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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쁨으로 삶을 누리자 (전 9: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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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서정호 목사 ( 영암교회)
 

여러분 지금 기쁘신가요? “기쁜 일이 있어야지요?”라고 대답하실 분이 많을 것입니다. 어떤 갈비탕 집에는 직원들 가슴에 스마일 뺏지를 달고 일을 한다고 합니다. 갈비탕 한 그릇을 팔아도 얼굴에 기쁨을 잃지 않으려고 하는데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나요?

한 성도가 멀리 떨어진 다른 지방으로 이사를 했는데 부득불 교회를 옮길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처음 이사 온 동네라 어떤 교회가 좋은 교회인지를 알 길이 없어서 이 교회를 갈까 저 교회를 갈까 망설이다가 그만 주일을 맞고 말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그 성도는 ‘어떤 교회든지 발길이 이끌리는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겠다’고 마음을 먹고 집을 나섰는데 한참을 가다가 거리에서 경찰관을 만나 근처에 갈만한 좋은 교회가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경찰관은 선뜻 조금 멀리 떨어진 듯한 교회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성도는 경찰관이 가르쳐 준 교회를 향해 가다가 문득 왜 그 경찰관이 가까운 교회도 있는데 굳이 그 교회를 가르쳐 주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시 돌아와 그 경찰관에게 왜 그 교회를 소개해 주었는지 물었더니 그 경찰관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예, 저는 교회를 안 다녀 봐서 어떤 교회가 좋은 교회인지 잘 모릅니다. 저는 단지 그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이 너무나도 평화롭고 기쁨이 가득 차 보여서 그 교회가 좋은 교회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교회를 소개해 드린 것입니다. 사실 저도 언젠가 그 교회에 꼭 다녀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교회의 성도의 얼굴 모습이 얼마나 중요한가요? 그래서 우리의 얼굴은 움직이는 전도지라고 합니다. 기쁨은 내면적인 것이기에 억지로 얼굴이 웃는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얼굴이 기쁨으로 가득 차려면 우리의 마음속이 기뻐야 하는 것입니다

산 자만이 기뻐할 수 있다

세상의 많은 피조물 중에 웃을 줄 아는 것은 인간뿐입니다. 하나님은 인류에게 웃을 수 있는 복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산 자만이 웃을 수 있고 또한 기뻐할 수 있습니다. 즉 낙을 누리는 것은 오직 산 자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을 사는 데는 낙을 누리는 방법이 여러 가지입니다. 어떤 이는 막가는 인생을 살면서 그것을 낙으로 누리고 있지만 오늘 말씀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 안에서 낙을 누리라는 말씀입니다.

세상은 부조리하고 불확실합니다. 악이 형통하고 의가 위축되는 부조리한 세상, 불평등한 세상이면서 그 미래 조차 알 수 없는 불확실한 세상입니다. 그런데 전도자는 이 부조리하고 불확실한 현실의 삶을 그대로 지적하면서도 삶의 참된 지혜를 가지고 세상을 즐겁게 살아갈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언은 솔로몬 왕이 하나님을 떠나 세상에 빠지기 전에 기록한 책이라면 전도서는 이 세상의 모든 부요와 쾌락과 명예를 다 취해보고 난 다음에 이 모든 것이 다 헛되다고 기록한 글이 전도서입니다. 그래서 이 전도서 말씀을 보면 세상의 부조리, 불확실함, 죄악 됨을 다 드러내고 있으면서 이 가운데 살아야할 성도들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말씀합니다.

먼저 솔로몬은 이 땅위에서의 인생의 삶이 본질적으로 영원할 수 없고, 지혜롭다고 하나 유한한 것이며, 잘난 척 떠들지만 착각에 불과한 것임을 역설합니다. 특히 솔로몬은 유한한 인생의 종말에 있을 하나님의 주권적인 심판이 있음에 대하여 제시합니다. 그러나 이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이 성도에게는 소망입니다. 이 부조리한 세상 가운데서도 소망을 통해 영원한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는 성도의 삶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솔로몬이 역설적으로 제시하는 소망 있는 성도의 삶은 어떤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분복대로 사는 삶

악인이나 선인이나 세상만을 볼 때는 당하는 일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습니다. 이래서 하나님의 섭리를 부정하거나 하나님의 섭리를 의심하는 회의주의자들도 생깁니다. 곧 악인과 의인을 동일시하는 것 같은 하나님의 섭리는 의인들의 눈에는 옳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섭리는 인간의 생각과는 다릅니다. 하나님의 주권의 섭리는 인간의 어떠함에 아무 상관이 없는 것 같이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의인이나 악인에게나 같이 임하는 것 같은 부조리한 하나님의 섭리같이 보여도 인생이 하나님의 섭리를 의심하고 돌아서도 좋다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세상이 불확실하다고 할지라도 인생이 한번 죽으면 그 세상을 다시 살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그래도 산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것은 인생이 살아 있는 동안에 회개할 기회도 있고, 구원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확실한 세대라고 낙심만 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만 이룰 구원이 있습니다.

우리가 믿을 것은 무엇입니까? 모든 일이 다 하나님의 행하시는 손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이 미래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에 인기 있는 학과가 내일에 천대를 받을지도 모르고 오늘에 알아주지 않는 과목이 내일에는 환영을 받을지 누가 압니까? 빌게이츠가 돈을 번 것은 아이비엠 사에서 컴퓨터를 만들면서 운영체제가 되는 도스가 돈이 될 줄을 모르고 그냥 주다 시피 마이크로 소프트사에 주었습니다. 아이비엠 사는 도산해 버렸지만, 세계의 제일 거부가 빌게이츠가 되었습니다. 이 빌게이츠도 인터넷이 돈이 되는 줄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던졌다가 나중에 알고는 큰돈을 주고 인터넷을 샀습니다.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은 미래입니다. 아이가 자라서 사랑을 받을지 미움을 받을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마음대로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기회가 주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 기회를 잘 활용하지만, 어떤 사람은 원망 불평하다가 마치는 사람도 있고 갈등하다가 허송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 사람들은 지혜자가 아닙니다. 산개가 죽은 사자보다 더 나은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살아있다는 이것이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우리 성도의 인생이 허무하겠습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부조리하고 불확실한 세상을 살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소명, 곧 우리를 이 세상에서 부르신 하나님의 소망이 무엇인가를 알아서 이제는 매진하는 삶이 지혜로운 삶입니다.

기쁘고 적극적으로 사는 삶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삶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날 동안 먹고 마시며, 옷을 깨끗이, 머리는 단정하게 해서 가정은 화목하고 아내와 즐겁게 사는 삶을 살 때 이것이 주 안에서 누리는 삶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헛된 세상에 살아가면서 우리들로 누리게 하시는 복이라고 했습니다. 헛되게 지나갈 날 들을 보람 있게 사는 것이 복입니다. (전9:7) 너는 가서 기쁨으로 네 식물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네 포도주를 마실지어다. 이는 하나님이 너의 하는 일을 벌써 기쁘게 받으셨음이니라. "하나님께서 네 하는 일을 벌써 기쁘시게 받으셨다"는 말씀은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 삶을 허락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를 믿어야합니다. 이를 확신할 때에 우리에게 기쁨이 있고, 감사하며 하나님 앞에서 생활하게 될 당연한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뻐하면서 신앙생활 하며 기쁨 가운데서 모든 일들을 하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신 것, 허락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먹으면 바릴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너희는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 했습니다. 성경은 허락하신 것을 먹고 마시는 일 그 자체를 죄악시하지 않았고 영생을 바라보면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감격을 가지고 인생을 즐거워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누리면서 살기를 원하십니다. 기쁨으로 네 식물을 먹으라는 말씀은 열심히 일하여 먹을 것을 예비하며 먹고 마시는 즐거움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은혜를 주신 것도 감사드려야 하는데 이를 떡 반죽 그릇의 복이라고 했습니다. 많이 있어도 병이 들면 못 먹습니다. 감사할 일입니다.

아름다움을 나타낼 수 있는 특권

(전9:8) “네 의복을 항상 희게 하며 네 머리에 향기름을 그치지 않게 할지니라” 외적인 아름다움이 있고, 내적인 아름다움이 있다면 성경은 두 가지를 다 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내적인 아름다움을 갖추지 않고 외모만을 꾸미는 것은 잘못된 것이지만 그러나 성경은 아름다움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추구하게 하십니다.

부부생활의 즐거움

(전9:9)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이는 네가 일평생에 해 아래서 수고하고 얻은 분복이니라” 헛된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하신 남편과 아내가 서로 사랑하며 사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그것을 복으로 알라는 것입니다. 부부가 함께 주 안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복입니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서 우리들이 위해서 기도해야합니다.

일에 대한 즐거움
(전9:10)“무릇 네 손이 일을 당하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음부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

수고하며 일할 수 있다는 것이 특권이요 은혜입니다. 여러분! 일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신 적이 있습니까? 성경적인 그리스도인은 근면한 사람입니다. 일을 다스려야합니다. 또한 일에 치여서 일을 피곤하게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동기와 목표가 뚜렷할 때에 즐거울 것입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들에게 "너는 무슨 재미로 사니?" 하고 물을 때에 우리는 어떻게 대답해야합니까? "너는 예수도 안 믿고 신앙생활도 누리지 않으면서 무슨 재미로 사니?" 라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되고 즐겁지 않습니까? 또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주신 복 가운데서 우리에게 먹고 마시며 일할 수 있고 가정을 주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세상에서의 삶도 감사하면서 누리고 사는 사람이 지혜 있는 사람입니다. 이 모든 것을 누리면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노벨평화상과 종교계의 노벨상이라고 하는 탬플턴 상을 받은 마더 테레사님이 자신의 품에서 죽은 어떤 사람의 이야기를 이렇게 전했습니다. "어느 날 나는 하수구에 쳐 박혀 있던 한 남자를 건져냈습니다. 그의 몸에는 시궁창 냄새가 가득했고, 또 몸 여기저기에는 벌레가 우글거렸습니다. 그 사람을 깨끗이 씻기는데 세 시간이나 걸렸습니다. 그는 내 품에서 죽어가며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평생을 거리에서 짐승처럼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토록 사랑받으며 관심 속에서 천사처럼 죽어가는군요.' 그는 그렇게 죽었습니다." 인도 켈커타 빈민촌에서 소외되고 어려움에 처해 있는 사람들과 함께 이렇게 멋지게 희생하며 사셨던 테레사 수녀에게 어떤 사람이 질문을 했습니다. "테레사 수녀님은 어떻게 그리 훌륭한 삶을 사실 수가 있었습니까?" 그 때 그녀는 짤막하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하나님 손에 들려진 몽땅 연필입니다." 몽땅 연필은 이제 조금만 더 쓰면 자기의 생명을 다하는 것입니다. 볼펜 껍질 같은 것에 몽땅 연필을 끼워서 마지막까지 썼던 기억이 나는데 우리 인생도 몽땅 연필 같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처음에는 쓰지도 않은 새 연필 같이 깨끗하고 멋도 있었으나 점점 쓰고 또 써서 결국 몽땅 연필이 되고 다 쓰면 버려지는 것인데 몽땅 연필은 때가 되면 더 이상 쓰이지 않고  닳아 없어지고, 깎기고 깎여 결국 없어지는 것입니다.

일생을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적으로 살았지만 그러나 그 삶에 대한 칭찬은 자신이 받아야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을 손에 잡고 사랑의 실천이라는 삶의 그림을 그리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자신은 다만 하나님의 손에 들린 몽땅 연필이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멋진 표현입니까?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했다고 착각합니다. 

교회를 위해 온갖 수고와 노력을 다하여 공로가 크게 인정된다고 해도 그것을 우리가 한 것 아니라 우리는 단지 하나님의 손에 들린 연장이며 도구일 뿐이고  하나님께서 하셨고 고백한다면 이것이 훌륭한 신앙인의 자세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이라도 너 이제 다 썼다 하시면 다 쓴 몽땅 연필처럼, 다 닿아 없어진 싸리 빗자루처럼 역사의 자리에서 사라지는 것이므로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주님의 손에 들린 도구로 쓰임 받을 뿐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어느 교회에서 교회를 멋지게 지어 놓고 시험에 들었습니다. 어느 분이 헌금을 많이 해서 교회를 지었나 봅니다. 그런데 그분이 "이 교회는 내가 지었으니 내 교회나 마찬가지다" 라고 한다면 성숙한 신앙인은 아닙니다. 겸손한 고백은 하나님께서 하셨음을 찬양하며 자신은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 안에 아름답게 쓰여진 것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잘난 성도 되려고 하지 마십시오. 교회는 잘났다고 착각하는 사람들 때문에 문제입니다. 못난 성도 되십시오. 우리는 성령님이 아니고는 아무 것도 못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 보십시오. "내가 마음을 다하여 이 모든 일을 궁구하며 살펴본 즉 의인과 지혜자나 그들의 행하는 일이나 다 하나님의 손에 있으니 사랑을 받을는지 미움을 받을는지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은 모두 그 미래임이니라."  의인이 필요한 것 아닙니다. 지혜자가 필요한 것 아닙니다. 의인이든 죄인이든 지혜자든 미련한 자든 문제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점입니다. 성령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은 바로 이렇게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나의 삶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사람의 운명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1절). 어떤 대접을 받든지, ‘삶의 질’이 어떠하든지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사람에게는 “소망”임을 알아야 합니다(4절). 창조자를 기억하고, 그 “하나님의 손’에 인생을 맡기며, 죽음을 이기고 산 소망을 갖는 길은 ‘산 자’에게만 열려 있기 때문입니다. 죽음에는 “다시”라는 기회가 영원히 없는 것입니다(6절).

즐거운 삶

'하나님이 너의 하는 일을 벌써 기쁘게 받으셨다’라는 승인이 우리에게 떨어졌습니다(7절). 이제 남은 일은 우리의 삶을 즐겁게 누리는 것입니다. 의복과 몸을 깨끗하게 하는 것은 물론, 하나님이 주신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 가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이 사람으로 이러한 삶의 수고를 홀로 하지 않게 하시고 돕는 배필을 주신 것에 감사하여, 아내를 아끼고 사랑하며 ‘함께’ 즐거워해야 합니다(9절). 해 아래 세상이 헛되다 하지만, 그래도 하나님이 주신 인생인 만큼 기회를 따라 책임을 다해 자기 삶에 임해야 하는 것입니다(10절). 계획도 지식도 지혜도 쓸데없다고 밀어낼 것이 아니라 ‘산 자’에게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인 것을 알고, 이것을 통해 자기 삶을 최선으로 일구고, 세워 가야 하는 것입니다. 약하지만 약할 수 없는 내가 되려는 노력 속에 인간의 위대함이 있고 인간의 위대성이 나타날 때 비로소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이 완성됨을 증거할 수 있습니다.

어제는 스승의 날이었고 오늘은 전국 교회가 지키는 '스승의 주일'입니다. 사회의 교사들은 훈장을 받기도 하고 상패를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교사에 대한 예우와 격려가 특별히 필요합니다. 교회의 꽃이요 희망이며 교회의 미래인 어린 생명들과 청소년들에게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인격을 담아 희생적으로 가르침을 담당하는 선생님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할 수 있을 때 교회의 미래가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유치원 교사, 교회학교 영아부, 유아부, 유치부, 유년부, 초등부, 소년부, 중등부, 고등부, 청년부, 장년부, 경로대학, 구역 등 여러 기관의 교사들이 있습니다. 오늘 스승의 주일에 우리 모두가 수고하는 그 노고에 대하여 감사하고 그 열매를 축하하는 의미에서 모든 선생님들에게 뜨거운 격려의 박수를 보내십시다.

은혜는 인간에게만 있는 귀중한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현재의 자신을 키워 준 은혜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크거나 작거나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으며 문제는 그것을 안 잊는다는 것이 그 은혜에 대한 보답입니다. 자신에게 영향을 끼친 이들의 은공이 있기에 오늘의 자신이 있는 것입니다. 그 은혜를 항상 소중히 간직하고 사는 것이 인간을 보다 인간답게 만드는 길입니다.

오늘 스승의 주일,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연락을 못 드렸던 오늘의 내가 되게 해주신 학교 선생님이나 교회학교 선생님이나 신앙의 어른들께 안부전화, 또는 감사의 인사와 편지와 선물을 전할 수는 없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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