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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모공경과 부부사랑 (출 20:12, 벧전 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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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영무 목사 (영신교회)

  현대의 가장 큰 위기는 가정의 붕괴와 해체입니다. 가정이 무너지고 있고 이혼하는 가정이 급속히 늘어가고 있습니다. 10쌍이 결혼하면 4-5년 안에 5쌍이 이혼하고 있다고 최근의 한 통계가 밝히고 있습니다. 가정의 문제는 가정으로만 끝나지 않는 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가정이 무너지면 교회도 흔들리고 사회도 심각한 위기에 부딪치게 되기 때문입니다. 한 가정의 붕괴는 성수대교의 붕괴만큼이나 큰 충격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가정의 달 5월을 맞이하고 어버이주일을 맞는 우리의 심정은 더 무겁게만 느껴집니다.


  가정 붕괴의 원인을 생각해보면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전통적인 효도관의 쇠퇴입니다.

  부모공경의 가르침은 더 이상 힘을 가지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많은 어른들이 자식의 냉대와 학대, 그리고 외로움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 상담 센타의 통계에 의하면 지난해 접수된 노인학대사례 2281건 가운데 언어 정서적 학대가 1004건(44%)으로 절반 가까이 달했으며, 장기간 밥을 주지 않거나 부양을 거부하는 ‘방임형 학대’631건(27%), 폭행 등 신체적 학대 377건(17%), 부모에게 용돈을 안주거나 부모의 재산을 부당하게 사용하는 경제적 학대 269건(12%)순이었다고 합니다.

  노인 학대의 가해자를 통계로 보면 아들이 41%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 며느리 29%, 딸9%, 배우자 8%, 사위2%, 손자 손녀 2% 순이었습니다.


  둘째로, 경제적인 이유입니다.

  경제난이 계속되면서 내 자녀도 바로 양육하기 힘든데 부모까지 짐을 질수 없다고 부양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카드 빚으로 인한 이혼의 사례와 가정해체도 경제적인 이유에 속합니다. 부모부양의 무거운 짐이 부부의 갈등으로 이어진 경우도 다반사에 속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정당한 이유는 될 수 없습니다. 대학을 포기하고 노점상을 하면서 장애인인 아버지를 부양하는 20대의 젊은이가 있는가 하면, 자신도 장애인이고 정부 보조금으로 생활하면서 80세의 노모를 정성으로 보살피고, 늘 등에 업고 병원에 모시고 가는 50대의 아들이 신문에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셋째로, 이기주의의 팽배입니다.

  자기중심적인 삶이 가정 붕괴의 큰 원인입니다. 부모를 위해 희생하려는 자식이 많지 않고, 자녀와 부모, 그리고 아내와 남편을 위해 고생을 감수하려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데도 문제의 원인이 있습니다. 모두가 자기를 위해 살고, 자신의 행복을 위해 존재합니다. 절대로 내 인생을 누군가의 행복을 위해 희생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넷째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무지와 무시입니다.

  전통적인 유교의 도덕이 허물어졌지만 아직 그 빈자리를 기독교의 말씀으로 채우고 있지 못합니다. 한때 기독교를 제사를 금지한다는 이유로 불효의 종교라고 오해했던 적도 있었지만 기독교는 부모 공경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는 종교입니다. 십계명에 그렇게 명시되어 있고, 예수님 자신도 십자가상에서 효의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올바른 말씀의 실천이 가정의 붕괴를 막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조차도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이나, 이혼을 금하시는 성경의 가르침을 더 이상 무겁게 생각지 않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일부의 그리스도인들은 부모공경이나 이혼금지의 가르침을 자신의 편리대로 해석하고 적용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3:1-3절에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라고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회의 부패를 몰아내고, 어두움을 밝게 할 소금과 빛이어야 할 그리스도인들만이라도 이런 잘못된 흐름에 편승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비록 우리의 힘이 미약할지라도 허물어져가는 가정을 다시 세워가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가정에도 갈등의 먹구름이 몰려오고 이혼의 위기에 이를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할 수 만 있으면 이혼만은 피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결혼 전에 남편과 예수 믿기로 약속했지만 결혼 후 남편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가정이 있었습니다. 문제는 자신만이 아니라 아내의 교회출석까지도 방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느 날 남편은 이혼서류를 꺼내놓고 아내에게 질문하였습니다. “나를 택하겠소? 예수를 택하겠소?”,
그때 지혜로운 아내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예수님 때문에 당신을 버릴 수 없어요. 예수님이 내게 한 평생 동안 당신만을 남편으로 섬기며 살라고 가르쳐주셨기 때문이에요. 만일 예수님이 아니었더라면 내가 먼저 당신한테 이혼하자고 했을 거예요”. 남편은 잠시 골똘하게 생각하더니 “정말 당신이 믿는 예수가 나를 버리지 말라고 하였소? 그런 예수라면 나도 믿겠소” 라고 이야기 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애기가 하나 있는 집사님이 이혼상담을 하러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이 집사님의 고민인 즉 남편과 더 이상 살 수 없어 이혼해야 하겠는데 저 아이를 누가 맡을지 결정을 할 수가 없어서 고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기도하신 후 떠오르는 지혜를 가지고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고민할 것 없습니다. 어차피 이혼할거라면 애를 하나만 더 낳아 2명이 되면 공평하게 하나씩 맡으시오.” 집사님은 맞다고 생각하고 돌아가서 임신을 하고 애기를 낳았는데 그만 쌍둥이를 출산하고 말았습니다. 또 고민이 생겼습니다. 이리 저리 미루다가 아이들로 인해 부부의 사랑이 회복되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합니다.

  가정을 떠받드는 두개의 기둥이 있습니다. 첫째는 부모공경이요, 둘째는 부부사랑입니다. 흔들리는 그리고 붕괴직전의 이 두개의 기둥을 다시 세우도록 합시다.


  첫째, 부모공경입니다.
  오늘 성경본문 출애굽기 20:12절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고 말씀합니다.

  부모공경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또한 약속 있는 첫 계명입니다.
  에베소서 6:2-3절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두 번째 돌 판의 첫 계명이고(5계명), 잘되고 장수하는 약속이 있습니다. 인간들의 어리석음을 아시기에 하나님께서는 부모 공경하는 자에게 임할 축복까지 약속하고 계십니다.

  내가 직접 모시고 있지 못하더라도 자식으로서의 도리는 감당해야 합니다. 부모가 없다면  어찌 내가 이 땅에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 나의 뿌리는 바로 부모님입니다. 부모는 내 생명의 뿌리요 하나님의 대리자이기에 우리는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동독출신으로 40대 여인인 “마누엘라 쇼트”씨는 북한 출신 유학생과 동독출신의 어머니에게서 태어났습니다. 지금 아버지를 찾아서 한국에 와있습니다. 북한에는 들어갈 수가 없기에 한국에 와서 이 딱한 사정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쇼트씨는 얼굴도 못 본 아버지를 찾아서 이역만리 한국까지 와서 애를 태우고 있는데 우리는 가까이 계신 부모를 부양하고 공경하는데도 게으름을 피운다면 이는 합당치 않은 것입니다.


  많은 자녀들이 부모 모시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오죽 했으면 이런 유머가 생겼을 정도입니다.

  엄마가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있는 9살 난 철수에게 “철수야 이다음 장가가면 엄마랑 같이 살자”고 말했습니다. 철수는 갑자기 얼굴이 심각해지더니 밖으로 뛰어나갔습니다. 한참 후에 돌아온 철수는 어두운 얼굴로 엄마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아무래도 그건 안되겠어요.” 엄마가 “왜 안되니?”라고 묻자  철수는 침통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옆집 영희가 안된데요”.


  성도여러분!
  지금 내가 모시지 못한다 하더라도 최선을 다하십시오. 지금 효도를 다하지 못하면 나중에 후회해도 소용없습니다. 반드시 효도하고 싶어도 효도할 수 없는 때가 옵니다. 부모 공경은 많은 물질이 필요한 것만은 아닙니다. 마음을 편히 해드리는 것이 최고의 공경입니다. 꽁치 한 마리라도 마음 편히 드시도록 대접해드려야 합니다.
  약속있는 첫 계명인 부모공경의 기둥을 여러분의 가정에서 세워 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부부사랑입니다.
  성경은 부부를 가리켜 돕는 배필이라고 말합니다. 창세기 2:18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고 말씀합니다. 부부란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 보충해주는 관계입니다. 부부란 경쟁의 관계도 대립의 관계도 아닙니다. 서로 돕는 협력자입니다.
  또 부부란 생명의 관계입니다. 아담은 하와를 가리켜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했습니다. 부부란 생명을 나눈 관계입니다. 그러기에 부부사이에는 촌수가 없습니다. 결국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의 정의를 든다면 부부는 동반자의 관계입니다. 마치 2인3각 경기의 선수와 같습니다. 3다리로 걸어야 하는 어려운 스포츠를 수행해야 합니다. 마음이 맞지 않고 호흡이나 보조를 맞추지 않으면 쉽게 넘어질 수 있고 비틀거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배필이요 생명의 관계요, 동반자의 부부관계가 때로는 무서운 관계로 타락해 가기도 합니다.

  얼마 전 신문에 보니 아내가 카드 빚을 많이 지고 갚을 길이 없자 술이 취해 들어와서 자고 있는 남편을 알콜 중독자로 몰아 정신병원에 입원시켜 놓은 뒤 남편의 재산을 정리해 카드 빚을 갚고 마음대로 쓰려다가 가까스로 남편의 신고로 덜미가 잡혔다고 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성경은 부부사랑의 기둥을 세우기 위해 아내와 남편들에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먼저 아내들에게 주는 말씀입니다.


  첫째, 아내들은 남편에게 순복해야 합니다.
  본문말씀 1-2절입니다. “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봄이라”

  남편은 가정의 제사장이요 머리요 하나님이 정하신 가정의 질서입니다. 종처럼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의미보다는 가정의 가장으로 남편을 대우하고 존중해 주어라는 의미입니다. 특별히 오늘 성경은 그 아내의 정결하고 조심스런 행위로 말미암아 불신자인 남편이 구원을 받게 하라고 권합니다. 아이들 교육을 위해서 가정의 가장인 남편이 아내에게 존중받는 관계가 형성되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가정의 질서를 보면서 자랍니다.
 

  한 고등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조사를 해보았더니 아버지가 제일 불쌍하게 보일 때가 3가지라고 응답했습니다. 먼저는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야단맞을 때이고, 다음은 아버지가 방금 회사에서 돌아와 가방을 힘없이 내던지고 방에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시고 흐느낄때요, 마지막은 아버지가 텔레비전을 보다말고 밖에 나가서 혼자 복권을 맞추어 보실 때라고 합니다.

  아내들은 진정으로 남편에게 순종하고 남편을 존중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아내들은 속사람을 단정히 해야 합니다.
  본문말씀 3-4절입니다.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아내들의 단장은 외모만 꾸미는데 치우쳐서는 안됩니다. 특히 베드로는 당시의 사치에 물들었던 여인들을 염두에 두고 권면하고 있을 것입니다. 외적인 아름다움도 귀하지만 내적인 속사람의 단장이 더 귀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음에 숨은 속사람을 온유하고 안정되게 다스릴 때 이는 하나님 앞에서 더욱 귀하고 남편에게도 사랑받는 아내가 될 것입니다.

  많은 여인들이 매력있는 여성이 되고자 외모 꾸미기에만 치중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먼저 속사람을 아름답게 가꾸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외모는 전혀 가꿀 필요가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아내들은 외형도 남편에게 매력을 주는 여인이 되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아내들은 남편을 위해 화장을 합니다. 자기 자신을 가꾸듯이 가정도 잘 정돈되어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남편들이 가정에 돌아왔을 때 참 안식의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 아내들은 남편을 격려하고 칭찬해야 합니다.
  아내들의 격려와 칭찬은 사회생활에 피곤한 남편들에게 훌륭한 보약이 됩니다. 남편들은 아내의 격려를 갈망합니다. 아내들이여! 남편을 격려하는 일에 인색하지 마십시오. 이제는 매일 한마디씩의 보약을 처방합시다. “당신 정말 멋져요”, “당신이 세상에서 최고예요”, “당신은 참 훌륭해요” 하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잠언 16:24절은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 고 말씀하십니다.

 
  루스벨트는 정치인인으로 승승장구할 때 다리에 마비가 오고 휠체어를 의지하는 처지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촉망받던 정치인 루스벨트에게는 치명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는 몹시 좌절하고 실망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내의 격려로 인하여 다시 용기를 얻었고 대통령 루스벨트가 되어 경제공황에서 미국을 살릴 수 있었습니다. “나는 당신의 다리와 결혼한 것이 아니에요. 나는 당신을 사랑해요. 제가 이제 당신의 한쪽 다리가 되어드릴 거예요”. 이 한마디가 루스벨트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아내의 따스한 말 한마디는 남편의 인생을 바꿀 수 있습니다.


  둘째로, 남편들에게 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본문말씀 7절입니다. “남편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남편들은 첫째로, 지식을 따라 아내와 동거해야 합니다.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돕는 배필입니다. 돕는 배필의 관계로서 동거해야 함은 성생활의 의무도 포함됩니다. 남편들은 아내를 위해 시간을 내고 아내의 정서적 감정적 육체적 필요들도 채워주어야 합니다.

  둘째로, 아내를 귀히 여기십시오.
  아내가 육체적으로 연약하다고 해서 그를 경멸하거나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연약한 그릇이요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존귀히 여겨야 합니다.

  셋째로, 기도가 막히지 않게 하십시오.
  아내를 정당하게 대우하지 않는 것은 우리의 기도생활에도 장애가 됩니다. 아내를 괴롭히고 학대하는 남편의 기도는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골로새서 3:19절은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날 많은 가정의 갈등과 비극은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깊은 뜻을 우리가 무시하는 데서 온 결과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만드시기 전에 먼저 가정을 만드셨습니다. 가정을 잘 지키고 보호하는 것이 하나님의 강력한 뜻입니다. 누구도 가정을 허물어 뜨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사소한 감정의 골과 의견의 차이는 이해와 사랑으로 극복해 나가고 메꾸어 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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