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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강권하는 믿음 (눅 14: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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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임경택 목사 (종로교회)

이제 태신자 초청 주일이 한주일 남았습니다. 여러분들의 신자들을 초청할 준비가 되셨는지요? 하나님은 여러분의 태신자를 결코 버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분명히 하나님께로 나오게 되실 줄 믿습니다. 전도가 그리 쉬운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함께 하시면 언제나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1. 전도는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며 신앙을 성장케 합니다.

훌륭한 신학자요 목회자였던 영국의 존 스토트(John Stott) 목사는 「전도하지 않는 죄」라는 책에서 “죽어 가는 이웃에게 복음을 말해주지 않는 침묵은 죄에 해당된다”고 지적했습니다.
반 하우스(Van Haus)라는 신학자는 오늘날 의 기독교인을 자폐증에 걸렸다고 말합니다.
자폐증이 있는 사람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자폐증상은 문자 그대로 스스로 문을 닫습니다. 자신을 표현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인이 자폐증에 걸렸다는 말은 자신이 믿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원자이며, 나의 소망이라는 사실을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은 자폐증을 앓고 있지 않습니까?

2. 전도를 중단하지 마십시오.

때로 복음을 증거하다 보면, 종종 핑계를 대거나 거부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심지어 욕을 퍼붓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럴 때 기분이 어떻습니까? “당신 위해서 예수 믿으라는 것이지, 나를 위해서 믿으라고 하는 줄 아십니까? 왜! 괜히 욕하고 있는 것입니까? 안 믿으면 당신만 손해입니다. 맘대로 하시요!”하며 전도를 안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중단해서는 안됩니다.
본문의 종들도 잔치에 초청을 하고 오라는데 다 온다고 해 놓고 모두 다 약속한 듯이 못가겠다고 말할 때 당장 그만 두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인은 뭐라고 하십니까? 나가서 강제로라도 사람들을 데리고 잔치 자리를 가득 채우라고 말합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강권하여 내 집을 채우라!”
복음 증거하는 것이 어렵다고 주춤거리면 더욱 힘들어 집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포기해야 할까요? 아니지요. 담대히 전해야 합니다. 모든 전도왕들의 간증을 들어보면 공통적인 것이 무언고 하면 담대하다는 것입니다. 끈질기다는 것입니다. 지속적입니다.
사단의 세력은 우리가 조금만 틈을 보여도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와서 복음 증거를 막으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더 당당해져야 합니다.
전도를 하다 보면 열매가 되지 않을 때 낙심하기 쉽습니다.

갈 6:9“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 어떤 나이 많은 전도사님이 기독교 서점에서 많은 전도지를 주문했습니다. 그러면서 점원에게 힘없이 말했습니다. 이것이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이제 너무 늙어서 전도지를 들고 다니며 전도를 할 만큼 기력도 없습니다.
그동안 수도 없이 많은 전도지를 나누어 주었는데 아직까지 내가 준 전도지를 보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는 사람을 한사람도 못 만났어요. 혹이나 그동안 헛수고만 한 것은 아닌지 . . . 그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그때, 서점의 한쪽에서 책을 고르고 있던 어떤 젊은이가 다가왔습니다.
그리고는 나이 많은 전도사님을 유심히 보더니 반갑게 아는 척을 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 . . . 할아버지께서는 저를 잘 모르시겠지만 저는 할아버지을 잘 압니다. 10년전 1월 18일 오후 6시 30분쯤 할아버지께서 안산역 앞에서 저에게 전도지를 주셨지요. 전 그때 일자리를 잃고 방황하던 중에 그 전도지를 읽고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고향에 내려가게 되었고, 제 가족들도 모두 저 때문에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제 동생은 선교사가 되어 인도에 가 있습니다. 저는 방금 할아버지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할아버지를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저를 이곳으로 보내신 것은 아마 할아버지께서 나눠 준 전도지 중에 한 장을 어떻게 축복하셨는가를 알려 주시려고 보내주신 것 같아요. . . .”

전도는 쉽게 될 때도 있고, 어렵게 될 때도 있습니다. 더구나 핍박이 심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힘들게 한 전도에서 오히려 큰 보람을 느낄 때도 많습니다.

* 일본에서 전도를 잘 하는 사람이 큰 회사 사장을 전도하려고 찾아갔습니다. 처음에는 그를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로 찾아갔을 때부터는 만나주지도 않고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기에서 포기하지 않고 사랑의 말과 성경구절을 엽서에다 써서 보냈습니다. 이렇게 하기를 아흔 아홉번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장으로부터 아무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100번째의 엽서를 보내고 끝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100번째의 엽서를 보낼 즈음 그 회사의 사정이 매우 어려워졌습니다. 사장은 마음이 무겁고 답답하여 서랍을 이곳 저곳 뒤적거리다가 마침 이 분이 그동안 보내주었던 엽서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귀찮아서 그동안 한번도 읽어보지 않고 서랍에 그대로 집어넣어 두었던 엽서들이었습니다. 그 사장은 그 중에 한 장의 엽서를 꺼내들고 읽어보았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11:28)

그런데 이 말씀을 읽는 순간 눈물이 쏟아지면서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동안 보지 않았던 엽서를 몽땅 꺼내 읽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 전도자를 회사로 청해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교회당까지 지어 전 직원이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했다고 합니다.

전도는 힘들더라도 해야 합니다. 전도하지 않는 것은 그냥 단순하게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전하지 않으면 사단의 세력에 굴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도하지 않는 사람들을 사단은 우습게 여깁니다. 전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자녀인 나를 사단이 가지고 놉니다. 그래서 되겠습니까? 안되지요. 사단의 장난감이 됩니다. 우리의 영혼을 죽입니다.
개 한 마리가 창고에서 쥐 한 마리를 잡을 때를 보면 한번 세게 물어서 빌빌거리게 만들어 놓고 이리저리 뛰면서 즐거워합니다. 다 죽은 쥐 시체를 가지고 컹컹 짖어가면서 계속가지고 놉니다. 사단도 전도하지 않는 사람을 그렇게 가지고 노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전도함으로 살아남는 것입니다.

* 옛날 소돔성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기 직전까지, 심지어 유황불이 떨어져 성이 망하는 그 날 아침까지, 성문에 서서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외친 한 노인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고 있는 그 노인에게 누군가가 찾아와서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아무리 할아버지께서 외쳐도 사람들은 전혀 변화되지 않는데, 왜 쓸데없이 날마다 외치고 계신가요?” 그 말을 들은 노인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그들이 나를 변질시키지 못하도록 계속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나 자신이 죄악에 물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복음을 증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외치고 있는 이상, 나는 소돔 사람이 되지 않는다. 내가 복음을 전하고 있는 이상, 세상 사람들은 변화를 받지 않을지라도 적어도 나는 결코 그들을 닮아 가지 않는다.”
‘공격이 최상의 방어’라는 말처럼 신앙이 메마르고 열심히 없는 성도라도 불신자를 찾아다니며 입으로 증거하다 보면 거절도 받게 되고 거절에 대한 반작용으로 자신의 신앙에 열심히 생기고 신앙이 성숙하게 되는 것입니다.
배우는 사람보다 가르치는 사람이 은혜를 받는 경우가 많듯이 불신자에게 복음을 증거하다 보면 여러 가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고 자신의 신앙생활에도 충실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도를 외면하고 ‘나홀로 신앙’을 고집하는 것은 마치 난로에서 떨어져 나온 숫덩이 처럼 곧 식어지기 쉬운 법입니다.
연장은 사용될 때 녹슬지 않습니다. 우리 신앙도 그렇습니다.

3. 주님께서 준비하신 자들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준비하여 많은 사람들을 초청하였습니다. 주인은 종들을 시켜 손님들을 초청하였습니다.
초청받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오지 아니함으로 화가 난 주인은 종들에게 이르기를 가난한 자들이나 각종 신체장애자들이나 누구나 할 것 없이 다 데려오라고 명했습니다. 그들이 초대되어 자리를 채웠습니다. 그래도 자리가 다 차지 않았습니다. 주인은 다시 종들에게 길과 산울가로 가서 사람들을 만나는 대로 강권하여 데려다가 잔치 집을 채우라고 명했습니다.

주님이 초대하는 대도 거절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때는 아직 먹을 것이 있을 때입니다. 사람들은 조금 먹을 만하면 배부른 소리를 잘합니다. 그러다가 삶이 힘들어지고 환경이 어려워지면 속으로 하나님을 찾습니다.
하나님이 재앙을 한번 내리시면 다들 죽겠다고 소리를 지릅니다. 그러다가 또 햇빛이 반짝하면 하나님을 모른 척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강한 존재처럼 보여도 심히 약한 존재들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가난한 집은 전도가 잘 됩니다. 요즘 부자집은 들어가는 문부터 굳게 잠겨져 있습니다. 들어가는 문들이 복잡합니다. 그러나 가난한 집은 항상 문이 열려있습니다.
아이들도 집밖에 나와 놀고 있기 때문에 전도하기가 더 좋습니다.
선교지도 마찬가지입니다. 후진국으로 갈수록 전도를 잘 받습니다.
부자들이나 지식인들은 자존심 때문에 강권하면 싫어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러나 가난한자, 힘 약한자들은 잘 따라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난한자들에게는 아직 전도의 문이 열린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전도의 문도 닫힐 때가 있습니다. 언제나 열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평소에 늘 열려있던 노아의 방주 문도 때가 되자 닫혔습니다.
만사에 때가 있습니다. 전도할 수 있을 때가 있고 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지금 전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4. 강권해야 할 때

주님이 “강권하라”고 말씀하신 것에서 우리가 배울 것이 있습니다.
“강권하다”라는 뜻은 “내키지 아니한 것을 억지로 권하여 하게하다”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모든 일을 스스로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인간은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어떤 법이나 부모님이나 선생님, 규율 같은 것에 끌려서 억지로라도 하게 되면 성공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본문을 보니까 강권에도 때가 있습니다. 처음부터 강권하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점잖케 초청했습니다. 다 오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그런데 당일 아침이 되어서야 안오겠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약속을 이렇게 어길 수가 있습니까?
주인은 나중에는 강권하여 데려다가라도 내집을 채우라고 지시합니다.
왜 사람들을 강권해서라도 데려와야 합니까?

오늘 이 시대가 악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마11:17)라고 하셨습니다. 시대가 악해서 사람들의 마음에 감각이 사라지고 의욕이 상실된 세상입니다.
자기가 죽어가는 데도 모릅니다. 술에 취해 마약에 취해 짐승처럼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을 강권해서라도 주님께 데려 오라는 것입니다. 이것만이 구원할 수 있는 길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제가 알아서 할 것입니다.’ 이런 말을 잘 합니다. 그러나 자기가 알아서 뭘 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눅5:19절 이하를 보면 네 사람이 중풍병자 한 사람을 들것에 실고 주님을 찾아간 이야기가 나옵니다. 네 사람이 중풍병자를 들것에 매고 주님을 찾아 갑니다. 중풍병자가 부탁해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닙니다.
네 친구가 중풍병자를 강제로 들것에 싣고 간 것입니다.
세상의 나쁜 습관에서 스스로 돌아서는 것은 어렵기 때문입니다.
평생을 자기 방식대로, 자기 습관대로 사는 사람이 갑자기, 스스로, 하나님 방식대로 사는 것이 쉬운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누군가 옆에서 강권해 줄 때 가능합니다.

어떤 성도는 ‘강권’을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왜 그렇게 끈질기게 나를 괴롭힙니까?’라는 소리를 들을까봐 두려워서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전도하다 보면 ‘지긋지긋하다’는 말, ‘찰거머리’ 같다는 말 등을 듣게 됩니다.
그러나 여기에 앉아 계신 여러분들은 어떻게 교회에 나왔습니까? 대부분의 성도들은 누군가의 강권에 의해 전도를 받고 이 자리에 앉아 계신 분들일 것입니다. 부모님이나 남편이나 아내. . . 전도자나 선생님 . . . 스스로 나온 성도들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만약에 있다면 그런 사람들은 좀 특종(?)일 것입니다.

강권함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 세상이 자유로운 세상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스스로 자기의 길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됩니까? 요즘은 더합니다. 결혼을 해도 부모님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살아가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얼마나 많아졌는지 모릅니다.
대학입시 공부를 할 때에도 부모등에 떠밀려합니다. 선생님의 등에 떠밀려. . .
지난 번 대구 지하철 방화 사건으로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당하였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아들과 병든 어머니가 살아난 이야기가 있습니다.

25세의 아들(이동석)이 뇌수술을 받은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을 가기 위해 전철을 탔다가 변을 당하였습니다. 수동으로 전철문을 열고 어머니의 손을 잡고 가다가 사람들에 밀려 그만 어머니의 손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에 휩쓸려 밖으로 나갔는데 어머니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아들은 다시 지하도로 내려가 어머니를 찾아 모시고 나오는데 어머니는 연기에 질식되어 걸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너나 가거라. 나는 도저히 갈 수가 없다. 너라도 살아야 한다.󰡓 어머니는 간신히 말을 이었습니다. 아들이 그런 어머니를 부축하여 나오면서 말을 하였습니다. 󰡒안돼요. 어머니, 같이 살아야 되요. 조금만 힘을 내세요.󰡓 이렇게 어머니를 강권하여 결국 모자가 죽음에서 살아남게 되었습니다.
인터뷰에서 어머니가 말합니다. 󰡒아들이 강권하지 않았다면 자기는 죽었을 것󰡓이라고. . . 말합니다. 아들의 강권이 어머니를 살린것입니다. 강권이 필요합니다. 강권, 강권. . .

5. 순종하는 종들이 되라

기적은 순종으로 말미암습니다. 성경의 기적의 사건 배후에는 하나같이 순종이 있었습니다.
물로포도주를 만드신 사건에도, 오병이어(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 문둥병자 나아만이 고침받은 사건등. . .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영국의 스펄전 목사님은 “믿음과 순종은 동행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스탠퍼드 대학의 J.페퍼와 R.I.서튼 교수의 저서 「왜 지식경영이 실패하는가」라는 책에서 똑똑한 사람들이 실패하는 이유는 지식과 행동이 연결되지 않아서라고 말합니다.
지식을 지식으로서만 끝나게 한다면 그 사람은 실패하는 것입니다.
비록 똑똑하지 않다고 하여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 자기가 아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성공하게 됩니다.
본문에 잔치 주인은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고 말씀하십니다.
주인의 명령을 완수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순종입니다. 종들은 주인의 명령대로 순종하여 빈 자리를 다 채웠을 것입니다.

전남 순천시의회 한 의원이 국내 기독교(개신교)계에서 최단기간 최다 전도자로, 진돗개 전도법으로 유명한 박병선 집사는 1년동안 무려 7백50명을 순동교회에 전도해 집사로 임명되었습니다. 그리고 순천 기독교연합회로 부터 “제1호 전도왕” 공로패를 받았다고 . . .
교회에 아내를 따라 처음 나왔는데 교회가 500-600석 정도 되는데 2/3 정도가 다 비었더라는 것입니다. 박집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제가 이 교회의 빈자리를 다 채우겠습니다.”
그리고는 목사님께도 그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나니 너무나 막막했습니다.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 때부터 닥치는 대로 전도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순종하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그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1년 750명
그는 전도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하나님 전도는 제가 하겠으니 시의원 선거는 하나님이 해 주십시요’하고 기도를 하였는데 박집사는 지방선거에서 순천 왕조동에서 7천772표 가운데 4천840표를 얻어 전국 최다득표 기록을 얻게 되었습니다.
순종에는 이런 놀라운 기적적인 축복까지 따르게 된 것입니다.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서는 몇가지 전략이 필요합니다.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전도하려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끊임없이 관심을 가진다면 그 영혼이 구원 받지 못한 채 남겨지는 것을 견딜 수 없다. 그런 마음으로 전도에 나서면 중도 포기란 있을 수 없고 실패도 없다. 수없이 퇴짜를 맞아도 또 시도하게 되는 것이다.

2) 자신이 하려고 말라
“저는 내성적이라…” “성경을 잘 몰라서…” “교회 다닌지 얼마 안돼서…” 등 변명은 모두 ‘전도를 자신이 한다는 오해’에서 비롯 된 것입니다.
우리는 전도의 도구요, 그 과정은 100%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순종하기만 하면 됩니다.

3) 보고 또 보고
전도에 있어 자주 대면하는 것 만한 지름길은 없습니다.
‘전도왕’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모두 끈질기다는 것입니다.
출근시간마다 집앞에서 기다리다가 마주칠 때마다 “기도하고 있습니다”고 말했다는 ‘고구마 전도왕’ 김기동 집사, 다른 의사보다 회진을 몇 배 더 많이 돌면서까지 환자들을 자주 보고 복음을 전한 ‘의사 전도왕’ 이병욱 교수 . . 얼굴을 익힐수록 마음의 벽은 쉽게 허물어집니다.

4) 칭찬으로 시작하라
“한결 젊어보이십니다.” “이 식당 물맛이 끝내줍니다.” 등 칭찬으로 대화를 열어야 합니다. “칭찬은 젓가락이 쉽게 들어갈 수 있도록 마음 문을 말랑말랑하게 만든다”(김기동)
전도는 해도 그만, 하지 않아도 그만이 아닙니다. 고전9:16에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고 말합니다. 부득불 전해야 하는 의무라고 . . . 국민이 국민의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그는 감옥에 가든, 재산이 몰수되듯이 말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신앙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면 복된 삶을 살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도하는 사람을 잊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귀한 상급을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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