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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고전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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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근두 목사 (울산교회)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울산교회 성도 여러분, 그리고 복된 예배의 자리에 함께 나아오신 이웃 여러분, 우리는 사랑실천 50일 시리즈 여섯 번째 설교를 들을 차례입니다. 하지만 오늘 주제는 우리 모두에게 좀 어려운 주제이기도 합니다. “사랑은 오래참고, 성내지 아니하며”

여러분 가운데 지난 한 달 지내면서 한 번도 화를 내지 않고 보낸 분은 없을 것입니다. 어쩌면 여러분 가운데는 교회에 오는 차 안에서도 몇 번 화를 낸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교회 오면서 화를 내지 않기 위해서 부부가 서로 다른 차를 타고 오는 것도 방법이지만 그 방법은 주차문제를 더욱 악화시키게 될 것입니다.

사랑은 오래참고 쉽게 성내지 아니한다고 말합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힘든 상황을 견디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관계에서 힘든 것을 잘 견디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은 어려운 상황뿐 아니라 어려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오래 참게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기도했습니다. “그 영광의 힘을 좇아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고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상황의 어려움을 견디는 힘과 사람과의 관계의 어려움을 오래 참는 힘은 모두 그 영광의 힘을 좇아서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 시대는 과거 어떤 시대 보다 오래 참음이라고 하는 것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오래 참는 것을 배우는 것이 더 절실한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이전보다 훨씬 더 쉽게 화를 내고 분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든지 바로 바로 되어야 직성이 풀리는 인스턴트 시대에 오래 참는 것은 마치 시대정신을 거슬리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지금 분노와 폭력이 난무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한 때 사람들은 “화가 나면 속으로 열을 세고 너무 화가 나면 백을 헤아리라”는 충고를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시대가 흘러서 “화가 나면 넷을 세고, 더 화가 나면 욕을 하라”는 충고를 듣게 되었습니다. 갈수록 참지 못하는 세태를 보여줍니다.

혹시 나는 그렇게 화를 내지 않는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없습니까? 화를 낸다고 해서 누구나 소리치지는 않습니다. 어떤 조사에 의하면 화가 나면 큰소리를 치는 사람은 23%이고, 화가 나도 그것을 감추는 사람이 39%이며 그 상황을 피해 가는 사람은 23%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방법은 분노를 처리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대개 사람들은 어떻게 처리합니까? 화가 나면 둘 중 하나를 선택합니다. 스컹크형과 거북이형입니다. 여러분은 그 차이를 아실 것입니다. 스컹크는 상황에 부딪치면 더러운 냄새를 방사합니다. 그래서 거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알아챕니다.

그런가 하면 분위기가 좋지 못하다 싶으면 목을 안으로 쏙 넣어서 굳은 껍질 속에 들어가 버리는 그런 형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두 가지 방법 모두 좋은 방법이 못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더 나은 방법을 제시하셨습니다.

화가 나기 시작하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우리 모두가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든지 화를 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감정을 잘 다룰 필요가 있습니다. 화가 치밀 때 여러분은 어떻게 그것을 처리합니까?

사랑은 오래 참고 쉽게 화를 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고보는 충고합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약1:19)

화를 전혀 내지 않기란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쉽게 화를 내는 버릇은 고쳐야 합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성내기를 더디 하라.”고 권면합니다. 하긴 때로 화를 낼 일도 있을지 모릅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향해서 화를 내신 적이 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왜 예수께서 화를 내셨습니까? 아이들이 예수님 앞에 나오려고 하는데 “아이들은 저리가” 이렇게 했던 모양이죠? 그래서 예수께서 노하셔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어린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허락하고, 막지 말아라.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사람들의 것이다.”(막10:14)

성경은 그래서 화를 내지 말라고 하는 대신에 분노를 절제하도록 요구합니다. 쉽게 화를 내는 일을 금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쉽게 화를 내는 일을 피할 수 있을까요? 오늘 다섯 가지 방안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최근에 화를 낸 기억이 남아있는 분들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말씀이 될 것입니다.


1. 화내는 버릇을 버리십시오.

이상하게 화를 내어버릇하면 더 쉽게 화가 납니다. 마치 브레이크가 파열된 차가 내리막을 달리는 것과 같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감정에 충실해서 화가 날 때는 화를 내는 것이 현대인인양 착각합니다. 별로 중요하지 않는 일에 화를 내면 뒤에는 아주 사소한 일에도 화를 내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미련한 사람은 화를 있는 대로 다 내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화가 나도 참는다.”(잠29:11) 미련한 사람의 특징이 화를 있는 대로 다 내는 것입니다. 왜 그것이 미련합니까? 그것은 더 큰 화를 불러오기 때문입니다. 더 사태를 악화시키기 때문입니다.

원하는 대로 소리를 쳐 보십시오. 온몸이 분노로 떨게 될 것입니다. 화가 나는 대로 화를 내어 보십시오. 온 몸이 분노로 끓어오를 것입니다. 마치 분노 조립라인에서 더욱 더 발동이 걸리는 것과 같습니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잠1429) 쉽게 화를 내기 시작하면 온종일 화를 내게 될 것입니다. 정말 그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왜 화를 내는 것이 어리석은 짓입니까? 그것은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수명을 단축시키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기 때문입니다. 분노는 좋은 관계를 손상시킵니다.

“자기 성질 하나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은 성벽이 허물어져 내려앉은 성채와도 같다.”(잠25:28, 현대어성경) 성을 쌓는 것은 본래 적군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쌓는 것인데 성질을 부리기 시작하면 성벽이 무너져 내린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방어기전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화가 나면 그냥 말들이 튀어 나오죠?

뒤에 생각해보면 그 말 까지는 하지 말았어야 되는데. 후회가 됩니다. 그렇게 행동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라고 후회하게 됩니다. 자신이 그런 어리석은 짓을 했다고 믿을 수 없는 행동도 분노에 휩싸이면 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여러분이 화를 내지 않고 살수 있는 것처럼 처신하도록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엡4:26-27)는 말씀입니다.

화가 나더라도 가라앉힐 줄을 배워야 합니다. 열 받는다고 뚜껑을 다 열어 제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식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않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또 화가 나더라도 온 종일 화를 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풀어야 합니다.

부부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화를 낸 채로 잠자리에 들면 마귀와 동침하는 것과 같습니다. 화가 나서 내뱉는 말은 너무나 후회하기 좋은 말이 될 것입니다. 아무리 화가 나도 조금 자신을 다스린 다음에 말을 하십시오. 그러면 후회할 일이 줄어들 것입니다.

여러분은 계속 화를 내도록 지음 받은 존재가 아닙니다.

어쩌면 여러분 가운데는 오랫동안 쉽게 화를 내곤 하는 삶을 살아오신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단절하십시오. 사슬을 끊고 하나님의 전략을 따라 살도록 하십시오. 분노의 고리를 끊고 새로운 출발을 하십시오.


2. 좋은 관계를 갖도록 하십시오.

화내는 사람에게 매달려 살면 여러분도 화내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잠언은 이렇게 충고합니다. “화를 품는 자와 사귀지 말며 울분한 자와 동행하지 말찌니 그 행위를 본받아서 네 영혼을 올무에 빠칠까 두려움이니라“(잠22:24-25) 다른 사람의 화는 쉽게 전염되기 때문입니다.

분과 화의 핵심에는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는 감정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잘못되었다고 느끼기에 화가 나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선한 분노도 있습니다. 세상에는 정말 바로 잡아야 할 잘못들도 있습니다. 잘못은 바로 잡아져야 옳습니다.

하지만 때로 우리는 실제보다 불의를 부풀려 생각하고 자신을 지나치게 의롭게 생각해서 의분이라고 느끼나 사실은 자신의 분을 터뜨릴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사람들은 부추기기도 합니다. “가만히 있으면 안돼. 바른 말을 해야 돼” 하지만 말하는 사람의 관점에서만 바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화가 나는데 옆에서 충동질 하는 그런 사람들 곤란합니다. 성경은 그런 사람들을 주의하라고 합니다. “너는 그런 대우를 받아서는 안돼, 화가 날만도 해, 나라면 가만히 참고 있지는 않을 거야.” 이런 말들로서 우리의 화를 부추기기도 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의인의 소원은 오직 선하나 악인의 소망은 진노를 이루느니라”(잠11:23). 그렇습니다. 악한 자가 기대할 것은 진노 가운데 좌절하는 것뿐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화를 나게 만드는 사람이 가족 가운데 있으면 어떻게 하지요? 꼭 기억하실 이번 주 암송 구절이 여기 있습니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 하느니라”(잠15:1)

화가 나서 누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부드럽게 받으면, 스폰지처럼 수용하면 그 이상 올라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날카롭게 받으면 불을 지르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배워야 할 사랑스런 표현이 있습니다. “내가 잘못 한 것 같네” “내가 잘못 했을 수도 있어” 그렇게 한번 이번 주간에는 실습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말할 때 상황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관찰해 보십시오.


3. 모든 염려를 하나님께 내어맡기십시오.

우리의 염려와 걱정은 우리로 하여금 내리막길로 치닫게 만들고 바로 화를 내게 합니다. 분노와 염려는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시편 37편 8절을 보십시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시37:8)

초조와 염려는 화가 나게 만들고 우리가 걱정 때문에 분노하기도 합니다. 화가 나면 스스로 물어봅시다. “내가 걱정하는 것이 무엇이지? 염려하는 바가 무엇이지?” 여러분이 사랑하는 사람이 화를 내면 그가 염려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주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분노는 다른 사람의 책임이 아닙니다. 바로 자신의 책임입니다. 다른 사람 책임도 아니고 상황 탓도 아닙니다. 나의 책임을 알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대신에 화를 내는 순간 여러분이 그 화의 책임을 져야 합니다. 내가 내는 화에 대해서 내가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아무도 책임질 사람이 없습니다.

내가 낸 화를 내가 책임지지 아니하면 남은 생에 그 분노와 함께 살아야 합니다. 여생을 그 노예로 지내야 합니다. “네가 열 받게 했어” 하지만 열을 낸 것은 자기 자신이지 그 사람이 아니잖아요.

어떤 사람도, 어떤 상황도 우리를 화나게 만들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 자신이 우리로 하여금 화를 내게 할 뿐입니다. 화내는 것도 여러분이 선택하는 것입니다. 열 받기로 선택하든지 열 받지 않기로 택하든지 여러분에게 달린 것입니다.

여러분 스스로 책임지기로 결단하면 세상이 달라집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6,7)

무엇을 염려하는지 하나님께 그대로 아뢰십시오. 그러면 염려와 분노대신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을 체험할 것입니다. 그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감사드리면 세상이 달라질 것입니다. 감사로 아뢰면 평강을 체험할 것입니다.

4. 쉼을 누리십시오.

사소한 일에 화를 내는 빈번한 이유는 우리가 너무 지쳐있기 때문입니다. 맛있는 것을 먹고 잠을 자면서 쉴 필요가 있습니다. 이유 없이 화가 나고 가까운 사람에게 짜증을 부릴 때는 쉴 필요가 있다는 빨간불이 들어오고 있는 것입니다. 열왕기상 19장에 나오는 엘리야처럼 말입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450명의 거짓 선지자들과 싸웠습니다. 그리고 승리했습니다. 아세라 선지 400명까지 합해서 850명을 끝장을 냈습니다. 멋진 승리를 했는데 바로 뒷날 악한 임금의 악한 황후 이세벨이 말합니다. “싸움이 끝났다고 생각해서는 안돼, 너도 죽이고 말꺼야.”

한 마디 말에 신앙의 용장은 무너져 내립니다. 침체와 울분 속에서 도망갔습니다. 종일 도망가면서 스스로에게 수없이 말했을 것입니다. “불쌍한 나여” 하면서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만 남았습니다.”그러면서 로뎀 나무 아래 쓰러져 그냥 잠들었어요. 하나님 됐습니다. 내가 잘난 게 뭐 있습니까? 이만하면 되었으니 내 생명 하나님이 취해 가십시오. 그렇게 하나님 앞에 쓰러져 잠들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서 “로뎀나무 아래 누워 자더니 천사가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왕상19:5)

아주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누워서 자고 있는 엘리야에게 “일어나서 먹으라”고 하면서, 그를 깨웠습니다. 누워서 쉬고 일어나 먹는 것이 회복의 길일 때도 있습니다. 영적 침체에 대한 답이 철야기도나 금식이 아니라 좀 먹고 푹 자는 것도 그게 답일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삶에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이는 가장 중요한 일은 누워서 쉬고 일어나 먹는 것이기도 합니다.

별거 아닌 것 같지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신경질을 낼 때는 “이사람 피곤했구나” 그렇게 좀 생각을 해줘야 됩니다. 특별히 남자들은 배고프면 신경질 납니다. 그냥 초등학교 5학년 취급하듯이 ‘먹여야 되겠구나’ 싶어서 먹여서 재우면 나아지니까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화를 그렇게 쉽게 내는 것은 너무 바쁘고 지쳐서 그럴 수 있습니다. 바쁘게 산다는 것, 빠르게 걷는다는 것은 수많은 염려를 일으키고 쉽게 화를 나게 만듭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그 무엇을 우리가 하는 것보다 휴식을 취하도록 초대하십니다. 시간을 내어서 먹을 것을 싸들고 쉴만한 곳을 찾아 사라지는 것도 지혜입니다.

피곤하면 별로 대수롭지 않은 것을 두고도 다툽니다. 화장지를 어떻게 흘러내리게 하느냐를 두고도 다투게 됩니다. 아니면 와이셔츠를 다린 후에 맨 위의 단추를 잠가두느냐 열어두느냐로 의견대립을 합니다. 남자들은 바쁠 때 빨리 입기 위해서는 열어두기를 바라고 여자들은 깔끔하게 보관하기 위해 잠궈 두는 편을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휴식입니다. 둘 다 피곤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쉼을 찾아야 합니다. 서로에게 친절할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하나님, 오늘은 말을 함부로 하지 않도록 도와주셔요.” 아마 이런 기도는 언제나 우리 모두에게 정말 절실한 기도입니다.

여러분 주위에 있는 사람이 별것 아닌 일에 성을 쉽게 내면 지쳐있다고 보면 됩니다. 그럴 때는 적절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좀 속도를 떨어뜨릴 필요가 있습니다.


5. 빨리 화를 내는 것을 면하려면 기대치를 낮추어야 합니다.

우리가 화를 내는 것은 언제나 우리의 생각부터 시작합니다. 일이 어떻게 되어야 한다는 우리의 기대에서부터 출발합니다. 그러므로 잠언 4장 23절은 말합니다.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

그 어떤 것보다 생각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것은 생각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엔 지켜야 할 것도 많지만 그 무엇보다도 여러분의 마음을 지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떻게 마음먹느냐에 따라서 어떤 삶을 사느냐로 귀착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떤 일을 두고 어떻게 되어야 한다는 기대를 합니다. 그 기대가 현실적으로 부응하지 않으면 우리는 화를 내기 쉽습니다. 부부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이렇게 배가 고파서 집에 들어가는데 가면 아내가 따뜻한 밥을 준비해놓았을 거야 하고 들어갔는데 완전히 폭격 맞은 집처럼 해놓고 상위에 먹을 거라곤 하나도 올라와 있지 않습니다. 그러면 화가 나지요. 우리는 배만 고프면 화가 나도록 하나님이 왜 우릴 그렇게 만드셨는지 모르겠어요. 그러나 그런 상황 되면 화내는 남자들에 대해서 제가 이해는 합니다. 제가 ‘이해를 한다’ 그랬지 화를 내라고 한건 아닙니다. 아내에 대해서 기대가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 내가 배가 고파 돌아가면 따뜻한 음식을 준비해 놓을 것이다. 그렇게 기대를 하고 갔으니까, 기대에 부응하지 않으니까 화가 나는거예요.

처음부터 그럴리 없지 우리 집사람은 지금쯤은 이미 완전히 집을 난장판으로 만들었을 거라고 기대를 하고 갔으면 화 낼건 없잖아요. 우리가 기대대로 안 되니까 화가 나는거예요. 그래도 남편에 대해서도 적어도 나한테 대해서 이 정도는 해줘야 될 거야라고 생각하는데 거기에 기대에 못 미치면 화가 나는 거예요. 상대방에 대한 기대가 있습니다. 자녀에게도 우리가 갖는 기대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기대가 부응하지 않으면 화를 내곤합니다.

지혜는 무얼까요? 기대치를 낮추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기대치를 갖도록 은혜 베푸시기를 처음부터 높이 잡으면 일하기 쉽지 않습니다. 갑자기 서울 올라간 아내가 전철에서 가방을 잊어버렸다고 전화를 해도 내가 “여자가 그걸 하나 못 챙겨?”그러면 화가 나는거예요. 그렇죠? “아직도 총기가 남아서 남편한테 전화연락 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이렇게 생각하면 불쌍히 여겨집니다. 토마스 아켐피스는 600년 전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당신이 원하는 대로 당신을 만들 수 없었다면 다른 사람이 당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는 것을 두고 화를 내지 마십시오.” 나도 내 마음대로 안 된다고 하면 어떻게 다른 사람이 내 마음대로 될 것을 기대하겠습니까?

성경이 어떻게 충고합니까?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빌4:8)

다른 사람에게 있는 좋은 점을 보기로, 아직도 남아있는 아름다운 것을 보기로 결심하십시오. 어떤 사람들은 장미꽃에 가시가 있다고 불평을 합니다. 그러나 가시가 있는 장미에도 아름다운 꽃이 피는 것을 인해 감사드립니다.

감사는 상황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가짐에서 결정됩니다. 여러분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중요한 것입니다. 내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하신 하나님이 날 사랑하시고 있으면 나머지 그 다음 일들이 조금 삐끗해도 그걸 가지고 화내고 신경질 내고 그럴 리가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면 나머지 관계에 있어, 일에 있어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 뚜껑을 열어 제끼도록 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누구입니까?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반포하시되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 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출34:6)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비롭고 은혜로우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 분의 자비롭고 은혜로운 모습을 반영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노하기를 더디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향해서 인자와 성실하심이 풍성하셨습니다. 여러분의 상상을 초월한 사랑으로 여러분을 사랑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아들을 내어 주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신 분이십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쉽게 화를 내지 않기 위해서는 그냥 삐끗하면 화내는 나쁜 습성을 버리고 하나님을 바라면서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합니다. 여러분 스스로의 힘으로는 안 되지만 나쁜 습성의 굴레를 하나님의 힘으로는 고칠 수 있습니다. 화를 내도록 유도하는 무리들을 떠나서 오래 참도록 돕는 사람들을 가까이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음에 염려가 있으면, 걱정이 있으면 화가 나지만 그럴 때는 하나님 앞에 다 아뢰고 그래도 생각해 보니 감사할 것이 있으면 감사하면서 아뢰면 우리 생각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평안이 우리의 삶에 찾아오는 것입니다. 삶이 아무리 빡빡해도 하나님이 아직도 나를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 우리는 여유를 가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지금도 여러분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나타낸 그 사랑으로 지금도 우리를 바라보고 계시는 아버지 이십니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이 우리의 구원이 된 것처럼 우리도 오래 참음으로 사랑을 나타내 보일 때에 그들이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그리고 쉽게 화내지 않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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