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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제는 달라져야 합니다 (엡 4: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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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진목사 설교
이제는 달라져야 합니다
엡4:22-32

오늘 이 시간 “이제는 달라져야 합니다.”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예수님의 천국비유 가운데 겨자씨 비유가 있는데 겨자씨는 적은 것이로되 날로 자라서 큰 나무가 된 것처럼, 그리고 적은 누룩이 가루 서말을 모두 부풀게 하는 것처럼 예수를 믿고 보면 여러 가지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 일어나는 변화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성도들의 인격의 변화, 삶의 변화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다 변화하였습니다. 여리고성의 세리장 삭개오도 변화되었습니다. 그는 남의 것을 착취하고 백성들의 원성을 들으며 재물을 모았습니다. 삭개오 연구가들에 의하면 그 원인이 사람들에게 무시 받는 상처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고칠래야 고치기 어려운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변화되어 자기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내어놓았고 뉘 것을 토색한 적이 있으면 4배로 갚겠다고 했습니다.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본래는 사울로서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는 자요 잔인하고 패역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메섹으로 가던 도중 부활의 예수님을 만나고 변화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전에는 박해자요 포악자였으나 이제는 주를 위해 충성하고 사랑하며 주의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흉악한 귀신들린 죄 많은 여자도 예수 만나 변화되었고, 십자가에 달린 흉악한 강도도 예수 만나 변화되었습니다. 이제는 우리도 달라져야 합니다. 그것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우리가 어떠한 모습으로 변화되어야 할까요?

1. 욕심을 버리고 심령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22절에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했습니다.

사람들에게는 두 가지의 욕심이 있습니다. 하나는 잘해 보려는 선의의 욕심입니다. 열심히 믿으려고, 좋은 일 하려고, 기도하고 전도하고 봉사하려는 선의의 욕심입니다. 그 같은 일은 있어야하고 해야 합니다. 그러나 또한 사욕에서 나온 부정한 욕심이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 욕심은 더 이상 부리지 않아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 영혼이 사는 길이 아니라 죽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1:14에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 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왜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우리 인류에게 불행이 다가왔습니다. 그것은 마귀의 유혹에 빠져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가룟 유다도 욕심 때문에 그리스도를 팔아넘겨 배신자가 되었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세상의 범죄의 동기는 대부분 잘못된 욕심 때문입니다. 돈에 대한 욕망, 성에 대한 욕망, 권세와 명예에 대한 욕망 이 욕망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모신 자로서 마음에 욕심을 버려야 하겠습니다. 그 대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은”(엡4:23-24)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 거짓을 버리고 참되게 변화해야 합니다.

25절에 "거짓은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했습니다.

거짓이 얼마나 나쁜지 아십니까? 요8:44에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했습니다. 즉 거짓말하면 그 마귀의 자식이라는 것입니다. 마귀는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된다고 속였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최초의 범죄는 거짓말입니다.

이 거짓을 하나님께서 아주 싫어하십니다. 잠언 6:16에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 곧 그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육 칠 가지니 곧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과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과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과 및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그 어떤 죄도 용납하셨지만 거짓의 외식죄는 용서하지 않으시고 화를 선언하셨습니다.

십계명 9계명에 "이웃을 해하려고 거짓증거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사실이 아닌 왜곡되고 잘못된 이야기들일수록 더 빨리 확산이 됩니다. 독버섯이 아름답듯이 거짓말일수록 빛깔이 더 곱고 더 선명하고 더 소란스럽고 아픈 상처와 흔적을 많이 남깁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달라져야 합니다. 내가 알지 못한 것이라면 옮기지 말아야 합니다. 그 대신 신앙인은 참된 진리만을 말해야 합니다.

3. 분을 품지 말고 온유하게 변화되어야 합니다.

26-27절에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했습니다.

일제 시대 우리 한국교회의 유명한 부흥사 김익두 목사란 분이 계십니다. 이분은 1874년에 황해도 안악에서 출생하였는데 본래 성격은 난폭하고 싸움 잘하기로 유명했습니다. 오죽하면 사람들이 장에 가면서 성황당을 지날 때면 돌을 던지면서 오늘 김익두를 만나지 않게 해달라고 빌고 지나갔을까요? 한 마디로 깡패였습니다.
이런 사람이 시장에서 어느 여전도사님의 전도를 받고 교회에 나가기 시작하면서 달라졌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더니 선량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심지어 문등병자를 대려다가 집에서 재워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는 평양 신학교에 들어가서 장로교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남대문 장로교회에서 시무한 적도 있습니다. 부흥회를 인도할 때 하나님게서는 그를 통해 많은 환자를 치유하고 기적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는 예수를 위해 죽기까지 충성했습니다. 이렇게 예수 믿는 사람은 성령으로 달라져야 합니다.

우리가 가장 잘 짓는 죄가 분을 잘 품는 것입니다. 창세기 4:6에서 인류최초의 아들 가인은 아벨을 시기하여 분을 품고 살인을 범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약1:19) 했습니다. 사람이 분을 품을 때 역동적으로 일이 더 잘될 줄 알아도 그렇지 않습니다. 삼국지의 장비가 속히 형의 원수를 갚으려고 부하들에게 심하게 했다가 암살당하고 뜻을 이루지 못했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엡4:26에 "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면 사단이 틈타게 됩니다. 우리가 분노를 절제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납하셨을 뿐 아니라 성령의 열매가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입니다. 만약 이 성령의 열매가 아닌 다른 열매가 맺힌다면 이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4. 예수 믿는 성도는 입술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29절에 "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했습니다.

약3:2에는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했습니다. 또 "혀는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고 했습니다. 혹은 “혀는 쉬지 않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하다" 고도 했습니다. 교회의 어려움은 사람이 없어서도 아니요, 돈이 없어서도 아니요, 지식이 없어서도 아니요, 입술 때문입니다. 마음 좀 언짢아도 말을 좀 더디 할 수 있다면 대단한 인격입니다. 우리 김제 사람들 마음이 안 맞아도 말을 좀 늦게 하는 것 좋은 장점입니다.

이런 우화가 있습니다. 식당에서 콜라를 주문해서 마실 때에 콜라 잔에 파리가 빠져죽을 때 어떻게 하는가? 영국 사람은 한쪽에 비켜놓고 새로 시켜서 마신 뒤 나갈 때에 2컵 값을 내고 간다고 합니다. 신사입니다. 미국인은 주인을 불러다가 확인시킨 후에 새로 시켜 먹고 나갈 때 한잔 값만 내고 갑니다. 아주 합리적입니다. 그럼 한국 사람은 어떠할까요? 한국 사람은 콜라에 파리가 빠졌으면 주인을 불러다가 창피를 주고 나가버린다고 합니다. 감정적입니다. 우리 수준이 그렇다면 고쳐야 할 줄 압니다.

우리 신앙인은 항상 선한 말을 하고 남을 위해주는 덕을 세우는 말을 해야 합니다. 웃음의 말을 해도 남을 위해주는 농담이 좋습니다. 나에게는 옳아도 듣는 사람들에게 은혜가 되지 못하면 안해야 합니다. 말의 변화는 그만큼 인격의 성숙함을 증명합니다. 그래서 본문 31절에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 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은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라"고 교훈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믿어 거듭난 우리 성도들은 마음속에 예수님이 계시니 이제 달라져야 하겠습니다. 성령의 열매 맺혀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욕심을 버리고 거짓을 버리고 분을 품지 말고 더러운 말을 하지 말고 우리 주님처럼 깨끗한 마음과 참됨과 온유와 덕을 가지고 살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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