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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일곱교회시리즈(2) - 고난 중에 충성하라(서머나교회) (계 2: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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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곽주환 목사 (구로중앙교히) 

지난 주 에베소 교회에 이어서 서머나 교회에 보낸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에베소 교회에는 처음 사랑을 회복하는 말씀을 전했다. 서머나 교회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이해하려면 서머나의 상황을 보아야 한다.
당시의 서머나는 황제 숭배하는 데에 일등 도시이었다. 신격화된 황제를 위한 신전이 서머나에 최초로 세워졌다. 로마의 키케로가 서머나 사람들을 향하여 칭찬하기를, “서머나는 우리의 가장 충성스럽고 가장 오랜 원조자”이다. 그만큼 서머나에는 로마의 황제를 중심한 도시가 형성되어 있었다.

또한 서머나는 에베소에 이어서 두 번째로 큰 도시요, 잘 사는 사람들이 꾀나 많이 있었다. 그런데 대부분의 부자와 큰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유대인들이었다. 유대인들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억압하고 무시하였다. 자연히 유대인들이 기독교인들을 미워하니까 직장을 잡기도 어려웠고, 예수 믿는 사람들이 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황제 숭배에 앞장선 도시이었기에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는 환란이 있었고, 유대인들이 많은 부를 갖고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미워하였으니 기독교인들은 물질적인 궁핍함을 당하고 있었다.

이같이 서머나 교인들은 환란과 궁핍으로 고난을 겪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 처한 교회를 향하여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말씀하신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역사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책임지시는 분이다. 교회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다스리시는 분이다. 내 인생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도우시는 분이다.
환란이 있을 때에 떠나는 분이 아니다. 궁핍하여 어려울 때에 외면하는 분이 아니다. 처음이요 마지막이신 주님은 내가 가난할 때나 부할때나, 병들거나 건강하거나 어떤 환경 중에서도 나와 함께 계시는 분이다. 처음이며 마지막이신 분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 분이 서머나 교회를 향하여 말씀하기를, “내가 네 환란과 궁핍을 내가 안다.” 주님은 서머나 교회의 고난을 알고 계셨다. 주님은 바로 우리의 아픔을 알고 계신다. 그것도 처음부터 끝까지 알고 계신다.
자식에 병에 걸리면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아픈가? 자녀를 위해서 더 많이 염려하게 되고, 더 많이 기도하게 되고,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주님은 우리가 겪는 고난을 알고 계신다.

나의 고난을 알고 계신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지금은 고난을 받고 있지만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지금 고난 받아 환란을 당하고, 물질적으로 궁핍하여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지만 오히려 부요한 자라.
주님이 보시기에 부요한 자는 현재 많은 돈을 갖고 있느냐 없느냐가 판단의 기준이 아니었다. 예수님께서 비유의 말씀을 하셨다. 어느 부자가 농사가 잘 되어서 큰 창고가 필요하였다. 곳간을 헐고 큰 곳간을 지어 그곳에 쌓아 두었다. 여러해 먹을 물건이 있으니 편안히 먹고 마실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하늘에 쌓아 두지 못한 재물은 하나님 보시기에 조금도 부요한 자가 되지 못한다. 하늘에 쌓아둔 재물이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보시기에 부요한 자이다.

서머나의 교인들은 현재 많은 물질은 없어도 하나님의 나라에 쌓아둔 부요한 사람들이다. 그들을 향하여 너희는 이 세상에서는 궁핍하지만 부요한 자라고 말씀하신다.
아무리 돈이 내 주머니에 많이 있어도 그 마음이 가난하면 그 사람은 풍요로운 사람이 아니다. 주머니에 돈이 있는데 옆에 사람이 목 말라서 허덕인다. 그것을 함께 나누지 못하면 그 사람은 풍요롭지 못하다는 말씀이다.
이렇게 환란과 궁핍을 경험하고 있는 서머나 교인들을 향하여 주시는 말씀,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란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이 말씀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고난 중에 충성하라”는 표현이다.

서머나 교회의 감독님이 말씀을 전하다가 80세가 넘어서 붙잡히게 되었다. 붙잡으러 온 사람들을 위해서 식사를 준비하고 그들에게 마음껏 음식을 먹으라고 청했다. 그리고는 한 시간 동안만 방해 받지 않고 기도해 달라고 요청한다. 잡혀간 폴리캅은 총독 앞에 선다. 총독이 인심쓰는척 하면서 “당신의 나이를 생각하시오” 그리스도를 부인하면 풀어주겠소, 지금 그리스도를 모독하시오. 그러나 폴리캅은 “나는 86년 동안 그분을 섬겨왔는데 그동안 그 분은 한번도 나를 부당하게 대우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어찌 이제까지 섬겨온 나의 왕 그리스도를 모독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리스도를 모독하지 않으면 사나운 짐승들을 준비해 두었소. 그러자 폴리캅은 “그 짐승들을 부르시오.” 그러자 총독은 다시 협박한다. “만일 당신이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면 당신을 화형에 처하겠소.” 그러자 폴리캅은 “당신은 잠시 타오르다가 곧 꺼져버리는 불로 나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왜냐면 다신은 장차 임할 심판과 악인을 위해 예비된 영원한 형벌을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지체 합니까? 당신이 원하는데로 불을 지르시오.”
폴리캅은 짐승에 물려 죽어도, 불에 타서 죽어도 변치 않는 그리스도를 향한 마음이 있었다. 그는 고난 중에 충성하는 자이었다.

우리를 생각해 보자. 우리의 모습은 얼마나 부족한가? 어떤 일을 할 때에 누가 주변에서 잘 한다고 박수쳐 주면 신이나서 충성하다가 누가 조금이라도 가시 돋힌 이야기를 하면 그만 하겠다고 내려 놓는 자세가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우리는 지금 고난 중에 충성하고 있는가? 내 자신을 살펴봐야 한다.
유명한 조각가 미켈란젤로가 시스틴 채플이라는 교회당의 천정 벽화를 손수 그리고 있었다. 그 천정은 까마득히 높았기 때문에 그 아래에서는 사실 천정의 모습이 한 눈에 정확하게 파악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는 이 천정의 벽에 가까이 붙어서 선 하나 하나를 정성을 다해서 그리고 있었다. 이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친구 한 사람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보게, 여기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네. 그냥 적당히 해두고 내려오게나." 그러자 미켈란젤로는 천정에서 그 친구를 향해서 이렇게 소리쳤다. "여보게, 이 그림을 다 그린 후에 이 그림의 성과가 어느 정도인가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그야, 자네겠지." "맞네. 내가 알고 하나님이 아시는 한, 나는 최선 이하로 일할 수는 없네."
누가 알아줘서 박수를 쳐줄 때에는 열심히 하다가 봐주는 사람이 없을 때에는 충성을 다하지 않는 것은 아름답지 못하다. 고난을 당하더라도 충성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고난 중에 충성하라.

어느 교인이 점점 눈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앞이 점점 보이지 않게 된다. 이 권사님은 큰 염려거리가 생겼다. 눈이 어두워지니 내가 어떻게 주를 위해서 충성할 수 있겠는가? 앞을 못 보는 안타까움보다는 앞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주를 위해 충성하지 못할까봐 마음 조려하는 모습을 보았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러나 고난 중에서도 주님께 충성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 중이라는 말을 듣고 얼마나 큰 은혜가 되는지 모른다. 우리는 지금 성전을 짓고 있다. 성도들 중에 물질이 많아서 바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대부분 어려운 중에 절약하고 수고하여 귀한 물질을 바친다. 고난 중에 충성하는 자의 모습이다.

이렇게 고난 중에 충성하는 자에게 주님은 “생명의 면류관을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올림픽의 꽃은 마라톤이다. 마라톤에서 우승을 하면 월계관을 만들어서 씌워 주었다. 월계관을 씌워준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마라톤에서 우승을 했다고 할지라도, 이 세상에서 승리의 기쁨을 맛 보았 더라도 그것은 하루가 지나면 완전히 말라서 없어지는 것을 보여 준다. 이 세상에서 승리의 덧 없음을 가르쳐 준다.

지난 성지순례 길에 그리스 아테네에 갔다. 그곳에 근대 올림픽 스태디움이 남아있다. 그곳에서 가이드가 고대 올림픽에서 승리한 자에게 들려주는 핀다로스의 시를 읊었는데 마음에 남아있다. “젊은 날에 별안간 승리를 쟁취한 너는 마치 날개달린 듯이 날아 오른다. 그러나 명심하라 인간의 명예는 순간에 불과하고 부귀영화는 꿈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의 신이여 우리를 자유의 길로 인도하소서.”

이 땅에서 얻는 승리의 기쁨도 하루 밤이 지나면 시들고 만다. 승리를 쟁취한 기쁨도 날개달린 듯이 날아 오르지만 이 모든 것은 순간에 불과하다. 그러기에 우리에게는 주께서 주시는 생명의 면류관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 어떻게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수 있는가? 대답은 간단하다. 고난 중에 충성하라.
교인들 중에 내가 지금은 먹고 사는 것이 힘들어서 나중에 충성하겠다고 약속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고난 중에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너에게 주리라.

바울이 배를 타고 로마로 압송되어 간다. 풍랑을 만나 모두 죽게 되는 위기를 경험하게 된다. 그 배에는 바울을 포함하여 276명이 타고 있었다. 바울은 죄인의 신분으로 로마에 압송되어 가는 중이었다.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말씀하신다.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모두 안전하게 로마에 도착하게 되었다.
바울이 배를 타고가면서 모두 죽을 수 밖에 없는 고난을 당했지만, 그 고난 중에서 주님을 바라보니 275명 모두가 바울의 협력자가 되지 않았는가? 고난 중에 충성하면 하나님은 그 일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을 붙혀 주시고, 많은 사람들과 뜻을 합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신다.

그러면 교인들 중에 저는 지금 고통스러운 일이 없어서 편안하게 생활하는데 내가 어떻게 고난 중에 충성할 수 있겠는가?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라. “죽도록 충성하라.” 내가 고난을 느낄 정도로 충성하라는 말씀이다. 체면유지할 정도로 충성하지 말고, 눈치보면서 충성하지 말고, 내 삶의 형편이 좋다고 할지라도 내가 스스로 고통을 느낄 정도로, 아픔을 느낄 정도로 충성하라. 죽도록 충성하라.
그러나 요즈음에 많은 사람들이 죽도록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죽도록 논다. 죽도록 술 마신다. 죽도록 노름한다. 죽도록 즐긴다.

사랑하는 성도여! 우리가 살아가면서 환란을 당할 수도 있다. 궁핍함을 경험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이러한 고난 중에 충성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내가 지금 환란을 당하지 않고 궁핍하지 않고 여유가 있다. 이러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은 내가 고통을 느낄 정도로 충성해 보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면류관이 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급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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