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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쓴 물 인생이 단 물 인생으로 (출 15: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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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한규 목사 (분당샛별교회)


< 완벽한 환경은 없습니다 >

요새 참으로 살기 힘들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 분들을 보면서 저도 지난 한 주간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도하며 지냈습니다. 그처럼 살기는 힘들어도 우리는 꿋꿋하고 담대하게 살아야 합니다. 분명히 우리를 현재의 모습으로 빚어 가시는 하나님의 소중한 뜻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남을 부러워하기보다는 남을 격려하고, 나 자신도 격려하며 '오직 믿음'으로 살 수 있어야 합니다.

병원에서 청소하는 분들은 정식 직원인 식당 아줌마들을 부러워합니다. 그런데 식당 아줌마는 시원한 곳에서 일하는 사무원들을 부러워하고, 사무원들은 간호사들을 부러워합니다. 간호사들은 의사들을 부러워하고, 의사들은 기도해주는 원목을 부러워합니다. 그러나 원목은 적은 양떼라도 자기 양떼가 있는 개척교회 목사님을 부러워합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마음고생이 심한 분이 바로 개척교회 목사님입니다. 그 말은 결국 우리가 부러워할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말입니다.

이 세상에는 만족을 주는 완벽한 환경은 없습니다. 그냥 자기가 만족하며 살기로 작정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자기 남편에 대해 만족하는 아내는 3분의 1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결혼 전에는 최고의 남편을 선택한 줄 알았던 사람도 한 달도 지나지 않아서 후회하는 사람이 즐비합니다. 남편의 단점을 보기 시작하면 끝이 없습니다. "키도 적고, 눈도 적고, 얼굴도 안 생겼고, 재미도 별로 없고, 돈도 없고, 개척교회 목사이고..." 생각하면 끝이 없습니다.

대개 결혼하고 나서 살기가 힘들면 가끔 "내가 그때 눈이 삐었지."라고 하는 때가 찾아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자기만 눈이 삐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도 눈이 삐었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결혼하고 살면서 "정말 결혼 잘 했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상당히 적다고 합니다. 그러나 눈이 삐어도 서로 격려하며, 서로 도와주며 사는 것이 결혼입니다.

어떤 아내는 남편이 바람 피워도 좋으니 돈만 많이 벌어왔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얼마나 어려웠으면 그렇게 말했겠습니까? 살다 보면 그런 어려움도 생깁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어려움 속에서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살면서 힘든 상황을 맞았을 때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잘 교훈하는 본문입니다.

< 구원받은 백성 앞에 펼쳐진 마라 >

오늘 본문 바로 앞부분 1-21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 부분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감격적으로 홍해를 건너고 하나님은 찬양하는 노래가 나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사흘 길을 수르 광야에서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마라라는 곳에서 물을 발견하고 물을 마시려고 했지만 너무 물이 써서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마라(쓰다)"라고 소리쳤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깨닫는 사실은 마라는 구원받은 백성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애굽에는 마라가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 마라를 만났다는 것은 구원받은 백성에게 마라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마라의 쓴 물은 고통이지만 영적인 관점에서 그것은 선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마라를 통해서 더욱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옛날에는 춤추는 곳에 가서 신나게 춤을 추어도 마음에 불편함이 없고 그 삶이 달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이 불편하고 오히려 거부감이 생깁니다. 마라를 통과했기 때문입니다. 옛날에는 노래방 가서 신나게 노래 부르면 스트레스가 풀렸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노래방 갔다 오면 오히려 삶의 공허를 느낍니다. 역시 마라를 통과했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세상의 즐거움이 마라로 느껴지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며칠 전에 어떤 분의 고백을 들었습니다. 담배를 끊고 싶은데 너무 힘들다는 것입니다. 최근에 마음을 단단히 먹고 며칠 동안 담배를 끊었더니 꿈에까지 담배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 경험을 하면서 담배는 끊는 것이 아니라 정신력으로 버티는 것이고, 금연은 사람의 정신력을 증명한다는 말이 실감났다고 합니다. 그러나 은혜를 받고 나면 담배 맛이 저절로 쓰게 느껴집니다. 그것도 마라를 통과하는 하나의 증거가 됩니다.

어떤 남편의 고백입니다. 그분의 아내는 욕심도 많고 샘도 많아서 자기의 작은 월급으로는 도저히 만족시켜줄 수 없었습니다. 가끔 아내가 친구의 집에 가서 무엇인가를 보면 그 다음부터는 너무 불평을 했습니다. 그런 불평을 들으니까 더 이상 아내와 살고 싶은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아내가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교회 나가는 것 외에 외출이 줄고 가정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잡지책을 멀리하고 성경을 읽기 시작했고, 세상 친구가 하나둘 끊어지더니 구역 식구가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 전에는 항상 얼굴이 어두웠지만 교회 갔다 오면 언제나 얼굴이 환해졌습니다. 그러면서 남편의 작은 월급으로도 그 가정은 천국이 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그 남편이 예수 믿는 아내 때문에 사는 맛이 달라졌다고 합니다.

믿으면 세상 것이 마라가 됩니다. 그 마라를 통과하면서 축복과 행복이 주어지는 삶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라에 이른 것을 오히려 감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대개 사랑하시는 자에게 마라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신기한 사실은 한번 마라를 통과하고 하나님 품을 찾은 사람들은 대개 죽을 때까지 하나님을 붙잡고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라는 구원받은 자에게 반드시 있어야 하는 통과의례입니다. 그러므로 마라를 무서워하지 말고 마라를 넉넉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축복의 길은 활짝 펼쳐지게 될 것입니다.

어떤 한의사 얘기에 의하면 연세 많으신 분들은 질병을 친구처럼 대해주면서 잘 사귀어야 한다고 합니다. 질병 때문에 낙심하거나 두려워하면 더 몸이 빨리 상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었으니 병은 있을 수 있다!"고 편하게 병을 친구처럼 생각하면 오히려 병이 빨리 낫게 된다고 합니다. 그처럼 믿는 사람은 마라에 낙심하지 말고 마라를 하나의 친구처럼 편히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친구는 우리에게 큰 믿음을 주고 곧 떠날 것입니다.

< 마라를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 >

중요한 것은 우리가 마라의 삶을 어떻게 잘 극복하며 사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마라를 극복하게 하는 3가지 삶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1. 기도해야 합니다.

마라를 만났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3일 전에 홍해를 갈랐던 모세의 지팡이를 어느새 잊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복 중에서 가장 큰 복 중의 하나가 건망증의 복이라고 합니다. 잘 잊는 사람들은 정신병에 거의 걸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상처는 잘 잊어야 하지만 은혜는 잘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3일 전의 엄청난 은혜를 잊어버리고 바로 모세부터 원망을 합니다. 사실 모세가 무슨 죄가 있습니까? 죄가 있다면 그들을 위해서 인생을 바친 죄, 그들을 홍해 바다 건너게 해주고, 기도해준 죄밖에 더 있습니까?

그래도 모세를 원망하니까 모세가 어떻게 합니까? 본문 25절 말씀을 보면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다"고 합니다. 마라 앞에서 백성들은 모세를 원망했지만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모세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는 무엇보다 기도해야 합니다. 문제 해결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가 시작되면 문제해결의 절반은 된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불평해도 나 한 사람만이라도 기도하면 됩니다. 지금 우리 나라에 천만 명이 넘는 믿는 사람들이 있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기도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내가 기도하면 가정이 변화되고, 교회도 변화되고, 나라도 변화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묵묵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나중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천신만고 끝에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에도 그들 앞에는 여리고 성이라는 엄청난 장벽이 놓여 있었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가나안 땅에 왔다가 다 죽을 판입니다. 그때 그들은 하나님 말씀대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성을 돌았습니다. 그때 들리는 소리는 오직 나팔 소리뿐이었습니다. 이 나팔 소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합니다.

그들은 나팔 소리만 듣고 묵묵히 기도하며 13번 성을 돌았습니다. 그래도 여리고 성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었고, 여전히 견고했습니다. 성을 돌면서 가끔 더 절망적인 생각이 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만약 그때 침묵하지 않았다면 서로 말을 주고받으면서 낙심만 커졌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돌기만 하다가 정말 돌겠다. 이렇게 돈다고 되나?"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침묵하게 하셨습니다. 침묵하니까 나팔 소리는 더욱 크게 들렸습니다. 그처럼 우리가 살면서 아주 어렵고 힘들 때에는 나팔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 소리에 사는 길이 있고, 절망에서 나오는 길이 있습니다. 귀에 탄식이 들리고 입에서 탄식이 나오면 마귀에게 영혼이 먹히게 되지만 귀에 말씀이 들리고 입에서 기도가 나오면 마귀나 문제가 꼼짝 못하게 될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마라에서 기도하면 하나님은 더욱 가까이 오셔서 문제를 해결해주실 것입니다. 마라의 기도는 기도 중에서 가장 능력 있는 기도입니다.

옛날에 우리 부모님들은 아이를 엄하게 키웠습니다. 잘못하면 대문 밖으로 쫓아내 버리고 문을 "쾅!" 닫습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대문을 두드리면서 "엄마! 잘못했어요. 용서해주세요."라고 합니다. 그러다가 울다가 지쳐서 문 밖에서 깜빡 잠이 들면 어느새 엄마가 나와서 안고 들어갑니다. 알고 보니까 문 바로 안에서 대문에 귀를 대고 아이가 어떻게 하나 계속 귀를 기울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어렵고 힘들 때, 그때는 하나님께서 축복의 문을 닫은 것 같지만 그때 오히려 하나님은 더욱 우리와 함께 하시고, 더욱 우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려울 때일수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때 기도는 가장 능력 있는 기도가 될 것입니다.

1992년 인천에서 32살의 젊은 나이로 교회를 개척하고 12년이 지나면서 지금까지 가장 확실하게 느끼는 것 중의 하나는 기도는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기도하고 넉넉한 마음으로 기다리면 기도는 언젠가 반드시 응답됩니다. 이 기도의 능력을 체험해야 합니다. 지금 불황이라고 하지만 솔직히 더 큰 문제는 영적인 불황이 문제이고, 기도의 불황이 문제입니다.

어려울 때는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기도만이 살 길입니다. 믿는 사람은 기도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입니다. 기도는 성도의 최고 자원이고 최고의 무기입니다. 우리에게 마라가 주어진 것은 기도하라는 하나님의 싸인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반드시 지금보다 훨씬 복된 길이 펼쳐질 것이고, 불가능도 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1967년에 이스라엘과 중동 국가들 사이에 6일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다얀 국방장관은 모든 입수된 정보와 데이터를 컴퓨터로 분석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분석해도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그러자 그는 컴퓨터를 팽개치고 "우리는 과학으로 싸우지 않는다.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된다. 우리는 이번 전쟁을 다음 안식일 전까지 끝내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안식일 다음날 전쟁을 시작해서 그 다음 안식일 전에 전쟁을 끝냈습니다. 그 6일 전쟁으로 이스라엘은 시나이 반도, 요단강 서안, 골란고원을 다 빼앗았습니다. 승리의 열쇠는 사람의 계산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면 반드시 마라의 쓴 물은 단 물로 변화될 것입니다.

2. 십자가를 붙들어야 합니다

마라 앞에서 모세가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한 나무를 지시하셨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그 나무를 던지자 쓴 물이 단 물로 변했습니다. 이 나무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상징합니다. 오직 십자가 안에 마라를 극복하는 비결이 있습니다.

마라를 만났을 때 우리가 피할 곳은 오직 한 곳, 바로 십자가 그늘 밑입니다. 어떤 분은 한국이 마라인 줄 알고 집 한 채 팔고 있는 것 다 모아서 미국으로 이민 갔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사업하자!"해서 사업했는데 사기꾼이었습니다. 그래서 재산을 다 빼앗기고 알거지가 되고 심장 쇼크로 죽었습니다.

요새 많은 사람들이 이민을 원하지만 이민자의 고통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서러움 때문에 울고, 외로움 때문에 울고, 자녀 때문에 우는 것이 이민자의 삶입니다. 자녀에게는 부모가 이민 온 것이 마치 무슨 큰 미안한 일을 한 것처럼 벌벌 떨고 자녀의 눈치를 봅니다. 그처럼 마음에 한과 상처와 부담이 많은 것이 바로 이민자의 삶입니다. 마라를 만났을 때 이민이 해결책이 아닙니다.

어떤 분은 이 사업이 마라인 줄 알고 다른 사업을 하다가 10년 벌었던 것을 고스란히 날리고, 어떤 분은 이 직장이 마라인 줄 알고 다른 직장으로 옮겼다가 더 큰 마라를 만납니다. 어떤 분은 이 친구가 마라인 줄 알고 다른 친구를 사귀었는데 사귀어 보니까 그 친구도 성격이 보통이 아닙니다. 마라에서 도피하면 대개 더 큰 마라를 만납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의 십자가를 튼튼히 붙잡고 그 십자가의 삶을 실천하며 사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사랑, 헌신, 용서, 희생, 죽음이 십자가입니다. 이열치열(以熱治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열은 더 큰 열로 다스린다는 말입니다. 비슷한 원리로 기독교는 이통치통(以痛治痛)의 종교입니다. 통증은 더 큰 통증으로 다스릴 수 있다는 말입니다. 마라의 고통은 더 큰 십자가의 고통과 희생으로 다스릴 수 있습니다.

선교사님들을 보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좋은 곳으로 이민 가겠다고 하는데 선교사님들은 거꾸로 나쁜 곳으로 이민 가서 거기에서 주님의 복음을 위해 희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들의 희생에 동참해야 합니다.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직 사명 때문에 힘든 선교지에 가서 사역하다가 오랜만에 안식년을 맞아 귀국하려고 하는데 거할 집도 없고, 먹고살기도 벅차서 흔히 말하기를 '안식년'이 '안 쉴 년'이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안식년이라고 그냥 내버려두지 말고 안식년에도 우리는 선교사님을 위해 기도해드리고, 선교사님의 생활도 책임져야 합니다. 이번에 김재호 선교사님이 몽고에서 4년 동안의 사역을 끝내고 1년 동안의 1차 안식년을 가지게 됩니다. 지난 선교편지를 보았더니 "미국에 가서 1년 동안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이 많은 것 같습니다. 다음 달에 미국으로 귀국하면서 한국에 들릴 텐데 선교사님에게 여러분들의 작은 정성을 보여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 살기도 어려운데 어떻게 선교까지 하나?"하는 생각은 부끄러운 생각입니다. 우리가 믿는 사람으로서 꼭 해야 할 선교를 위해 직접 선교지에 나가지 않은 것만 해도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우리를 대신해서 전방으로 나가신 선교사님들을 위해 후방에서 선교의 짐과 선교의 십자가를 힘껏 나눠 질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앞에 마라가 놓여 있어도 우리가 마라보다 더 큰 십자가를 질 각오를 한다면 마라는 슬며시 사라지고 하나님께서는 속히 우리에게 복된 날을 보게 하실 것입니다.

3. 말씀에 순종하려고 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25-26절 말씀을 보면 마라의 쓴 물을 단 물로 바꾸고, 하나님께서 계명을 주셨습니다. "너희가 나의 말을 청종하면 애굽에 내린 질병을 하나도 내리지 않겠다. 나는 치료하는 여호와이다." 치료하는 여호와란 말은 '여호와 라파'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치유의 역사를 언제가 가장 잘 경험하게 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할 때입니다.

사실 모세가 하나님의 지시하신 나뭇가지를 던진 것도 순종을 나타냅니다. 처음에는 그 지시가 이해가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해가 가지 않는 명령에 순종할 때 하나님은 마라의 쓴 물을 단 물로 만들어주셨습니다.

능력이 어디에 있습니까? 나뭇가지에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능력이 있는 것이고, 순종에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나뭇가지와 같은 비천한 존재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마라와 같은 인생도 능력 있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려울 때일수록 말씀에 순종하는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룻기를 보면 베들레헴에 나오미란 여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자 그녀는 남편과 함께 모압 지역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그녀는 남편과 두 아들을 다 잃었습니다. 결국 나오미는 이민 생활을 포기하고 베들레헴으로 돌아갑니다. 그러자 옛 친구들이 그녀를 보고 "너, 나오미가 아니냐?"고 반갑게 맞이합니다. 그때 나오미는 "이제 나를 나오미(기쁨)라 부르지 말고 마라(고통)라 부르라."고 합니다.

베들레헴은 '떡집'이란 뜻으로, 영적으로 '말씀이 있는 곳'을 말합니다. 그런데 흉년이 들어 말씀을 떠나 살아보겠다고 모압으로 가니까 기쁨을 잃고 마라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마라를 통해서 나오미를 다시 베들레헴 떡집, 즉 '말씀의 집'으로 돌아오게 하시고 다윗 가문의 조상으로 삼으셨습니다. 그처럼 우리가 말씀 중심적인 삶을 회복할 때 하나님은 마라를 극복함과 동시에 큰 축복도 더불어 허락하실 것입니다.

< 마라가 클수록 축복도 클 것입니다 >

여러분! 마라 앞에서 결코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 인생을 마라에서 끝나게 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마라 앞에서 하나님 앞에 부르짖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쓴 물을 단 물로 만드시고, 곧 이어 본문 27절 말씀처럼 엘림의 축복도 허락하실 것입니다.

마리 버기스라는 인도 최상류 가정의 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잃었습니다. 처음에는 엄청난 절망감이 있었지만 그녀는 곧 마음을 바꾸어 의학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결국 그녀는 나중에 나환자를 돕는 의사가 되었고, 인도에서 최고로 존경받는 여인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자기는 두 다리를 잃어버려서 두 날개를 얻었고, 그 일 때문에 사랑과 헌신을 알았고, 삶의 매 순간을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 수 있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때로 우리가 마라를 만나지만 마라를 잘 통과하면 영혼이 강하게 되고, 비전이 더욱 뚜렷하게 되고, 인격도 좋아지고, 성공을 위한 체력과 정신력을 얻게 될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한번 심한 병을 앓고 나면 성숙해지고, 지능도 늘어나고, 면역력도 강해지는 것처럼 우리에게 마라가 클수록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축복도 커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라 앞에서 낙심하지 말고 그때 참고 기도하고, 십자가를 붙잡고, 말씀에 더욱 순종함으로 승리하는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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