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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혼의 어두운 밤 (시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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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문기태 목사

(시 22:1)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시 22:2)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치 아니하오나 응답지 아니하시나이다
(시 22:3)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시 22:4) 우리 열조가 주께 의뢰하였고 의뢰하였으므로 저희를 건지셨나이다
(시 22:5) 저희가 주께 부르짖어 구원을 얻고 주께 의뢰하여 수치를 당치 아니하였나이다

모든 일이 잘 풀리고 행복한 상황이 펼쳐질 때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렇지만 언제나 모든 일이 우리의 뜻대로 되고 주변의 상황들이 좋을 수는 없습니다. 때로 질병에 사로잡힐 때도 있습니다. 때로 실패하거나 어려운 시험에 시달릴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가정의 위기가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 처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어 보지만 어떤 때는 기도도 잘 되지 않습니다. 억지로 기도해도 응답하시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내 위의 하늘은 회색빛으로 무거운 납덩이로 가로막혀 짓누르는 것만 같이 느껴집니다. 하나님이 몇 백만 광년 저 너머에 멀리 떨어져 계시고 숨어 계시며 침묵하고 계신 것처럼 느껴집니다. 예배를 드려도 받으시지 않을 것 같이 생각되고 예배도, 기도도, 교회 생활도 다 귀찮게 여겨집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멀게 느껴질 때, 영혼의 어두운 밤에 던져졌을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십니까? 변함없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까? 변함없이 하나님께 나아가 엎드려 기도할 수 있습니까? 고통스런 시련에 한 복판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까? 시험당할 때에도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하고 어려움속에서도 삶을 하나님께 내어드리며 변함없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을 수 있습니까? 아니면 자그마한 시험에도 쉽게 무릎을 꿇고 자포자기하며 하나님을 원망하며 기도생활, 예배생활, 말씀생활, 봉사생활을 모두 중단하고 세상으로 나가시겠습니까? 진실한 믿음은 이런 때 다시 말해 신앙의 위기를 만날 때 그 진가가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더 성숙시키고자 때로 멀어진 느낌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셨다고 또는 우리를 잊으셨다는 생각이 들게 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과 관계가 아주 멀어진 것 같은 시기를 '영혼의 어두운 밤'이라고 부릅니다.

다윗에게도 바로 그런 시기가 있었습니다. 시 10:1에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 다윗은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부르실 정도로 좋은 믿음을 가지고 가깝게 여기셨지만 그에게도 하나님이 아주 멀게 느껴진 순간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정작 필요한 순간에 숨어버린 것처럼 여겨지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본문에서도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라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다윗을 멀리 떠나셨던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버리지도 떠나지도 않았습니다. 여전히 다윗의 생애에 개입하시고 그를 향한 놀라운 섭리를 이루시고자 일하시고 계셨습니다. 단지 다윗의 느낌이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욥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습니다. (욥 23:8)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편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편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은혜가 충만하게 느껴지다가도 한순간에 모든 영적인 느낌이 사라지기도 합니다. 기도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기도가 천장에서 튕겨져 다시 땅으로 떨어지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마귀의 역사때문인가?하여 마귀를 꾸짖지만 아무런 변화도 없습니다. 죄때문인가?하여 생각나는 모든 죄를 자백하고 사람들에게도 용서를 구하고 다녀보지만 달라지지 않습니다. 금식을 하고 찬송을 부르고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총동원하여도 소용없습니다. 이런 영적 슬럼프가 도대체 얼마나 오래 갈것인가? 두렵습니다.

도대체 우리에게 무엇이 문제입니까?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아주 정상적으로 일어나는 성숙을 위한 과정의 일부일 뿐입니다. 누구나 신앙성장과정에서 한 두번은 이런 일을 만나게 됩니다. 욥은 그래서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하는 순간에도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확신했습니다. (욥 23:10)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하나님이 멀게 느껴질 때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단단히 화가 나셨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은 죄로 인해 벌을 받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물론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가 끊어지기도 합니다. 우리의 죄가 하나님을 근심시키고 그로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소원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멀게 느껴지는 감정이 항상 우리의 죄로 인해 오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감정에 의존하지 않도록 하시기 위해 때로 친밀한 느낌을 거두어 가시기도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한 눈에 보이는 증거가 없어도 그리고 우리의 감정이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느낄 수 없어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온전히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께 순종하고 최고의 예배를 드리는 모습을 하나님께서는 보고 싶어하십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어릴 때에는 하나님께서 많은 체험을 하게 하시고 우리의 감정에 더 분명한 느낌을 주시고 기도의 응답도 많이 허락해 주십니다. 그러나 믿음이 자라면서 오히려 이런 것들을 가져 가시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느낌이나 감정, 체험을 지나치게 의지하다보면 하나님을 신뢰하기 보다는 자기의 체험이나 감정을 더 신뢰하는 기형적인 신앙이 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감정이 기쁘지 않을 때도, 현실이 우리의 의도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힘들때도 하나님의 존재와 사랑을 의심치 않고 믿음을 앞세우며 하나님을 신뢰하고 순종하며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을 기대하십니다.

이처럼 우리가 믿음의 노정을 걷는중에 영혼의 어두운 밤을 만날 때 우리는 어떻게 영적 위기를 극복하고 믿음을 잃지 않으며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겠습니까?

1. 하나님께 솔직히 감정을 쏟아 놓아야 합니다. (1)

많은 사람들이 화가 나거나 섭섭할 때 그 감정을 숨깁니다. 누가 물으면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하고 대답하지만 사실은 전혀 괜찮지 않은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많은 경우에 사람들은 하나님께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면 큰 일 나는 줄로 압니다. 금기중의 금기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특히 시편을 보면 위대한 믿음의 선조들은 자신들의 부정적인 감정을 너무나 적나나하게 표현하였습니다. 의심, 분노, 염려, 근심, 슬픔, 두려움 등 자신이 안고 있는 괴로운 감정을 남김없이 다 쏟아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람들의 그런 의심, 분노, 염려 슬픔, 두려움, 미움 등의 모든 감정의 표현을 책망하지 않고 다 받아 주셨습니다.

본문에서 다윗도 하나님께 불평섞인 표현으로 시편22편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시 22:1)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시 22:2)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치 아니하오나 응답지 아니하시나이다
어찌보면 믿음이 하나도 없어보이는 다윗의 이러한 솔직한 기도와 고백을 통하여 우리는 다윗의 깊은 믿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 기도가 믿음으로 충만한 기도입니까? 아닙니까? 이 기도를 통해 다윗의 어떤 믿음을 찾아낼 수 있습니까?

첫째, 다윗은 자신의 느낌이나 감정, 주변 상황에 관계없이 하나님의 존재와 우주의 주인이심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괴로움을 다른 데로 가져가지 않고 사람들에게 떠벌이지 않고 하나님앞에 가지고 나와 토로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 좋아보이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이 아주 멀리 느껴질 때 아예 기도를 중단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날 때 오직 하나님께 문제를 들고 나아가 기도하기 보다는 기도는 하지 않고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자신의 괴로움을 호소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나아와 자신의 감정을 잇는 그대로 표현하였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둘째, 다윗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자신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다윗은 이미 충분한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그를 멀리하고 돕지 않으셨습니다.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쉬지않고 기도하였으나 응답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너무나 답답하고 안타까우며 괴로왔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기도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왜 응답하시지 않느냐?고 따져 묻는 기도를 쏟아내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다 듣고 계심을 믿고 있다는 증거요 반드시 응답하시리라는 믿음을 드러낸 것입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믿음입니까?

셋째, 다윗은 자기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해도 하나님은 여전히 자신을 사랑하시리라고 믿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비위를 맞추려고 눈치보며 감정을 숨기고 억누르는 것보다 오히려 솔직히 감정을 표현하여 도움을 청하는 것이 옳다고 확신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보다 친밀한 관계를 원한다면 우리는 감정을 솔직하게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서로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될 때 깊은 대화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참으로 많은 부부들이 자존심때문에 또는 두려움때문에 자기 감정을 숨깁니다. 그렇게 감정을 나누지 않고서는 절대 행복할 수 없습니다. 또 어떤 부부는 감정을 서툴게 포현합니다. 화난 감정, 섭섭한 감정의 표현이 지나치거나 서툴어서 상대방이 감정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관계가 깊어지기 어렵습니다. 숨기지 말고 대화로 솔직하게 슬프다, 화났다, 마음이 섭섭하다. 또는 기쁘다, 행복하다, 어떤 감정이라도 표현하고 그 이유까지도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그런 감정표현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상대방이 변함없이 사랑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하여도 사랑을 접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무례하다고 꾸짖지도 않으십니다. 오히려 "네가 나를 진정으로 신뢰하고 있구나! 내 사랑이 변함없으리라고 확신하고 있구나!" 하시며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기뻐하십니다. 여러분, 영혼의 어두운 밤에는 더욱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나아와 여러분이 느끼는대로 괴로우면 괴로운대로 즐거우면 즐거운대로 여러분의 감정을 솔직하게 하나님께 담대하게 표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3)

사람들은 상황이 어려우면 눈을 떼지 않고 그 상황만을 바라봅니다. 누군가 힘들게하고 괴롭게하면 그 사람만을 생각합니다. 그러다보면 불면증이 찾아옵니다. 식욕도 다 잃어 버립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속에도 쓴 물이 나오고 그때문에 더욱 괴롭습니다. 문제는 점점 더 악화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영혼이 어두운 밤에는 문제와 상황에서 눈을 떼고 눈을 들어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서 자유를 얻게 됩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모든 것으로부터 풀려나고 어둠속에서 빛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멀리 느껴지는 상황속에서 오히려 하나님을 떠올리며 하나님께 그의 시선을 집중시킵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조차 없으신 하나님이었지만 실망에 사로잡히지 않고 하나님이 누구인가를 다시 생각하며 하나님께 온 마음을 집중시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시 22:3)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레위기 19장 말씀을 기억하며 '주님은 거룩하십니다.'하고 하나님께 대한 그의 믿음을 고백합니다. 과거에 그가 양을 치며 들에서 찬양할 때 임재하셨던 하나님, 악신에 사로잡혀 괴로와하는 사울왕앞에서 수금을 타며 찬양할 때 임하셨던 하나님을 떠올리며 찬송중에 거하시는 하나님께 집중합니다.

하나님은 한결같은 분입니다. 우리가 처한 상황과 감정에 영향받지 않으시고 변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영혼의 어두운 밤에는 변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성품에 집중하여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믿음을 힘써 고백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대해 무엇이 떠오릅니까? 하나님은 참 좋으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가장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늘 함께 계십니다. 우리의 미래를 위해 멋진 계획을 세우시고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돌보시고 우리의 필요를 아시며 공급하기를 기뻐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에 대해 아는 바를 힘써 고백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찬양하십시오. 영혼의 어두운 밤에 하나님께 시선을 집중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찬양하다보면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을 감싸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두렵고 괴로운 밤이 속히 지나가고 기쁘고 평화로운 새 아침이 속히 찾아올 것입니다.

3.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을 기억해야 합니다. (4-5)

많은 사람들이 현실의 괴로움에 사로잡혀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행하신 위대한 일들을 다 잊어버리고 믿음을 포기한채 절망하고 있습니다. 실제 아무리 기도해도 하늘 문이 열리지 않을 것과 같은 답답함은 성도에게는 정말 견디기 힘든 괴로움입니다. 주님께 버림을 받았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은 그리스도인에게는 가장 큰 고통입니다. 신음소리가 계속됨에도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는다는 것이야말로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가장 비참하게 생각되는 시간입니다. 이런 때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영혼이 어두운 밤에는 할 수 있는 일이 또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이 과거에 우리를 위해 하신 일들을 애써 기억하는 것입니다. 질병에서 구원받은 경험이라든지, 기도가 응답되어 문제가 해결된 체험이라든지, 죄사함받고 구원받은 감격에 젖었던 기억도 좋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과거에 조상들을 건지셨던 사건들을 기억했습니다. 애굽에서 부르짖는 기도를 들으시고 모세를 보내어 구원하신 출애구 사건, 그리고 사사시대 이방의 압제아래서 부르짖는 이스라엘백성의 기도를 들으시고 사사를 보내어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시고 구원하신 사건 등을 떠 올립니다. 조상들이 하나님을 의뢰하였고 의뢰하였으므로 구원하셨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그도 하나님을 의뢰하는 믿음을 굳게 붙드는 것입니다. 이것은 절망속에서 신음하던 우리 선조들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지금 절망중에서 부르짖는 자신을 그대로 버려두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는 다윗의 믿음이 배어있는 기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절망속에서도 끝가지 포기하지 않는 다윗의 진실된 믿음이 여기에 잘 표현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무것도 하시지 않을 것 같이 느껴지는 순간에 우리는 성경 말씀을 떠 올리며 하나님께서 하신 위대한 일들을 바라보고 믿음을 붙잡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기까지 내어 주신 것만으로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충분히 확신할 수 잇지 않습니까? 우리는 안타깝게도 하나님께서 움직일 수 없는 증거로 십자가의 예수님을 보여주셨건만 너무나 쉽게 익숙해지고 엄청난 희생을 잊어버리고 살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모든 죄를 지시고 고통을 겪는 순간 하나님께서는 외면하시고 침묵하셨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오늘 읽은 말씀을 바로 십자가에서 외치셨습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 그리고 가장 외로운 순간 정말 하나님 아버지의 도움이 필요한 순간 예수님은 우리가 맛 본 외로움과 불안과 두려움의 만 배도 더 큰 고통을 몸소 당하시며 절규하셨습니다. 바로 우리의 죄와 형벌을 감당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바로 우리의 질고와 고독을 친히 맛보시고 도우시기 위해서입니다. 그 예수님도 하나님이 사흘만에 다시 부활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멀리 내쫓지 않으시고 건져주십니다. 영혼의 어두운 밤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구해주십니다. 하나님이 과거에 하신 위대한 일을 기억하고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라브리 공동체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에디 쉐이퍼라는 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두 죄수가 감옥의 창살을 통해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한 사람은 진흙을 보고 있었다. 그러나 또 한 사람은 별을 보고 있었다." 영혼의 어두운 밤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런 어둠의 순간에 진흙을 보다가 그 진흙의 수렁에 깊이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끝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영혼의 어두운 밤에도 별을 바라보고 소망중에 확신을 갖고 다시 일어서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가 고통스러운 순간에 믿음의 눈을 통해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도를 접지 않고 믿음을 고백하며 확신을 가지고 전진한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릅니다. 하나님게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 13:5) 하나님이 아주 멀리 계시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에도 느낌과 감정을 초월하여 함께 계시는 하나님을 확신하고 힘입으며 하나님께 더욱 인정받는 성도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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