 삶에 체험되고, 그것이 내 것이 될 때 신앙은 견고해 집니다. 성경의 모든 이론과 지식이 내 삶에서 능력으로 표출되도록 투자해야 합니다. 그렇게 신앙의 사람이 되어가야 합니다.

  경험이 선생입니다. 경험이 내 인생에 가장 확실한 멘토입니다. 많이 체험하고, 많이 경험하면서 인생과 삶을 배우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야곱 인생에 가장 확실한 멘토는 물론 사람이었고, 경험이었지만, 무엇보다도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었습니다. 야곱은 집을 떠나면서 벧엘에서 처음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거기에서 그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었습니다. 위로와 격려의 말씀이었고, 약속과 능력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만나면서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 그는 말씀에 귀를 기울였고, 말씀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말씀이 인생에 지표와 나침반이 되었던 것입니다.

  본문도 그런 관점에서 보아야 합니다. 지금 야곱이 뭔가 결정을 내려야 할 상황입니다. 하란에 계속 머물 것인가, 아니면 떠날 것인가, 떠나면 어디로 가야 하는가, 고향인가 아니면 또 다른 곳인가, 삼촌과의 불편한 관계를 해결하는 길은 무엇인가, 그는 이 모든 문제를 말씀으로 배웠습니다. 말씀이 그에게 가장 확실한 스승이었습니다. 그래서 벧엘에서 들었던 하나님의 음성이 여기에서도 어김없이 들려옵니다. 3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야곱은 이 한마디의 말씀을 듣고 떠나기로 결정합니다.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것이 많았습니다. 하란에서도 외삼촌이 자기를 순순히 놓아 줄 리가 없었습니다. 설령 외삼촌이 자기를 놓아주어도, 고향에서는 형이 복수의 칼을 갈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느 것 하나 확실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확실한 멘토였던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을 맡겼습니다. 지금까지 자기를 한번도 실망시키지 않았던 하나님, 그분의 음성을 듣고, 가기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을 알았습니다. 결국 야곱은 식솔들을 거닐고 하란을 떠납니다. 이것이 바로 야곱이 성공한 인생의 비결입니다. 야곱에게서 가장 확실한 스승은 말씀이었습니다. 말씀이 그를 참 바른 하나님의 사람으로 이끌어 간 것입니다. 그는 오직 말씀 앞에 순종한 것 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야곱을 위대한 이스라엘의 조상으로, 뛰어난 믿음으로 만든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의 삶에 가장 확실한 스승은 오직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입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합니다. 언제나 변하지 않습니다. 가장 확실합니다. 말씀이 우리의 가장 좋은 멘토입니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민족으로 인정받는 유대인의 자녀교육은 한마디로 말씀교육, 그리고 반복교육입니다. 신명기의 말씀처럼 그들은 그대로 합니다. 모세는 당대와 후대에게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

  유대인은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히 여깁니다. 말씀이 그들의 삶에 한 순간도 떠나지 않게 교육합니다. 반복하고 또 반복합니다. 말씀을 손목에 메고, 미간에 붙입니다. 집의 대문에, 집 안 구석구석에 말씀을 붙여 놓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묵상합니다. 말씀을 기억합니다. 말씀대로 살려고 몸부림칩니다. 말씀이 그들 인생에 가장 확실한 스승입니다.

  어제는 스승의 날이었습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내 자녀를 가르치는 선생님도 스승의 날에 그냥 지나치지 않습니다. 하물며 우리 자녀들의 영적 삶을 지도하는 교회학교의 교사들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습니다. 남모르게 애쓰고 있습니다. 많이 관심을 갖고, 격려해 주시고, 힘을 주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들 교사에게 우리 자녀들의 미래가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교사는 그저 위로를 받는 것에서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이제 좋은 교사, 좋은 스승이 되어야 합니다. 교사들의 말 한마디에 학생들의 장래가 달려있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학생들에게 좋은 멘토가 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말씀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교사의 사상이나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교사는 먼저 말씀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이 말씀을 모르고 어떻게 가르칠 수 있습니까? 자신이 말씀에 대한 확신이 없는데 어떻게 말씀을 줄 수 있습니까? 교사로서 내가 말씀의 멘토를 잘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학생에게도 평생 멘토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들의 손목에 메게 하고, 미간에 붙이게 하고, 그들의 집에 좋아하는 연예인 사진이 아니라 말씀이 붙여지게 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교사는 바로 이 일에 부름 받은 사람임을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과 저의 인생에 멘토가 있습니다. 내 삶을 결정짓는 중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사람을 통해 많이 배우십시오. 경험을 축적하십시오. 그리고 말씀의 사람이 되십시오. 이것의 지도를 잘 받으면 분명 우리 인생은 야곱처럼 성공하게 될 것입니다. 이번 주간도 이 말씀의 의미를 붙잡고 승리의 길을 향해 힘있게 전진해 나가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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