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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정의달] 한 우물을 판 가정 (창 26: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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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1


설교자 : 손상률 목사 

12.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13.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14.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노복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15. 그 아비 아브라함 때에 그 아비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16.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가라
17. 이삭이 그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거기 우거하며
18. 그 아비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으니 이는 아브라함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이 그 우물들을 메웠음이라 이삭이 그 우물들의 이름을 그 아비의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더라
19.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에 파서 샘 근원을 얻었더니
20. 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가로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을 인하여 그 우물 이름을 에섹이라 하였으며
21.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는고로 그 이름을 싯나라 하였으며
22.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가로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장소를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며칠 전 언론에 보도된 한 기사를 소개합니다. 연세대학교 재단 이사이신 원한광(Underwood. Horace H)박사의 가족이 오는 10월 경 미국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美 언더우드家 ‘한국을 떠납니다’」라는 제하의 이 글은 우리나라 최초의 선교사인 언더우드 집안이 4대에 걸쳐 119년 동안 한국현대사에 끼친 큰 공적을 소개하였습니다. 언더우드 1세는 1885년 암울했던 시기에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복음 사역과 교육사업 그리고 사회와 국가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언더우드 선교사는 오늘날 명문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 학교와 세문안교회를 설립하였습니다. 그분의 후예들이 4대에 걸쳐 모두 연세대에서 후학을 가르치며 교육자로서 봉사하였을 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많은 것을 베풀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뿐만 아니라 세계선교사(宣敎史)에도 흔하지 않은 신앙의 가문으로서 참으로 교훈적인 집안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사람의 경건한 믿음과 그 남긴 업적도 소중하지만 그것을 자자손손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신앙의 가문이야말로 더욱 귀하고 자랑스러운 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은 세상 만민 중에서 하나님께 선택받은 민족으로써 하나님의 기대와 축복을 향유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누린 특권과 축복은 결국 그 조상들이 이루어놓은 경건한 가문의 후광이 컸던 것입니다(신 7:8). 그 중에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 이르는 삼대 족장은 오고 오는 후손들에게 축복의 뿌리가 되어 준 인물들입니다. 그들은 모두 한 우물을 팠고 그것을 후손들에게까지 물려주었습니다. 광야같이 메마른 곳에서 우물을 파고 그것을 자손에게 물려주는 조상들이야말로 매우 지혜로운 사람들입니다. 그뿐 아니라 오래도록 조상들의 정신과 업적을 계승하여 한 우물을 파고드는 후손들 또한 받은 복을 누릴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자들입니다.

Ⅰ. 우물을 판 사람들

이스라엘 백성이 살았던 가나안 땅은 기후가 매우 건조하고 뜨거운 곳이며 국토의 대부분이 사막처럼 메마른 곳입니다. 지금은 갈릴리 호수의 물을 지하수로를 이용하여 많은 농토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옛날 족장시대에는 어디로 가든지 장막을 치는 곳에서 반드시 지하수를 개발하고 우물을 확보해야만 하였습니다. 성경에는 이스라엘의 삼대족장이 다 우물을 팠다고 하였습니다.

(1) 아브라함입니다.

팔레스틴의 남부지역 사해와 지중해의 중간지점에 있는 브엘세바는 오랫동안 아브라함과 이삭이 살았던 고대 도시입니다.
거기 옛날 아브라함이 살았던 집이 있고 그 안에는 매우 오래된 두 개의 우물이 있습니다. 마당에 원형철망을 덮어둔 것은 이삭의 우물이고 아브라함의 우물은 건물 안에 있어서 밖에서는 볼 수 없습니다. 이삭이 판 우물은 깊이가 90m여 미터나 되고 아브라함이 판 것은 120m나 된다고 합니다.
맨 처음 그곳에서 아브라함이 우물을 팠으나 그랄 왕 아비멜렉의 종들이 빼앗아 버렸으므로 이를 놓고 아비멜렉과 담판을 벌인 일이 있습니다. 창세기 21:30-31에 “아브라함이 가로되 너는 내 손에서 이 암양 새끼 일곱을 받아 내가 이 우물 판 증거를 삼으라 하고 두 사람이 거기서 서로 맹세하였으므로 그곳을 브엘세바라 이름하였더라”고 했습니다.

(2) 이삭입니다.

본문 말씀 17-18절에 “이삭이 그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거기 우거하며 그 아비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으니 이는 아브라함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이 그 우물들을 메웠음이라 이삭이 그 우물들의 이름을 그 아비의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더라”고 하였습니다. 이삭은 다른 누구보다도 많은 우물을 팠습니다.
본문 말씀 19절 이하에 보면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에 파서 샘 근원을 얻었더니 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가로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을 인하여 그 우물 이름을 에섹이라 하였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이삭이 파 놓은 우물을 그랄 사람들이 빼앗으면 이삭은 다시 장소를 옮겨서 또 다른 우물을 파곤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여 그는 그곳에서만 네 개의 우물을 파게 되었습니다.

(3) 야곱입니다.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도 우물 파는 일에는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야곱이야말로 족장들 중에서 가장 풍상을 많이 겪은 사람입니다. 그는 평생동안 중동천지를 유랑하는 나그네의 세월을 살았지만 어느 곳에서나 안정된 삶을 위해서는 우물을 파지 아니하면 안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의 수가성에서 여인을 만나 생수의 교훈을 하신 곳이 야곱의 우물에서였습니다. 요한복음 4:5-6에 보면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고 하였습니다. 수가성 여인은 예수님에게 이 우물의 내용을 소개하면서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었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먹었으니 …”라고 하면서 그 우물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였습니다.


Ⅱ. 우물을 파는 일

우리 말 가운데 우물을 소재로 교훈을 주는 격언들이 있습니다. 가령 「목마른 사람이 샘을 판다」는 말이나 「우물을 파되 한 우물을 파야된다」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우물은 사람의 생존과 관련하여 가장 절실한 요건중 하나입니다. 물이 없으면 살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옛날부터 수원이 좋은 곳에 마을이 형성되었거나 강을 끼고 도시가 번성했던 것은 이를 뒷받침하는 것입니다.

(1) 생수을 구하는 일입니다.

성경은 범죄한 인간이 사는 세상을 물이 없는 광야 또는 사막으로 비유하곤 하였습니다. 예레미야 17:6에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거하지 않는 땅에 거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여행을 할 때 사십 년 간 광야생활 중에 가장 큰 괴로움은 물이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그들은 뜨거운 사막 길에서 물을 찾지 못하여 허우적거렸고(출 15:22), 목이 마르고 갈급할 때마다 하나님을 원망하며 가나안 여행을 포기하려 하였습니다(민 20:2).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에도 샘물 하나를 얻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습니다. 여호수아 15:9에 보면 갈렙의 딸 악사가 출가하면서 아비에게 말하기를 “아버지께서 나를 남방 땅으로 보내시오니 샘물도 내게 주소서 하매 갈렙이 윗샘과 아랫샘을 그에게 주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우물을 파는 일은 땅속에 있는 지하수를 끌어올리는 일입니다. 땅속에는 지하수가 흐르는 물길이 있어서 깊이 파고 들어가 그 근원을 잡게되면 안정된 수원을 확보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막같이 목마른 세상을 살면서도 보이지 아니하는 내면의 세계를 알고 거기서부터 솟아나는 생수를 얻어내는 사람이야말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며 은혜의 깊은 경지에 들어가는 사람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를 찾는 일입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백성이 겪는 불행 중에 가장 큰 것은 생수의 근원 되신 하나님을 버린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예레미야 2:13에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생수의 근원되신 하나님을 멀리하고 오히려 세상 재물이나 권력이나 명예 따위로 웅덩이를 만들어 물을 저장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자기 영혼에 해갈을 주지 못하는 허무한 것임을 알고 혀를 깨물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믿음이 있는 사람은 생수의 실체를 알고 그것을 힘써 추구합니다. 시편 42:1에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고 하였습니다. 인생의 목마름을 알고 생수를 찾는 사람에게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하였습니다(요 7:36-37).

(3) 대대로 계속해야 될 가치 있는 일입니다.

본문 말씀 17-18절에 “이삭이 그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거기 우거하며 그 아비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으니 이는 아브라함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이 그 우물들을 메웠음이라 이삭이 그 우물들의 이름을 그 아비의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더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은 어디로 가나 우물 파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들이 파 놓은 우물은 수천 년이 지나도록 없어지지 아니하고 오고 오는 후손들에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우물의 가치를 아는 자들이고 또한 그 일을 꾸준히 이어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 이삭처럼 우물을 파되 그의 아버지가 팠던 그 우물을 다시 판 것과 자기 아버지가 불렀던 이름을 그대로 부른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아버지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의지가 담겨져 있습니다. 확실히 그들의 집안은 하나님을 섬기는 집안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가문입니다(요 8:56). 이삭은 아버지의 신앙을 이어가고자 하는 효자요 동시에 오고 오는 후손들에게 축복의 기틀을 마련해주는 책임 있는 조상입니다.


Ⅲ. 우물을 파는 집안의 행복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주시는 축복은 어느 한시간 특정인에게만 국한되는 단회적인 것이 아닙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하여 주어지는 복은 자신과 가족 그리고 후손들에게까지 이어지는 영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대대로 신앙의 한 우물을 파는 집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누리는 축복은 「여기가 우리의 낙원」이라고 할 수 있는 천당의 행복이 되는 것입니다.

(1) 영혼이 윤택하여집니다.

지혜자 솔로몬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전 3:11). 땅속에 흐르는 지하수의 샘을 찾아 우물을 파는 사람, 그들은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고상한 가치관을 가지고 진리의 샘을 추구하는 자들입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떡으로 굶주린 배를 채우는 것보다 생수의 근원을 확보하고 목마른 심령의 갈증을 해갈하는 지혜가 있는 것입니다. 이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영혼의 욕구를 채우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3:9에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식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식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의 물질보다 하나님의 은혜 곧 예수 그리스도를 얻는 것이 더 소중하다는 뜻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부분을 강조하면서 “혹 한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고 하였습니다(히 12:16). 선지자 예레미야는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찌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고 하였습니다(렘 17:7-8).

(2) 지경이 넓어집니다.

역대상 4:10절에는 야베스의 기도가 있는데 그는 주께서 제게 복에 복을 더해주시고 또 지경을 넓혀달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그의 소유 영역을 넓게 해 달라는 것이며 또한 활동반경을 넓혀 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뜻을 준행하며 하나님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삶을 사는 자에게 넓은 영역을 보장해 주십니다(창 1:28). 본문 말씀 22절에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가로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장소를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고 하였습니다.

이삭은 참으로 성품이 온유한 사람입니다. 그가 우물을 파 놓으면 곧바로 블레셋 사람들이 와서 차지해 버리곤 하였는데 그래도 그들과 다투지 아니하고 장소를 옮겨서 또 우물을 팠습니다. 그들이 빼앗으면 주어버리고 다시 우물을 파는 집념의 사람입니다. 우선은 빼앗긴 것 같았으나 결국은 그만큼 땅이 넓어졌고 그 우물도 자기와 자기 후손들에게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대로 넓은 땅을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3) 축복의 공여자(供與者)가 됩니다.

우물을 파는 사람은 땅속 깊은 곳에서 생수를 캐어내는 사람입니다. 오염되지 않은 생수의 샘물은 사람뿐만 아니라 온갖 동식물에게까지 생명을 공급하는 근원이 됩니다. 여기 우물을 파는 사람들이야말로 많은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는 축복의 공여자들입니다. 이삭의 경우 그랄 사람들의 횡포에 밀려 파놓은 우물을 빼앗겼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는 계속해서 우물을 파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결국 그가 파놓은 우물물은 여러 사람이 마실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저를 괴롭히고 핍박한 원수들까지도 이삭의 우물을 먹고살았습니다. 그가 세상에 사는 동안 우물을 파고 많은 사람에게 생수를 공급해 주는 사람으로 기록에 남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이 일은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사역이며 주님의 교회가 세상에 줄 수 있는 축복의 원리인 것입니다.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은 남에게 도움 받는 것을 즐거움으로 여기는 자가 아니라 자기를 통하여 다른 사람에게 축복을 공급하는 것으로 가장 큰 즐거움을 삼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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