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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회복 그리고 풍요 (눅 15:11~17, 요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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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철 목사 (대구감리교회)


눅15:11~17 또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12) 그 둘째가 아비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비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13) 그 후 며칠이 못되어 둘째 아들이 재산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허비하더니 14) 다 없이한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저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15)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하나에게 붙여 사니 그가 저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16) 저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을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요 15:4~8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8)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지난 주에 목회 계획을 다녀왔습니다. 매년 11월 마지막 주에 다녀오는 정례적인 것이었는데, 큰 기대를 갖고 집을 떠났습니다. 집을 떠날 때의 자유로움과, 다시 만났을 때의 반가움이 지난 한 주 동안 제게 있었습니다.

제가 집을 떠났듯이 한 남자가 집을 떠납니다. 둘째 아들이었던 이 사람은 집을 떠나면서 자기의 상속분을 미리 달라 졸라서 가지고 떠납니다.

돈에 관심이 많고, 물질주의적이라고 이 아들을 비난할 것은 아닙니다. 언젠가는 그에게 갈 그의 몫을 달라는 것이었을 뿐입니다. 아직 때가 오지 않은 것이지, 다른 사람의 몫이 아니라 자기의 몫입니다.

그는 단순히 돈 때문이 아니라, 다른 면에서는 자아실현이라든지, 더 넒은 세상을 경험한다던지, 자립심이 강한 때문이라고 좋게 볼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자유와 스스로 자신의 삶을 살아 보려는 열정에 찬 출발을 그는 시작합니다.

증권 투자도 하고, 새로운 사업 구상 때문에 거래처 술 접대에 매일 매일 바쁜 생활을 반복합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습니다. 집을 떠나 새로운 사업 구상을 하던 그에게 불행이 닥칩니다. IMF 구제 금융을 받고, 주식값은 떨어지고, 경기는 끝없이 추락합니다. 투자한 돈을 회수하지 못하고 그는 파산했습니다.

같이 투자해서 일하자고 했던 모든 사람들이 다 떠났습니다. 노동판이라도 기웃거리지만, 노동일 해보지 않았던 그가 할 일이 없습니다. 노숙자 신세가 되어 지하도에 신문 깔아 놓고, 무료 급식하는 곳을 전전합니다.

이것이 몇 년 전부터 시작된 우리의 모습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성격은 조금 다르지만 둘째 아들의 상황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아버지를 떠나 힘찬 출발을 했지만, 아버지를 떠난 그는 모든 것을 잃어 버렸습니다.

돈을 잃고, 친구를 잃고, 삶의 의미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때 이 파산자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오릅니다.

그것은 아버지 집의 품꾼이었습니다.

집에 있는 동안 그 품꾼들은 자기를 잘 도와주고, 자기 말이면 다들 들어 주던 품꾼이었습니다.

눅15:17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집을 떠나 모두 잃어버린 이 사람, 이 사람은 아버지를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확히는 아버지의 품군이었습니다.

집을 떠난 아들이 집에 돌아올 터닝 포인트는 회개와 철이 듦이 아니라 아버지 집의 풍요를 생각함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그는 그 풍요를 따라 집에 오게 되고, 아버지의 품 안에서 비로소 그 지위와 삶의 형편과 그의 삶이 회복되었습니다.

집을 떠나고 아버지를 떠난 아들은 상실의 아픔으로 아픈 가슴을 움켜 쥘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 아들의 절망이 희망의 끝은 아니었습니다.

아버지의 풍요 속에 이 아들은 회복되어질 가능성을 이미 갖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을 되새겨 봅시다.

오늘은 대강절입니다. 대강절은 육신으로 오시는 성탄, 영광 중에 다시 오실 종말, 말씀과 영의 임재인 일상생활에 대한 강렬한 기다림의 절기입니다.

우리가 찾고 돌아갈 아버지 되신 하나님은 풍요하신 분입니다.

풍요함으로 우리를 채워 주시는 분입니다.

오늘의 두 번째 본문을 살펴보면 바로 풍요하신 주님 안에 있었을 때 우리가 누리게 될 풍요로움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 안에 있을 때 우리는 어떤 풍요를 누릴 수 있을까요?



1. 생명의 풍요



요15:2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요15: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주님 안에 있으면 생명을 얻습니다. 생명의 특징은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고 만들 수 있다는데 있습니다. 생명이 없는 그는 더 이상 새로운 생명을 만들 수 없습니다. 결국은 밖에 버리워져 불에 태움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십니까? 우리 주님 안에는 생명의 풍요가 있습니다.

요10:10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그 생명을 주어 살게 하시려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생명의 주님을 대망하시고, 영접하시고, 주님 안에서 생명의 풍요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주님 안에 있을 때 우리는 어떤 풍요를 누릴 수 있을까요?



2. 기도 응답의 풍요



수많은 문제로 우리들이 머리 아파 할 때, 주님께서는 우리의 사정을 아시고, 우리의 부르짖음에 귀 기울이십니다.

시 40:1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문제 앞에 해결책을 주십니다.

요 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주님 안에 있을 때 우리는 어떤 풍요를 누릴 수 있을까요?



3. 열매의 풍요



요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주님 안에서 우리는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풍성한 열매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풍성한 열매로 아버지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요15:8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오늘부터 주님의 오심을 대망하는 대강 절기입니다.

주님 안에서 풍요함을 누리십시오. 

“근대 선교의 아버지”로 불리는 미국의 감리교 목사인 William Carey는 말을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큰 것을 기대하라.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 큰 것을 시도하라”
「Expect the great things from God. Exercise the great things for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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