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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갈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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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영태 목사 (청북교회)

2004. 06. 13
사도 바울선생이 갈라디아 교회에 문안인사를 하고 있어요. 그 문안 인사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하는 것입니다. 평강은 어디서 오나요.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의 인사 가운데 빠지지 않는 문구는 주 예수그리스도안에서입니다. 예수 안에서 평강이 있고 예수 안에서 기쁨이 있고 예수 안에서  참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 이 말은 복음 안에서라는 말과 같습니다. 예수그리스도가 복음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오직예수 오직 복음입니다. 이 복음은 둘이 아니요 하나입니다. 하나님도 하나요. 그리스도도 하나요. 복음도 하나입니다. 이것이 둘이 되면 문제가 심각하지요.

이번에 34개국 대표들과의 만남을 가졌습니다. 인종도 다릅니다. 색깔도 다릅니다. 문화도 다릅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 될 수 있었던 것은 예수그리스도가 하나라는 사실입니다. 복음이 하나라는 사실입니다. 아메리칸의  복음이 다르고 아프리카의 복음이 다르고 아시아의복음이 다르다면 어떻겠습니까? 우리는 하나 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의견이 하나가 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어떤 결정도 내리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가 되었습니다. 내년이 유엔이 정한 마이크로 크레딧의 해요. 거기에 맞추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봉사하자는데 일치가 되었습니다. 프랑스의 국영방송이 한 시간짜리 다큐멘타리로 방영을 하기위하여 저희를 취재했습니다. 취재하는 기자가 그리스도의사랑을 나누는 일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복음은 하나 였기 때문입니다. 오직예수요. 오직복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본문에는 바울의 호진 꾸지람이 있습니다. 복음은 하나인데 너희가 다른복음을 전한다는 것입니다.  1:6절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다른 복음을 좇는 것을 이상히 여기노라. 도저히 정상으로 봐 줄 수 없는 것입니다.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입니다. 바울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다른 복음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뭐라 했어요. 다름 복음을 전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했습니다. 이 말은 사실입니다. 다름 복음으로는 구원을 못 받습니다. 그러니까 저주를 받은 것이지요.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주를 받을지어다. 입니다.

그러면 다름 복음이 무엇입니까?  1:11-12절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이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다른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입니다. 사람의 입맛에 맞추어 이루어진 것입니다. 사람중심으로 하는 모든 것이 다른 복음입니다.

이번에 회의에 참석하면서 우리가 깨달은 것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궁금하기도 하고 한국이사회의가 답을 받아가지고 오라는 몇 가지 사항이 있어서 질문을 한 것이 있는데 거기 모인 많은 사람들의 반응이 한국 사람들은 경제적인 사람이다 하면서 우리에게 비즈니스를 하러 왔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질문은 한주에 200달러씩 투자한 사람들에게 2%의 이자를 정확하게 주느냐 하는 것이고 주가 오르면 또는 내리면 현실 보장이 되느냐 하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랬더니 지금 하나님의 일을 하러 온 것이냐? 사람의 일을 하러 온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지금껏 한번도 그런 질문을 한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자 지불을 하지 못한 적도 없고 설사 못한다 하더라도 그게 무슨 대수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에 투자를 한 사람인데 그것으로 감사하고 기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이상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망신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사람의 일을 생각 하는도다. 하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뭐가 중요 합니까? 주님의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님의 일을 한다면 내가 손해 본들 어떻습니까? 돈을 되돌려 받지 못한들 어떻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이자 타령만 하고 있었으니 그 사람들이 바라볼 때 어떤 사람들이었겠습니까?

복음이 무엇입니까? 예수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이 이루신 십자가와 부활과 구원입니다. 모든 교회의 초점은 여기에 맞추어 져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도 여기에 맞추어져야 합니다. 예수의 형상을 닮고 예수의 마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복음으로 사는 삶입니다. 그런데 예수는 보이지 않고 사람만 보입니다. 다른 복음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 김포공항에 내리기 위하여 밤에 서울상공을 날아오다 보면 맨 보이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교회가 많다는 것은, 긍정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동네마다 교회가 세워져 있어서 어느 누구라도 마음만 먹으면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릴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또한 일단 교회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복음이 많이 전파되고 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그 모든 교회와 그 모든 사람들이 어떤 복음을 가지고 사느냐 하는 것입니다. 모두가 그리스도중심으로 하나 된 복음을 가졌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 나라가 벌써 가장 복음적이고 정직한 나라로 세계에 소문이 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것은 교회마다 교단마다 다른 복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사람중심입니다. 교회운영도 그리스도인의 생활도 마음속의 생각도 변하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그리스도가 없습니다. 마치 계란은 계란인데 무정란입니다. 씨가 없습니다.
 
갈라디아 교인들이 처음에는 복음을 잘 받아 드렸습니다. 그런데 변질이 되었습니다. 십자가 없는 복음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다가 이, 십자가 대목에서 자리를 피합니다. 그래서 사람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안지겠다는 것입니다. 부자 청년이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예수님에게 칭찬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청년의 실패가 무엇인가요. 십자가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버렸는데 나는 못 버리겠다는 것입니다. 갈라디아 교인이 이 모습입니다. 그래서 신앙이 점점 사람중심으로 돌아갔습니다. 사람을 만족시키는 예배, 사람을 기쁘게 하는 행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정책, 이 모든 것에서 복음은 변질되어 버린 것입니다. 다른 복음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철저하게 복음의 사람입니다. 그의 삶은 오직 예수 오직복음입니다. 그는 사람중심으로 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중심이요 예수그리스도 중심입니다. 1:10절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누구를 좋게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사람을 좋게 하면 사람의 종입니다. 하나님을 좋게 하면 하나님의 종입니다. 당신은 누구의 종입니까?

어느 마을에 개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모든 개는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뒤쪽 다리를 들고 소변을 봅니다. 그런데 이 개는 이상하게도 항상 앞다리를 들고 소변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우연히 동네 어른이 그 개가 오줌 누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어른은 동네 사람들을 모아 놓고 저 개가 앞다리를 들고 오줌을 눕는 것을 보니 틀림없이 미친개요 무슨 사고를 칠지 모르니 이 동네에서 당장 쫓아내시오 했습니다. 그 때 한 아낙네가 말했습니다. 이 개는 미친개가 아니라 우리 동네 목사네 개인데요. 그러면 왜 앞다리를 들고 소변을 보느냐고 묻자, 그 아낙네의 대답이 목사님이 늘 손을 들고 축도 하니까? 저 개도 주인을 닮아서 늘 앞다리를 들고 소변을 본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가슴을 찌르는 진리가 들어있습니다. 개는 한낱 짐승에 불과하지만 그러나 개는 주인을 알고, 주인을 따르고, 주인을 배우며, 주인을 닮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개는 사흘이면 주인을 안다고 하지 않습니까.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지 않습니까? 어떻게 개가 사흘 만에 주인을 알고, 주인인 서당 훈장을 따라 풍월을 읊을 수 있겠습니까? 들어가면 나오며 주인의 뒤를 따르기에, 들어가며 나오며 주인을 바라보기에, 들어가며 나오며 주인의 말을 듣기에, 들어가며 나오며 주인에게 집중되어 있기에 주인을 닮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아멘. 여기에 모인우리 주의 은총 받은 자여라 아멘, 자나 깨나 주님 생각이 나야겠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닮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1년이 지나도 3년이 가도  주인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지 못하고 있어요. 3년은 고사하고 10년이 지나도 그턱인 사람이 있어요. 3년이면 강아지도 풍월을 읊는다는데 우리는 진리의 풍월을 삶으로 읊지 못하고 있어요. 여러분과 저 모두 회개해야 할일인줄로 믿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나를 구원하시고 내 생명의 근원 되시는 내 주인을 아는 일에 개보다 못하다면, 이것은 비극입니다. 여러분과 저의 모습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이 보이기를 축원합니다.

복음을 따라 사는 길은 어떤 것입니까? 한마디로 은혜를 아는 자입니다. 자신이 행한 일만 생각하고 받은 은혜를 모르는 사람은 평생 복음을 따라 살수가 없습니다. 내가 주를 위해서 이렇게 살았는데. 내가 예수를 이렇게 믿었는데, 내가 이교회를 위해서 이렇게 했는데 하는 사람은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지요. 내가 한일이 많습니까? 주께로부터 받은 것이 많습니까? 내가 한일이 많습니까? 받은 것이 많지요. 비교 할 수가 없지요. 그런데 무엇이 자랑입니까? 배설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것을 모르니까? 복음의 삶을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참석한 분 가운데 독일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분이 계셨습니다. 다 이야기 할 수 없지만 그분의 이야기는 자기공장이 자기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왜 나에게 돈을 벌게 했느냐 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에게 크게 빚 진자라는 것입니다.

생각하면 그렇습니다. 재물이 많습니까? 재물에 빚진 자입니다. 재능이 많습니까? 재능에 빚진 자입니다. 건강이 좋습니까? 건강에 빚진 자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은 우리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생명까지도 내 것이 아닙니다. 내 것이 아닌 것을 많이 가졌으면 많이 빚 진자요. 적게 가졌으면 적게 빚진 자입니다. 그 빚을 갚는 것이 적은소자를 돌아보는 것입니다.  약한 자를 돕는 것 주님에게 하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주셨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보다 무한한 사랑을 가지셨기에 우리에게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사랑으로 우리와 함께 하셨습니다.

내가 가진 것으로 약한 자와 함께 하는 것 이것이 복음의 삶입니다. 내게 있어 복음의 삶이 무엇입니까? 믿음이 있노라고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야고보사도는 말합니다. 복음의 삶은 소극적인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벗어나 다른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사는 길은 적극적으로 복음중심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악에서 벗어나는 길은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나와 가만히 앉아 있으면 다시 세상의 유혹을 받습니다. 그러나 내가 적극적으로 그리스도중심의 삶을 살면 마귀가 유혹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이기는 삶. 열매 맺는 삶을 살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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