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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이 심방오셨다 (요 11:3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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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 강문호 목사 (갈보리선교교회)
  2004. 05. 23 주일 낮 설교
                             
어느 임금님이 사냥을 하러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이리 저리 짐승을 찾아다니다가 길을 잃어 버렸습니다. 날은 어두워 오고 맹수 소리를 요란하였습니다. 오도 가도 못 하고, 들어갈 수도 나갈 수도 없는 진퇴양란에 빠졌습니다. 이 때 산속에서 농사짓는 농사꾼이 집으로 돌아가다가 이 모습을 보았습니다. 임금인 줄도 모르고 잘 안내하여 주었습니다.

얼마 후 임금님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얼마 전 산속에서 자기를 구하여 준 은인이니 무엇을 달라고 하여도 줄 터이니 말해 보라는 요청이었습니다. 이 농부는 말했습니다.
<나는 임금님을 구하여 준 것만으로도 족합니다. 아무 것도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임금님이 그런 뜻이라면 아무 때나 임금님이 원하시는 때 하룻밤만 오셔서 주무시고 가시면 대접을 잘 하여 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임금님은 날짜를 정하고 그 집에 가서 하루 자기로 하였습니다. 임금님이 그 집에 가서 잘 날이 정해지자 난리가 났습니다. 산속으로 난 도로가 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임금님이 주무실 방을 다시 짓기 시작하였습니다. 침실이 완성되자 침대가 들어 왔습니다. 이부자리, 커텐등 모든 것이 완비되었습니다. 주방이 만들어졌습니다. 정원이 만들어지고 다듬어졌습니다. 일류 집이 되었습니다.
임금님의 한번 심방으로 그 농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야기는 예수님의 심방 이야기입니다.
성경 전체를 통하여 예수님이 어느 가정에 특별히 심방가신 이야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삭개오 집에 하룻밤 머무르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 장모 집에 심방 가신 적이 있었습니다. 백부장 하인이 아파서 그 집에 심방 가시려는 데 백부장이 감히 모시지 못 하겠다고 하여 가시다가 중간에서 돌아오신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가정은 자주 가신 기록이 나타납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가장 심방을 많이 하신 가정이 나사로 가정입니다.

이 가정은 마르다, 마리아 그리고 나사로 세 명이 살고 있는 가정입니다. 부모님은 일찍 세상을 떠난 것 같습니다. 부모 이야기는 한 마디도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세 고아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리 어린 아이 같지는 않습니다. 세 명 다 아직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대강 15살에서 20살 정도 세 자녀였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세 자녀가 살고 있는 가정을 예수님은 특별히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특별히 사랑하시고 아끼셨다면 그 비결이 있을 것입니다.

미국 로스엔젤레스 어느 해장국 집에 갔더니 김 영삼 대통령이 대통령 시절에 그 곳에 와서 한 끼 식사를 하고 간 적이 있었습니다. 대통령이 앉았던 의자에 <김 영삼 대통령이 앉았던 의자>라고 써 놓았습니다. 그리고 대통령이 드셨던 식기, 숟가락, 젓가락을 포장하여 매달아 놓고 <대통령이 사용하시던 그릇>이라고 적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나사로 가정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여러번 방문하셨던 가정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이 사랑하신 비결이 무엇일가요? 예수님은 어떤 가정으로 심방 가시기를 기뻐하실까요?
가정 식구들이 다음과 같은 믿음을 가진 집을 예수님은 심방하시기를 즐거워하십니다.

1. 옥합 믿음 

예수님을 가장 귀하게 여기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 이 가정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1장 1절과 2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병든 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형제 마르다의 촌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씻기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비러라>

삼남매 중에 제일 위가 마리아였습니다. 마리아는 전에 예수님께서 심방 오셨을 때 300 데나리온이나 되는 옥합을 깨뜨려서 예수님의 머리에 부은 적이 있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일군들을 하루 일하게 하고 저녁에 한 데나리온씩 임금으로 주었다는 기사가 있습니다. 300 데나리온은 300일 임금입니다. 요즈음으로 말하면 하루 임금이 5만원이라고 하면 1,500만원 정도되는 향유입니다. 그 때 가룟 유다가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주지 왜 낭비하느냐?>고 반발하였던 사건입니다.
이같이 예수님을 최고로 모시는 사람이 한 명 그 가정에 살고 있으니 예수님이 그 가정을 자주 심방하셨습니다.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습니다.
반대도 됩니다.
마음이 있 곳에 물질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그 가정에 한 명만 있어도 그 한 사람을 보시고 그 가정을 축복하십니다.
아브라함의 믿음 하나 보시고 그 가문 전체를 축복하셨습니다.
노아의 가정은 8식구입니다. 노아가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노아 하나를 보시고 노아의 가정 전체 식구를 축복하셨습니다.
라합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를 점령하려고 할 때 하나님은 여리고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죽이라고 하셨습니다. 우상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흘러 들어오지 않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술집 여자 라합이 믿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리고는 자기들이 살 땅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준 땅임을 알고 이스라엘 정탐군을 생명을 걸고 숨겨 주었습니다. 그런 믿음의 사람 라합 하나 때문에 라합의 가족 전체가 축복을 받았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놀랍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기생 라합과 그 아비의 가족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살렸으므로 그가 오늘날까지 이스라엘 중에 거하였으니 이는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탐지하려고 보낸 사자를 숨겼음이었더라>(수6;25)

가족과 속한 모든 것들이 라합 한 명 때문에 다 살아났습니다. 하나님은 그 가족중에 한 명만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어도 그 한 사람 때문에 그 가족을 축복하여 주십니다. 마리아 하나가 예수님을 최고로 여기는 믿음을 가지니까 나중에 나사로가 죽었을 때 예수님께서 오셔서 살려 주시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나사로의 믿음이 어떤 믿음인지 성경은 전혀 말해주고 있지 않습니다. 누나 마리아의 믿음이 옥합을 깨뜨리는 믿음이었습니다. 그 믿음을 보시고 나사로를 살려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으로 인정하고 아끼고 사랑하는 한 사람 때문에 예수님은 그 가정을 심방하시고 축복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미국 출장 길에 샌프란시스코의 리츠칼튼호텔에서 하루 머물렀습니다. 그는 서양식의 푹신한 베개가 싫었습니다. 그래서 후론트에 전화를 걸어 좀 딱딱한 베개를 갖다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어디서 구해 왔는지 딱딱한 베개를 구해다 주어서 잠을 푹 자고 일어났습니다. 그 곳에서 목적지 뉴욕 리츠칼튼 호텔을 예약하고 뉴욕으로 갔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방안에 들어간 그는 깜짝 놀랐습니다. 침대 위에 전날 밤에 자신이 베고 잤던 베개가 놓여 있었습니다. 자신을 귀빈으로 알고 베개까지 신경을 써주는 호텔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지 평생 리츠칼튼 호텔만 사용하였습니다.
자기를 인정하여 주는 이를 사람들은 좋아하게 됩니다. 예수님도 예수님을 예수님으로 인정하고 알아 주어야 그 가정을 좋아 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구세주이십니다. 예수님은 못 할 것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최고의 분으로 인정하고 모셨습니다. 그런 가정을 예수님은 찾으셨습니다.

2. 돌 믿음

언니 마리아는 <옥합 믿음>을 가졌는데 동생 마르다는 <돌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옥합 믿음은 헌신 믿음이지만 돌 믿음은 순종 믿음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는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바리새인 서기관 서기관들이 많았습니다. 마리아의 집 베다니는 예루살렘과 붙어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멀리 갈릴리 지경에서 복음을 전하고 계셨습니다. 이 때 나사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올라가자고 하셨습니다.
그 때 제자들이 말했습니다.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요11;8)

그러나 예수님은 가셨습니다. 이것 하나만 보아도 얼마나 예수님이 나사로 가정을 사랑하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나사로 가정에 도착하고 보니 나사로가 죽은 지 이미 나흘이 되었습니다. 열대지방에서 죽은 지 나흘이면 이미 시체가 거의 다 썩었을 때입니다.
이 때 마르다가 예수님을 만나서 말했습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21-22)
마르다는 죽은 지 나흘된 동생이 <이제라도>주님이 함께 하시면 기적이 일어날 것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은 우시며 나사로 무덤으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돌을 옮겨 놓으라>

이 때 마르다가 말했습니다.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이 말을 듣고 마르다는 동생 나사로 무덤을 막고 있는 돌을 옮겨 놓았습니다. 예수님이 큰 소리로 외치셨습니다.
<나사로야 나오라>
죽었던 나사로가 살아서 무덤에서 걸어 나왔습니다. 예수님께서 기적을 일으키시도록 돌을 치워 드리는 믿음이 마르다의 믿음이었습니다. 불가능한 <이제라도> 주님이 함께 하시면 기적이 일어날 것을 믿었습니다.
<이제라도>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라도 괜찮습니다. 이제라도 주님이 함께 하시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정말 마르다가 기적을 기대하였던 대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나는 외치고 싶습니다.
<기적을 기대하는 사람에게 기적이 일어납니다>
<기적을 믿는 사람에게 기적이 일어납니다>

의료 선교하는 의사 한 분이 아프리카 어느 외진 마을로 들어가서 선교를 하고 있을 때 이야기입니다. 그 마을에 외국 유학을 다녀와서 그 마을을 잘 사는 마을로 변화시키겠다는 일념으로 불철주야 일하는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돈도 많고 가문도 좋고 공부도 많이 하고 그 마을에서는 최고 엘리트였습니다. 공부하느라고 혼기도 늦은 노총각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과연 어느 처녀에게 그가 프로포즈를 할지 모두 궁금해 하였습니다. 그 마을 처녀는 모두 자기에게 프로포즈 하여 주기를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대단히 장래가 촉망되는 청년이었기 때문입니다.
아프리카 그 나라는 청년이 암소를 끌고 처녀 댁으로 가서 <이 암소를 받으시고 딸을 주십시요>라고 청혼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훌륭한 가문 좋은 처녀일수록 암소 수가 많습니다. 보통 한 마리이고, 어쩌다가 두 마리입니다. 그 마을 최고 기록이 세 마리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청년은 그 암소 9마리를 끌고 청혼하러 가는 것이었습니다. 의료 선교사가 어느 집으로 가는 지 따라 가 보았습니다. 외진 곳 가난한 노인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빼빼 마르고 병든 아버지에게 볼품없는 처녀 딸이 있었는데 그 딸에게 청혼하는 것이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을 비롯한 모두가 놀랐습니다. 그 청년이 정신이 돌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청년이 의료 선교사를 초대하여 가 보았습니다. 그 못 생기고 볼품없었던 처녀가 귀부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우아한 여인을 의료 선교사는 본 적이 없었습니다. 의사는 속을 생각하였습니다.
<아. 이 사람이 그 때의 말라깽이 처녀와는 이혼하고 새로이 아내를 맞았구나>
그러나 그 청년이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 사람이 그 때의 그 볼품없었던 처녀입니다>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 하고 있는 데 그 청년이 말을 이었습니다.
<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저 처녀를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외국에서 공부하던 긴 세월 속에서도 저 사람의 맑고 고운 눈동자를 한시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 처녀에게  청혼하였습니다. 제가 청혼할 때 몇 마리 암소로 할 것인가를 오래 동안 고민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암소 몇 마리인가가 아내에게는 자신의 가치를 결정할 기준이 될 것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제 아내가 자신의 가치를 한 두 마리 암소로 낮추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우리 마을 최고 수준이 세 마리인데 내가 9마리로 청혼하면 저 여자가 내 가치는 9마리라고 자부심을 가지고 자신을 높일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역시 9마리로 높였더니 아내는 그 때부터 자신이 자신을 높이기 시작하였습니다. 나는 이 마을에 최고 수준이라고 생각하지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꾸미기 시작하여 오늘 날 귀부인처럼 되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의사는 그 청년의 지혜로움에 감탄하며 두 손을 꼭 잡아 주었다고 글을 썼습니다.
이것이 마르다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이제라도 기적을 일으켜 주실 것을 기대하였더니 기대대로 되었습니다.

한 가지 이야기를 더 드리겠습니다.
한 자매가 의사들로부터 뇌종양이 심하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생명이 위험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의사들은 서둘러 여러 가지 검사를 하고 수술하자고 하였습니다. 그 여자는 매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모든 장비를 갖춘 검사대 위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는 순간적으로 예수님이 한번만 안수하여 주셔도 낳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기도하였습니다.
<예수님. 지금 주님께서 바로 저와 함께 계신다면 저를 고쳐 주실 수 있음을 믿습니다>
딱 한 마디 기도할 시간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주님은 이 믿음을 보시고 순간적으로 고쳐 주셨습니다. 정밀 검사를 아무리 하여도 뇌종양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순간적으로 고쳐 주셨습니다.
기대하는 자에게 기대가 이루어집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은 우리 교회를 엄청나게 축복하실 것이라고 기대하십시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 가정과 우리 사업을 이제라도 크게 축복할 것을 기대하십시다. 그리고 돌을 치우십시다. 마르다의 믿음은 기적을 기대하면 돌을 치우는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도록 돌을 치우는 가정을 하나님은 사랑하여 주십니다. 이제라도 기적일 일어날 것을 믿는 믿음을 가지면 이제라도 하나님이 역사하여 주십니다. 그리고 심방하여 주십니다.

3. 조상 믿음

나는 요한복음 11장을 거듭 거듭 읽다가 이상한 말 한 마디가 눈에 확 들어 왔습니다. 5절 말씀에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이 삼 남매를 본래부터 사랑하셨습니다. <본래>라는 말을 놓고 해석의 지혜를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렸습니다.
이는 부모 때부터 사랑하셨던 것 같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어느 주석에도 없습니다. 근거도 없습니다. 본래부터 사랑하신 것을 보면 마리아, 마르다
그리고 나사로 가정을 부모 때부터 찾은 것 같은 영감이 스쳐갔습니다. 부모가 신앙생활을 잘 하면 자녀가 복을 받습니다. 아브라함이 신앙생활을 잘 하니까 아브라함의 후손이 복을 받았습니다. 욥이 신앙생활을 잘 하니까 욥의 후손들이 복을 받았습니다. 다윗이 신앙생활을 잘 하니까 다윗의 후손이 복을 받았습니다. 이를 조상적 믿음 또는 유전적 믿음 또는 가정적 믿음이라고 합니다.
삼 남매의 부모가 예수님을 사랑하고 잘 섬겼던 같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부모가 세상을 떠난 이후라도 더욱 이 가정을 사랑하셨습니다.
자녀를 가장 사랑하는 길은 부모가 예수님을 잘 믿는 것입니다.

나는 이런 감동스러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축구를 몹시 좋아하는 아들을 둔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키도 작고 몸도 야윈 편이었습니다. 그러나 축구를 너무나 좋아 하여서 중학교, 고등학교 모두 축구부에 가입하여 공을 찼습니다. 그러나 축구를 좋아 하였지 공을 잘 차는 것은 아니어서 늘 후보선수였습니다. 단 한번도 선수로 정식 시합에 출전하여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언젠가는 주전 선수로 출전하게 될 것이란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연습을 하였습니다. 그 소년이 속한 팀이 경기를 하는 날이면 아버지는 축구장으로 나와 관중석에서 소리를 지르며 응원하였습니다. 대학에 입학하여서도 역시 축구부에 지원하였습니다. 감독은 정신력이 좋다고 축구팀에 넣어 주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너무 기뻐하며 앞으로 치루어 질 4년 간의 대학 축구경기 입장권을 한꺼번에 다 샀습니다. 그러나 그는 대학 4년 동안 단 한번도 출전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경기 때마다 관중석에 앉아 소리지르며 응원하였습니다. 졸업을 얼마 앞 두고 마지막 시합이 있기 일주일 전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듣고 그 소년은 고향을 다녀왔습니다. 아버지 장례를 치루고 온 것입니다. 그 때 그가 후보선수로 있는 팀이 뒤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감독에게 제발 자신을 출전시켜 달라고 빌었습니다. 감독은 거절하였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열성적으로 간절히 매달리자 이를 허락하였습니다. 경기장에 나간 그는 경기의 흐름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는 누구보다 잘 뛰었고 공도 잘 막았습니다. 마침내 그는 동점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경기 종료 1분을 남겨놓고 승리 골을 터뜨렸습니다. 기적이었습니다. 경기가 끝난 후 감독은 그를 껴안고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는가하고 물었습니다. 처음으로 출전하여 승리의 골을 터뜨린 그는 울먹이며 대답하였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장님이셨습니다. 아버지는 빠짐 없이 경기를 보러오셨지만 내가 뛰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셨습니다. 그러나 며칠 전 돌아가셨기 때문에 하늘에서 제가 경기하는 모습을 처음으로 보셨을 것입니다. 아버지가 보는 앞이라 죽어라고 뛰었습니다>
그 후부터 그는 주전 선수가 되었습니다.
부모가 훌륭한 집에서 훌륭한 자녀가 나옵니다. 마리아 가정을 예수님이 그렇게 사랑하신 것은 부모가 좋았기에 <본래>부터 사랑하고 계셨던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부모 때문에 자녀가 복을 받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전주에 갔더니 어떤 집 앞에 조그만 비석이 있었습니다. 그 비석에는 <전 두환 대통령이 주무시고 가신 집>이라고 새겨져 있었습니다. 대통령이 한번 자고 가도 영원히 기리는 데 하물며 예수님이 자주 찾는 집이라면 얼마나 영광스럽겠습니까?

우리 주님이 여러분의 가정을 자주 영적으로 방문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집에 예수님이 심방하고 축복하시고 기적을 주실까요?
나사로 가정같으면 됩니다. 나사로 가정은 어떤 가정입니까?
1. 옥합을 깨뜨리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 있는 집안입니다.
2. 예수님이 기적을 일으키실 것을 기대하는 믿음을 가진 집안입니다.
3. 부모가 신앙생활을 잘 한 집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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