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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사람처럼 살라 (왕하 6: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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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광일 목사 (벧엘감리교회)

헬렌켈러는 태어나서 19개월 되던 때 열병을 앓은 후, 소경․귀머거리․벙어리가 되었습니다. 7세 때부터 가정교사 설리번에게 교육을 받게 됩니다. 세계최초의 맹,농아자로서 하버드대학교를 우등생으로 졸업하게 됩니다. 한번은 헬렌켈러 여사가 영국 런던의 어떤 귀족 집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헬렌켈러가 갑자기 주인에게 말했습니다. "댁에 지금 일하는 두 여자가 있는데 그 중 한 사람은 마음이 괴로운 모양이니 곧 불러 주십시오" 주인이 그럴 리가 없다면서 두 사람을 불렀습니다. 그때 한 여자가 눈물을 흘리면서 말합니다. "시골에 계신 어머니께서 병들어 누우셨다는 전보가 왔습니다. 귀한 손님이 오셨기에 손님이 가신 후에 어머니께 가려고 했습니다." 헬렌켈러는 소경이기에 눈으로 볼 수는 없었으나 느낌을 통해 그 여자의 마음을 본 것입니다. 헬렌켈러는 미술품도 손으로 만져보면 그 모양과 색깔을 알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놀라운 영감입니다.

영감이란 하나님의 호흡이 닿은 것, 하나님의 숨결이 마음에 감동되는 것, 즉 하나님의 숨결인 르하우와의 접촉을 말합니다. 제자 엘리사는 스승인 엘리야의 승천시에 갑절의 영감 얻기를 간구하였습니다. 그후 얻게 된 영감은 그 능력의 표징이 정말 두 배로 나타났습니다. 엘리야가 여섯 번의 능력을 행하였다면 제자인 엘리사에겐 열 세 번이나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르하우는 생명의 원리입니다. 능력을 주시며, 일으켜 세웁니다. 이 르하우에 감동되면 능력이 나타납니다. 남들과 다르게 사는 탁월함이 나타납니다.

오늘은 평신도주일입니다. 평신도라는 말은 영어로 layman입니다. lay는 헬라어 laicos에서 나온 말로 어원은 "하나님의 백성"을 뜻합니다. 보통은 직분을 가지지 않은 교인을 평신도라 부릅니다만 넓은 의미에서는 목회자 이외의 성도 전체를 평신도라고 합니다. 과거에는 목회자 중심으로 모든 것이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사회가 다양화되고 세계화되어 가는 상황으로 볼 때 목회자 혼자 모든 것을 한다는 것이 대단히 어렵게 되었습니다. 평신도는 광범위한 삶의 현장에서 다양한 직종을 가지고 일하며 많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렇게 사회 곳곳에 흩어져서 삶의 모습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팎에서 평신도의 역할은 지대합니다. 그러므로 평신도가 사회 구석구석에서 제대로 하나님의 사람답게 산다면 사회가 변화될 것이고 국가와 세계가 변할 것입니다. 교회의 성장에도 평신도의 역할이 소중하게 여겨지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진정한 평신도는 하나님의 사람처럼 살아야 합니다. 본문의 엘리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갑절의 영감을 소유한 사람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들도 엘리사처럼 갑절의 영감을 하나님께 간구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영감 있는 하나님의 사람처럼 사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떤 모습을 보이며 살아가게 됩니까?

첫째, 용기를 주는 탁월한 말의 소유자로 살아갑니다

유고에서 신부가 성찬예식을 거행했습니다. 그런데 포도주를 담은 그릇을 들고 시중을 들던 소년이 그만 실수 하는 바람에 포도주 그릇이 땅에 떨어져 박살이 났습니다. 신부가 어떻게 화가 나는지“당장 나가지 못해!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말어”라고 심히 책망을 했습니다. 그 말 한마디에 소년이 나가 버리고 교회와 영원히 등지고 말았습니다. 나중에는 완전히 무신론자가 되었습니다. 그 소년이 유고슬라비아의 티토 대통령입니다. 신부가 되려고 했던 소년이 신부의 말 한마디에 무신론자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다른 곳에서도 신부가 성례를 거행하고 있는데 역시 돕고 있던 소년이 그만 실수하는 바람에 포도주 그릇을 떨어뜨려 깨쳐 버립니다. 그 때 성찬을 집례하던 신부가 안절부절하며 어쩔 줄 몰라하는 소년에게,“너 이다음에 훌륭한 신부가 되겠다”는 위로의 말을 해 줍니다. 그 소년이 그 말에 위로를 받고 감격을 하여 유명한 추기경이 되었습니다. 똑같은 실수가 아닙니까? 신부의 말 한마디에 이런 엄청난 차이가 난 것입니다. 남에게 용기를 주는 말을 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탄식하며 절망하는 사환을 향해 엘리사는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저와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고 말합니다. 엘리사는 ‘두려워하지 말라’ 는 탁월한 용기의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이 순간에도 하나님이 나를 지키시고,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시고,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나를 승리케 하신다는 그 믿음 가질 때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불안의 요소들과 두려운 요소들을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육신의 눈으로는 아람군대를 보기에 사환은 절망의 말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를 바라보는 엘리사는 탁월한 말을 합니다. 영감을 지닌 자가 되면,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남이 못하는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영감이 없는 자는 육신의 눈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러나 영감이 임한 자에겐 영의 세계가 보이기에 탁월한 말을 하는 언어의 소유자가 되는 것입니다. 영감을 받은 자는 임종시에도 은혜로운 말을 하며 삶을 마치게 됩니다.

둘째, 영적인 세계를 남에게 보여주는 탁월한 기도의 사람입니다

미국의 신학자 R. A. 토레이 박사는 “바쁘다고 기도를 못하면, 기도를 안한 만큼 손해를 본다”고 말했습니다. 기도를 안하면 안한 것만큼 손해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는 당시 동전에 다른 황제들이 서 있는 모습으로 새겨진 것을 보고, 그것을 신에게 무릎 꿇고 있는 모습으로 바꾸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이유를 “그것이 내가 승리한 방법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콘스탄티누스 1세는 전쟁하러 나가기 전에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나가서 싸워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는 그때서부터 로마제국을 기독교 국가로 바꾸고 국가적으로도 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서 우리 운명이 달라집니다. 기도는 우리 인생의 전환점이 됩니다.

엘리사는 기도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세계를 바라보는 눈이 있었습니다. 영적인 것을 분별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과거나 지금이나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들을 통해 일하시고 역사 하십니다. 엘리사는 믿음의 눈으로 아람군대를 겹겹이 포위하고 있는 하나님의 군대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육신의 눈만 가진 게하시 종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 저 두려워하는 종 게하시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들의 탁월한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여호와께서 그 종의 눈을 여시매, 저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게하시는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됩니다. 육신의 눈으로만 아람 군대에게 포위된 것을 보고 나서 죽게 되었다고 말하였지만, 이제는 그도 영안이 열려 하나님의 군사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지금 여러분을 포위하고, 억누르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무엇 때문에 고민하고 있으십니까? 물질, 건강, 자녀, 사업 때문에 염려하고 걱정하십니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어려운 시험을 피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십니다. 어려움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답을 주십니다. 길을 보여주십니다. 엘리사는 탁월한 기도의 사람입니다. 자기 스스로도 하나님의 군대가 도단성을 지키는 것을 보는 사람이었지만 남의 눈을 열어서 신령한 세계를 보게 하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기도로 영력을 얻어 믿음이 부족한 사람들에게도 영적인 세계를 보여주며 안내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 선포한대로 이루어지는 탁월한 권세를 가진 사람입니다

사람의 권위는 말로서 끝나지 않고 말 한대로 이루어질 때 세워지게 됩니다. 권위가 세워지면 권세가 주어집니다. 그럴듯하지만 말로서 그치고 말면 거기에는 권세가 따르지 않습니다.
세계를 지배했던 알렉산더 대왕은 넓은 영토를 차지하고 세계 곳곳에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를 건설한 그만큼 위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알렉산더 대왕이 지휘하는 병사 가운데 겁쟁이 병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이름도 알렉산더였습니다. 하루는 알렉산더 대왕이 이 알렉산더라는 겁쟁이 병사를 앞에 놓고 책망을 합니다. "전쟁에서 두려움을 버리고 용감하던지 아니면 알렉산더라는 이름을 버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를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사실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믿는 자에게 따르는 권세도 주셨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엘리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권세를 누린 자였습니다. 엘리사는 아람 사람이 내려오는 것을 보고 왕하6:18에서 이렇게 외칩니다. "원컨대 저 무리의 눈을 어둡게 하옵소서". 그랬더니 엘리사의 말대로 그들의 눈을 어둡게 하셨고 아람 군대가 모두 길을 찾지 못하고 도단 성도 찾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엘리사의 인도를 받아 사마리아에 들어가게 되고 이스라엘 군대의 공격을 당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눈을 어둡게 하옵소서' 외친 그대로 보지 못하게 된 이 사건은 아람 나라 군대로 하여금 다시는 이스라엘을 엿보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엘리사의 존재는 더욱 두려운 존재가 되고 엘리사란 이름이 이스라엘을 지키는 방패가 되었습니다.
믿는 자의 최고 보화는 무엇입니까? 바로 영감입니다. 영감이 주어지면 하나님의 별 볼일 없는 사람도 뛰어나게 됩니다. 열등감 가진 사람도, 자신감이 없는 사람도 모두 다 탁월한 권세의 사람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모든 것을 초월하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부흥하고 성장하려면 무엇인가 탁월함이 있어야 합니다. 영감이 충만한 심령이 되시기 바랍니다.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성령의 사람으로 끝까지 세워지기 바랍니다.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남이 듣지 못하는 것 듣고 남의 시야를 열어 보게 하는 갑절의 영감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과학자에게 스쳐 지나가는 영감이 전기와 전화를 만들어내고 헨델에게 스쳐 지나가는 음악적 영감이 메시야란 대곡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답게 거룩하고 바르게 살며 탁월하게 서려면 하나님의 영감으로 인도함 받아야 합니다.
우리 교회를 부흥시키는 사람들은 바로 여러분 평신도들입니다. 평신도가 깨어 있어야 합니다. 평신도들이 자기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성령의 영감을 소유하는 평신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성령의 영감을 통하여 탁월한 말을 하며, 탁월한 기도를 통하여, 탁월한 권세를 누리는 삶을 통하여 몸된 교회를 부흥시켜 나가는 복된 평신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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