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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환경을 바꾸어 살자 (행 16:2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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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중표 목사 (한신교회)

별세는 이별 별(別), 세상 세(世) '세상을 이별한다, 세상을 떠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또 다른 의미가 하나 있는데 다를 별(別), 세상 세(世) '다른 세상'이라는 말입니다. 이 세상을 이별한다는 뜻이 있고 다른 세상을 간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별세라는 단어 속에는 두 가지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별세'라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십자가의 죽음이고 다른 세상으로 가는 것이 부활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별세 하면 다른 세상이 없습니다. 죽음으로 끝납니다. 그래서 별세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별세가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별세를 좋아합니다.

예수님의 별세는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며 그것을 통해서 이루려는 뜻이 세상을 바꾸는 것입니다. 다른 세상을 우리에게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 자에게는 가정도 더 좋은 가정, 내 인생도 더 좋은 인생, 사는 날도 더 좋은 날로 바꾸어 주십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으면 별세의 은혜를 많이 받든 적게 받든 다 받는 것입니다.

한 예로 옛날 같으면 화를 냈을텐데 예수를 믿기 때문에 참게 됩니다. 별세를 사는 것입니다. 또 욕심을 죽였다 더 좋은 세상이 온 것입니다.
별세라는 단어 속에 세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세상을 이별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이별해야 됩니다. 나쁜 세상을 이별해야 됩니다. 그래야 거룩해집니다. 두 번째, 예수님과 함께 다른 세상을 살아야 합니다. 세 번째, 다른 세상으로 바꾸어야 됩니다. 결혼해서 불신 가문에 왔으면 가문을 바꾸어야 됩니다. 우상을 섬기는 가정을 하나님 섬기는 가정으로, 싸우는 가정을 화목한 가정으로 바꾸어야 됩니다. 예수님은 하늘을 버리고 땅에 오셔서 세상을 바꾸어주셨습니다. 불의한 나라를 의로운 나라로, 미개한 나라를 개발된 나라로, 어리석은 자를 지혜로운 자로, 불의하고 악한 자를 선한 자로 바꾸어주셨습니다.

이천년 교회사에서 예수님의 별세를 자기 몸으로 이루어 별세를 산 사람이 사도 바울입니다.
사도 바울의 생애를 보면 그리스도를 믿은 이후에 그는 고난의 일생이었습니다. 나그네로 살았으며 많은 시간을 감옥에서 보냈습니다. 그는 새로운 지역에 들어갈 때마다 '감옥이 어디에 있나' 하면서 찾았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생애 대부분을 인간적으로 가장 불행한 환경, 고통스러운 환경인 감옥에서 살았습니다.
감옥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이요, 살기 힘든 곳입니다. 감옥은 자유가 없습니다. 미래가 없습니다. 소망이 없습니다. 감옥은 죽음의 위협을 받고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 감옥에서 우리가 자유로운 몸으로 사는 것보다 더 자유를 누렸습니다. 그는 감옥에서 위대한 사상을 창출했고 역사에 길이 남는 편지를 써서 우리에게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그는 감옥에서 샘물처럼 솟아오르는 은혜를 체험했고, 하늘을 치솟는 능력을 가지고 세상을 승리한 위대한 사람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사도 바울은 지옥 같은 감옥을 천국의 별장으로 바꾸어 별세를 산 사람입니다.
감옥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마음이 감옥이 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폐쇄되고 탄식하고, 괴롭게 사는 사람은 감옥이 심령속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감옥은 가정에도 있습니다. 서로 담을 쌓고 미워하면서 살면 그곳이 바로 지옥입니다. 직장에서 서로 시기하고 미워하면서 마음의 벽을 쌓고 살면 직장이 감옥입니다. 나라를 감옥 삼고 사는 정치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첫째, 감옥을 수도원으로

사도 바울은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감옥에 들어가서 감옥을 산 것이 아니라 감옥을 수도원으로 바꾸었습니다. 한밤중에 감옥에서 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찬미했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땅이 진동했습니다. 옥문이 열렸습니다. 사슬이 풀렸습니다. 그들을 착고에 채워서 감옥에 가두었던 간수가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두 분 선생님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때 사도 바울은 당당하게 말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이 놀라운 이 사건이 감옥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사도 바울은 감옥을 기도함으로 말미암아 기도원으로 바꾸었습니다. 감옥을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 머무는 수도원으로 바꾸어버렸습니다.

수도원과 감옥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높은 담으로 싸여 있어서 밖으로 출입을 못합니다. 한번 들어가면 나오지 못합니다. 자유가 없고, 마음대로 먹지 못하며, 마음대로 행동할 수 없습니다.
수도원과 감옥의 차이점이 있습니다. 감옥은 억지로 들어가는 곳이요, 수도원은 자유로운 결단에 의해서 들어갑니다. 감옥은 죄성이 드러나는 곳이요, 수도원은 영성이 드러나는 곳입니다. 감옥은 탄식과, 원망과, 불평이 있는 곳이요, 수도원은 감사와, 찬양과, 은혜가 넘치는 곳입니다. 감옥은 지옥으로 통하는 곳이요, 수도원은 천국으로 통하는 곳입니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 들어갔으나 감옥을 수도원으로 바꾸었습니다. 죄수가 아닌 성도로 들어갔으며 하나님의 수도사로 감옥에 있습니다. 밤중쯤 되어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어느 곳에 있든지 기도하는 곳은 그 자리가 바로 기도원이요, 하나님과 통하는 하늘 문이 열리는 곳이요, 수도사가 되는 곳입니다.
인생 행로에서 어떤 때 감옥에 갇혀있는 것처럼 어두운 환경이 내 앞을 가로막을 때가 있습니다. 실패할 때, 환난이 휘몰아칠 때, 앞뒤가 꽉 막힐 때 탄식하고 원망하면 감옥이 되고 기도하면 그 자리가 수도원이요, 기도원이 되는 것입니다.

원망하고 불평하면서 앞뒤가 꽉 막힌 사람으로 살면 자기 자신이 사는 곳을 캄캄한 장벽으로 둘러싸인 감옥으로 만듭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갇히지 않는 자유를 누리면서 그곳을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수도원으로 만듭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 4:7-10)

사도 바울은 기도로서 감옥 문을 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환경이 아닙니다. 사방이 막혀도 기도하는 자에게는 하늘문이 열립니다. 우겨쌈과 답답함, 핍박과 거꾸러뜨림을 능히 파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비록 질그릇 같을지라도 별세신앙의 보배를 간직하고 기도하면 모든 환경을 바꿀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얻습니다.
성도 여러분, 심령이 답답하십니까 낙심했습니까 앞뒤가 막혔습니까 환난이 휘몰아쳤습니까 원망으로 감옥을 만들든지 기도로 하늘문을 여는 신령한 사람 만들든지 여러분의 자유입니다. 어느 편을 택하시렵니까
외적인 환경이 문제가 아니고 마음의 환경입니다. 마음을 바꾸어놓으면 세상이 바꾸어집니다.


둘째, 감옥을 별장으로

사람들은 별장을 그리워합니다. 답답할 때 별장에서 쉬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별장은 한강변에 있는 것이 아니요, 숲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있습니다. 마음이 괴로운 사람은 별장에 가도 괴롭고 마음에 평안이 있는 사람은 어느 곳에 가든지 안식이 있습니다. 부자가 별장에 사는 것이 아닙니다. 별장지기가 삽니다. 부자는 1년에 한두 번 가는데 근심을 가지고 갑니다. 편안할 때는 안가고 답답할 때 별장 가서 한숨만 쉬다가 옵니다.
교회는 예수님께서 믿는 사람에게 준 천국 별장입니다. 일주일에 한번씩 드나드는 별장 중에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있으면 말해 보십시오. 없습니다. 눈을 하늘로 뜨십시오. 이것이 최고의 자유입니다. 이보다 더 마음의 평화가 있습니까 이보다 더 안식이 있습니까 이보다 더 큰 은혜를 세상 어디 가서 받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빌립보 감옥에서 기도와 함께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찬송에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감옥을 안식이 있는 별장으로 바꿉니다. 사도 바울은 실라와 더불어 감옥에서 전무후무한 찬양제를 열었습니다. 그러자 옥터가 흔들리고 감옥문이 열렸습니다. 착고가 풀리고 자유가 임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면 그 어떤 나쁜 환경이라도 바뀝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께 감사하며 찬양함으로서 감옥을 별장으로 바꾸었습니다.
찬송은 세 가지 힘이 있습니다. 위로 올라가는 힘, 가슴으로 파고 드는 힘, 밖으로 뻗어가는 힘, 위로 올라가는 힘은 하늘문을 여는 힘이 있습니다. 가슴으로 파고 드는 힘은 내 속에 자유, 평화, 위로를 줍니다. 밖으로 뻗어 나가는 힘은 답답한 환경이 열립니다.
감옥은 죄수가 있는 곳인데 찬양하면 천사가 있는 곳이 됩니다. 기도하면 영광스러운 존재, 하나님의 사람으로 바꾸어집니다.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 4:11-12)
이 성경은 빌립보서에 있습니다. 빌립보서가 뭡니까? 사도 바울이 빌립보 감옥에서 세운 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로마 감옥에 들어가 그 교회에 편지를 보냅니다.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무슨 비결입니까? 어떤 형편에 처하든지 자족하는 비결입니다. 감옥에 살지만 감옥에 사는 것이 아니라 딴 세상을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별세의 삶입니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족한 은혜를 받았습니다. 몸은 감옥에 있으나 마음이 하늘을 날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매 맞을 때 주님을 보면서 기뻐했고 가시관 쓰신 주님을 보면서 면류관이 자기 머리에 씌여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굶주릴 때 말씀을 먹었습니다. 눈물이 쏟아질 때 하나님의 은혜의 장마비를 그의 심령에 적셨습니다.
행복하기를 바란다면 마음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감옥같은 우리의 심령을 하나님의 별장으로 바꾸시기 바랍니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
        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 되었고
        전날의 한숨 변하여 내 노래 되었네.

455장은 한국인들이 즐겨 부르는 찬송 중에 하나입니다. 이 곡은 청소년을 선도하는 히윗이라는 여사가 작사한 것입니다.

1887년 어느 겨울 날 히윗 여사는 전도하려던 불량 소년이 던진 스레트로 척추를 맞아 7개월동안 병상생활을 하게 됩니다. 병상에 누워서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소년을 원망하고, 증오하고, 탄식하고, 때로는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그의 심령을 감옥처럼 만들어 우울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날 한 흑인 소녀가 병실을 청소하면서 즐겁게 찬송을 부르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너는 무엇이 즐거워서 그렇게 찬송을 부르니"  "주님께서 모든 형편과 사정이 찬송으로 변할 수 있는 힘을 주셨으니 즐거울 수 밖에요." 이 말을 들은 히윗 여사는 큰 충격을 받고 '나는 지금까지 하나님을 믿노라 하면서 내 심령은 감옥에 갇힌 죄수처럼 살았구나!' 그는 원망과 불평으로 살아온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믿음 없음을 깨닫고 회개하면서 참회의 시를 쓴 것이 찬송 455장 시입니다.


셋째, 감옥을 교회로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부복하고 저희를 데리고 나가 가로되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거늘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29-32절).

간수는 죄수들이 탈출한 줄 알고 놀랐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간수를 안심시켰습니다. 감격한 간수는 무릎을 꿇고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을지 물었습니다. 바울은 상처입고 갇힌 죄수의 몸으로 도리어 간수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밤 그 시에 간수가 저희를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기고 자기와 그 권속이 다 세례를 받은 후 저희를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저와 온 집이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33-34절).
밤중에 빌립보 교회가 탄생됩니다. 빌립보 교회는 빌립보 감방에서 사도 바울이 간수를 전도함으로 탄생되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살려놓는 능력이 있어야 됩니다. 이것이 바로 다른 사람을 별세시키는 능력입니다. 나만 별세되는 것이 아니라 옆에 있는 사람을 별세시켜 세상을 바꾸어야 합니다.

사람은 만나는 사람의 영향을 입습니다. 부자 옆에 있으면 돈 벌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권력 가진 사람 옆에 있으면 권력을 갖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좋은 옷 입은 사람이 옆에 있으면 좋은 옷 입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나를 보고 예수 믿고 싶은 생각이 나야 됩니다. 우리는 사업가가 되기 전에, 정치가가 되기 전에 '나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을 증거해야 됩니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 있습니다. 발에 착고를 찼습니다. 간수는 시종 그를 감시하고 있습니다. 간수는 사도 바울을 보면서 죄수로 보는 것이 아니라 '저 사람은 인격자요, 위대한 그리스도인이구나!' 이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을 '죄수'라 부르지 않고 '선생'이라 불렀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미 간수의 스승이 된 것입니다. 감동시키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남의 집에서 파출부로 일할지라도 그 집에서 일하고 삯받는 일꾼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저 사람은 참으로 훌륭한 인격자야!' 하는 감동을 주어야 됩니다. 회사에서 도 일하는 사원이 아니라 '저 사람은 하늘이 보낸 인격자야'라는 감동을 주어야 됩니다. 또한 부모가 자식을 보면서 '이 자식은 내가 낳은 자식 같지가 않아 보기도 아까워' 하는 감동을 받아야 합니다.

교인들 가운데 저에게 감동을 주는 교인이 많이 있습니다. 제 설교를 듣고 있지만 제 설교를 듣고 별세의 삶을 살아가는 교인들을 보면 마음속에 '그대는 나의 스승이다.' 그런 생각을 갖습니다.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평소보다 인격이 높아지는 사람이 있고 낮아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감옥에 들어갔을 때 죄수의 본성을 드러내는 사람이 있고 하늘로 치솟게 하는 성자의 본성을 드러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요셉은 감옥에 들어가나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살려내야 합니다. 살려내야 할 사람은 주변에 있습니다. 감옥에 들어가든, 직장에 들어가든, 가정에 들어가든, 어디에 들어가든지 만나는 사람마다 그리스도 앞으로 이끌어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서 사람을 살려냈습니다. 감옥을 교회로 만들었고, 감옥을 학교로 만들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선생이라고 한 간수는 이미 사도 바울의 제자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환경에서든지 세 가지 비전을 가지고 환경을 바꾸어야 합니다. 기도함으로 자기 존재를 하나님의 파송된 존재로, 찬송을 부름으로 행복한 존재로, 사람을 살려냄으로 창조적인 존재로 바꾸어야 합니다. 세상을 바꾸어 어떤 형편에 처하든지 자족하며, 일체의 삶의 비결을 배우며,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승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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