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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병든자와 의원 (눅 5:3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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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병우 목사 (김천제일교회)

성경에는 질병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질병에 대한 이야기의 대상이 주로 왕들이라는 것은 참으로 많은 것을 느끼게 합니다. 그래서 아사왕이 병들어 죽게 되었다든지 히스기야 왕이 병이 들어 죽게 되었다든지 아람왕 벤하닷이 병들매 라고 말씀하고 있고 이스라엘의 초대왕이었던 여호사밧의 아들이 병들어서 죽었다든지 아니면 아람나라의 군대장관 나아만이 병들어서 소녀의 말을 듣고 이스라엘을 찾아왔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병이 가진 권세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왕들은 무엇이든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한 나라를 자기 생각을 따라 움직이고 심지어 타인의 생명을 죽이기도 하고 타인의 재산을 빼앗기도 하며 전쟁을 통해서 한 나라를 정복하기도 했습니다. 왕이란 그야말로 자신이 신으로 군림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역사속에는 왕을 신으로 이해했던 시대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왕들도 이기지 못한 것이 바로 질병이었습니다. 아무리 최고 수준의 의사를 고용하고 최고의 음식을 먹으며 최고의 보살핌을 받는다고 해도 질병은 그 누구도 넘을 수 없는 장벽이었습니다. 역사적으로 무소불위의 권세를 가진 왕이 바로 진시황이었습니다. 그는 만리장성을 쌓아서 북쪽의 적들을 막았고 그가 남겨 놓은 병마용은 수도 셀 수 없는 군인과 무기로 자신을 지키고자 해도 결국 질병 앞에서 무릎을 꿇고 죽었던 것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세계를 정복했던 사람입니다. 자기가 정복했던 땅에 알렉산드리아라는 이름의 도시를 70개나 세웠던 사람입니다. 그러한 알렉산더가 33세의 젊은 나이에 무릎을 꿇은 것은 바로 질병이었습니다. 그는 인도에까지 자신의 영토를 넓혔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질병 앞에 그 젊은 나이에 자신의 생명을 내 놓아야 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세상에 사람을 살리는 의사는 없습니다. 병을 고치는 의사는 있어도 병을 없애는 의사는 없습니다. 세상에서의 의사는 하나의 그림자 일 뿐 사람을 살리고 병 자체를 없앨 수 있는 의사는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남을 치료하는 의사가 자신도 동일한 질병으로 고생하는 일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에 병이 가지고 있는 권세가 얼마나 무서우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에 진정한 의사는 단 한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은 질병을 치료하실 뿐 아니라 그 병 자체를 없앨 수 있는 분이십니다. 마태복음 8장에서 주님의 사역을 말씀하시면서 그는 병을 짊어지셨다고 했습니다. 주님이 스스로 말씀하시기를 의사로 세상에 오셨다고 말씀하시면서 질병을 치료하는 의사의 사역을 비유로 인생들을 죄에서 구원시키신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의 치유 사역을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자신이 영적으로 병든 자라는 인식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의사는 병든 자에게 필요한 사람이지 건강한 사람에게는 쓸데가 없다고 했습니다. 너무 당연한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병든 자들을 고쳐주시고 세리와 죄인들로 취급받던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그들이 주님을 향해서 너희들이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라는 공격을 받을 때에 하신 말씀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는 너희들에게는 내가 필요없는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자기 스스로 죄인인 줄 아는 이 사람들은 나를 통해서 고침을 받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즉 자신이 영적으로 죄인인 줄 아는 사람이 주님으로부터 고침을 받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병고침을 받기 위해서는 병자가 무엇보다 자신이 병들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치료는 병을 인정하는 시간부터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고치실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이 병든 자라는 인식을 가진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모든 사람을 병든 자로 봅니다. 의사 앞에는 그가 어떤 사람이든지 병자로 그 앞에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임금이든, 부자든, 박사든지, 가난한 사람이든, 무능한 사람이든지 의사 앞에서는 환자로 있는 것입니다. 의사 앞에 갈 때에는 자기 자랑하러 가는 사람이 없고 자기 명예를 뽐내러 가는 사람도 없습니다. 오직 의사 앞에서는 환자로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목사가 다른 곳에서는 목사이지마는 의사 앞에 서면 환자일 뿐인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세상 모든 사람은 다 죄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죄를 사하여 주시는 사람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회개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스스로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자는 주님의 부르심을 외면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자신이 죄인이라는 인식은 가장 중요한 순간입니다. 주님은 그 순간부터 그 사람을 고치시기 때문입니다.

2. 회개는 주님이 인생을 살리는 방법입니다.

예수님 당시 많은 종교인들이 가졌던 종교적인 의식들이 있었습니다. 금식을 하는 사람도 있고 구제를 하는 사람도 있고 정기적으로 제사를 드리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안식일도 지키고 여러 가지로 종교적 제도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실 당시 유대 사회는 종교적인 사회였습니다. 종교적인 규범이 사회질서와 관습이 되어서 사람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에게 회개가 없었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회개의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경건한 삶을 살아도 그는 주님의 치료를 받을 수 없습니다. 주님의 나라로 나아가는 사람은 회개를 통해서 주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회개는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들을 살리기 위해서 성령님이 우리 가운데서 치료하시는 현상입니다.

예수님이 사랑하신 자들을 보면 당시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았던 사람들입니다. 세리였고 창기였고 강도였습니다. 문제는 그들의 죄가 가볍다는 말이 아니라 그들은 자신의 삶에 대한 깊은 회개를 경험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이 바로 하나님 나라 백성이라고 했습니다. 특별히 십자가에서 죽어가든 두 강도에게서 나타나는 차이점은 하나는 자기의 죄를 회개하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인생을 새롭게 하시는 곳에는 회개 운동이 있었습니다. 초대교회가 출발하는 곳에 회개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베드로가 설교할 때 형제들아 어찌할꼬 하는 운동이 바로 교회 운동이요 부흥 운동이며 생명 운동이었습니다. 교회는 다른 것은 없어도 교회일 수 있지만 회개 운동이 일어나지 않으면 교회일 수 없습니다. 교회에서 회개 운동이 일어나는 것은 그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이 인생을 살리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한국교회의 부흥운동도 회개역사에서 시작이 되었습니다. 1907년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일어난 회개 운동은 한국 교회에 폭발적인 부흥 운동을 가져왔고 이 회개 운동이 전국 교회에 번져갈 때 한국 교회는 이 민족을 살리는 교회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은 내가 회개시키려 왔노라 고 했습니다. 이것이 의식종교에서 생명 종교로 거듭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자신을 고치려고 한다면 한가지 방법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깊이 인정하고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리새인과 같이 세상을 살면서 남을 고치려는 시도는 많이 합니다. 억울해서 흘리는 눈물도 많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고치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며 회개하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고치기 위해서 회개하는 자들을 통해서 세상을 바꾸시고 변화시키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먼저 자기의 눈에 들보를 뽑은 다음에 남의 눈에 티를 뽑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정말 위대한 사람은 이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를 바꾸는 사람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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