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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자리를 지키라 (눅 15: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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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고신일 목사 (기둥교회)


11  또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12  그 둘째가 아비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비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13  그 후 며칠이 못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허비하더니
14  다 없이한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저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15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하나에게 붙여 사니
    그가 저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16  저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군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18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19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군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21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나
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누가복음 15장 11~24절)

<목회기도>
 
좋은 계절을 살게 하신 하나님
거룩한 주일에 기둥교회에서 예배드리게 하심 감사합니다.
하나님, 기름 값을 포함한 각종 물가의 인상으로
우리의 생활은 점점 더 쪼들리고 있고, 세상은 점점 더 불안해지고 있으며
미궁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이라크와 이스라엘의 형편 때문에 걱정합니다.
하나님의 뜻하심이 어디 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으나
염려와 불안으로 사는 이들, 주저앉아 있는 사람들, 주저앉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들을 붙들어 주시고 세워 주시옵소서.
합력하여 결국은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뜻하심에
순종하면서 살 믿음과 담대함을 주시옵소서.
잘 되어 기쁘고 자랑스런 이들, 안되어 어렵고 부끄러운 이들…
각자에게 필요한 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군대에 나간 이들, 객지에 나간 이들… 해외에 나가 사는 성도들…
목회자로, 선교사로 나가 일하는 기둥교회 출신들…
병들어 몸이 괴로워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성도들
저들에게도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이 귀한 시간 어린이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초신자로부터 목사에 이르기까지
모두에게 하나님의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는 복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옆의 분들과 [좋아 보이십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합니다.  "길이 있을 것입니다. 이길 힘을 주실 것입니다. 잘 될 겁니다."
그런 마음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낙망치 마세요. 포기하지 마세요.
오늘 살고 있는 것, 그것은 희망이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왜 인지 이유를 몰라도… 이해할 수 없어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는 뜻이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다 알고 이해할 수 없습니다.
공부 많이 하고 경험을 했어도 이 세상을 다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 바퀴벌레는 머리가 잘려도 한 달까지 살 수 있습니다.
  이유는 혈압이 포유동물과 다른데 있습니다.
  때문에 머리를 잘라내도 출혈로 죽지 않을 뿐 아니라
  호흡하는 데 머리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다만 먹고 보고 방향을 잡는데 머리가 필요할 뿐입니다.
- 거북이는 결코 늙어서 죽는 법이 없습니다.
  거북은 150년 이상을 살아도 노년의 특성을 거의 드러내지 않습니다.
  다만 상처를 입거나 잡아먹히거나 병이 들어 죽을 뿐입니다.
- 고양이 변은 야광입니다.
- 새우의 심장은 머리에 붙어 있습니다.
- 돼지는 하늘을 쳐다 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런 것들의 이유를 모릅니다.
만드신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재미있게 세상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세상엔 신기한 일들도 참으로 많습니다.
우리는 그 모든 일들을 다 알 수 없고, 알더라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너무 아는 척 하지 마십시오.
쉽게 포기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뜻에, 하나님의 원하심에 맡기고 최선을 다하시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세상 사람들과 다른 것이 많습니다.
그 중에 제일 다른 것은
- 세상 사람들은 자기 지식과 경험 그리고 자기 판단에 의존하여 자기 길을 갑니다.
  자기 인생을 삽니다.
-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들은 자기 지식과 경험 그리고 자기 판단을 접어 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하나님의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길 인도 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범사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의 염려와 근심으로 머리를 쓸 틈이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비록 힘이 들어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감사의 삶이어야 합니다.
힘이 들고 어려워도 있어야 하는 자리라면 있어야 하고
지켜야 하는 것이라면 지켜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삶입니다.
 
 
탕자의 비유
 
오늘 본문(눅15:11~24) 말씀은
버려진 사람이 돌아오는 것, 죄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가르치기 위해 예수님께서 설명하신 <탕자의 비유>입니다.
 
비유는 '일상적인 것,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것…을 통해 전혀 알려지지 않았거나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기 쉽게 해 주는 표현방법'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어떤 부자 집에 두 아들이 있었는데…
그 중 둘째 아들이 장차 자기에게 분배될 유산을 미리 달라고 하였습니다.
 
당시의 아들은 아버지의 재산 상속이 보장되어 있었습니다.(창31:14, 민27:8, 신21:7)
그러나 그런 상속은 대부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둘째 아들은 서둘러 자기 몫을 달라고 졸랐을까요?
이런 저런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 중에 가장 첫째가 될 만한 이유는 지금 자신이 처한 자리가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계시고 형도 있어 자유롭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버지와 형이 있으니 안심이 되고 평안하다는 생각을 갖기 보다는
신경 써야 할 불편한 존재로 여겨 독립하고 싶었습니다.
 
부잣집 둘째 아들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깨지 않는 한,
얼마든지 평안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와 함께 있으며 누릴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포기했습니다.
아들의 자리, 동생의 자리, 가족으로 묶인 관계가 싫었던 그는
돈만 있으면 어딜 가든, 무엇을 하든, 멋지게 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허랑방탕하여... 허비하더니
 
그래서 아버지에게 '자신에게 상속될 재산을 미리 달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들이 재산을 나눠 달란다고 쉽게 내 줄 아버지가 어디 있습니까?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논쟁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돈을 받아 아버지를 떠나간 그 아들이 어떻게 살았습니까?
 
13절에 보세요.
  "허랑 방탕하여 그 재산을 다 허비하더니" (눅 15:13)
돈은 성실하고 정직하게 땀흘려 벌고 아끼고 잘 관리하고
필요에 따라 멋지게 쓸 수도 있어야 하는데… 둘째 아들은 허랑방탕했습니다.
 
허랑방탕(虛浪放蕩) 이란 말은 "[허랑]하고 [방탕]하다"라는 뜻입니다.
  - 허랑 = 말이나 행동이 허왕하고 착실치 못함
  - 방탕 = 술과 여자에 빠져 행실이 나쁨
이 말은  헬라어로는 [아소토스]인데
'무절제하게', '방종하게', '타락하여'…라는 뜻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부잣집 둘째는 자기 관리도 못하고, 돈 관리도 못하고,
아버지께 받은 돈을 다~ 써버렸습니다.
 
그래서 궁핍해졌습니다(14절).
궁핍해졌다는 말은 돈 떨어져 거지꼴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돈 떨어지니 돼지 기르는 일을 하게 했지만(15절)
돼지들이 먹는 쥐엄 열매조차도 먹을 수가 없어(16절)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17절)
 
부잣집 둘째 아들이 왜 이런 신세가 되었습니까?
얽매인 것이 싫어서…, 아들의 자리, 동생의 자리가 싫어서…
아무와도 얽매이지 않고,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혼자, 맘 편히… 살고 싶어서 떠났다가 그렇게 되었습니다.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두 가지의 큰 모순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하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속박되어 있다고, 묶여 있고, 자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공부하고자 다니는 학교도 속박이라 여겨 지겨워하고…
돈벌고자 다니는 직장도 속박이라 여겨 지겨워합니다.
혈연관계로 묶여 있는 가족도 속박이라 여겨 짐스러워하며…
잠시라도 벗어날 기회가 있으면 환호성을 올리며 좋아합니다.
 
그런가 하면, 사람은 항상 어디엔가 소속되어 있기를 원합니다.
묶여 있기를 원합니다.
한 예로, 직장을 그만두고 나오면 몇 일은 좋아합니다.
그러나 또 묶여 있을 직장을 찾습니다.
 
인간은 자유스러워 졌을 때 잠시 편안함을 느끼지만
동시에 불안함을 느끼는 모순된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완전한 자유>라는 것은
결국 <고독>이라는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습니다.
 
 
부잣집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곁을 떠났습니다. 아들의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런데 그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자기를 신경 써 주고 도와주는 사람 없는 절망감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지금 함께 살고 있는 식구들, 얽힌 가족관계…
그 속에 지금 처해 있는 자리가 맘에 드십니까? 만족하십니까?
지금 불려지는 이름이 맘에 드십니까? 만족하십니까?
남편/아내, 아버지/어머니, 아들/딸, 형제/자매, 며느리/사위…
그 자리, 그 역할이 맘에 드십니까?
 
사람들이 얽힌 관계마다 모두 좋게 여기고 모두 감사하며 사는 존재라면…
성경에 "부모를 공경하라, 부부간에 싸우지 말고 화목하게 살아라,
자녀를 바르게 잘 길러라, 형제간에 맘 상한 일 없이 살아라…" 등의 내용은
모두 불필요한 가르침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를 공경하며 사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서
부부간에 참고 견디며 화목하게 평생을 살아가는 것이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자녀를 낳아 바르게 잘 기르려면 밤낮으로 애써야하고
형제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려면
덮어주고 이해하고 손해보는 것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그런 모든 자리를 지키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성경 말씀으로 남기셔서 우리에게 잘 하라고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솔직히, 살다보면… 탕자처럼, 자기 것 챙겨 떠나고 싶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있습니다. 부모도, 부부도, 자식도…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어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 주변에는 사탄이 더 많습니다.
여러분이 화목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보다는 갈라지고 어렵고 망하는 것을 더 바랍니다.
부부싸움이라도 하면 "헤어져. 뭐하러 같이 살어."하면서
안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은 이웃도 아닙니다. 그런 말에 귀기울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부모도, 부부도, 자식도…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어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것이 하나님의 원하실까? 하나님이 기뻐하실까?"라는 것을
먼저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지금의 자리를 잘 지키기 원하십니다.
얽히고 설켜 사는 그 자리에서 빛 되고, 소금 되고,
화평케 하는 자(마5:9) 로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신앙의 자리도 지켜야 합니다.
 
우리는 가족이라는 얽힘의 자리도 지켜야 하지만
신앙생활하는 성도로서의 자리, 예배의 자리, 기도의 자리,
봉사하는 자리…도 잘~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탕자처럼 그런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어하고,
간혹 그만두고 싶어하기도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일까요? 하나님 마음에 드는 생각일까요?
 
요즘 신앙생활 하는 이들 중에는 등록하지 않고 교회에 출석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속박 당하는 것이 싫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중에 특별한 사정이 있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신앙적인 매임이 없어 편안할 지는 모르지만
영적으로는 허전함을 가지고 사는 불쌍한 사람입니다.
 
교회에 얽매여 있다는 것이 때로 짜증날 수도 있지만
그것을 통해 바른 영적인 성장을 하고
그 속에서 삶의 가치와 신앙생활의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우리가 각자 흩어져 신앙생활하고 편한 대로 살도록 원하셨다면
교회를 이 땅에 세우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모이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모여 예배드리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말씀을 배우고
사랑의 교제를 나누고, 섬기는 일에 힘을 모으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히10:25)  했습니다.
 
진정한 자유는 속박을 속성으로 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8:31)는 말씀이 있습니다.
진리에 얽매여 있는 것, 진리이신 예수님께 얽매여 있는 것에서
발견하는 자유가 참된 자유라는 뜻입니다.
 
어린아이들이 부모의 품에 얽혀 있고 연결되어 있을 때 참된 행복을 느낄 수 있듯이
신앙생활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얽매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조직에 얽혀 있어야 바르게 신앙생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 조직과 연결되어 있는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주일에 교회에서 안보이면 '왜 안 나왔느냐'고 연락하는
전도사, 지역장, 속장… 있는 것이 행복한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바르게 안 하면 설교를 통해, 교육을 통해, 상담/심방…등으로
책망하는 목회자가 있는 것을 감사하며 신앙생활하시기 바랍니다.
 
 
집을 나가기로 마음먹은 것이 문제
 
부잣집 둘째 아들의 문제는 집을 나가기로 마음먹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집안 일에 관심이 있었겠습니까?
부모에 대해서도 관심과 애정을 갖기보다는
투덜대고 불평만 늘어놓고 벗어날 궁리만 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집 밖의 이런 정보, 저런 정보 수집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돈 빼 갈 궁리만 했습니다.
 
신앙적으로도 '신앙생활 잘 하며 하나님 마음에 합하게 잘 하다가'
'나가야겠다'고 마음 먹기 시작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그때부터 일에 관심이 없습니다.
교회에서 일하던 사람들도 일에서 손을 놓기 시작하면 병든 징조입니다.
그리고 투덜거리기 시작합니다.
이런 저런 이유를 달아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합니다. 교회를 원망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외면한다면/원망한다면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말은 거짓말입니다.(엡1:23, 4:12, 15~16, 5:29~30)
어디에도, 어느 교회에도, 누구에게나 문제가 있습니다.
성숙한 크리스챤은 그 문제를 끌어안고
자기의 책임이라고 생각하고 눈물 뿌려 기도합니다.
그 문제에 책임감을 느끼며 괴로워합니다.
그런데 성숙하지 못한 사람은 다 남의 탓으로 돌립니다.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은 강아지가 볼 일을 보고 나면 얼른 치웁니다.
다른 사람이 볼 까봐, 밟을까봐 얼른 치웁니다. 왜냐하면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손님은 '어유 개똥이네'하고 자리를 피합니다.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기둥교회의 손님입니까, 주인입니까?
 
성숙하지 못한 그리스도인은 탕자가 아버지 집을 떠나려고 생각하면서부터
아버지의 재산을 빼 갈 마음을 먹고 아버지를 졸랐던 것처럼
하나님의 것을 빼 갈 생각을 합니다.
주일을 빼 가려고 합니다. 빼 먹습니다.
예배를 빼 가려고 합니다. 빼 먹습니다.
헌금을 빼 가려고 합니다. 빼 먹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줄이기 시작합니다. 십일조를 자기 뜻대로 쓰려고 합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품을 떠났던 탕자와 똑같은 징조입니다.
 
자기 뜻대로 하면 잘 될 것 같지만,
스스로 돌이키지 않으면… 있던 자리를 회복하지 않으면…
"…아버지여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눅15:18) 하며 회개하지 않으면…
'산아 내게 무너져라 언덕아 나를 가리워라'하며 탄식하는 날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물론 집나간 둘째를 기다리는 아버지는 돌아오기만 하면 아들을 맞아 주십니다.
물론 하나님을 떠난 불쌍한 영혼들을 하나님은 기다리십니다.
돌아오기만 하면 맞아 주십니다.
 
누가복음 15장 1~2절에 소개된 대로
예수님께서 당시에 미움 받던 세리들과 죄인들을 영접해 주시고
함께 음식을 먹는다는 비난에… 
예수님은  잃어버린 단 한 마리의 양이 얼마나 귀한 지
잃었다가 다시 얻은, 다시 돌아온 아들이 얼마나 귀한 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누가복음 15장은 이런 저런 과거를 묻지 않고 맞아 주시는
아버지를, 하나님을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한 생명을 귀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복음(福音)입니다. 은혜입니다.
들을 수 없는 소리를 은혜로 듣는 소리가 복음입니다.
받을 수 없는데, 받을 자격도 없는데 주는 것
그야 말로 "베풀어주는 혜택을 누리는 것"이 은혜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은 나갔다 들어와야 환영해 주시는 분이십니까?
아버지 속 썩이고 돌아와야…  있는 것 다 털어먹고 돌아와야…
복음을 듣고 은혜를 받는 것입니까?
 
예전에 제가 중학교, 고등학교 때 부흥회에 잘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의 부흥사들은 깡패였다가 회개하여 돌아오고
못된 짓 많이 했다가 돌아온 간증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순진한 저는 '일단 못되게 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
'깡패가 되었다가 회개해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간증을 쉽게 시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간증을 잘못 들으면 오해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흠 없고 순전한 것을 더 좋아하시는 분이십니다.
상처 내지 마십시오. 흠을 만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깨끗하고 바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일터에서
자랑할 만한 사람, 믿을 만한 사람, 본이 될 만한 삶이 되도록…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향내를 풍기며 사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부모가 보기에 든든한 자녀가 되어야 하고
자녀가 보기에 마음이 놓이는 부모가 되어야 하고
형제들이 보기에 믿어지는 형제가 되어야 합니다.
신앙생활 하면서도 목사가 보기에 마음이 놓이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어떤 분은 집사가 되어도, 권사, 장로가 되어도
신앙생활 5년 10년 했어도 불안하고 마음이 놓이지 않는 분이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천하보다 귀한 존재입니다. 누구도 버림받지 않았습니다.
예수 믿는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천국 백성, 영생이 보장된 자입니다.
다만 아버지를 등진 둘째 아들 탕자처럼
순간 순간 이런 저런 핑계로 하나님을 등지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등지면 지옥입니다.
하나님을 등지면 지옥에 갑니다.
 
어제 원종록권사님 회갑연에 참석해서 들은 얘기입니다.
<요즘 지옥이 수리 중이라고 합니다.
  한국 사람들 때문에 수리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한국 사람들이 지옥에 가면 처음에는 "뜨겁다며 벌벌 떨다가…
  거기서 자고, 먹고, 친구 사귀고…" 재밌게 잘 논다고 합니다.
왜 그런가 알아보니 한국에는 전국적으로 찜질방과 불가마가 많아서
그런 곳에 익숙하다 보니 지옥을 두려워하지 않는 답니다.
그래서 더 뜨겁게 만들려고 지옥을 수리한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그곳과 관계가 멀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곳과 상관이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있으려면, 가족과 함께 어울려 살려면…
신경 쓰이고 힘든 일이 많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렵고 신경쓰이는 일이 많아도 하나님과 함께 있어야 합니다.
참고 견디며 가족과 함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지 마십시오.
교회로부터 멀어지지 마십시오.
잠시 영화로운 것 같으나 패망의 길입니다.
가족들을 귀히 여기며 '지지고 볶고 사는 것'이 행복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힘들고 어려운 줄 압니다.
그러나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힘쓰라"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전15:58)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수고가, 여러분의 땀흘림이, 여러분이 상한 마음을 움켜 쥐고 사는 것이
헛되지 않은 줄을 믿으시고 범사에 승리하는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하나님을 등지고 사는 미련한 자가 되지 않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얽히고 설키게 만들어 가족들을 귀히 여기며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적을 두고 신앙생활하는 교회에서, 함께 신앙생활 하는 성도들
기쁨과 감사가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문제를 끌어 안고 기도하며
책임감을 느끼는 성도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04년  5월 23일 주일 낮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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