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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감림주일] 성령을 받았으니 (행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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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성찬 목사 (전주동부교회)

이에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줌을 금하리요 하고 (행 10:47)

"아빠, 성령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믿지요?" "어떻게 믿을 수 있는지 보여 주마." 전기 기사인 아버지는 열두 살 난 아들을 데리고 자기가 근무하는 발전소로 갔다. 그 곳에서 아버지는 아들에게 발전기를 보여 주고는 이렇게 말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사용하는 전기를 만들어내는 기계란다. 전기를 가지고 불도 밝히고 방을 따뜻하게 해주는 난로도 사용하는 걸 잘 알지? 그러나 전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단다. 그렇지만 이 기계랑 전깃줄에 항상 흐르고 있단다." "전기가 있다는 것은 믿을 수 있어요." "당연히 그래야지. 그러나 네가 전기를 보기 때문에 믿는 건 아니지? 전기가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전기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거지. 성령을 믿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란다. 사람들이 성령의 능력을 받아 예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위해 큰일을 할 때 그 곳에 바로 성령이 계시다는 것을 믿게 되는 거야."(전기와 성령-인터넷정보클럽)

예수님은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요 3:8)고 하셨습니다.

성령체험은 바로 구원에 이르는 중생체험입니다. 죄를 인식하고 고백하고 죄를 떠나게 만듭니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주를 알수 없고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고전 12:3)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 곧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변화된 모습을 보입니다.

존 뉴튼은 당시 지중해를 오가는 상선의 선장이었던 아버지를 통해 나이 열한 살부터 선원이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에는 경건한 신앙인이었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신앙적인 훈련을 받았지만, 일곱 살 되던 해에 어머니가 폐병으로 돌아가시고 난 후 선원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성격도 거칠어지고 삐뚤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자라면서 더욱 난폭한 성격으로 모든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특히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노예로 잡아오는 노예 선에서 일하게 되면서 그는 배 안에서 온갖 나쁜 짓만 골라서 하는 잔인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1748년 3월 1일 그는 배 안에서 토마스 아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란 책을 우연히 발견하고 그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책을 읽는 동안 그는 오랫동안 그의 영혼 속에서 깊이 잠자고 있던 어머니의 기도 소리와 찬송 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의 마음속에 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회개하게 된 것입니다. 그 후 그는 새로운 삶의 출발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삶의 정리하고 그가 대적했던 바로 그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사명을 받고 목사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그는 버킹검에서 16년간을, 올니 교회에서 27년간을 사역했습니다. 그런 중에 그가 회개한 지 29년 되는 1779년, 찬송가 4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을 작사하여 미국 민요 Amziging Grace곡에 붙여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 찬송가에서 그는 인생의 가장 밑바닥에서 방황하던 자신을 건져 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에 늘 감사하는 생활을 하게 된 그의 마음을 그대로 나타내어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중생의 표현이 믿음과 회개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이 같은 구원의 외적 표식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성원이 되었다는 표로서 세례를 베풀게 됩니다.


  성도는 슬픔도 기쁨도 함께 합니다.

폴란드의 조그마한 마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웬일인지 이 마을에는 독일군이 나타나지 않아 불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는 유대인 앞에 드디어 독일군이 나타났습니다. 일부는 마을로 들어가고, 나머지는 학교로 가 학생 중에 드문드문 섞여 있는 유대인 어린이를 끌어내려고 하였습니다. 코르쟈크란 이름을 가진 선생님은 자기 앞으로 몰려온 유대인 어린이를 두 팔로 꼭 끌어안아 주었습니다. 선생님은 아무 죄도 없는 아이들을 왜 잡아가느냐고 호통이라도 쳐보고 싶었지만 짐승만도 못한 그들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트럭 한 대가 학교 운동장 안으로 들어오자 아이들은 선생님의 팔에 더욱 매달렸습니다. "무서워할 것 없단다.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다면 마음이 좀 편해질 거야." 독일군은 코르쟈크 선생님 곁에서 유태인 아이들을 떼어놓으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코르쟈크 선생님은 군인을 막아서며 "가만 두시오. 나도 함께 가겠소." 라고 말했습니다. "자, 우리 함께 가자. 선생님이 함께 가면 무섭지 않지?" "네, 선생님, 하나도 무섭지 않아요." 코르쟈크 선생님은 아이들을 따라 트럭에 올라탔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본 독일군이 선생님을 끌어내리려고 하자, "어떻게 내가 가르치던 사랑하는 이 어린이들만 죽음으로 보낼 수 있단 말이오." 하고 함께 수용소로 끌려가 마침내 트레뮬렌카의 가스실 앞에 도착했습니다. 선생님은 아이들의 손을 꼭 잡고 앞장서서 가스실로 들어갔습니다. 자신은 유대인이 아닌데도 사랑하는 제자들의 두려움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고 함께 목숨을 버린 것입니다. 히틀러에게 학살을 당한 동포들을 기념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세운 기념관 뜰에는 겁에 질려 떨고 있는 사랑하는 제자들을 두 팔로 꼭 껴안고 있는 코르쟈크 선생님의 동상이 세워졌습니다.  교회의 본질은 성도의 교제에 있습니다.

성령 받은 성도는 좋은 일도 힘든 일도 함께 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 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눅24:48-49)고 하셨습니다.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행1:4)고 하셨습니다.

이 약속을 믿고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에서 120성도들이 열심히 기도하면서 기다리던 중에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들리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모습이 보이며 성령의 충만을 받고 방언도 했습니다. (행2:1-4) 그리고 담대하게 외칩니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행 2:33)고 증언하며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 (행 5:42)고 합니다.

주님과 그분의 나라를 위해 충성하며 주님 위주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성령 충만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되면 이전에 육신을 좇아가던 삶이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삶으로 변화가 됩니다. 성령을 위해 심는다는 것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순종하고 성령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삶은 결국 영생을 거두는 축복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넓은 길로 가는 사람들은 육체를 위해 심고 썩어진 것을 거두지만 좁은 길로 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을 위해 심고 영생을 거두는 영광을 얻게 될 것입니다.

성령을 좇아가는 삶 바로 이것이 성령 충만한 삶인 것입니다.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을 좇아가는 삶 속에 성령의 아름다운 열매를 많이 맺어야 합니다.

성령의 열매가 있는 사람은 확실히 다릅니다.

그의 삶에는 용서가 있습니다. 사랑이 넘쳐 납니다. 자비로운 마음이 있습니다. 인내하며 견디는 신앙의 삶을 살아갑니다. 평안이 넘칩니다. 온유합니다. 성결하며 진실합니다. 거룩한 생활이 그의 생활 모습 속에 나타납니다. 영혼을 사랑하여 전도하는 뜨거운 마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바로 이런 사람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입니다. 삶 속에 성령의 열매가 풍성하도록 날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성령님이 계시고, 성령님이 인도하시며, 성령님이 역사하시는 삶을 살 때 복된 은총도 함께 합니다.

  이 준 전 국방 장관이 지난 중부교회 군 선교 연합회 전주 성회 시 간증을 하셨는데 사단장을 나갈 때 네 번째 발탁되어 나갔는데 일반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사단장 때 땅굴 발견하는 일로 새벽 기도를 하게 되고 장로로 임직 받으면서도 마음이 무거웠는데 김 삼환 목사님이 축사하시며 수지맞았다고 하시는 말씀을 듣는 순간 모든 마음에 평안을 누리게 되었는데 2년 제대를 바라보는 자리에 있었는데 사령관 자리가 비게 되자 군 서열상 같은 계급이 26명인데 19번째였는데 18명 모두가 사령관으로 나갈 수 없는 사유가 있어서 군대에서 임시직에 대한 해석을 다시하고 사령관에 나가게 되었다고 간증하시며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요 15:16) 하신 말씀 따라 성령의 열매 맺기를 원하며 신앙생활을 하신다는 고백을 듣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고넬료는 이달리아 대에서 100명의 군사를 책임 맡은 로마의 관원인 백부장이었습니다. 백부장 고넬료는 오순절 이후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된 소식을 들은 첫 이방인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고넬료는 경건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였습니다. 오후 3시가 되면 고넬료는 기도했고 그 기도 시간에 환상을 보았습니다.

고넬료의 경건은 그의 기도와 가난한 자들에 대한 관대한 구제로 증명이 되었습니다.

천사는 그에게 피장이 시몬의 집에 머무는 시몬이라는 베드로에게 사람을 보내도록 지시하고 떠나자, 세 명의 경건한 종을 불러 일어난 모든 일을 말하고 욥바로 보냈습니다.

베드로는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온갖 짐승과 파충류와 조류를 담은 그릇을 내려 보내시는 환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이 짐승들을 먹으라고 명하셨을 때, 그의 대답은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였습니다. 왜냐하면 베드로는 율법을 통하여 부정한 짐승을 먹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이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환상은 세 번이나 반복되었습니다. 이는 이 환상이 주는 확실성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베드로가 하나님의 뜻을 몰라 고민하던 중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인도로 세 사람의 사자가 그를 찾아왔습니다. 성령께서 이 세 사람의 도착에 대해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고넬료가 보낸 자들은 고넬료에 대해서 소개를 하고 베드로에게 아기들이 온 목적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그 사람들을 맞아들여 유숙하게 했습니다. 그는 환상의 의미에 대해서 분명하게 알 수가 있었습니다.

이튿날 그들은 가이사랴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베드로는 지혜롭게 욥바 출신의 다른 신자들과 동행했습니다. 이 일행이 가이사랴에 도착했습니다. 가이사랴에는 고넬료가 그의 일가와 친구들을 불러 모아놓고 베드로의 말을 들을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들어오자, 고넬료는 그를 하나님의 사자로 여겨 극진한 공손을 표했습니다. 들어가서 베드로와 고넬료는 서로 멀리 떨어져 있던 자기들이 동시에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만나게 된 경위를 피차 설명했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외모로 취하시지 않으시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를 행하는 사람을 받으시는 분임을 깨닫고 고백합니다. 베드로의 이 고백은 혁신적이었으며, 유대인의 편견과 사상을 깨끗이 쓸어 버렸습니다. 여기서 베드로는 하나님의 계획이 교회를 통하여 세계로 퍼져 나가고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베드로는 만유의 주 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평화의 복음을 전하신 내력을 이야기했습니다. 요한의 세례로 시작하여 갈릴리로부터 유다와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에서의 복음 전파 그리고 십자가에 죽으심, 부활, 그리고 지상 명령에 이르기까지 주 예수의 사역을 말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를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그 주님은 부활하셨고, 자신들은 바로 부활의 증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역이 구원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구원의 핵심은 믿음, 즉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임을 말했습니다. 베드로의 메시지는 예수에 대한 그의 메시지를 듣고 있는 모든 사람들 위에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유대인 신자들과 동일하게 이방인들이 성령을 받고 방언을 하는 이 증거를 보고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은 놀랐습니다. 그것은 확실한 표적이 되고도 남았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그들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령을 받았고 방언을 말함으로 물세례를 주고, 그들과 여러 날을 머물렀습니다.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서 이방인의 구원을 확증하셨습니다.

율법적인 사람들은 안 된다는 조항을 많이 말하며 담을 쌓습니다. 그러나 복음적인 사람은 모든 것을 자기의 책임으로 돌리며 담을 허뭅니다. 그리고 하나 되는 역사를 이룹니다.

초대교회는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행 2:41)고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행 4:4)으며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행 4:31)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행 4:32)이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행 4:34)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행 4:35)주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성령을 받았으니 인위적인 장벽을 헐고 함께 하며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모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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