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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부주일] 부부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명령 (골 3: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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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윤성진 목사 (부산영락교회)

이원수 씨의 ‘부부의 정’이라는 책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아무런 혈연도 없으면서 혈연의 창조자가 되는 부부,
세상에 가장 좋은 사람 가장 사랑하는 사람으로 만나 차츰 예사로운 사람으로 여기고 때로는 시들하게 생각하면서도 가장 미더운 사람, 가장 믿고 의지할 사람으로 생각되는 부부,
화려하고 황홀하다가 초라하고 미운 것도 드러나서 탓도 하고 원망도 하는 가운데 나 자신이 상대와 하나로 뭉쳐져서 새로운 하나가 되는 부부,

고마우면서 고맙다하지 않고 즐거우면서 즐겁다 말하지 않는 가운데서 서로 믿고 만족하며 사는 부부,
남에게 자랑하지 않으면서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고 알뜰하게 위하게 되는 부부,
아무리 가까운 타인과의 사이에도 비교할 수 없이 더 가까운 사이,
그 사이에서 인간은 온갖 행동과 노력이 준비되고 이루어지는 인생의 총본부, 세계의 총본부가 되는 부부,

하나님은 만세 전에 이런 부부가 되게 짝지어 주시고 이 땅에 태어나서 이런 연유, 저런 환경을 통하여 만나서 부부가 되어집니다. 하나님은 몇가지 이유 때문에 우리를 부부로 짝지어 주십니다.
먼저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부부가 가정을 이루어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부로 짝지어 주십니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전부 하나님의 관심은 인간의 행복에 있습니다.
두 번 째로는 돕는 배필로 부부가 되게 하십니다. 이 세상에 사람치고 도움이 필요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완벽한 부부, 완벽한 아내와 남편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도움이 필요하고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돕는 배필로 부부로 짝지어 주십니다.

다음은 경건한 자손을 낳게 하기 위하여 부부가 되게 하십니다. 또 간음을 피할 수 있도록 부부가 되게 하셨습니다. 또한 생명의 유업을 함께 누릴 수 있도록 있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를 부부로 짝지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남녀가 부부가 되어 서로 돕고 사랑하며, 경건한 자녀를 낳아 기르며, 행복하게 살도록 부부가 되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런 원리를 따라서 참 행복하게 살아가는 부부도 우리 주변에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 부부, 어쩔 수 없어서 참고 살아가는 부부, 때로는 깨어진 가정도 우리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한 10년 전의 통계를 살펴보면 1993년도에는 7가정이 결혼할 때에 1가정이 깨어졌습니다. 1997년에는 5가정이 결혼할 때에 1가정이 깨어졌습니다. 1999년에는 3가정이 결혼할 때에 1가정이 깨어졌습니다. 2004년 금년도에는 2가정이 결혼할 때에 1가정이 깨어집니다. 미국은 우리보다 이혼율이 조금 더 높습니다. 그렇지만 10년 전과 비교하면 비슷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10년 전과 비교하면 이혼 제 1위의 나라가 될 것같은 위기에 처해져 있습니다.
이혼으로 인하여 버려진 아이들이 늘어납니다. 아이들 뿐만 아니라 부모마저 돌볼 수 없어서 버려진 부모들이 늘어나서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가정의 기초는 부부입니다. 부부가 사랑하고 사이가 좋아야 자녀도 잘 키울 수가 있고 부모 잘 모실 수가 있지, 부부가 사이가 좋지 않으면 그 가정은 매우 어려움을 당합니다.

어떤 가정은 자녀가 중심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녀 때문에 부부 사이가 멀어질 수 있고, 또 부모 잘 모신다고 하다가 부부 사이가 멀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마는 그건 옳지 않습니다. 부부의 사이에 금이 가고 깨어지면 자녀 양육도 안 되고 부모 효도도 못 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신앙도 상처를 입고 때로는 신앙을 떠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정의 기초는 부부에게 있습니다. 가정에 부부라는 기초가 튼튼해서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어가는 우리 영락의 온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 할지니라>고 못을 박고 있습니다. 부부가 무너지면 가정이 무너집니다. 가정이 무너지면 신앙이 무너지고 따라서 사회가 무너집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혼하지 말라>고 못을 박고 있는 것입니다.
조금 전에도 두 가정이 결혼하면 한 가정이 이혼하는 것을 통계상으로 말씀드렸습니다. 통계상으로 보면 두 가정이 결혼하면 한 가정이 깨어지는 것 같지만 그러나 우리는 통계에 속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두 가정에 한 가정이 이혼한다니 나도 이혼해 버릴까하고 이혼을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늘어나고 있는지 모릅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합니다. 1년에 13,000명 이상이 자살을 하는데 어떻게 보면 저 사람도 죽는데 나도 죽어버리자하고 죽는 자살의 풍조가 요즘 돌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두 가정에 한 가정이 이혼을 한다니까 나도 해 볼까 아주 쉽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마는 실제적으로 우리 주변을 보세요. 두 가정이 결혼할 때 한 가정이 다 깨어져서 반쪽 가정이 반 정도 되는가를 보세요.
물론 이혼율이 늘어나는 것은 아주 심각한 일이고 이것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문화를 잘 바꾸어 나가야 되겠습니다마는 왜 그런가하면 이혼을 한번 한 사람이 계속 이혼을 해서 한번 이혼한 사람이 80%의 이혼율을 높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실제적으로는 이혼하는 가정이 그렇게 많지를 않아요. 이혼 한번 했던 사람이 두 번 째 결혼에 실패하고 또 이혼하고, 세 번째에 또 실패하고 계속해서 그러니까 이혼율이 높아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 숫자에 유혹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1.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하여 인내해야 합니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데 가장 필요한 것은 인내입니다. 버나드 위어즈라는 사람은 성숙한 부부 사이에 이르는 다섯 가지 단계가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 단계는 꿈세계의 시기입니다. 이때는 모든 것이 황홀하고 모든 것이 가능해 보입니다. 소위 말하는 허니문 시기입니다.
두 번째 단계는 이러한 로맨틱하고 달콤한 시기가 지나고 환멸의 시기가 찾아옵니다. 결혼이란 것이 이런 것인가, 이럴바에야 차라리 결혼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인데하고 결혼에 대해 실망을 합니다. 조그만 일에 부부가 시비를 하고 다투기 시작합니다. 이 환멸의 시기에 부부가 서로 잘 절충하고 대화하고 잘 극복해 나가면 한 단계 더 나은 사랑으로 나갈 수 있지만 그러나 많은 경우에 가정들은 좀 더 깊고 악화된 단계로 나아가게 됩니다. 소위 불행의 시기로 접어들기 시작합니다. 이 시기는 아무래도 내가 저 사람하고는 같이 살 수 없어, 하고 위험한 생각을 하기 시작합니다. 말하자면 깨어지기 일보 직전의 삶으로 치닫게 됩니다.
그러나 이 악몽과 폭풍이 지나간 뒤 각성의 시기가 찾아옵니다. 그래, 나는 예수믿는 사람이지, 그래도 자식이 있지, 그래도 경제적인 여건이 있지, 그래도 남의 눈이 있지 이렇게 차분하게 생각하면서 각성의 시기가 오게되고 이것을 통과한 다음에 사랑의 시기로 다시 돌입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단계는 아름다우면서 책임감을 함께 가지고 분담해가는 성숙한 사랑의 단계인 것입니다.
이런 단계를 거치지 아니하고 결혼할 때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계속해서 아름다운 사랑의 단계로 가는  사람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다섯가지 단계를 거쳐가면서 나중에 더 깊은 사랑의 단계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느 단계에 속해 있습니까? 특별히 불행의 시기로 들어가기 전에 우리가 인내하면, 참고 기다리면 사랑의 시기로 들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인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참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대부분의 가정이 그런 단계를 거쳐서 갑니다. 조금만 참으면 되었을텐데 참지 못해서 갈라선 가정이 많이 있고, 또한 갈라진 사람들은 내가 그때 조금만 참았더라면 하고 후회하는 것이 대부분인 것입니다.

한 가정에 아주 의가 좋은 젊은 부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가난하였지만 금슬은 참 좋았는데 남편이 시름시름 앓더니 중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부인은 온갖 험한 일을 다 해 가면서 남편을 치료해 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생활은 점점 어려워져 갔고 치료해 보았지만 별 차도가 없었습니다. 더 악화되어 갔니다.

부인이 최후에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병든 남편을 버리고 도망을 가야겠다고 결심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마지막으로 따뜻한 밥 한 그릇이라도 대접해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한 줌의 쌀을 모아서 우물가에 가서 쌀을 씻었습니다. 쌀을 씻다가 쌀 한톨이 떨어졌는데 어디서 왔는지 도마뱀 한 마리가 기어 오더니 떨어진 쌀 한톨을 물고 도망을 치듯이 가는 것입니다. 쌀 한 톨이 떨어질 때마다 도마뱀이 와서 물어가곤 하니까 참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도마뱀을 따라가 보았습니다.

따라가 보니까 또 다른 도마뱀 한 마리가 못에 찔려서 움직이지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도마뱀은 숫컷이었고 쌀을 물고 간 도마뱀은 암컷이었는데 이 암컷이 움직이지 못하는 숫컷에게 먹이를 날라다 주는 것이었습니다. 이 관경을 보고 저런 미물도 부부애를 지키는데 내가 이러면 안되지 하고 깊이 깨닫고 남편을 지극정성으로 돌보며 치료를 했습니다. 남편이 오래지 않아서 점점 나아지고 부부는 여생을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인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고비만 넘기면 됩니다. 많은 경우에 그 고비를 넘기지 못해서 불행으로 가는 가정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본인이 그 고비를 넘기지 못할 때도 있지만 주변에서 잘 도와 주어야 합니다. 이혼하는 경우에 상당수가 주변의 사람들이 잘못 인도해서 갈라지는 경우가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어떡하든지 부모나 형제들은 그 가정을 격려하고 서로에게 좋은 이야기를 자꾸 해 주어서 붙여주려고 해야하는데 자꾸 갈라놓으려고 하는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가족 때문에 얼마나 많은 가정들이 깨어지는지 모릅니다.

가능한 한 갈라지지 않도록 그 가족들이 잘 인도해서 고비를 넘길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가정적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잇는 부부가 있다면 그 위기를 인내하면서 잘 넘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래 산 부부들에게 찾아가서 물어보세요. 대부분이 이런 고비고비를 다 넘겼습니다. 자식때문에, 신앙때문에, 남의 눈 때문에 참고 살다가 보니까 오늘 이런 행복한 부부가 되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몰라요. 그 시기가 올 때까지 오늘의 이 위기를 인내하면서 잘 참고 넘어가다가 보면 언젠가는 행복한 부부로서 여생을 살게 될 줄로 믿습니다.


2. 행복한 가정을 위하여 남편은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 남편이 해야 될 부분이 있습니다. 오늘 성경은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사랑>이란 말은 아가페적인 사랑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 예수님께서 교회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대신 죽어주신 사랑, 그 사랑을 하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물론 부부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아가페적인 사랑을 하는 것은 드뭅니다. 처음에는 다 에로스적인 사랑을 합니다. 주고 받는 필리아적인 사랑을 합니다. 그러다가 특별히 그리스도인들은 가정을 이루고 난 다음부터는 예수님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그 사랑을 본받아서 아가페적인 사랑을 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아가페적인 사랑은 어떤 사랑인가하면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습니까? 우리가 연약할 때에, 우리가 경건하지 못 할 때에,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되었을 그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다고 했습니다. 이게 바로 아가페적인 사랑입니다. 거기에 조건이 있었습니까? 사랑할만한 가치가 있었습니까?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런 사랑이기 때문에 그 사랑은 노력하는 사랑입니다. 아가페의 사랑은 저절로 되어지는 본능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할 수 없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려고 애를 쓰는 사랑이 노력하는 사랑이요, 무조건적인 사랑, 이 사랑이 아가페적인 사랑인 것입니다.
우리도 이와같은 사랑을 가지고 부부끼리 사랑한다고 하면 정말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나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조건도 안되지마는 사랑하신 그 무조건적인 사랑을 다 본받아서 아름다운 부부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결혼이란 무엇입니까? 왜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만나게 하셨습니까? <돕는 배필로 주었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나는 아무 도움도 없이 살아갈 수 있다, 다른 사람의 도움없이, 남자의 도움없이, 여자의 도움없이, 나 혼자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돕는 배필로 짝을 지어 주셨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다 부족한 면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부가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어서 상대방의 그 부족한 면을 발견하고  세상사람들 같으면 그 부족한 면 때문에 왜 내가 이런 사람을 만났는가, 참 억울하다고 말할 수 있지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그 부족한 면이 나타나면 아, 이것 때문에 나로 하여금 이 사람의 아내가 되고, 남편이 되게 하셨구나하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이 나의 사명이기 때문에 오히려 그 부족한 부분을 더 사랑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상대방의 부족한 면을 볼 때 멸시하고 그것이 이혼의 사유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 때문에 부부가 되었다는 것을 명심하고 그것 때문에 더 사랑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결혼생활이 파국으로 치닫던 한 부부가 있었습니다. 남편은 좀 더 부드럽고 상냥한 여성을 만나지 못한 것이 매우 후회스러웠습니다. 아내는 좀 더 책임감 강하고 활동적인 남자를 만나지 못 한 것이 늘 불만이어서 싸움을 했습니다. 그렇게 늘 싸움을 했는데 옆에서 보는 사람이 참으로 딱했습니다. 너무 심하게 싸웁니다. 그런데 어느날 그렇게 싸우던 사람들이 싸우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물어 보았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싸우던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금슬이 좋은 사이가 되었습니까?”
그랬더니 “우리 부부는 서로 이렇게 고백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이 부족하니까 그 부족한 면을 채워주라고 나로 하여금 당신의 아내가 되게 했습니다. 남편이 되게 했습니다. 그래서 당신을 사랑합니다. 부족하기 때문에 당신을 사랑합니다.  또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에 있어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사랑합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죄인이고 원수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셨듯이 그런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 후로 서로 완벽한 기대나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서로를 먼저 이해하려고 할 때 우리 부부는 화해하는 아름다운 부부가 되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한번 따라 하겠습니다. <그래서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은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상대방에게 부족한 면이 있으면 <그래서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처럼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렇게 이해하게 될 때 정말 행복한 부부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 완벽한 아내, 완벽한 남편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 부족한 면이 있습니다. 그 부족한 것 때문에 배필로 삼아주셨기에 그래서 당신을 사랑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사랑하는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어 나갈 수 있는 우리 영락의 온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시 한번 따라 하겠습니다. <그래서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사랑합니다>.

아가페적인 사랑은 어떤 사랑인가하면 대신 죽어줄 수 있는 사랑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죽어주심 같이 남편은 아내를 위하여 대신 죽어줄 수 있는 사랑으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못박혀 돌아가심으로 우리를 살리시고 구원하신 그 사랑을 가지고 아내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부산영락의 온 남편들은 주님의 명령을 따라서 아내를 위하여 대신 죽어줄 수 있는 남편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남편들 다같이 따라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내를 위해서 대신 죽어줄 수 있는 사랑을 가지고 아내를 사랑하겠습니다>.

파사왕 고레스가 전쟁을 했습니다. 적장의 온 가족을 생포했습니다. 고레스 왕이 묻습니다. “내가 네 생명을 살려주면 너는 내게 무엇을 주겠느냐?” “예, 왕께서 저의 생명을 살려주신다면 제 재산의 반을 드리겠습니다.” “그러면 네 자식을 다 살려준다면 무엇을 주겠느냐?” “제 재산을 다 드리겠습니다.” “ 네 아내를 살려준다면 무엇을 주겠느냐?” “ 예, 제 아내를 살려주시면 제 생명을 드리겠습니다.” 그러자 고레스 왕은  “이런 사랑을 받는 너의 아내는 정말 행복하다.”고 하면서 적장의 가족을 모두 살려 주었습니다.

만약에 내 아내가 적에게 포로가 되어서 생명을 걸어야 하는데 내가 대신 죽어서 아내가 풀려날 수 있다면 그런 사랑을 가지고 아내 대신 죽음의 장소로 기꺼이 갈 수 있는 우리 영락의 온 남편들이 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런 아가페적인 사랑을 가지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라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십니다.
왜  이렇게 사랑하라고 하셨는지 아십니까? 성경은 말합니다.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아내를 사랑하면 한 몸이기 때문에 아내가 행복해 집니다. 아내가 살림도 잘 합니다. 자녀도 잘 키웁니다. 부모를 잘 공경합니다. 가정을 잘 꾸려 나갑니다. 그래서 그 모두의 행복이 자기에게로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내를 자기 몸처럼 사랑할 수 있는 남편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내를 사랑하되 어떻게 사랑하라고 했습니까? <괴롭히지 말라>고 했습니다. 여러분들, 아내에게 언제가 제일 괴로울 때인지 한번 물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예배 마치고 집에 가서 아내에게 언제가 제일 괴로울 때이냐고 물어 보세요. 일반적으로 말하면 남편이 외도할 때입니다. 부부가 갈라서는 대부분의 경우에 남편과 아내의 외도 때문에 갈라서는 경우가 가장 많습니다. 남편은 자기 아내만 사랑하라고 했는데 남의 아내에게 눈을 돌리면 자기 아내가 제일 긴장하고 제일 마음이 상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과 사회’라는 주간지에서 6대 도시 500명의 사람들에게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한 조건 속에 무엇이 가장 필요한가를 물었더니 신뢰가 29.9%, 경제가 21.7%, 상호존중이 17.4%였습니다. 신뢰가 가장 필요하다고 했는데 그 신뢰가 가장 무너지는 것이 바로 외도입니다. 짐승 중에도 일부일처로 사는 짐승들이 참 많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아내를 사랑하되 아내를 괴롭히지 말고, 외도하지 말고, 진실한 사랑을 가지고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하와를 만드실 때에 왜 아담의 갈비뼈로 만드셨을까요? 머릿뼈로 만들었으면 아담을 지배하려고 했을지 모릅니다. 턱뼈로 만들었다면 말이 많은 여자들이 더 많아져서 싸움이 그칠 날이 없었을지 모릅니다. 목뼈로 만들었다면 교만해서 행복이 무너질지 모릅니다. 어깨뼈로 만들었다면 얼마나 어깨뼈를 세워서 거드름을 피울지 모릅니다. 다리뼈로 만들었다면 아담이 마구 밟아버렸을지 모릅니다. 팔뼈로 만들었다면 남편에게 막 삿대질을 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갈비뼈로 만드셨습니다. 동등하게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평등하게 만드셨다는 말입니다. 어떤 남편은 아내를 자기의 소유물로 여깁니다.  그래서 마음대로 말하고 마음대로 구타하고 마음대로 대하는 남편들이 있는데 정말 고쳐야 합니다. 남편이 아내를 괴롭히면서도 그 남편은 자기가 아내를 괴롭힌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합니다. 남편들은 오늘 아내에게 한번 물어보세요. 내가 괴롭히느냐고. 어떻게 할 때 제일 괴롭더냐고. 그렇게 물으면 아내들은 확실하게 이야기를 해 주세요. 당신이 이럴 때 제일 괴롭다고. 그러면 남편들은 다 고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만 행복한 가정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아내도 처가에서는 얼마나 귀한 딸입니까? 애지중지 키운 딸입니다. 험한 욕 한마디 하지 않고, 매 한번 안 때리고 키운 딸인데 이런 딸을 데리고 왔으면 아끼고 사랑해 주어야 마땅할텐데 짐승처럼, 종처럼 대하는 남편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남편은 아내를 괴롭히지 말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남편들은 혹시라도 내가 아내를 괴롭히는 부분은 없는가 생각하고 괴롭히지 않고 사랑할 수 있는 남편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제가 결혼예식 때마다 늘 이야기 합니다마는 아내들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그 인생이 달라지지 않습니까?  학교 다닐 때는 공부도 잘하고 뛰어났던 친구가 어렵게 사는 경우도 있는가하면 별 볼 일없던 친구들이 남편을 잘 만나서 신세가 달라지는 경우를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여자는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인생이 달라지는데 남자들은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 아내가 나같은 사람을 만나서 이 정도 밖에는 못 사는구나, 나보다 더 좋은 사람 만났다면, 더 나은 사람 만났다면 지금보다 휠씬 더 잘 살 수 있었을 것인데 나같은 사람 만나서 이것 밖에 해 주지 못하는구나하는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아내를 바라보세요. 그러면 아내에 대해 빚진 마음을 가지고 더 잘해 주고픈 마음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아내를 늘 그런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남편은 책임감있는 남편이어야 합니다. 남편은 가장입니다. 가장이면 처자식을 먹여 살릴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저희 집에도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있는데 자기는 장가를 빨리 가겠다고 합니다. 처자식을 먹여 살릴 수 있는 능력이 되면 가고 그렇지 않으면 가지말라고 했습니다. 남자가 장가를 가려면 처자식을 먹여 살릴 수 있어야 합니다. 장가가서 아이는 낳아놓고 제대로 키우지도 않고, 처자식을 돌보지 않고, 경제적인 책임을 지지 않는 남편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성경은 남편들에게 말합니다.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라>. 어떻게요? 아가페적인,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사랑하라, 괴롭히지 말라, 그리고 책임지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런 남편들 되셔서 정말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어 나갈 수 있는 귀한 가정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3. 행복한 가정을 위하여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또한 성경은 아내에게 말합니다. <아내는 복종하라.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님 안에서 마땅하니라>. 베드로전서 3장 1절에는 <아내된 자들아 이와같이 남편에게 순복하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5장 22절에는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 듯 하라>고 했습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이것은 굴종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여자가 남자보다 한 단계 낮기 때문에 복종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빌립보서 2장에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과 본체가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땅에 오셔서 종의 형태를 가지고 죽기까지 복종하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과 하나님은 본체가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이기 때문에 복종했다고 했습니다. 낮아서 복종한 것이 아닙니다. 질서 상 복종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1장 3절에 보며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고 했습니다.

한 몸에 머리가 둘 있으면 기형입니다. 머리가 있는데 머리의 지시를 받지 않는 몸이면 반신불수입니다. 남편도 주인이고, 아내도 주인인 가정은 기형적인 가정입니다. 남편의 말에 아내가 복종하지 않는 가정은 반신불수와 같은 가정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하면 남편에게 복종할 수 있는 아내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롤러 도일이라는 여권신장을 위해서 애쓴 미국의 여류작가가 있습니다. 그는 글로써, 활동으로써 남자와 여자는 같으니까 남녀평등이 아니라 여남평등이라는 말을 해가면서 여권신장을 위해서 굉장히 일했습니다. 남편에게 남녀는 똑같다, 일도 똑같이 하자고 하니까 어느 남편이 그 아내를 사랑하겠습니까? 나중에는 파국이 되어졌습니다. 깨어질 직전에 어느 친구가 이야기 했습니다. 성경에 있는대로 남편에게 한번 복종해 봐라, 마지막에 다른 길이 없으니까 복종하기로 했습니다. 남편이 시키는 일은 무슨 일이든지 예,예 하고 순종해 보았습니다. 가정이 완전히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책을 썼습니다. ‘항복하는 아내가 행복하다’. 아예 복종이 아니고 항복하는 아내가 행복하다는 책을 썼습니다. 사랑받는 아내의 비결, 행복한 아내의 비결은 바로 복종하는데 있는 줄 믿고 우리 영락의 온 아내들은 남편에게 그대로 복종할 수 있는 아내들이 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거기에 행복이 있습니다. 거기에 참된 만족이 있습니다. 우리 부산영락교회의 온 아내들은 남편이 무슨 말을 하든지 그대로, 마치 주께 하듯이 순종할 수 있는 아내들이 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여러분의 가정에 행복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남편들은 칭찬받고 인정받기를 좋아합니다. 남편은 아내들이 잔소리하는 것을 굉장히 싫어해요. 그래서 통계를 내어보면 어떤 아내를 좋아하느냐, 수용적인 아내를 제일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남편이 무슨 말을 하면 똑똑하게 나서서 이렇다, 저렇다 하는 아내를 싫어합니다. 언제든지 지혜로운 아내를 좋아하지 그런 아내를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혼하는 한 가정을 보았는데 왜 이혼하느냐고 물었더니 남편이 “내가 선생하고 어떻게 사느냐”고 했습니다. 그의 아내는 날마다 선생처럼 남편에게 이래라, 저래라, 이것 틀렸다, 저것 틀렸다고 하니까 선생하고는 절대로 못 살겠다고 이혼하는 가정을 보았습니다. 남편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아내의 잔소리인줄 알고 남편하는 일에 잘 귀를 기울이고 특별한 경우에 분위기를 맞추어서 이야기 할 수 있는 아내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몇 년 전 유럽에서 20명이 남자들이 모여서 ‘행복한 결혼생활은 전부 그 책임이 여자에게 있다’고 하며 열가지 조건을 내 걸었는데 몇 가지를 보면 이렇습니다.

1.부인이 옳았어도 제가 잘못했어요 라고 먼저 변명해 줄 것- 이게 말이 되는 소리입니까? 자기가 잘못했으면 자기에게 잘못이 있지 부인이 옳은데도 제가 잘못했어요라고 해주기를 남편들은 바란다는 것입니다.
2.다른 사람 앞에서 남편을 거짓말쟁이라고 하지 말 것
3.남편에게 자동차 운전하는 방법을 가르치지 말 것-이렇게 하세요, 저렇게 하세요, 천천히 가세요, 돌아가세요, 이런 소리 하지 말 것.
4.아무리 여러번 듣는 농담이라도 처음듣는 것처럼 깔깔 웃어 줄 것
5.다소 집안을 어지럽히더라도 묵인해 줄 것
6.그것 보세요. 내 말이 옳잖아요 하는 식의 말을 하지 말 것
7.가끔 등을 긁어주면서 남편이 풀이 죽어 있을 때 위로와 격려의 말을 해 줄 것
8.남편의 주머니를 뒤지지 말 것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마치 어린아이가 엄마에게 응석을 부리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러니까 여자들은 어머니와 같은 넓은 가슴을 가지고 그 남편을 어린아이와 같이 칭찬해 주고 격려해 주면 남편이 기가 산다고요. 그래서 나가서 열심히 일을 하게 되지만 계속해서 선생처럼 가르치게 되면 그 남편이 집 바깥으로 돌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남편도 자기가 잘못한 줄 압니다. 그래도 아내가 제가 잘못했어요라고 말해 주기를 바라는 이게 남자의 마음입니다. 이게 이치적으로 맞습니까? 그럴지라도 엄마의 넓은 가슴으로 남자를 품어주게 될 때, 위로하게 될 때 남자가 변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남편에게 이렇게 복종하여서, 이렇게 순복하여서 늘 가정을 아름답게 만들어 나가는 귀한 아내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 남편들이 제일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쉽게 말하면 아내가 퍼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좀 긴장해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얼마나 세상에 나가면 유혹의 손길이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여러분들도 핸드폰에 이상한 광고메세지가 심심찮게 뜨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남자들이 바깥에 나가서 밤에 차를 세워놓으면 차창에 여자 나체사진이 들어간 광고지를 얼마나 많이 끼워놓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유혹의 손길들이 얼마나 많은데 아내가 척 퍼져 있으면 무슨 매력을 느끼겠습니까?
저의 가정 얘기를 해서 죄송합니다마는 좀 우스운 얘기 하나 하겠습니다. 우리 부부는 손을 잘 잡고 다니는데 누가 손잡고 다니는 이야기를 하더라고 제게 전해 주더라고요. 그 나이가 되어도 손 잡고 다니고 싶을까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손잡고 다니세요. 그래서 어떡하든지 부부사이가 아름답게 되어져야만 그 사이에 악한 사탄이 틈을 타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살다보면 때로는 분쟁하게 되어집니다. 때로는 다툴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이 다툼을 오래끌면 안됩니다. 빨리 풀어야 됩니다. 어떻게 해야 빨리 푸는지 아십니까? 어느 집사님 부부가 싸움을 잘 합니다. 부부싸움을 잘할 뿐 아니라 화해도 아주 잘해요. 그래서 어떤 사람이 물었습니다. “집사님 부부는 어떻게 싸움도 잘하고 화해도 잘합니까?”하고 물었더니 “에베소서 4장 26절에 보니까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는 말씀을 보고 비결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아침에 싸우든지, 점심에 싸우든지 말 안하고 긴장해 있으면 어느 한쪽이 여보, 해가 져 가요라고 말하면 상대방에서 그래요? 알았어요. 라고 하면 대화가 되어지고 저녁에는 잠자리에 화해해서 들어갑니다.”라고 했습니다.
한번 같이 해 보겠습니다. <여보, 해가 져 가요. 그래요 알았어요>. 꼭 그렇게 해서 부부사이에 긴장이 빨리 해소가 되어진다면 정말 행복한 가정,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가정을 이루어 나가게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어떡하든지 하나님의 자녀들이 복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부부로 짝지어 주셨는데 행복해야 할 부부가 불행하고, 또 우리가 살면 얼마나 살겠습니까? 잠시 살다가 가는데 이런 짧은 삶을 살아가면서 정말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데 행복하기 위해서는 주님께 복종하듯이 남편에게 복종하는 아내, 대신 죽어줄 수 있는 사랑으로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 그리고 인내하고, 빨리 화해하고, 이해하는 가정을 이루어 갈 때 우리 그리스도인의 가정은 정말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을 것이고 이렇게 이혼으로 치닫고 있는 세상문화에서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문화를 이루어 나가게 될 줄 믿습니다. 

오늘 집에 가서 내가 당신에게 무얼 괴롭히고 있는지 물어보고, 대화해서  정말 아름다운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그리고 그런 가정이 되어져야만이 그 자식들이 아버지를 본받아서 아내를 사랑하고, 어머니를 본받아서 남편을 존경하는 것이지, 아버지 어머니가 무시하고 싸우고 하면 그 자녀들이 가정을 가져도 또 그렇게 한다고요. 그러면 부모로써 그 자녀들을 어떻게 보겠습니까?
우리가 자녀를 위해서라도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어서 정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행복이 넘치는 가정을 이루어 나가는 우리 영락의 온 성도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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