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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가복음(27) 예수 앞에 나온 죄책감은 오히려 능력이다 (막 7:2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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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전병욱 목사 (삼일교회)

우리는 누구나 자신 안에 죄책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수로보니게 여인도 그의 딸이 귀신들린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질병에 걸린 것을 자신의 죄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욥도 자신의 육신이 병들고 고통받는 것을 자신의 죄 때문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또한 어떤 사람은 자신의 외모 때문에 죄책감과 열등감을 느낍니다. 그러나 예수님도 흠모할 것이 없다고 이사야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어떤 이는 돈이 없어 죄책감에 빠집니다. 많은 남편들이 돈이 없다는 이유로 아내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있고, 가난한 집 아이들도 돈 때문에 죄책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또한 결혼 못한 사람들은 결혼 못한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낍니다. 이러한 삶의 여러가지 죄책감과 열등감이 우리를 얽어 매고 다른 사람과 담을 쌓게 만들고 있으며, 그 결과 나를 나답지 못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자신의 문제도 아닌 가족의 문제, 주변의 문제를 나의 문제로 생각하고 그 결과 자신의 인생을 당당하게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죄책감에 빠져 있지 말고 주님께 나아가라

이렇게 죄책감과 열등감에 사로 잡혀 있는 우리들을 향해 주님은 “내게 나아오라!”고 초청하십니다. 죄책감에 빠져 있는 우리들이 예수님께 나아갈 때 도리어 능력이 됩니다.

자각된 죄책감에 대해서 예수님은 회복시키시고 치유하여 주십니다. 은폐된 죄책감은 율법으로 때리시지만 자각된 죄책감은 회복시키시고 도리어 능력을 주십니다. 오늘 부른 찬송가 205장 도 깨진 심령으로 나아올 때 예수님이 회복시켜 주심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구하시는 것은 상한 심령이십니다. 요한복음 8장 간음하다 잡힌 여인에게 예수님은 죽이라는 군중들의 외침에도 도리어 “죄없는 자가 돌로 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에게 나도 “너를 정죄치 아니하리니 다시는 간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같이 자각된 죄책감 가지고 있는 자는 정죄치 아니하시고 회복시키십니다. 예수님이 땅바닦에 쓴 글은 군중들을 향해 “너희들이 스스로는 다 의인이라 하지만 모두 똑 같은 죄인이다”고 폭로하는 글입니다.

자신의 죄를 억압하고 은폐할 때는 죄책감만 느낍니다. 은혜만 말하는 것은 복음을 반쪽만 말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죄로 떨고 있는 여인에게 필요한 것은 은혜입니다. 그러나 죄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정죄입니다. 우리가 은혜 받지 못하는 이유는 빤질빤질하고 스스로 의인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창녀 마리아는 상한 심령 그대로 예수님께 나아갔습니다. 차마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뒤로 들어 와서는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뿌리고 머리털로 닦았습니다. 여자가 상한 심령 그대로 나아왔을 때 예수님은 받으시고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인의 의로운 행위가 전파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배도 상한 심령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의 심령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한 상한 심령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부어 주십니다.


                                  주님의 은혜가 회복되면 어떻게 되는가? 

주님의 은혜가 회복되면 의가 회복됩니다. 의는 헬라어로 "디카이오스네"라고 합니다. 많은 사람은 의를 옳고 그름으로 오해합니다. 그러나 "디카이오스네" 할 때의 의의 의미는 회복된 관계를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 있어 회복되는 길은 십자가 밖에 없습니다.

종들의 특징은 무엇을 했다거나 충성, 헌신했다는 것으로 주인의 인정을 받으려 합니다. 그러나 자녀의 특징은 당당함입니다. 우리는 십일조,주일성수하는 것으로 의롭다 인정 받으려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종의 태도와 같습니다. 행위로 인정 받으려는 종과 같다는 말입니다.

“이제 종노릇 그만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라!”라고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일관되게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깨진 심령으로 하나님께 나아오면 은혜 맛봅니다. 은혜를 맛보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됩니다.

의는 관계의 회복임에도 불구하고 밤낮 자기 행위로 의를 얻으려 하는 종의 모습 되어서는 안됩니다.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다 하였습니다. 두려움은 종의 영성을 말합니다.

누구든지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예수님께 나아가면, 예수님은 그런 우리를 회복시키시고 치유시키시며 은혜 부어 주십니다. 그러면 의(rightousness)가 회복됩니다. 그 의은 관계의 회복을 말합니다. 그 관계에서는 기쁨이 있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당당함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수로보니게 여인에게 가르쳐 주시려고 한 것은 진짜 의가 무엇인지, 그리고 자녀의 영성을 가르쳐 준 것입니다. “너는 개가 아닌 하나님의 자녀니라. 그러므로 자녀로서 당당함을 가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도 수로보니게 여인과 같이 밤낮 죄와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러한 우리들에게 예수님은 다가 오셔서 내 손 잡으시며 “너는 나의 자녀라”고 이시간 말씀하고 있습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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