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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님께서 쓰시는 사람 (행 8:2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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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영기 목사

그리스도인들은 두 가지의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는 예수 믿고 구원 받았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 예수님을 믿으라고 구원을 선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심은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럴 때 누구를 구원하시려 는 것이냐고 물으면 역시 둘입니다. 하나는 ‘나’, 그리고 또 하나는 ‘너’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믿고 나 구원 받았다.” 그것이 목적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너’를 구원하는 일에 참여해야 합니다.
‘호캔다이크’ 라는 사람이 ‘흩어진 교회’ 라는 책을 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은 모이는 교회였습니다. “나 구원 받았다.”는 겁니다. 그러나 교회는 흩어지는 교회이어야 합니다. ‘너 구원 받았다.’는 겁니다.

스테반이 순교 당했습니다. 그리고 예수 믿는 사람들이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흩어졌고, 흩어지는 그리스도인이 가는 곳곳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 하였습니다.
구원의 시작과 과정과 그 끝맺음을 누가 합니까?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오랫동안, 선교의 주체는 교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선교의 주체 즉 선교는 누가 하나가 새로운 질문이 되었고, 그 대답은 하나님 선교(미시오 데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겁니다.
사도행전은 ‘사도들의 행전’입니다. 그러나 그 바닥은 철저하게 성령의 역사입니다.

사도행전 16장 6-10절, 바울이 아시아에서 말씀 전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6절, “성령이 막으시므로”, 7절, 예수님의 영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마케도니아 사람이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간청하는 환상을 본 바울은 마케도냐로 건너가려고 하였습니다. 10절, “우리는 마케도니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이라고 확신하였기 때문입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성령께서”, “예수의 영이”, “하나님께서.” 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선교활동입니다.

사도행전 12장에, 헤롯에 의해 야고보가 죽었습니다. 베드로는 감옥에 갇혔다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24절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더 널리 퍼지고 믿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하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을 쓰십니다. 전도의 주체는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도구를 쓰시는데, 그 도구가 곧 사람입니다.

예루살렘 중심의 전도는 베드로가 합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하십니다. 이방전도는 바울이 합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하십니다. 그러고 보면 베드로와 성령, 바울과 성령이라는 도식이 성립됩니다. 그래서 전도는 내 노력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인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을 도구로 쓰십니다.

오늘 읽은 본문의 빌립를 봅니다.
그는 평신도 지도자입니다. 원래 이들을 세운 것은 봉사와 구제를 위해서입니다. 초대교회에서는 과부들을 구제하였는데, 그리스말을 하는 유대인들이 히브리말을 하는 유대인들에게 불평합니다. 자기네 과부들이 날마다 구호 음식을 나누어 받는 일에 소홀히 여김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일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세운 사람 7명 중 하나가 빌립입니다. 이들은 사도들이 기도와 말씀 전하는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봉사하고 구제하는 일을 도맡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래서 성도의 기본적인 일은 뭐냐 하면 전도입니다. 복음 전하는 것입니다. 봉사하고 구제하는 것도 해야합니다. 그러나 그 바탕은 복음전도이어야 합니다.

그런 빌립에게 주님의 사자가 “가사로 내려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가사는 예루살렘 남서쪽 80km 지중해 연안 도시입니다. 팔레스틴에서 애굽으로 가는 길에 중요한 곳입니다. 사막을 지나온 사람들이 많이 쉬던 곳입니다. 사사기 16장에서는 블레셋의 중요도시 5개 가운데 하나로서 언급됩니다. 삼손이 그 성문을 떼어가지고 온 그 가사입니다.
그 가사로 내려가는 길은 광야입니다. 사람이 잘 다니지 않고, 짐승조차 살지 않는 곳입니다. 작은 나무가 있고, 풀이 거의 없는 곳입니다.  거기서 만난 사람이 에디오피아의 내시입니다. 간다게는 에디오피아 여왕의 호칭입니다. 그 당시 여왕이 통치하였기 때문에 핵심 신하들은 모두 내시 즉 고자였습니다.

거기에서 빌립은 그를 만났습니다. 그 때 그 내시는 성경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사야서(53:7.8)였습니다. 내시는 그 성경에서 말하는 고난 받는 종에 대해 물었고, 빌립는 대답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내시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37절은 ‘없음’ 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시내산 사본, 마티칸 사본, 알렉산드리아 사본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베자 사본에는 “빌립이 말하였다. 그대가 마음을 다하여 믿으면, 세례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때에 내시가 대답하였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습니다.”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리고 38절에 세례 받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사람 모두를 살펴봅니다.
하나는 하나님께 쓰임 받는 빌립입니다.
1) 그는 영적인 사람입니다.(26절, 28절)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인 영적인 사람입니다.(26절. 29절. 39절)
사도행전 6장에, 평신도 지도자 뽑을 때 그 조건이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성령에 사로잡히지 않으면 자기 생각대로 일하기 때문입니다.

2) 적극적인 사람입니다.(30절. 38절. 40절)
주의 사자가 일러 준 곳은 사람이 아무도 없는 광야입니다.
전도하려면 사람 있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교회가 되려면 동네 안으로 가야지”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광야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없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빌립은 그리고 갑니다.
거기서 마침 마차 한 대를 만났습니다. 그는 돈 많은 사람입니다. 지위가 높은 사람입니다. 거기 비하면 빌립은 가난하고, 지위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마차를 세웠습니다. 누가 감히 고관의 행렬에 끼어든단 말입니까? 이럴 때 경호원들의 손에 잡혀 죽으면 그만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마차를 세웠습니다.
그것은 그가 광야에 왔는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왜 주의 사자가 광야로 가라 했을까? 복음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와보니 에디오피아 고관의 마차입니다. 그래서 담대하게 그 마차를 세웠습니다.
그는 복음의 값어치를 알았습니다. “복음은 어느 돈보다 값어치가 있다.” “복음은 어느 지위보다도 값어치가 있다.” 그것을 알았습니다.
복음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은 복음의 값어치를 아는 사람입니다. 이들이 복음 전하는 것입니다.

3) 빌립은 자기 분야에 전문가였습니다.(32절. 35절)
성경에 대해 무지 했다면? 내시의 물음에 제대로 답하지 못 했다면?
베드로전서 3장 15절, “다만 여러분의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고 거룩하게 대하십시오. 여러분이 가진 희망을 설명하여 주기를 바라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답변할 수 있게 준비해 두십시오.”
왜 여러분이 예수 믿는지 그 이유가 없다면 어디 가서 뭐라 하겠어요? 여러분의 직장에서 여러분에게 맡긴일 몰라서 못 한다면?

두 번째, 하나님께서 쓰시는 내시를 봅니다.

1) 그는 예배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입니다.(27)

그가 예루살렘에 다녀가는 것은 “예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신명기 23장 1절에 보면, 성기능 불구자나 고자들은 성회에 참석하지 못하게 되어 있고, 성전에 들어 올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내시는 기껏해야 성전문밖에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예배드리러 예루살렘에 갔습니다.
더욱이 그는 여왕 간다게의 재정을 담당한 고관입니다. 얼마나 바쁜 사람이겠습니까? 그것도 가까운 곳이 아닙니다. 일 하다가 잠시 와서 예배드릴 수 있는 곳도 아닙니다. 그런데 그는 그 먼 곳에서 바쁜 공무를 뒤로 하고 예배를 드릴 정도로 하나님을 소중히 여기며 하나님께 나아가는 일의 귀중함을 알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을 쓰신다.

2) 성경을 읽던 사람입니다.(28절)

당시 성경을 구한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모두 파피루스나 양피지에 손으로 쓴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것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행길, 그 피곤한 길에서도 그것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결국 그 말씀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을 쓰십니다.

3) 기쁨을 간직한 사람입니다.(39절)

구원의 확신을 얻고 세례 받은 후 “흔연히 길을 갔다.” “흔연히”라는 말을 표준새번역에는 “기쁨에 차서”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기분 좋게’, 'rejoicing', ‘아주 기쁘거나 반가운’ 그런 뜻입니다.
구원의 확신이 그를 기쁘게 했습니다. 그럴 수밖에. 성경 이사야 53장의 고난 받는 종이 과연 누굴까? 누구이기에 고난 받는다는 말인가? 그것도 자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 그런 궁금증이 풀린 겁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시구나 하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이 때의 기쁨.
신앙은 이런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기쁨이 있는 사람을 쓰십니다. 이들은 어떤 환경에서도 복음 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헌신하는 청년 여러분!
주님께서 쓰시는 사람들이 되십시오.
성령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영적인 사람이 되십시오.
성령께서 하라 하시면 자신 있게 그 일을 하려는 적극적인 사람이 되십시오.
내가 왜 예수 믿는지 분명한 사람이 되십시오.
예배를 소중히 여기십시오.
성경을 읽고 말씀으로 사십시오.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기쁨으로 사십시오.
그러면 주님께서 여러분을 더 크게 쓰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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