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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에 이끌리심을 받는 사람 (롬 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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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숨을 거두시기 직전에 '다 이루었다'는 한 마디를 남기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다 이루었다!' 저는 과거 이 말씀이 신학적으로는 이해가 되었지만 저의 내면세계와 삶 속에서는 좀처럼 와 닫지를 안았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나에게 부딪쳐와 감동을 주고 눈물을 흘리지만, 십자가 넘어에 있는 주님이 다 이루어 놓은 세계를 체험하며 증거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로마서 8장 말씀이 저를 십자가 이편의 세계에서 저편의 세계로 옮겨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이 다 이루신 영적인 축복들이 하나씩 하나씩 제게로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로마서 8장 말씀은 우리를 신앙의 갈등과 방황하는 어두움의 세계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광스러운 생명과 자유와 축복의 세계로 옮겨 놓습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축복을 누리고 싶지 않습니까? 바울이 체험한 세계, 우리 앞서간 믿음의 선배들이 체험한 영광스러운 축복의 세계가 여러분들의 세계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그리스도의 품에 의지해 있으면

7장에서 사도바울은 신앙의 대 전환점을 통과하지 못했을 때 겪었던 신앙의 갈등과 고통을 리얼하게 간증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영접한 후 하나님 앞에서 선하게 살고자 몸부림을 쳤습니다. 그런데 몸부림치면 칠 수록 악한 본성이 드러나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그는 날마다 '나는 왜 이럴까?' 나는 왜 이럴까?'를 외쳤습니다. 그는 자기와 싸우다 마침내 자기 안에 선한 것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 절망하며 부르짖었습니다. '오호라, 나는 어쩔 수 없는 비참한 인간입니다.' 바울은 절망 가운데서 비로소 자기에서 눈을 돌려 십자가에 죽으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았습니다. 여러분, 영광 중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절망 중에 있는 바울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겠습니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바울아, 내가 다 이루었노라!', '바울아, 내가 다 이루었노라!'

1절에서 바울은 지난날 자신과 같이 죄와 씨름을 하면서 절망해 있는 신앙의 후배들을 향해 힘차게 외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우리도 함께 외쳐봅시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이 매우 다양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자녀된 여러분들에게 주신 특권이 얼마나 큰가를 살펴보신적이 있습니까? 만일 여러분들이 성경을 차근차근 읽으며 하나님께서 자녀들에게 주신 특권을 살펴보기만 한다면 벅찬 감격 때문에 며칠동안은 잠을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얻게되는 가장 큰 특권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결코 정죄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국회에서는 면책특권이라고 부릅니다. 국회의원이 큰 죄를 범했어도 회기동안 국회 안에만 있으면 검찰이 그를 체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국회 밖으로 나오면 체포를 당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를 하나님은 결코 정죄하지 않으십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품에 의지하여있다' 혹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했습니다. '결코'란 '어떤 경우에도'를 의미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를 하나님은 정죄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죄하지 않으시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3절에 보면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라고 했습니다. 이 구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해서 알고 계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육신이 연약하여 하나님의 요구를 단 하나도 충족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 대해서 또 한가지를 알고 계십니다. 여러분 그것이 무엇인가 궁금하지 않습니까? 만일 여러분들이 그것을 알게 된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가슴 깊이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연약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하나님 앞에 죄와 허물진 모습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죄 있는 사람의 모습으로 보내시어 우리의 죄를 담당시키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어떤 기대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어떤 의로움도 찾지 않으십니다. 우리에게 단 한가지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항상 나의 모든 죄와 허물을 담당해 주신 예수님의 품안에 있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서있는 우리를 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전부입니다.

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말씀을 마음 깊이 영접하고 난 후부터는 내 자신에 대해서 어떤 기대도, 실망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자신에 대해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입니다. 저는 처음 예수님 안에서 자아완성의 큰 기대를 가졌습니다. 그래서 죄악된 자아가 발동을 할 때마다 크게 실망을 했습니다. 저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그분과 연합된다는 구원의 진리를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은혜로 무엇인가 선한 일을 좀 하게 되면 내가 의인이나 된 것처럼 자신에 대해서 더 큰 기대를 가졌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오는 것은 자신에 대한 엄청난 실망감이었습니다. 이렇게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며 믿음에 회의에 빠져들고 있던 저에게 주님은 나의 모든 죄와 허물을 담당해 주신 그리스도의 품안에 있을 때만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후부터는 내 자신에 대해 어떤 기대도 실망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저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이제 제법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영적인 사람으로 철이 들 때도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하나님 앞에 죄와 허물을 남기고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제가 제 자신에게 무엇이라고 말하는 줄 아십니까? '다니엘,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밖에 없지 않아, 나는 너에게 어떤 기대도 실망도 하지 않기로 했어' 그리고 나의 죄와 허물을 말없이 담당해 주시는 주님을 향해갑니다. 매번 좀 멋쩍지만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은 체 그분의 품에 그냥 안겨버립니다. 제가 주님을 의지하지 않을 때 제 스스로가 하나님 앞에서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죄와 허물을 남기는 것밖에 없습니다. 하나님도 이 사실을 저보다 더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제가 주님 앞에서 나의 반복되는 죄와 허물에 대해서 무슨 구구한 변명이 필요 있겠습니까? 그냥 민망한 심정으로 머리 한번 긁적거리고 주님의 품에 안기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것은 저는 허구한날 부끄러운 모습으로 주님께 달려드는데 주님은 단 한번도 저를 밀쳐내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어린 아이와 같은 심정으로 주님의 품에 안겨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30여 년이 넘은 지금도 변함없이 엄마가 어린아이를 끌어안아 주듯 저를 맞아주십니다.

여러분에게 간곡히 부탁을 드립니다.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이제 막 시작했든지, 아니면 5년이 되었던지, 혹은 10년 20년이 되었던지 자신에 대해서 아무런 기대도 실망도 하지 말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의 도우심이 없이 우리 스스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하나님 앞에 죄와 허물을 남기는 것뿐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깊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교회에 오랫동안 나가고 있다고 주님 안에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교회에서 직분을 섬기며 봉사하고, 말씀을 가르치고, 찬양을 잘하고 다른 사람들 보다 더 열심을 낸다고 하여 주님 안에 있는 것 같이 착각하는 분도 있습니다. 사단은 우리를 그리스도 밖으로 끌고 나간 후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있는 착각에 빠지게 합니다. 그러나 주님 안에 있다는 것은 예수님과 인격적인 관계 속에서 연합해 있는 것입니다. 또한 나의 전 인생의 죄와 허물과 약점을 젊어지신 주님과 함께 서 있는 것입니다.

이제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 봅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된 후에도 연약함 때문에 반복되는 죄와 허물과 실수를 범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죽는 순간까지도 하나님 앞에서 죄와 허물과 실수를 남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단의 유혹을 받아 세상에서도 용서를 받을 수 없는 반윤리적인 반인간적인 죄를 범할 수도 있습니다. 이같은 죄를 범할 때 세상은 우리를 비웃고 정죄할 것입니다. 또한 법에 처벌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가지 놓칠 수 없는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 모두가 우리를 향해 손가락질을 할지라도 그리스도 예수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품에 의지해 있기만 한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정죄하지 않으십니다. 간음한 여인을 정죄하지 않으시고, 악독한 세무서장 삭개오를 가슴에 품어주시고, 십자가에 달린 강도를 끌어안고 하나님 나라로 이끌어 주셨던 주님은 그 어떠한 죄인도 거부하지 않으십니다. 그리므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 예수의 품에 의지해 있는 삶의 습관을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시는 죄와 허물과 실수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의 품에 의지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경건하고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의 품에 의지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해서 큰 일을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의 품에 의지해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행하는 일들 중에서 진정 중요한 것은 어떤 경우에도 주님의 품에 의지해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품을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교회의 어린아이들을 통해서 주님의 품에 안기는 소중한 믿음을 배웁니다. 종종 엄마들과 아이들 사이에 씨름을 하는데, 엄마는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서 아이를 떼어 놓으려하면 애들은 필사적으로 엄마의 품을 떠나지 않으려고 매달립니다. 결국 필사적으로 파고드는 애들을 엄마는 다시 끌어안게 됩니다. 애들을 통해서 우리가 어떤 경우에도 십자가에서 나의 죄와 허물을 다 담당해 주신 주님의 품을 떠나지 않기 위해서 어느 정도 매달려야 하는가를 배우게 됩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날마다 주님의 품으로 더욱 깊숙이 파고 들어가야 합니다. 사단은 매우 간교합니다. 우리를 주님의 품에서 떼어놓고자 갖은 유혹을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님의 품을 떠나는 순간 사단은 우리의 연약한 약점을 향해 집중공격을 시작합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도 필사적으로 주님을 끌어안고 주님의 품에 파고들어서 주님을 의지해 있어야 합니다. 죄와 허물이 많으면 많을수록 주님의 품으로 더욱 더욱 파고들어 오직 주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품에 의지해 있는 한 그 누구도 우리를 결코 정죄할 수 없습니다.


둘째, 생명을 주는 성령의 법

2절에 참으로 놀랍고 축복된 말씀이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사도 바울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해야 하는 이유를 말해줍니다. 이 구절을 기초해서 두 가지 사실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는 인간을 지배하는 영적인 법칙입니다.
2절에서 '생명과 성령의 법'과 '죄와 사망의 법'이있다고 했습니다. 지난 강에서도 법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법(law)은 헬라어의 (nomos)인데 '법률', '룰' '법칙', '원칙' '능력' 등으로 번역할 수 있는데 법칙으로 번역하는 것이 본문의 이해를 도와 줄 수 있습니다. 우주만물에는 변할 수 없는 불변의 법칙과 정해진 룰이 있습니다. 자연의 법칙, 중력의 법칙, 운동의 법칙, 유전의 법칙, 에너지 불변의 법칙, 열역학의 법칙, 생명의 법칙 등이 존재하는데 이것들은 하나님께서 창조시에 정해둔 법칙들로서 변경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 많은 법칙들 중에서 단 하나만 변한다해도 자연세계가 엄청난 혼돈과 재앙 가운데 빠져들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연세계에 정하신 법칙들을 지킬 때 생명과 자유를 풍요로움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새는 공중에서 가장 자유롭습니다. 물고기는 물 속에서 가장 큰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 큰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 육지로 뛰어오를 때 죽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중력의 법칙을 존중하며 땅에 발을 딛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살 때가 가장 건강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늘의 새나 바다의 고기나 육지의 짐승이나 서로의 삶의 영역은 다르지만 지구권을 벗어나서는 생명을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모든 생명체에게 지구권 안에서는 생명이 유지되는 법칙이 적용됩니다. 그러나 지구권을 벗어나는 순간부터 죽음과 파멸의 법칙이 그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적용되는 법칙이 있고, 예수 그리스도 밖에 적용되는 법칙이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는 어떤 법칙이 적용된다고 했습니까? 생명을 주는 성령의 법칙이 적용된다고 했습니다. 반면 예수님 밖에서는 어떤 법칙이 적용된다고 했습니까? 죄와 사망(영원한 파멸)의 법칙이 적용됩니다. 이것은 그 어떤 상황이나 그 어떤 사람에게도 변할 수 없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입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과 죄 사망의 법은 우리가 받아들이던 받아들이지 않던 그대로 적용됩니다. 여러분, 한 가지 묻고싶습니다. 어떤 악한 죄인, 도저히 변화가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죄인이 있다고 합시다. 그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갔다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게 될까요? 그 안에 거룩한 생명이 싹트게 될까요? 아니면 전혀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까요? 그 사람이 예수님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자신도 알지 못하는 가운데 생명을 주는 성령의 법이 그 사람 안에 강력한 힘으로 작용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반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던 사람이 세상 밖으로 나온다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게 되겠습니까? 그는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죄와 사망의 법에 지배를 받아 마음에는 죄의 소욕이 끓어오르고 영혼은 점점 어두움과 두려움과 사망의 세계로 빠져들게 될 것입니다. 이같은 현상은 그 누구에게도 예외가 없이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칙과 죄와 사망의 법칙을 마음 깊이 받아들이는 것이 매우 중요함으로 다시 한번 정리해 보겠습니다. 2절을 소리내어 반복적으로 읽으며 마음에 새겨봅시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여러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을 때 어떤 법칙에 적용을 받는다고 했습니까? 생명의 성령의 법칙입니다. 그리스도 밖에 나가는 순간 어떤 법칙에 적용을 받게 됩니까? 죄와 사망의 법칙입니다. 이 영적인 법칙은 만고불변의 법칙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법칙이 무너져 내린다고 해도 이 법칙만큼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둘째는, 성령에 이끌림을 받는 자의 축복입니다.
성령님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 어떤 축복을 주신다고 했습니까? 생명을 주시는 성령님께서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신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신앙생활을 오래한 사람들도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도우심만 있다면 신앙초기 단계에 있는 분들도 아 그렇구나 하고 기뻐할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저에게 쉽게 풀이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과거 우리가 예수님 밖에 있을 때는 예수님의 생명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생명이 없는 사람들을 사망 가운데 거하는 자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사람을 나무로 비유한다면 예수님 밖에 있는 사람은 사망의 나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사망의 나무에서는 어떤 열매가 맺겠습니까? 각종 죄의 열매가 맺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 산에서 돌배나무를 가져다 정원에 심고 정성을 다 하여 가꾸었습니다. 그 나무에서 무슨 열매가 맺겠습니까? 그 나무는 10년 20년이 되어도 돌배밖에 맺을 수 없습니다. 왜냐면 나무가 본래 돌배나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밖에 있는 사람은 아무리 선하게 살고자 노력을 해도 원치 않게 죄의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나무가 본래 사망의 나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 성령님을 보내주심으로 성령의 사람이 되게하십니다. 성령의 사람을 성령의 나무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나무에는 무슨 열매가 맺겠습니까? 갖가지 생명의 열매가 맺게 됩니다. 갈5:22,23절에 보면 성령의 나무에서는 사랑과 기쁨과 평화와 오래 참음과 자비와 착함과 성실과 온유와 절제와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의 열매가 주렁주렁 맺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같은 생명의 열매를 맺는 것을 가로막을 그 떠한 법이 없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인격과 삶 가운데 아름답고 축복된 생명의 열매를 가득 맺고 싶지 않습니까? 만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넘쳐흐르는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먼저 어떤 사람이 되어야겠습니까?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거의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기까지는 하는데 성령의 사람이 되는 것에서 실패를 합니다. 실패한다기 보다는 성령의 사람이 무엇인지 조차 알지 못합니다. 여기에는 성도들을 이끌어 주는 목회자들의 죄악이 큽니다.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의 목회자들도 성령의 사람이 무엇인지 조차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교회 가운데서 사단이 가장 크게 성공한 것이 있다면 크리스천들을 성령의 사람이 되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의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4절에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구절이 쉬운성경에 쉽게 번역이 되어있습니다. "죄의 본성에 따라 살지 아니하고, 성령에 따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율법의 의로운 요구들이 완벽히 이루어졌습니다." 성령의 사람은 죄된 육신의 본성을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사는 자라고 했습니다. 성경말씀은 우리에게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녀답게 거룩한 삶을 살도록 요구합니다. 이것을 가리켜 율법의 요구라고 합니다. 우리가 성경말씀을 듣고 은혜 받은 후 그 말씀을 순종하여 살지 않으면 삶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여러분, 한 가지 묻겠습니다. 주일예배에 참석하여 말씀의 은혜를 받고 아멘! 할렐루야를 외치며 기뻐하지만 돌아가서 죄의 본성을 따라 자기욕심대로 사는 사람이 거룩한 열매를 맺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 사람은 백년을 신앙생활을 해도 결단코 거룩한 생명의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들은 바 말씀을 순종하여 살아야 생명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죄악된 본성을 지닌 우리 스스로는 연약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살고자 노력하다가 반드시 넘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성령을 따라 사는 자는 율법의 요구를 완벽하게 이룰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대할 때마다 흥분이 되고 눈물이 펑펑 쏟아집니다. 어떤 분이 저에게 과거 우리는 여러 해 동안 말씀을 공부하고 들은 말씀으로 소감을 쓰며 자신을 가르치고 몸부림쳤는데도 신앙성장의 한계를 뛰어 넘지 못했었는데 성령님을 조금 체험하게 되니까 점점 뚫리고 있다고 즐거워했습니다. 또 어떤 분은 수년 동안 답답하던 수챗구멍이 뚫리는 것 같다고 기뻐했습니다. 또 어떤 분은 자기 같이 대기만성이었던 사람이 어떻게 이처럼 변할 수 있는가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는다고 했습니다. 정말 그 사람은 지독히 인간적인 사람이었는데 제가 보아도 놀라운 거룩한 성령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또 어떤 분은 자기에게 무엇 이토록 기쁨과 평화를 주며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며 눈물을 쏟게 하는지 알 수 없다고 했습니다.

성령에 이끌림을 받는 성령의 사람은 다 그렇습니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 계시며 우리를 돕기 위해서 오신 실체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제 경험으로는 죄악된 본성의 이끌림을 따라 살지 않고 성령님의 이끌림을 받고자 도움을 청할 때 성령님은 너무너무 기뻐하십니다. 성령님은 언제, 어디서, 어떤 일에 도움을 청하던 기쁨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성령의 이끌리심을 받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최고의 법인 사랑의 계명을 넉넉히 지키며 살 수 있습니다. 성령의 이끌리심을 받을 때 우리는 원수도 사랑할 수 있게 되고, 자기를 미워하고 저주하는 사람을 위해서 축복할 수도 있게 됩니다. 성령님은 성령에 이끌리심을 받기를 갈망하는 성령의 사람들 안에 놀라운 변화를 일으키십니다. 변화를 일으키시되 확실한 변화를 일으키십니다. 성령님은 성령에 이끌리심을 받기를 갈망하는 성령의 사람들 안에 아름답고 축복된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되 넘쳐서 다른 사람들에게 흘러가기까지 맺게 하십니다. 성령의 이끌리심을 받을 때 우리는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작은 예수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성령의 사람을 보며 예수님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꿈을 실현하는 교회가 되고자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꿈을 실현시킬 수 있습니까? 성령의 이끌리심을 받을 때만이 가능합니다. 성령의 이끌리심을 받을 때 예수 그리스도를 닮을 수 있습니다. 죄악된 세상을 가슴에 끌어안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성령에 이끌리심을 받는 성령의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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