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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행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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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기현 목사 (한광교회)

  예수님을 믿어도 성령님에 대해서 잘 모르거나 성령과는 관계없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예나 지금이나 교회안에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신앙생활의 전반적인 문제를 야기시키는 것입니다. 성령에 대해서 잘 알고 있고 성령과 깊은 교제와 성령과의 깊은 관계속에서 신앙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성도들은 늘 활기가 있습니다. 구원의 기쁨이 있습니다. 자원하는 심령이 있습니다. 시험과 시련과 환난을 이기는데 탁월합니다. 그러나 성령에 대해서 잘 모르거나 성령충만이 없고 성령과 교제가 없이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은 메말라 있고, 자신의 신앙을 초라하게 생각하며 마른뼈와 같이 생기가 없습니다. 그래서 자원하는 심령도 없고 구원의 기쁨도 없습니다. 시험과 시련과 환난에 약합니다. 너무 쉽게 좌절하고 절망하며 한숨만 내쉽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성령에 대해서 깊이 알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시간을 통하여 풍성하게 부어주시는 성령충만을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님과 교제하고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며 주의 신이 여러분들을 취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바울사도가 에베소교회를 향하여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에베소교회를 보았을 때 모든 것이 다 갖추어졌으나 여전히 한 가지가 부족함을 느꼈습니다. 성전도 있고 예배도 있고 기도도 있고 구제와 봉사도 있고 모든 것이 다 있는 것 같은데 그래도 여전히 없는 것이 있었습니다. 빠진 것이 있습니다. 꼭 있어야 할 것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에베소교회가 마른뼈와 같이 생기가 없었습니다. 교회가 신나는 것이 없었던 것입니다.
  교회가 신바람이 나야 합니다. 신앙생활이 신들린 것처럼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주일이 기다려지야 합니다. 주일이 기다려진 사람 손 한번 들어보세요? 할렐루야!

  그래서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인들을 향하여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물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에베소교인들은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고 했던 것입니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다 있어도, 다 훌륭해도 성령이 없으면 힘이 없습니다. 참된 기쁨이 없습니다. 자원하는 심령이 없습니다. 내 힘으로 하면 3일을 못갑니다. 그러나 성령이 함께 하시면 일평생을 변함이 없이 할 수가 있는 줄로 믿습니다. 성령님을 사모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바울은 그들의 말을 듣고 또 물었습니다.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그때 그들은 "요한의 세례로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이것을 볼 때 그들은 아직 요한의 물세례 수준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신앙의 초보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요한의 물세례는 예수님이 전면에 등장하시기 전에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차원에서 행해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자 요한은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나는 그의 신들메를 감당하기도 어렵도다"라고 하면서 결국은 스스로 예수님의 뒤로 물러서게 된 것입니다.
  쇠하여야 할 것, 그리고 신들메도 감당할 수 없는 것 그것을 아직도 붙잡고 있다면 함께 쇠하여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신발끈을 다시 묶는 일도 감당할 수 없다면 어떻게 이 죄악된 세상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고집덩어리인 자신을 제어할 수 있겠습니까?

  바울이 왜 이들에게 이런 것에 대하여 물어보았겠습니까? 그들은 신실하고 정직했지만 바울은 그들에게 무엇인가 부족한 것을 느낀 것이 분명합니다. 아쉬운 점을 발견한 것입니다. 예배도 있고 형식도 있고 경건도 있었습니다. 말씀도 있고 찬송도 있고 기도도 있었으나 그러나 그들에게 성령의 역사를 통한 열정과 뜨거움이 부족했던 것입니다. 일을 하기는 한데 자원하는 심령으로 하지 못했습니다. 기쁨으로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성령의 세례, 성령의 충만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성령 세례가 없고 성령의 충만함이 없는 그리스도인들이 삶의 모습이 바로 이렇습니다.

  바울이 에베소교회교인들에게 물었던 이 물음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하는 이 물음을 우리도 엄격하고도 분명하게 우리 자신을 향하여 묻고 시험해 보아야 합니다. 과연 우리는 "믿은 후로 성령을 받았습니까? 우리는 과연 믿음생활을 하게 이후로 성령의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또한 성령에 의해 인도되고 있습니까? 우리는 성령 안에서 생활하고 있습니까? 진정으로 우리는 성령의 통치 아래 있는가? 를 물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시험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무엇이며 누구십니까? 성령님은 "하나님의 영"이시며 "그리스도의 영"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이며 우리 "주님의 신"이신 것입니다.
  "영"은 이 세상에도 참 많습니다. 바람과 숨이 여럿입니다. 봄바람 산바람 강바람 치마바람 온갖바람들이 많습니다. 한숨 급한숨, 된숨 짐승의 숨 작은 새가슴을 통하여 쉬는 숨, 온갖 숨들이 있습니다. 이듯이 '영'도 그러합니다. 그러나 모든 바람과 모든 숨이 하나님의 바람과 하나님의 숨이 아니듯이 모든 영이 다 성령이 아닌 것입니다. 세상에는 신들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모든 신들이 다 참 신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 주님의 신만이 참 신이신 것입니다. 빛이 있다고 다 태양 빛이 아닌 것처럼 참 영과 참 빛은 한 분이신 "성령(Holy Spirit)"이십니다.
  성령(Spirit)이란 기본적인 명칭은 헬라어로 "프뉴마"입니다. 이 말은 바람(Wind), 숨(Breath), 생명(Life)을 의미합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바람이며 하나님의 숨이며 하나님의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성령의 충만함과 성령의 도우심과 성령의 세례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유령"이나 "혼백"이나 "넋"이나 "혼령"이나 "귀신"이나 "허깨비"가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그와 유사한 것도 아닌 것입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영"이시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과 예수 그리스도의 생각이 아무리 깊고 높을 지라도 성령은 그것을 우리에게 알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해석해 주시며(고전 2:10-14), 성령은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요 14:26).
  우리는 우리의 지혜가 불충분함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지식의 한계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능력의 한계를 인정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영혼이 큰 근심 중에 있거나 우리의 의무에 관한 의문이 생기거나 어찌해야 좋을지 모를 때 성령께서는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이십니다.

  2. 성령님은 살리는 영이십니다.
  이 세상에는 온통 죽이려는 영으로 가득찬 세상입니다. 우환질고는 우리를 죽이려고 합니다. 원수 마귀 사단은 우리를 죽이려고 합니다. 병마는 우리를 죽이려고 합니다. 세상은 온통 적자 생존의 세상입니다. 남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세상입니다. 살인적인 경쟁을 하고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살리는 영을 약속하셨으며 성령은 우리를 살리시는 영이신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구원하신 영이신 것입니다. 주님의 성령이 계신 곳에 자유가 있습니다(고후 3:17). 의문 즉 문자는 사람을 죽이고 성령은 사람을 살린다(고후 3:6)고 했습니다.
  로마서 8장 2절에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죄와 사망의 굴레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굴레을 계속하여 쓰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굴레를 벗어던져버릴 수 있는 방법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 길은 바로 성령의 능력에 의해서 제공됩니다. 우리가 성령을 좇아 행하면 육체의 소욕을 이루지 않게 될 줄로 믿습니다(갈 5:16).
  우리는 매일 매일 시간마다 육체의 소욕과 마음의 죄악과 온갖 죽이려는 권세와 싸우고 있는 영적전쟁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성령은 이 영적 전쟁에서 우리를 승리하게 하시며 우리를 살리시는 영이신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참 많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그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우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들이 성령의 역사속에서 살고 성령임재와 감동속에서 살게 될 때 우리도 살리는 일에 동참하는 사람이 될 수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 성령의 충만을 받아서 살리는 일에 참여하는 성도 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성령님은 용서와 평화의 영이십니다.
  두려움과 미움의 영이 충만한 이 세상에 성령은 용서와 평화의 영으로 주님의 백성들 가운데 역사하는 것이다. 미움과 불평과 원망이 많은 세상입니다. 이것은 악한 영이 관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영이신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용서의 마음을 주시고 평화의 마음을 주시고 감사의 마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사울왕은 대단히 똑똑한 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악신이 들어가므로 가장 충성스러운 신하이며 사위이기도한 다윗을 죽이고자 했으며 그를 보면 미움이 솟아나고 분쟁의 마음과 원망의 마음이 솟아났습니다. 여러분 무슨 일이든지 자신감이 없어지고 두려워하는 마음과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고 누구든지 보면 미워지거들랑 나를 악한 영이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성령은 환경의 재배를 받지 않게 하십니다. 성령께서는 육신의 지배를 이길 수 있도록 하십니다.

  이제는 시대적으로 미워하고 대립하고 분쟁하고 적대를 하고서는 살 수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온 세상은 세계화되었고 지구촌화되었고 우주화가 되었습니다. 나와 너가 함께 협력해야 평화를 이루고 공존을 하며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령은 그냥 영이 아닙니다. 그냥 바람과 숨과 생명이 아닙니다. 성령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영이시며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충만한 신자, 성령의 세례를 끊임없이 받고 사는 성도들은 죄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을 걸어갈지라도 살리심을 받으실 줄로 믿습니다. 자유함을 얻을 줄로 믿습니다. 아무리 견디기 힘든 미움과 원망과 불평의 자리에서도 오히려 용서와 평화를 누리고 감사할 수 있는 성도가 되실 것으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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