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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도장찍는 믿음, 감격하는 믿음 (대상 15:2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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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성완석 목사 (여수시민교회)

이에 다윗과 이스라엘 장로들과 천부장들이 가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즐거이 메고 오벧에돔의 집에서 올라왔는데 하나님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을 도우셨으므로 무리가 수송아지 일곱과 수양 일곱으로 제사를 드렸더라 다윗과 궤를 멘 레위 사람과 노래하는 자와 그 두목 그나냐와 모든 노래하는 자도 다 세마포 겉옷을 입었으며 다윗은 또 베 에봇을 입었고 이스라엘 무리는 크게 부르며 각과 나팔을 불며 제금을 치며 비파와 수금을 힘있게 타며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어 올렸더라 여호와의 언약궤가 다윗성으로 들어 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어다보다가 다윗왕의 춤추며 뛰노는 것을 보고 심중에 업신여겼더라    역대상 15장 25~29절말씀

  살아가다 보면 때로 "나는 혼자구나!"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것입니다. 아무도 내 마음을 몰라줄 것 같고, 내 마음을 털어놓을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것입니다. 힘겨운 인생살이 가운데에도 나는 혼자가 아니에요. 사랑하는 남편이 있고, 아내가 있고, 부모가 있고, 자식이 있고, 형제가 있고, 친구가 있습니다. 그리고 함께 기도하는 시민교회가 있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인사합시다. "하나님이 늘 당신과 함께 하십니다." "당신을 위해 기도하는 내가 있습니다." 주님과 함께 이기시기를 바랍니다. 어려운 시대 서로 서로 기도의 동역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제목이 "도장찍는 믿음, 감격하는 믿음" 이상한 제목이기는 한데 무슨 내용일까요? 그렇습니다. 믿음 생활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타성에 젖어들고, 의례적인 믿음에 머무르기가 쉽더라는 거예요. 매일 출근부에 도장찍듯이 주일이면 교회에 빠짐없이 나오는데, 그저 나오는 것으로 만족하는 믿음, "내가 주일을 지켰다! 내가 믿음 생활한다!" 이것으로 만족하고 마는 도장찍는 믿음에 머무르는 사람들이 적지 않더라는 거예요. 이 도장찍는 믿음도 귀한 것입니다. 이 믿음마저도 없는 사람들이 많아요. 주일이면 교회에 가야 된다는 믿음도 귀한 것입니다. 새벽기도회에 나가면 좋다는 것을 아는 믿음도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힘들게 해야 될 일, 바쁜 일 미뤄둔 채 교회에 나왔으면 은혜를 받아야지요. 말씀 속에 주님의 음성듣고, 세상이 줄 수 없는, 세상이 알 수도 없는 신령한 세계를 맛보고, 영적 세계를 체험하고 감격하는 믿음의 자리로 나아가야지요. 믿음의 알맹이를 맛보며 살아야지요. 그래야 힘겨운 인생살이 속에서도 다른 사람이 알 수 없는 기쁨과 보람을 체험하며 살지요. 이것 없으면 믿음의 알맹이를 놓친 채 껍데기 믿음 생활에 머무를 수 있더라는 거예요. 은혜 받지 못하면 늘 사람의 판단과 생각이 앞서게 됩니다. 이런 믿음으로는 평생 믿어도 하나님의 역사나 기적을 보지 못하더라는 거예요. 자기 예수 믿는 거예요. 이런 사람이 많은 교회에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기 어려워요. 은혜가 없어서가 아니에요. 하나님은 은혜주시고 역사를 허락하시려 하는데 사람의 생각이, 사람의 소리가 높아져서 그것을 막아버리는 거예요. 마치 막 타오르는 불길에 물을 끼얹어 불을 죽여 버리는 것과 같아요. 행여라도 내가 하나님의 역사에 거침돌이 되지 말아야합니다. 깊이 생각해 보면 목회는 목사의 목회가 아니에요. 장로님들을 비롯한 모든 직분자들, 목사의 목회를 협조하고 수종들지요. 그런데 넓게 보면 하나님의 목회에 목사가 해야 될 부분에서 수종들고, 장로님들이 해야 될 부분에서 수종들고, 권사님들이, 집사님들이, 교역자들이 각각 자기에게 맡겨진 부분에서 충성하는 것이더라는 거예요. 목사의 목회를 돕는 것은 하나님의 목회를 돕는 것이더라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때로 사람만 보입니다. 하나님이 안 보이더라는 거예요. 우리 생각 속에, 우리 말 속에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희미해 질 때가 있더라는 말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잘못하면 목사도 그럴 수 있더라는 거예요. 하나님 앞에서의 믿음의 자세! 이것 잃어버리지 말아야합니다. 다윗의 신앙이 왜 멋있는 신앙이냐? 왕이면서도 하나님 앞에서는 어린양이었고, 어린아이와 같은 감격하는 믿음 있었더라는 거예요. 지금 나의 위치가 어떠하든지, 나의 신앙의 경력이 어떠하든지, 내가 이런 믿음 갖지 못했다면, 은혜받고 이런 믿음 가져야 되겠고, 이런 믿음 가지고 있었지마는 잃어버렸다면 어디서부터인지 점검하고 회복해야 되겠다는 말입니다. 잃어버렸으면 되찾아야지요. 회복해야지요. 이런 믿음의 회복이 있어지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 사랑받을 길을 가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두손들어 복을 주실만한 가정되어지기를 축원합니다. 

  머리로 배워서 만들어진 교인이 있고, 은혜받고 믿음의 역사를 이루어 나가는 교인이 있어요. 배우는 것도 필요해요. 더 중요한 있다면 은혜받고 믿음의 사람 되야 합니다. 만들어진 교인의 자리에 머무르지 말아야합니다. 형식에 매인 사람되지 말아야합니다. 여기에 머물면 평생 믿으면서도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지 못해요. 같이합니다. "주여! 깨닫기를 원합니다. 주여! 달라지기를 원합니다. 내가 죄인입니다" 다른 사람 바라보지 마십시오. 문제는 나 자신입니다. 같이합니다. "주여! 낮아지게 하옵소서!" 이것이 은혜 받는 비결입니다. 이것이 내가 살고, 내 가정이 살고, 이 나라가 사는 비결이에요. 다른 사람 기도할 것 없습니다. 나를 위해 기도하세요. 다른 사람 볼 것 없습니다. 나를 보세요. 영적 원인 제거되면 육적 장애는 자연히 해결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리!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리까지는 가야 됩니다. 거기에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때는 몰라요. 내가 그 때를 채워야 합니다. 그 분량만큼 채워야 기적을 체험합니다. 끝까지 가야 되요. 기도의 분량을 채우고, 눈물의 분량을 채우고, 믿음의 분량을 채우십시오. 내 영적 문제가 해결되면 자동적으로 나의 당면한 문제는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믿음 생활은 전진하지 아니하면 그 날 부터는 후퇴예요. 믿음의 내용이 어떠하냐에 따라서 결과는 달라집니다. 은혜는 쏟아지는데 믿음이 없으면, 순종의 결단이 없으면 헛수고 예요. 우리에게 살아있는 믿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온전히 순종하는 믿음 주시려고 연단 하시는 거예요. 내 생각과 달라도 끝까지 좇아가십시오. 의심하지 아니하고, 중단하지 아니하고, 흔들리지 아니하고, 포기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가는 곳에 결국은 되는 역사가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큰 것 주시기를 원하셔요. 우리에게 큰일 맡기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믿음의 폭이 넓어지고, 스케일이 좀 커져야 합니다. 주님은 오늘도 의례적인 믿음이 아닌 감격하는 믿음의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역사에 방관자나 구경꾼은 가장 불행한 자입니다. 믿음준비, 기도준비, 생활준비 잘 하셔서 역사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빅터 프랑클이라는 심리학자가 독일 나치의 수용소에서 매일 죽음의 위기를 겪으면서도 그 속에 꿈을 잃지 않았어요. 내가 감옥에서 나간 후에 이 지옥같은 고통 속에서 어떻게 이겨냈는가를 지구촌 곳곳에 다니면서 강연을 할 것이다. 너무 고생스럽고 낙심되는 환경을 겪으면서도 이 고통과 낙심의 순간을 많은 사람들에게 그대로 전해 주어야지, 지옥같은 감옥에서의 생활을 강연하고, 간증하는 모습을 늘 꿈을 꾼 거예요. 그러면서 이긴 거예요. 그런데 실제로 그 꿈이 이루어집니다. 저도 훗날 이 터널을 통과하고 나면 간증거리와 이야기 거리가 많을 것 같아요. 환경이 어둡고 고통스러울수록, 살아가는 것이 절망스럽고 낙심될 수록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환상을 보고 바른 비전을 갖는 것입니다. ♬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 위로 받겠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 아멘! 지금 우리가 겪는 고통이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큰 것이라도 지난날을 웃으며 이야기 할 날이 올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는데도 내 삶이 안 풀릴 수 있어요. 열심히 살았는데 내 삶이 얽히고 잘못 될 수가 있더라는 거예요. 이런 때라도 주님 주시는 말씀 속에서 나에게 주시는 환상을 바라보시기를 축원합니다. 바른 믿음있고 사모하는 심령마다 주께서 바른 비전을, 꿈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바로 보기만 하면 인생의 방향이 바꾸어지고 내용이 달라집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 주시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잠시 환란을 겪고 원치 않는 질병이나 고난을 겪을 수 있어요. 그러나 하나님이 도우시는 사람의 앞날에는 축복의 열매가, 형통의 열매가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 되어지고, 열려지고, 풀려지고 강건한 축복의 역사가 나타날 줄로 믿습니다. 크신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이 도와 주실만한 축복의 사람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런 은혜가 오늘 복된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에게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25절 "여호와의 언약궤를 즐거이 메고" 26절 "하나님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을 도우셨으므로" 다윗 성에 성막을 지어 놓고 오벧에돔의 집에 있는 하나님의 법궤를 옮기는데 억지로나 부담이 아니라 즐거움으로 했다는 거예요. 그 속에 감격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즐겁게 순종하는 자를, 단 마음으로 일하고 즐거움으로 헌신하는 자에게 은혜 베푸시고 그런 사람을 도우신다는 거예요. 무엇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속에서 우러나고 하나님의 손길에 대한 감격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하나님의 집에 나오는 발걸음이 즐겁고, 말씀을 듣기만 해도 좋고, 말씀에 순종하는 일이, 하나님의 역사에 도구가 되는 일이 감격스러운 거예요. 이런 사람 주님의 마음에 꼭 드는 사람입니다. 주님을 시원케 하고 주님의 마음에 꼭 드는 복된 성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6절을 보면 "수송아지 일곱과 수양 일곱으로 제사를 드렸더라" 이 제사를 드린 것도 즐거운 마음으로 드렸을까요? 억지로 드렸을까요? 사무엘하 6장 13절이하에 보면 제사장들이 법궤를 메고 여섯 걸음을 행한 후에 법궤를 내려놓고 그 앞에서 수송아지 일곱과 수양 일곱을 가지고 즐거운 마음으로 제사를 드린 거예요. 왜 여섯 걸음을 간 후에 제사를 드렸느냐? 그 전에 소달구지에 실어 가지고 올 때 얼마 안 가서 소가 뛰므로 법궤가 떨어지려고 한 거예요. 그 때 당시 제사장이 아니고서는 벱궤를 만질 수 없게 되어 있었는데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가 법궤를 붙듭니다. 그 일로 웃사는 죽음을 당합니다. 본래 하나님의 법궤는 반드시 레위 사람인 제사장들이 메고 옮기게 되어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말씀에서 벗어나서 자기생각대로 한 일이 불행을 몰고 온 거예요. 이번에도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또 난리가 날 것 같아서 먼저 여섯 걸음을 가 본 거예요. 여섯 걸음을 가 보았으나 아무 탈이 없자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법이고 하나님의 뜻이구나 그래서 그 앞에서 즐거움으로 제사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즐겁게 하나님의 일을 하고 감격하는 믿음으로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 도와 주시지 아니할 수가 없을 거예요. 예수님께서 하신 비유가운데 큰 포도원을 가진 아버지가 맏아들에게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맏아들은 아주 시원스럽게 대답해 놓고는 안 갔어요. 말은 기가 막히게 잘 하는데 안 하는 거예요. 예수 잘 믿고 봉사 많이 하는 것 같은데 헌신이나 열매가 없더라는 거예요. 둘째 아들은 "아니오"라고 했어요. 생각해 보니 잘 못했다 싶어서 가서 일을 했다는 거예요. 둘째 아들도 잘 한 것은 아니에요. 같은 값이면 내 마음에 흡족하지 않은 부분이 있어도 "예"하고 순종할 수 있다면 그보다 축복된 것은 없어요. 그러나 나중에라도 깨닫고 순종한 것입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잘 순종하여서 나를 위해 예비하신 여호와 이레의 귀한 축복을 내 가정에, 자녀들에게 물려주는 복된 성도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주의 일을 하실 때 무엇을 하던지 즐거운 마음으로 하십시오. 예배를 드릴 때도 즐거운 마음으로 드리십시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은혜와 크신 축복으로 채워 주실 줄로 믿습니다. 

  어떤 경우라도 처지나 환경 때문에 낙심하지 마십시오. 내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리에만 있으면 나를 도우시고 나와 함께 하셔서 결국은 이기게 하실 것입니다. 위대한 설교가 스펄전 목사님이 말년에 여러 가지 병으로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어떤 성도 한 분이 목사님을 찾아와서 "목사님 많이 아프시죠?" 목사님이 대답하시기를 "네, 아파요 너무 너무 아파요. 그러나 이 고통보다 주님은 내게 더 가까이 계셔요 그것이 나의 위로랍니다" 아픈 건 아픈 거예요. 고난이 즐거울 수는 없어요. 아픈 건 아픈 것이고, 시련은 시련이고, 고난은 고난이에요. 그러나 주의 백성들이 고난 속에 있을 때 반드시 찾아오셔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 고통 보다 더 가까이 계신 주님,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만 나와 함께 하신다면 우리는 사망의 골짜기라도 무사히 통과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아니함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로다!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로다! 주의 음성을 들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듣는 대로 믿어지시기를 축원합니다. 믿음으로 이 어려운 시대를 이겨나가는 승리의 사람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가능성을 잃어버리면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산더미 같은 현실 앞에서 언제나 불가능의 감각만을 가지고 삽니다. "할 수 없다" "안 된다" 적극적인 사고 방식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이 모든 실패의 원인입니다. 안 된다는 생각은 불신앙이에요. 불신앙이 자리잡은 마음에서 능력있는 기도가 나올 수 없어요. 기도를 해도 합리적인 기도, 계산적인 기도밖에는 안 나오는 거예요. 이런 기도에 능력이 나타날 수 없고, 기적이 일어날 수가 없는 거예요. 주님의 능력은 변함이 없습니다. 문제는 나의 믿음이에요. 나를 살리시는 하나님! 도로찾게 하시는 하나님! 길을 열어 주시는 하나님! 내 생각에는 안 되는 일이지만 되게 하실 주님을 바라보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루어 주실 주님을 바라보시기를 축원합니다. "주여!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옵소서"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주의 음성을 들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법궤를 옮기는데 왕이 앞장을 서고 그 뒤에 레위인들이 따르고 제사장들이 법궤를 메고 그 뒤에 노래하는 자들이 함께 하고 이스라엘의 장로들과 천부장이 함께 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참여했습니다. 각기 자기 위치에서 하나님의 일에 하나 같이 힘을 합했다는 거예요. 이전에 못했던 일을 이제는 한 거예요. 운동 경기에는 구경꾼이 필요하고, 영화관에도 구경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주의 몸된 교회에는 구경꾼이 없어야 됩니다. 우리 모두가 다 은혜의 길, 축복의 대열에 이미 들어섰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구경꾼이나 방관자 없이 은혜의 자리에 들어가고, 역사의 주인공으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29절 "여호와의 언약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 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어다보다가 다윗 왕의 춤추며 뛰노는 것을 보고 심중에 업신여겼더라" 모든 백성들이 즐거워하고 다윗 왕이 앞에서 춤을 추며 기뻐하고 즐거워했는데 지금까지 집안에만 있던 다윗의 아내 미갈이 창으로 내려다보다가 다윗 왕이 춤추며 뛰노는 것을 보고는 왕이 채신머리없이 행동한다고 비난을 한 거예요.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는데 그 즐거움과 감격의 대열에 합류하지 못하고 함께 즐거워하지 못햇더라는 거예요. 그냥 구경만 하였어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그 마음에 춤을 추는 다윗을 향하여 업신여겼다는 것입니다. 다윗만 업신여긴 것이 아니에요. 함께 감격하고 찬양하는 사람들을 업신여긴 것이고, 이것을 기쁘게 여기시는 하나님을 업신여긴 거예요. 미갈의 마음이 자고해지니까, 하나님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낮아져서 마냥 감격해 하고, 행복해 하는 다윗의 깊은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거예요. 사람 앞에서의 지위와 체면, 이것이 무엇이길래 이것이 앞서서 하나님앞에 돌이킬 수 없는 얼룩을 남긴 거예요.

  다윗은 임금의 신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 앞에서 찬양하며 춤을 추었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마음 속에는 미갈이 알지 못하는 주님을 향한 열정이, 감격이, 뜨거움이 그 속에 있었던 거예요. 주의 일이라면, 은혜 받고 축복 받는 일이라면 무엇에든지 목숨거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미지근하게 믿는 신앙 평생을 믿어도 역사를 체험하지 못해요. 기도를 해도, 찬송을 해도, 봉사를 해도 그 속에 감격이 있고, 뜨거운 마음과 열정 있을 때, 기쁜 마음으로 행할 때 이전에 보지 못하던 큰 역사가 일어나고, 열매가 나타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런 열정과 믿음의 사람을 하나님이 귀하게 보시고 도우실 줄로 믿습니다. 이런 열정과 믿음이 여러분 속에 회복되는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기를 축원합니다. 지금 환경이 어떠할지라도 오늘 여러분이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나아가면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큰 권능이 나타날 줄로 믿습니다. 기적이 나타날 줄로 믿습니다. 우리에게는 보잘 것 없는 것이라도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고 나아갈 때 우리 앞에 놓인 홍해와 같은 문제나 장애물도 넉넉히 해결될 줄로 믿습니다. 아직 우리 교회는 큰 교회는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의 능력 받고 믿음으로 무장하면 이 지역을 변화시켜 나가며 이 나라 이민족을 위해서는 물론이거니와 세계적으로 주님이 높이 들어 쓰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 앞에도 반석에서 샘물 나는 역사가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증거가 나타날 줄로 믿습니다. 개인이든지, 교회든지, 우리 손에 든 믿음, 그 믿음이 제대로 된 믿음이라면 하나님이 쓰시되 크게, 능력있게 쓰실 줄로 믿습니다. 이런 믿음의 자리로 나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내가 지금 살아있다는 사실에 감격해 하고 감사해 본 일이 있습니까? 평소에는 이것을 잘 몰라요. 생사의 갈림길을 경험한 사람은 살아있다는 것이 정말 소중하고 감사한 일임을 깨닫게 됩니다. 환경이 어렵고, 얽히고, 막막합니까? 내게 아직 생명이 있다는 사실은 아직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가능성이 있어요. 얼마든지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달라질 수 있어요. 이룰 수 있습니다. 다시 되찾고, 회복할 수 있는 길이 하나님의 손에는 있어요. 그 길을 보시기를 축원합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 길로 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루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감사하세요. 내 힘으로 안 되는 것 억지로 몸부림치고, 아파하고, 속 상해 하지말고 주님께 맡겨 버리세요. 주님 보실 때 바른 일이라면, 주님 뜻에 합당한 목표라면, 주님이 그 길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과정도 간섭하시고, 내가 생각한 것 이상의 좋은 결말을 주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무거운 짐들 가지고 나왔습니다. 돌아 갈 때의 심령이 달라지시기를 바랍니다. 성령께서 우리 속에 기쁨과 감격을 주셔서 얼굴빛이 달라지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마음뿐만 아니에요. 주님 주시는 은혜와 감격이 여러분의 심령과 가정과 환경에도 나타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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