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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증거케 하시는 성령의 강림 (행 2:37~42 (민 11:2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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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강석공 목사(광야교회)

2004년06월13일 설교 
  자유로운 것을 표현할 때 우리는 종종 바람을 예로 듭니다. 정말 바람은 자유로운 것 같습니다. 사람들로서는 바람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잘 알 수도 없습니다. 제가 있던 캘리포니아 주에는 원래 토네이도, 우리 말로 회오리바람이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기상 이변이 세계적인 추세인 것 같습니다. 제가 그곳을 떠난 후 저희 예배당이 예상치 못했던 토네이도의 공격을 받고 지붕 전부가 날아가버렸습니다. 정말로 생각지도 못했던 바람이 아닐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일찍이 예수님도 니고데모와 대화하실 때에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요한복음 3장 8절 말씀입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다시 말해서 온전히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사람은 마치 바람처럼 자유롭다는 것입니다.

  또한 성령이 누구와 함께 역사하시든지 그것은 전적으로 그 성령의 자유에 속하는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도저히 성령을 받을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 중에 성령 충만하여 놀라운 능력을 보여 주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아마 베드로가 그런 사람들 중 대표적인 사람일 것입니다. “왜 하필이면 베드로인가?” 함께 활동하던 제자들 중에도 불만으로 생각한 제자들이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오늘 우리도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그가 과연 어떤 사람입니까? 주님 앞에서 큰소리는 쳤지만 결국 실패하지 않았습니까? 대제사장의 집 뜰에서 만난 심부름하는 여종 앞에서 쩔쩔매고 벌벌 떨었던 인물이 아닙니까? 급기야 세 차례나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던 비겁하기 짝이 없는 인물이 아닙니까? 그런 한심한 인간을 주님의 일꾼으로 삼으셨다는 것은 결코 주님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지 않습니까? 주님의 속마음을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출애굽의 위대한 지도자 모세에게도 그와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모세에게 임한 영을 여호와께서 칠십 장로에게도 임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모세에게만 임해야 한다고 믿던 사람들로서는 충격이 아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 많은 장로들에게도 하나님의 영이 임했다면 이제 과연 모세는 무엇인가?” 사람들은 지도자의 정체성 때문에 매우 혼란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진영에 머물던 두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그들이 진영에서 예언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해 둘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가 단호한 조처를 취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내 주 모세여 그들을 말리소서!” 그러자 모세가 뭐라고 대답했습니까? “네가 나를 두고 시기하느냐? 여호와께서 그의 영을 그의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가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나님의 영은 누구도 막으면 아니 됩니다. 아니 막을 수 없는 것이 성령이십니다. 언제 어디서 그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은 우리의 삶의 현장으로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때때로 우리는 자신을 하나님과 도무지 사귈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과거와 현재의 우리의 삶의 모습을 살펴볼 때 하나님 앞에서 너무도 부끄러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받아 주시지 않을 것이라고 미리 짐작하고 그 하나님 앞에서 애써 등을 돌리게 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를 향해서 팔을 활짝 벌리고 계신 하나님을 외면한채...

  그 성령이 사람을 변화시키십니다. 베드로도 생각이 많았을 것입니다. 주님을 모른다고 저주하고 맹세하며 부인했던 자기 자신에 대해서 얼마나 부끄럽게 생각했겠습니까? 그의 성격으로 볼 때 아마 죽을 때까지 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가 어떤 모습으로 바뀌었습니까? 그에게 성령이 임하자 더 이상 과거를 부끄러워하며 스스로를 자책하지 않았습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향해서 엄하게 꾸짖었습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요즘 유행하는 말로 “정말 대단해요!“입니다. 어찌 보면 참 뻔뻔한 것 같습니다. 그를 아는 사람들에게 당혹감을 안겨 줄 수도 있는 그의 변화는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서는 달리 설명할 방도가 없습니다. 어찌 보면 그가 사람들에게 그토록 큰소리로 외쳤던 주문 사항은 사실 베드로 자신에게 해당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그렇게 담대하게 외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이미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그 과정을 통과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성령은 변화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여호와께서 그의 영을 그의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가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한 말을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가 빠짐없이 변화되었으면 참 좋겠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바뀌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찬송가 405장 "Amazing Grace" 를 작사한 죤 뉴톤은 많은 찬송시를 쓴 사람입니다. 보통 사람의 눈으로 볼 때 그는 틀림없이 악당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문제아였습니다. 종교와 신앙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런 그가 젊은 시절에 생명을 잃어버릴 뻔한 위기를 모면하고 그 일을 계기로 신앙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는 잠시 경건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는 또 다시 방탕한 생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 후 오래 동안 방황하던 그는 노예선의 선장이 되어 노예를 사고 파는 일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큰 풍랑을 만나 죽을 뻔 했다가 간신히 살아남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는 완전히 변했습니다. 그는 스스로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변화에는 많은 시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역사하시면 결국에는 변화될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변화시키실 수 있습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이 마음이 찔려서 물었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 할꼬?” 성령에 의해서 변화되어야 할 사람은 완벽하고 온전한 사람이 아닙니다. 죄 때문에 마음이 찔리는 사람입니다. 그 옛날 다윗처럼 상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사람에게 성령은 오셔서 변화의 선물을 주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령이 우리를 변화시키시는 까닭은 과연 무엇 때문일까요? 왜 우리를 변화시키시느냐는 말입니다. 그 대답은 오직 우리로 하여금 증인이 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시인하게 하시기 위해서 성령이 우리를 변화시키신다는 말입니다.

  오순절 사건에는 베드로라는 주연도 있지만 수많은 조연들도 등장합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증인으로서 크고 작은 역할을 잘 감당한 사람들입니다. 비록 직접 복음을 선포하지는 않았지만 아주 다양한 방식으로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가르침을 통해서, 교제를 통해서, 기도를 통해서, 삶의 모습을 통해서, 특히 믿음 생활의 본을 통해서 그들은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와 같이 다양한 복음 증거 방식을 통해서 증인으로서의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보내심을 받은 증인입니다. 보내심을 받는다는 것은 매우 부담스러운 일인 것이 사실입니다. 보내신 분을 그대로 드러내야 하는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사람들 앞에서 어떻게 말하고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고 걱정합니다. 그러나 그런 쓸데없는 걱정은 더 이상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말해야 할 바로 그것을 바로 그 때 거기서 성령이 친히 가르쳐 주실 것이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눅 12:11~12 참고)

  독일 어느 수도원에 한 수도사가 있었는데 열심히 기도하던 중에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그는 기쁜 나머지 다짜고짜 예수님께 부탁했습니다. 수도원 옆에 있는 동네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선물을 좀 주실 것을...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이미 그들에게 선물을 줬단다.” 그 수도사가 다시 말했습니다. “방금 그들에게 음식을 갖다 주고 왔는데 아무 선물도 없던데요?” 그러자 예수님께서 빙그레 웃으시면서 대답하셨습니다. “네가 바로 그 선물이란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 자신을 한 번 점검해 봅시다. 혹시 사람들이 우리가 예수쟁이라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기를 바라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 세상 사람들과 아무 거리낌 없이 어울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성령 충만한 복음의 증인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지 못한 것입니다. 이제부터라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고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아울러 이웃을 사랑하고 그 이웃의 아픔과 슬픔을 구체적으로 함께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가난한 이웃, 병든 이웃, 소외된 이웃에게 나 자신의 존재함 그 자체가 하늘의 선물이 될 수 있어야 하겠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내게 임한 성령의 지배를 온전히 받는 증인의 삶인 것입니다! 받은 바 은혜에 감사하며 삶 전체로 구원의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참으로 충성스러운 복음의 증인으로 살고 또 기꺼이 죽을 수 있는 여러분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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