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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완전연소 (딤후 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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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동호 목사 (높은뜻 숭의교회)

에디오피아 출신 마라톤 선수로 아베베를 어느 정도 연세가 드신 분들은 아마 기억하실 겁니다. 맨발로 마라톤에 출전하여 우승을 한 유명한 선수이고 올림픽을 2연패한 선수로 유명한 선수입니다. 아베베가 두 번째 올림픽에서도 일등으로 결승점을 통과한 후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였는데 그 때 그는 아직도 15km 정도를 더 달릴 수 있다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저는 그때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에게 실망을 하였습니다. 아베베는 유능한 마라톤 선수이기는 하지만 훌륭한 마라톤 선수는 아니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저는 마라톤 선수로서 결승점을 통과 한 이후에 더 달릴 힘을 남겨 두었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지 절대로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왜 그는 그 힘을 결승점을 통과하기 전에 다 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어렸지만 해보았습니다.

인생은 어쩌면 마라톤과도 같을지 모릅니다. 누구나 다 인생을 결승점을 향하여 달려갑니다. 그것은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저의 인생의 마라톤을 성실하게 경주하고 싶습니다. ‘몇 등을 하느냐?’도 중요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최선을 다하여 성실하게 자신의 경주를 경주하였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저의 인생의 결승점을 통과한 후 아직도 15km를 더 달릴 수 있다고 이야기하게 될까봐 두렵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살고 싶지 않습니다. 결승점을 통과하는 순간 나의 모든 힘을 다 쏟고 주저앉을 수 있기를 희망하고 기대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 ‘다 이루었다’는 말씀이 무엇보다도 부럽습니다.

저는 사람이기 때문에 예수님처럼 ‘다 이루었다’라는 말로 인생을 끝내지는 못할 것입니다. 어떻게 사람이 자기의 인생을 다 이룰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최선을 다하여 나의 힘은 다 쏟아 붓고 인생을 마쳤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하나님을 위하여 내 인생의 최선을 다 한 후 더 쏟을 힘도 능력도 재능도 재물도 없는 상태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저는 아베베처럼 15km를 더 달릴 힘을 남겨두고 인생을 끝낼까봐 두렵습니다. 그것은 참 부끄러운 일이 될 것이고 후회스러운 일이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죽은 후 쓰지 못하고 남길 부끄러운 힘들을 모으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저들은 인생의 경기가 다 끝난 후, 더 이상 달릴 기회가 없을 때 그 대 비로소 뛰려고 하는 사람들처럼 보입니다. 뛸 힘은 충분히 있지만 불행하게도 저들에게는 더 이상 뛸 기회가 없습니다. 충분히 인생을 승리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산이 잘 못되어 저들은 영원한 인생의 패배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어려서 가난해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꿈에 돈을 줍는 꿈을 자주 꾸곤 했었습니다. 길 사방에 돈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조금가면 또 돈이 있고, 조금 더 가면 또 돈이 있고 그래서 돈을 주머니 가득 주어 담곤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꿈이 깨면 너무 아쉬웠습니다. 그게 꿈이었다는 것이 아쉽기도 했지만 저의 보다 구체적인 아쉬움은 꿈속에서라도 돈을 줍기만 하지 말고 줍는 즉시 가게로 가서 주은 돈으로 그 동안 먹고 싶었던 것을 사 먹다가 깼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서 저는 드디어 꿈속에서 돈을 줍게 되면 어느 정도만 줍고 즉시 가게로 뛰곤 했습니다. 그리고는 사고 싶은 것을 사고, 먹고 싶은 것을 사서 마음껏 먹다가 꿈을 깨곤 했었습니다. 그러면 꿈이었어도 전혀 억울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 죽을 것입니다. 죽게 되면 우리는 다 꿈꾼 것 같을 것입니다. 돈도 많이 벌고, 제법 출세도 하고, 많은 재능과 능력도 갖게 되었는데, 그와 같은 것들을 줍고 모으느라고만 정신을 팔다가 정작 그것을 제대로 한번 하나님과 자신을 위하여 요긴하게 써보지도 못하고 하나님 앞에 서게 된다면 얼마나 인생이 허무하고 억울할까요?

세상에는 돈만 벌다가, 열심히 벌다가 제대로 한번 귀한 일에 써보지도 못하고 죽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세상에는 출세를 하고 권력을 얻기 위하여 죽도록 공부하고 노력만 하다가 그것을 한번 제대로 가치 있고 귀한 일에 써보지도 못하고 인생을 끝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요즘 은행에서는 역모게지론이라는 상품을 판매한다고 합니다. 집이나 재산은 있는데 막상 매달 쓸 생활비가 없는 사람들이 자기 집과 재산을 은행에 맡기고 매달 얼마만큼의 생활비를 죽을 때가지 받아쓰는 제도랍니다. 저는 상당히 일리가 있는 제도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아서는 재산을 모으느라고 쓰지 못하고 먹지 못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모으기만 할 뿐 쓸 줄을 모르기 때문에 그것을 놓지 못해 충분히 먹고 쓸 재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먹지 못하고 쓰지 못하다가 재산을 남겨 놓고 죽습니다. 세상에는 벌 줄만 알지 쓸 줄을 모르는 바보 같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저는 제가 그와 같은 사람이 될까봐 제일 두렵습니다. 그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이고 바보 같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돈을 줍기만 하다가 꿈에서 깨는 그런 삶을 절대로 살고 싶지 않습니다. 주울 만큼 주운 후에는 더 이상 줍는 욕심을 부리지 않고 주운 돈은 남김없이 다 쓰고 미련 없이, 후회 없이 인생을 끝내고 싶습니다. 저는 그것이 가장 인생을 잘 사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들 중에는 노후에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물질과 재능과 권력을 모아야 하는 사람들도 물론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줍고 버는 일보다 그 동안 줍고 번 것을 보다 가치 있는 일을 위해 써야만 하는데도 그러지 못하고 여전히 욕심 때문에 줍기만 하고 벌기만 하려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요즘 극도의 내수 불안으로 경제가 매우 어려운 상태에 있습니다. 그런데도 저축율은 31%로 요 몇 년 새 최고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돈을 쓰지 않고 무조건 저축만 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지나친 낭비만이 경제를 나쁘게 하는 줄 알았더니 지나친 저축도 경제를 나쁘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돈을 쓰지 아니하고 무조건 모으기만 하면 돈이 돌지 않아 경제가 마비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저축해 놓은 돈도 점점 가치가 떨어지게 되어 저축의 의미가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자동차를 집에 두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때가 있습니다. 교통카드를 이용해 전철을 타면 640원이면 서울 웬만 한데를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한번은 전철을 타고 한번은 택시를 탑니다. 웃으실는지 모르나 나라 경제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하는 마음으로 택시를 탑니다.

그것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저는 집에 표를 하나 만들어 놓았습니다. 수입이 얼마가 되면 얼마를 지출하겠다는 표입니다. 수입이 많아지면 지출도 많아집니다. 누진표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매달 표를 보고 계산기를 두드려 가면서 계산을 하여 표에 약속한대로 지출을 합니다. 매달 고문당하는 심정이지만 다행히 아직까지 약속을 어기지는 않았습니다. 2003년에는 세금을 제외하고도 44.5%를 지출하였습니다. 물론 그 지출은 개인적인 지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은 표와 계산기를 들고 훈련하듯 살고 있지만 머지않아 훈련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제 최종 목표는 아베베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자꾸 쓰는 훈련을 통하여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나를 통하여 이루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내 온 삶을 All In 하고 하나님 앞에 가고 싶습니다. 저는 그 힘든 마라톤 경주를 다 마치고도 15km나 더 달릴 수 있다는 부끄러운 말을 자랑처럼 하였던 아베베 같은 사람은 되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는 무슨 일에 내 삶을 걸어야 할지, 어떤 일에 내 남은 인생을 관제처럼 쏟아 부을지를 선택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위한 제 Buffet Menu를 이미 선택했습니다. 저는 제 남은 인생을 한 눈 팔지 않고, 방황하지 않고 경주마처럼 옆 눈을 가리고 그 푯대를 향하여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뛸 작정입니다. 그 일을 생각하면 아이처럼 흥분이 됩니다. 기대가 됩니다.

저는 사도바울이 빌립보서 3장 12절 이하에서 말씀하신 말씀을 이해합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 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빌 3:12-14)

저는 인생의 푯대를 정하고 방황하지 아니하고 뒤도 돌아보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바라보고 좇아가는 듯한 삶을 살았던 바울이 부럽습니다.

오늘은 우리 교회가 하나님을 위한 Buffet Menu를 정하는 날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인생을 걸고 준비해 드릴 Menu를 준비하셨습니까? 무엇을 결정해야 할지 아직 결정하지 못하신 분들이 계십니까? 상관없습니다. 교회도 이와 같은 일을 처음 하는 일이라 교인들이 선택하고 이해하기 쉽게 잘 정리를 못하는 면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또 막상 메뉴를 정하였어도 무엇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는 면도 있습니다.

저라도 이 일을 전에 해보아서 경험이 있다면 여러분을 도와 드릴 수 있을 터인데 저도 역시 이 일이 처음이라 여러분과 똑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별로 문제 될 것 없습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하나님께 드릴 메뉴를 올려드릴 마음만 갖는다면 그와 같은 일들은 점점 구체적으로 잘 정리가 될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무엇을 할 것인가도 드러나게 될 것이고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도 정리되게 될 것입니다. 교회가 시키는 일을 하려고 하시지 마시고, 여러분이 스스로 일을 찾으시고 만들어서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전과는 좀 다른 자세로 헌신하자는 것입니다. 저는 제가 하나님께 드리려고 하는 Buffet Menu를 몇 푼의 회비로 준비하려고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거기에 제 남은 인생을 걸고, 생명을 걸고 재산을 걸려고 합니다. 참 감사한 일은 그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일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을 ‘관제로 쏟아 부었다’라는 표현을 즐겨 하였습니다. 관제란 피를 쏟아 제물에 붓는 제사 입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끔찍한 표현이지만 자신의 삶을 관제로 쏟아 부을 수 있는 일을 찾은 사람은 절대로 불쌍한 사람이 아닙니다. 불행한 사람이 아닙니다.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 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 20:22-24)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
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 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아멘. (딤후 4:5-8)

고등학교 3학년 때 국어 선생님이 저희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들 소원이 뭐냐?> 개구쟁이 친구 한 놈이 대답을 하였습니다. <네 아침 먹고 자고, 점심 먹고 자고, 저녁 먹고 자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 놈들아 대학 떨어져서 사흘만 자봐라 쥐약 생각 날 꺼다.>

제가 대학엘 떨어졌습니다. 정말 사흘을 잤습니다. 아침 먹고 자고, 점심 먹고 자고, 저녁 먹고 자고... 정말 사흘이 되자 쥐약 생각이 났습니다. 할일이 없다는 것. 갈 데가 없다는 것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우리들은 어리석었던 고등학교 때 제 친구와 같이 그냥 아침 먹고 자고, 점심 먹고 자고, 저녁 먹고 자는 삶을 소원하며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편히 살면 좋고 행복할 것 같지만, 사람은 편히 산다고 행복해 지는 존재가 아닙니다. 죽을 만큼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죽을 만큼 사랑하는 일이 있을 때에만 사람은 행복해 지는 것입니다.

죽을 만큼 사랑하는 일을 찾으세요. 그리고 그 일에 인생과 생명을 거세요. 그리고 바울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관제처럼 쏟아 부어 보세요. 밤낮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만 염려하지 말고 이제는 정말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하나님의 사람다운 삶을 한번 살아보세요.

저는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정말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그런 삶을 살고 싶어서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다만 몇 사람이라도 그와 같은 뜻을 가지고 좋은 친구하며 인생을 걸고 하나님을 섬길 사람이 그리워서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런데 저도 모르는 사이에 벌써 교회가 수 천 명이 모이는 그런 교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제가 기도하고 바라는 교회는 다만 몇 사람이라도 하나님께 인생을 걸고 바울처럼 자신을 관제로 쏟아 붓는 그런 교회입니다.

사랑하는 교인 여러분, 우리 그런 교회 한번 해 보십시다. 그냥 밥이나 먹다가 죽는 것은 너무 부끄럽고 억울하지 않습니까? 돈이나 벌다가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죽는 것은 너무 바보스럽지 않습니까? 어리석은 사람들은 죽어서 너무 많은 것을 남깁니다. 죽기 전에 다 쓰고 쏟아서 남길 것이 없는 완전연소의 삶을 살다가 하나님 앞에 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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