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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갈대 지팡이 (겔 29: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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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강구원 목사 (갈보리교회)


기독교는 신비적인 것으로 충만한 종교입니다. 그러나 주관적인 계시를 객관적 계시(성경)보다 앞세우는 저급한 신비주의는 아닙니다.
기독교의 계시가 인간의 주관적인 이상이나 환상에 근거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언제든지 객관적(성경)인 역사적 사실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유대인의 제사장이며 4대 선지자 중의 한사람이라고 일컫는 에스겔 선지자는 유대왕 여호야긴과 함께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갈대아 땅 그발강가에서 포로민으로서 통한의 아픔을 애써 다스리고 있을 때 하늘이 열리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계시입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을 통하여 이방국들의 심판을 예언하셨습니다.
암몬(25:1-7)과 모압(25:8-11)과 에돔(25:12-14)과 블레셋(25:15-17)과 두로(26:1-28:19)와 시돈(28:20-26)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애굽에 대하여 본문에서 말씀하고 계십니다(29:1-32:32).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애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예생활을 하던 곳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과 적극적인 관계를 가지는가 하면 급기야는 그들을 의지하는데 까지 왔습니다. 하나님은 애굽을 의지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들과 분리시켜 놓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애굽을 의지해서는 안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애굽을 가리켜서 그들은 갈대 지팡이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여기 갈대 지팡이는 나일강 둑에서 자생하는 크고 굵은 갈대입니다. 이 말씀은 이사야 36장 6절에 기록된 상한 갈대 지팡이에서 유래된 말씀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애굽은 무익할 뿐 아무 것도 아니다 라는 말씀입니다. 그들이 현재의 필요에 의해서 힘없는 상한 갈대 지팡이를 의지했다가 그 지팡이가 부러질 때 크게 다치듯이 오히려 그 피해가 크게 될 뿐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이 사실은 역사적 교훈이 되고 말았습니다. B. C 701년에 이스라엘이 앗수르의 침공을 받았을 때(사36:1, 6)나 B. C 588년에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침략을 받았을 때(렘37:5, 6) 애굽은 동맹국이었던 이스라엘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도리어 큰 치욕만 당했습니다.
왜 하나님은 애굽을 가리켜 갈대 지팡이라고 하셨습니까? 이 말씀을 본문에 의지하여 구체적으로 좀 더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Ⅰ.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영광을 애굽왕 바로에 빼앗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본문 29장 3절에 『너는 말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애굽 왕 바로야 내가 너를 대적하노라 너는 자기의 강들 중에 누운 큰 악어라 스스로 이르기를 내 이 강은 내 것이라 내가 나를 위하여 만들었다 하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여기 『악어』( , 타님)는 '기다란 뱀', 곧 '용'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악어는 성경 여러 곳에 애굽의 상징으로 쓰여졌습니다(시74:13,14; 사27:1; 51:9).
하나님은 애굽의 바로를 나일강 물 속에서 포식하는 포악한 악어로 묘사한 것입니다.
바로는 자신이 애굽의 주권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바로의 극에 달하는 교만입니다. 잠언 16장 18절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은 교만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바로를 향하여 자기의 강들 중에 누운 큰 악어라고 했습니다. 본문의 『강』들은 나일강과 그 지류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나일강은 애굽 천지의 젖줄입니다. 애굽의 농토는 이 강물로 온 지면을 적실 수 있습니다.
악어는 포악한 짐승입니다. 악어는 적 기독국가들을 상징합니다. 교만하여 하나님을 대적했던 역사상의 열강들 즉 애굽, 바벨론, 앗수르, 파사, 헬라, 로마나라들을 짐승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바로에게 자기의 통치의 영광을 갈취 당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창조와 통치 앞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바로의 교만을 대적하셨고 하나님이 대적하시는 대상은 반드시 망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교훈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대적하시겠다고 선언하면 그 대상이 누구든지 간에 하나님의 승리로 끝이 나고야 말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애굽은 이스라엘의 신뢰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이 헛되게 믿는 대상을 파괴시키므로 그것을 의지하고 있던 자들은 그와 같이 파멸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을 신뢰하고 있으니 하나님께서는 바로를 향하여 '이스라엘의 갈대 지팡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왜 애굽의 바로를 이스라엘의 갈대 지팡이라고 했습니까?

Ⅱ. 여호와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이 의지할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29장 6절에 『애굽의 모든 거민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애굽은 본래 이스라엘 족속에게 갈대 지팡이라』고 했습니다.

1) 잡으면 부러지는 지팡이라고 했습니다.
본문 29장 7절에 『그들이 너를 손으로 잡은즉 네가 부러져서…』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너를 손으로 잡으면 부러져 버린다고 했습니다.
나일강의 갈대는 속이 비어 있어서 그것을 부러뜨리면 날카로운 갈대 껍질이 지나는 사람을 상하게 합니다. 이 갈대 지팡이는 지팡이로서 그 역할을 전혀 할 수 없음을 고지하시는 말씀입니다. 더 이상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의지하도록 유인하거나 친교관계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2) 모든 어깨가 찢어지는 지팡이라고 했습니다.
본문 29장 7절에 『…그들의 모든 어깨를 찢었고…』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상한 갈대 지팡이를 의지했다가 당하는 참혹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팡이 역할은커녕 오히려 부러진 지팡이가 지나는 사람들의 어깨를 찢어놓은 고통스러운 결과만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3) 부러져서 모든 허리가 흔들리게 되는 지팡이라 고 했습니다.
본문 29장 7절에 『…너를 의지한즉 네가 부러져서 그들의 모든 허리로 흔들리게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허리는 모든 힘의 중심입니다. 허리가 흔들린다는 것은 힘의 균형을 잃어버려서 지탱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상한 갈대 지팡이에 의지하게 되면 대나무처럼 겉으로는 딱딱해 보이지만 아무 힘을 받지 못하는 갈대 지팡이가 갑자기 부러질 때 넘어져서 크게 다치게 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31장 1-3절에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뢰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앙모치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거니와 여호와께서도 지혜로우신즉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 그 말을 변치 아니하시고 일어나사 악행하는 자의 집을 치시며 행악을 돕는 자를 치시리니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 손을 드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고 했습니다.
왜 애굽의 바로를 이스라엘의 갈대 지팡이라고 했습니까?

Ⅲ. 세상 역사의 주관자가 애굽왕 바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본문 29장 19-20절에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애굽 땅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붙이리니 그가 그 무리를 옮겨가며 물건을 노략하며 빼앗아 갈 것이라 이것이 그 군대의 보수가 되리라 그들의 수고는 나를 위하여 함인즉 그 보수로 내가 애굽 땅을 그에게 주었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했습니다.
두로의 멸망은 애굽의 멸망보다 먼저 일어났습니다. 느부갓네살은 두로와의 싸움에서 너무 힘들었습니다. 느부갓네살 편에서 볼 때는 두로와의 싸움은 애굽이 두로에 베푼 협조에 대한 보복이었고 하나님이 보실 때는 느부갓네살이 13년 동안 많은 희생을 두로와의 싸움에서 보았습니다. 막상 두로를 탈취해 보았으나 그는 실망했습니다.

두로인들은 미리 배를 이용하여 재물을 멀리 보냈습니다. 빈 성읍과 성터뿐이었습니다. 느부갓네살은 기대에 못 미치는 이일로 인하여 허탈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두로를 칠 때 수고한 대가로 애굽을 준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애굽을 미워하고 바벨론을 사랑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애굽도, 바벨론도, 앗수르도, 페르샤도, 헬라도, 로마도 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의 연단을 위하여 이 땅에 크고 혹은 작게 길게 혹은 짧게 존재케 했던 도구들이며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들러리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애굽의 모든 지경과 비옥한 나일강이며 강한 군대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아무 유익을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미 이 세상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져 가고 있는 애굽입니다. 따라서 애굽은 처음부터 이스라엘이 의지할 대상이 안 되는 갈대 지팡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애굽의 바로를 이스라엘의 갈대 지팡이라고 했습니까? 애굽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오늘의 세상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만과 아집이 그들의 동반자입니다.


세상은 끝날 마지막 한 날이 정해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이 땅의 교회들이 세상의 재물을 능력으로 삼고 세상의 정치를 힘으로 삼는가 하면 급기야는 세상의 우상까지 의지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불신자들의 가치관과 같거나 비슷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대적하는 유형무형의 정체를 이 세상 성도들의 갈대 지팡이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36장 6절에 『보라 네가 애굽을 의뢰하도다 그것은 상한 갈대 지팡이와 일반이라 사람이 그것을 의지하면 손에 찔려 들어가리니 애굽 왕 바로는 그 의뢰하는 자에게 이와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세상은 부러지는 갈대 지팡이입니다. 세상은 모든 어깨가 찢어지도록 하는 갈대 지팡이입니다.

세상은 모든 허리가 흔들리게 되는 갈대 지팡이입니다. 이 세상의 제왕이 이 세상 역사를 주관할 수 없다는 하나님 자기 선언입니다. 이 세상에게 하나님의 자기 영광을 빼앗길 수 없다는 하나님 자기의지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경우에도 자기 백성들과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의 선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망 없는 쪽으로 치우치면 할 수 없이 소망 없는 자가 되고 말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환난과 곤고가 겹쳐 피곤하기 이를 데 없을지라도 갈대 지팡이를 의지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바로 앞에 행하던 기적의 지팡이(출4:2; 7:9), 아론의 싹난 생명의 지팡이(민17:8), 반석을 쳐서 생수를 솟아나게 한 능력의 지팡이(출17:5,9; 민20:11), 하나님의 대적 바로를 굴복시킨 권능의 지팡이(출8:5,16,17; 9:23; 10:13,14), 반석에서 불이 나와 제물을 사르는 축복의 지팡이, 이것이 우리의 육과 영이 의지할 우리의 지팡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의지해야 될 지팡이입니다.
예수는 우리의 구원의 지팡이입니다.
예수는 우리의 능력의 지팡이입니다.
예수는 우리의 기적의 지팡이입니다.
예수는 우리의 축복의 지팡이입니다.
진정한 우리의 지팡이 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해야 합니다. 그를 의지함으로 결국 우리의 생이 축복으로 마감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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