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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여 무슨 일입니까? (행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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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박충웅 목사 (대구문화교회)

                                  사도행전 10:1-9                    2004.5.23
                                주여 무슨 일입니까?

가이사랴에 고넬료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달리야 부대의 장교였습니다. 100명의 부하를 거느린 지휘관입니다. 그는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온 가족들과 함께 하나님을 잘 섬겼습니다. 가난한 유대인들을 구제도 많이 했습니다. 기도를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오후3시쯤이었습니다. 그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지금은 환상이나 음성으로 하나님의 뜻을 전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완성되기 전에는 음성, 꿈, 환상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천사가 “고넬료야!”하고 부르셨습니다. 그는 천사를 보자 겁이 났습니다. “예수님 무슨 일입니까?”하고 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네 기도와 구제하는 일을 다 아시고 기억하신다. 지금 너는 사람을 욥바라는 곳에 보내라 거기 가면 베드로 사도가 있을 것이다 베드로를 불러 오너라. 때에 베드로는 바닷가에 있는 피혁공 시몬의 집에 머물고 있다.” 천사는 이 말을 하고 떠나버렀습니다. 고넬료는 두 종과 경건한 부한 한 사람을 불렀습니다. 그동안 된 모든 일을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을 욥바로 보냈습니다. 이튿날 12시쯤 베드로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베드로는 옥상에 기도하러 올라갔습니다. 그는 몹시 배가 고팠습니다. 무엇을 좀 먹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이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 환상을 보았습니다. 하늘이 열립니다. 큰 보자기 같은 것이 네 귀가 매어져 땅에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안에는 온갖 네 발 짐승과 땅에 기어 다니는 것과 공중의 새들이 들어있었습니다. 그 때 “베드로야 잡아먹어라.”하는 음성이 들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거절했습니다. “주님 그럴 수 없습니다. 저는 속되고 깨끗지 않는 것은 한 번도 먹어 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은 속되지 않다.”라는 음성이 들립니다. 이런 일이 두세 번 반복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보자기가 하늘에서 다시는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궁금했습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하고 있을 때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왔습니다. 때에 성령께서 “세 사람이 너를 찾고 있다. 내가 보내니 사람들이니 내려가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거라.”합니다.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갔습니다. 이미 고넬료는 친척들과 가까운 친구들을 불러 놓고 있었습니다. 고넬료는 베드로의 발 앞에서 큰 절을 했습니다. 베드로는 일어나시오 나도 당신과 같은 사람에 불과 합니다. 베드로는 주변 사람들에게 “여러분 나는 유대인입니다. 고넬료 백부장은 이방인입니다. 유대인이 이방인을 찾아가는 것을 불법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셔서 왔습니다.”그날 밤 고넬료 가정에 머물며 말씀을 가르치고 설교를 했습니다. 저도 “주여 무슨 일입니까?”라는 말씀으로 같이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사람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말 잘 아시지요. 사람은 누구나 똑 같은 사람대접을 받아야 합니다. 저는 미국의 남북전쟁이 난 그 길을 가 보았습니다. 얼굴과 피부의 색깔이 검다는 단 하나만의 이유로 노예가 된 것입니다. 너무 억울하지 않습니까? 목욕탕, 버스, 화장실을 같이 쓴 것이 그리 오래지 않습니다. 그는 흑인의 인권을 위해 설교하다가 마틴 루터킹 목사님은 백인이 쏜 총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는 총을 쏘고 돌을 던져도 저하하지 않았습니다. 찬송을 부르며 행진했습니다. 그는 위대한 연설을 했습니다. “나는 오늘 꿈을 갖는다.”(I have a dream today)였습니다. 그는 불가능한 현실에도 오직 믿음으로 저항했습니다. 부조리와 불의와 모욕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결코 꿈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허물과 죄에서 해방 시키고자 예수님을 보내신 것을 믿었습니다. 흑인들은 자유과 평등이 이상이었습니다. 소망이었습니다. 믿음이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주권 아래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것입니다. 킹목사님은 Catholics, will be able to join hands and sing in the words of the old Negro spiritual. "Free at last! Free at last! Thank God Almighty, we are free last!"

And so go back to the South, not in despair. I go back to the South, not with the feeling that we are caught in a dark dungeon that will never lead to a way out. I go back believing that the new day is coming and so this afternoon, I have a dream, it is dream deeply rooted in the American dream. I have a dream, that one day right down in Georgia to Mississippi and Alabama, the sons of former slaves and the sons of former slave owners will be able to live together as brothers.

I have a dream this afternoon that one day, one day little white children and little negro children will be able to join hands as brothers and sisters.

I have a dream this afternoon, that one day, one day men will no longer burn down houses and the church of God simply because people want to be free.

I have a dream this afternoon, that there will be a day that we will longer, no longer face the atrocities that Imatio had to face and Magurders face, that all men can live with dignity.

I have a dream this afternoon, my four little children will not come up in the same young days that I came up with, that they will judge, be judged on the basis of the content of their character, not the color of their skin.

I have dream this afternoon, that one day right here in DC, negroes will be able to buy a house, or rent a house anywhere that their money will them, they will be able to get home.

Yes, I have a dream this afternoon that one day in this land the words of Amos will become real and justice will roll down like waters and righteousness like a mighty stream.

I have a dream this evening that one day we will recognize the words of Jefferson that all men are created equal, that they are endowed by their creator with some inalienable rights and among these are life, liberty and the pursuit of happiness.

위의 글을 줄이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자손들, 흑인과 백인, 유대인과 이교도들, 개신교와 가톨릭 교인들이 손에 손을 잡고 옛 흑인 영가를 부르는 그날이 올 것입니다. “드디어 자유, 드디어 자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여 우리가 마침내 자유로워졌습니다. 나는 오늘 연설을 마치고 남부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나는 절망에 빠진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탈출구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새로운 날이 오고 있다는 것을 믿고 돌아갑니다. 나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날 내 네 아이가 내가 격어야 했던 젊은 시절과 같은 것을 겪지 않고 또 그들이 피부색깔 대신 인격을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이 나의 꿈입니다. 나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아모스의 예언이 실현되고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며 진리가 거대한 분류처럼 흐르게 되는 꿈입니다. 나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유가 왔다. 자유가 왔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고 흑인 영가를 부르는 날을 만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는 노벨평화상을 받았습니다. 1월 15일 그의 생일이 미국의 국경일입니다.



베드로에게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고넬료를 만나러 가는 것은 모험입니다. 이단자 취급 받습니다. 그래서 부정한 것을 먹지 못한다고 거부했습니다. 베드로의 교만이 아닙니다. 이것이 율법이었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그는 사면초가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33)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하셨습니다. 하필이면 사마리아입니까? 그들은 상종해서는 안 되는 더러운 민족이었습니다. 이것이 율법이고 고정관념이었습니다. 누구도 이 벽을 넘어 설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베드로에게 고넬료집에 가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이 사건만은 고넬료 장교와 베드로에게 같이 나타나신 일입니다.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대단했습니다. 물론 이런 일에는 주도면밀하신 하나님의 뜻이 있었습니다. 고넬료는 가이사랴에 주둔한 로마 군대의 장교입니다. 가이사랴는 팔레스틴 총독부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었습니다.(God fearer) 이는 이방종교가 타락했습니다. 도덕적으로 문란했습니다. 거기 염증을 느껴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입니다.

그는 유대인의 회당에서 예배드리는 정말 깨끗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사람이 많은 군인이었습니다. 당시 군인으로 흔치 않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하나님과 가까이 살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하나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당대의 대 사도를 만난다는 것 어렵게 해석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도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사람을 사랑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도 고넬료를 사랑하셨습니다. 베드로의 장면으로 바꿉시다. 베드로의 처음 태도는 얼떨떨했습니다. 당황했습니다. 부정한 짐승과 벌레는 먹지 말라는 것이 하나님의 법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먹으라 하십니다. 무척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아니요”라고 거절합니다. 여기까지는 베드로가 하나님의 깊은 뜻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이방장교가 만납니다. 이것은 핵 문제 때문에 미국, 러시아, 일본, 중국, 우리나라 대표가 만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입니다. 정통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습니다. 유대인은 율법을 지키지 않는 집에 가지도 않습니다. 그런 사람을 집에 손님으로 맞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그가 고넬료가 보낸 사람을 “불러들여 유숙하게 했다”(행 10:23)했습니다. 고넬료도 유대인의 풍속을 잘 압니다. 베드로가 과연 올 것인가? 온다면 우리 집에 들어오실까? 하고 궁금해 했을 것입니다.(행 10:37)그런데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별이 없어지게 된 것입니다. 옛날 조선시대 양반과 상인 차이 정도가 아닙니다. 36-38절에 봅시다. 헬라어는 매우 거칠게 표현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평화의 복음을 전하시며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 말씀을 보내셨다. 이 예수는 모든 사람의 주가 되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고넬료와 그 가족, 친척, 친구들이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이 사건은 인류역사에 길이 남겨져야 할 일입니다. 이렇게 복음은 이방이란 높은 벽을 넘게 된 것입니다.

맺는 말

저는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고넬료라는 가아사랴에 파견된 로마 장교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욥바에 사는 베드로를 모시고 오라고 합니다. 그는 경건하게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했습니다. 구제를 많이 했습니다.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기래서 이게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세 사람을 보냈습니다. 베드로에게도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보자기 안에 이상한 짐승과 벌레가 하늘에서 내려옵니다. 이것을 잡아먹으라 하십니다. 세 번이나 그럽니다. 그는 이런 부정한 것을 먹을 수 없다고 거절합니다. 이 일후에 고넬료가 보낸 사람을 보고 아!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구나. 이젠 이방인도 한 형제가 될 수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선입견, 고정관념 때문에 전도를 못 하실 때 없습니까? 마음의 문은 엽시다.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입니다. 늘 사랑과 화평으로 전진하며 주 안에서 승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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