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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기, 길이 있습니다 (요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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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경택 목사 (종로교회)

며칠전 우리교회에 들어오는 입구 아치형 간판 밑에 참 의미 깊은, 감동이 스려있는 벽화 작업을 했습니다.
그 그림의 제목이 “눈물”입니다.
한 무거운 쇳덩이 같은 짐을 지고 있는 사람을 예수님의 어깨위에 올려 매고 가시는 그림입니다. 그 그림을 자세히 바라보면 예수님의 얼굴에는 한 방울 큰 눈물이 흐르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은 무거운 짐을 지고 길을 가는 나그네입니다. 그 짐은 죽음에 대한 공포와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온갖 세상의 욕심과 염려와 걱정의 짐입니다.
인간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얼마나 안간힘을 쓰는지 모릅니다.
누구도 해결해 주지 못합니다.
주님은 “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 . ” 주님의 십자가만이 해결의 방법입니다.
주님은 우리 인간의 짐을 해결 해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고 십자가에서 눈물과 피를 쏟으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눈물만이 해결의 방법이 되는 것입니다.

1. 길을 잃은 나그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는 인류 최첨단의 기술 문명의 시대입니다.
정보화 시대, 인터넷 시대입니다. 이러한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과학과 기술을 신봉하고, 이성에 의한 합리적인 사고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러한 과학시대에 점치는 집이 더 번창하고 있습니다.
최근의 통계를 보면 역술인과 무속인이 각각 10만명과 20만명을 웃돌고 영업 중인 점집이 20만개나 된다고 합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신문 광고를 보면 한번 천만원이 넘는 광고비를 들여 각 일간지에 광고 할 정도로 붐을 이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미신이라고 무시해 버릴 것 같은 과학적인 세상에서 점집을 찾는 사람들이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무당도 학문적 체계를 이뤄 박사 무당이 생겼습니다.
점쟁이도 21세기에 기술시대에 맞게 싸이버 점집이 생겼습니다. 이것이 타락한 현대 인간의 모습입니다. 이런 세태는 사람들의 마음이 그 만큼 공허하고 갈 바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기술이 진보해도 영적인 것, 신령한 것을 찾으려는 인간의 본성을 감출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무당을 찾아도 큰 무당을 찾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만물의 영장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인간은 창조자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갈망이 언제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길을 잘못 찾아서 오늘도 수 많은 사람들이 헤메이고 있는 것입니다.
바른 길을 찾지 못하면 계속 껄떡증에 걸려서 여기 저기 점쟁이를 찾게 됩니다.
예로부터 인생을 나그네길이라고 말해 왔습니다. 인생이 마치 고향을 떠나 어디론가 길을 나선 나그네의 여정과 같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나그네에게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일은 길을 찾는 것입니다.
인생 여정에 나선 사람들이 그 여정을 무사히 마치기 위해서는 올바른 길을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인생의 길을 잘못 들어서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현재 교도소에 65,000명의 사람들이 수감되어 있습니다. 매년 20만명이 교도소를 거쳐 간다고 합니다. 일명 큰집이라고 하죠.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범죄자들의 공통적인 생각은 ‘내가 길을 잘못 들었다는 것’과 그리고 ‘한번만 참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참지 못해서 죄를 범하게 된 것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길을 잘 선택하고 바른 길을 가야 합니다.
한 컴퓨터 회사가 광고를 할 때 사용했던 유명한 진돗개 이야기를 기억하십니까?
진돗개를 대구에 어떤 분이 사왔는데 주인이 한 눈 파는 사이에 개가 없었습니다. 그 진
돗개는 약700리 길이 넘는 자신이 살던 진도로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그에게는 자기가 살던 곳, 자기가 걸어 온 길을 잊지 않고 그 먼 길을 찾아간 것입니다.
작은 미물에 불과 한 개도 자기 주인집을 찾아가는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인간이 자기가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다면 개보다 나을 것이 없지 않습니까? 적어도 인간이라고 하면 우리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는 알아야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까?

길!!!
길은 인간의 삶에서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사람이 사는 곳엔 길이 생기기 마련이고, 길이 있느냐 없느냐, 어디로 뚫려있느냐에 따라 땅값도 달라집니다.
길은 진리를 의미합니다. 이 길을 도(道)라고 표현합니다.

옛 동양에서는 조문도야(朝聞道也)면, 석사가의(夕死可矣)라고 했습니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길은 아무길이 아닙니다. 미아리로 가는 길, 영등포로 가는 길이 아닙니다.
‘그 길’입니다. ‘The way’입니다.
집을 나갈 때 출발점이 있으면 목적지가 분명히 있습니다.
인생길에도 가야 할 목적지가 있습니다. 그 목적지가 어디일까요? 인간은 하나님께로부터 왔기 때문에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누구나 . . .
예수님은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6절)

인간이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는 길은 오직 한길 밖에 없는 것입니다. 행4:12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세상의 어떤 철학이나 가르침으로도 죄인을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께로 인도할 자는 없는 것입니다. 즉, 공자나 석가의 가르침은 인간적으로는 훌륭하지만 그 가르침으로도 우리의죄를 씻고 하나님께 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The way"가 아닙니다.
하나의 길, "a way" 일 뿐입니다.

성경은 오직 한 길, 예수님 이외에는 없다고 했습니다. 이 길은 좁은 길입니다.
좁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좁은 길이 생명의 길이라고 했습니다.
마7:13-14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
좁기 때문에 사람들이 찾지 않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생명이 잇고 천국이 있는 것입니다.


2. 죽음 때문에 괴로워하는 인생

오늘 사람들은 행복해 하는 것 같지만 사람들은 두려움 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왜, 두려워 하는가? 죽음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이 세상사는 동안 행복하게 잘 사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정작 더 중요한 것은 잘 죽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잘 떠나는 것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지금까지 자기가 쌓아온 모든 것을 죽음과 함께 다 잃어버리게 될까봐 하는 두려움, 살아생전 쌓아 온 공든 탑이 무너져 내릴 것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그리고 더 큰 두려움은 죽음 이후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죽고 나면 그야말로 연기처럼 사라지는 것인지, 아니면 어디로 가는 것인지, 간다면 도대체 그곳은 어디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죽음의 모습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이 됩니다.

1) 하나는 너무도 평안히 죽음을 맞는 모습입니다. 대체로 사람들은 죽을 때 얼굴에 그 모습이 나타납니다. 죽음의 두려움이 없는 사람들은 죽을 때 마치 어디로 여행을 떠나는 듯, 낮잠을 자듯 . . . 평안. . . .그런 죽음을 볼 때 무척이나 부럽습니다. 나도 이렇게 이 세상을 떠날 수 있을 까? 그렇게 떠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과 다짐을 해 봅니다.

2) 다른 하나는 너무도 두려워하며 죽음을 맞는 모습입니다. 안절부절못합니다. 죽기 싫다고 소리를 지르고, 악을 쓰다가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의 시신의 얼굴은 너무나 일그러져 있고 안쓰럽습니다. 마치 끌려가지 않을려고 애쓰는 모습을 하고 떠난 것입니다. ‘저런 모습으로 떠나지 말아야 할 켄데 . . .’이런 바램을 가지게 됩니다.
인간이 죽으면 끝납니까? 죽음이 종착역입니까? 성경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마땅한 것이요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


3. 죽음을 맞는 인생의 준비

잘 죽는 것이 복입니다. 요즘 자살이 유행병 처럼 되어 있습니다. 한국인의 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4번째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최근 10년간 연평균 자살 증가율은 1위인 것으로 집계됐다. 요즘 경찰들이 한강에 비상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어떤 날을 다섯명을 건진 날도 있다고 합니다. 한 경찰은 한 사람을 건지고 나오는데 급히 연락을 받고 또 가서 건지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지금이 얼마나 힘든가를 말해 주는 지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살하는 사람들의 죽음은 후손들에게도 수치이지만 하나님 앞에서 큰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자살은 마음에서 희망이 없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희망인데 그 희망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사단의 유혹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영이 우리에게 임하면 여러분 마음속에서 절망은 안개의 사라짐과 같이 사라지고 희망이 샘솟을 것입니다. 자살은 하나님을 향해 도전하는 죄를 범한 것입니다. 사단의 유혹에 넘어간 것입니다.
사단이 우리마음에 지금도 악한 마음, 절망의 마음을 심습니다.
사단은 우리의 마음에 악한 생각을 품게 만듭니다.
절망의 마음을 여러번 하게 되면 그것이 자연스러워집니다. 그러면 자살하게 됩니다.
도적질하려는 마음도 여러번 하게 되면 자연스러워지게 되고, 미워하는 마음도 . . 살인. .
자살도 마찬가지 입니다. ‘죽어버리고 싶다’고 자꾸 말하면 죽게 됩니다.

사단이 여러분의 마음에 어떤 악한 마음을 심으려 할 때 물리치시기를 바랍니다.
준비된 사람들은 죽음이 두렵지 않는 것입니다.
그 세계에 가는 가는 사람은 영생이 있는 사람이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달걀을 보면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유정란이고, 다른 하나는 무정란입니다.
겉으로 볼 때 아무런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암탉이 품고 21일이 지나보면 차이가 납니다. 하나는 생명으로 태어나고 하나는 썩어버립니다. 생명이 있고 없고의 차이입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은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우리 속에 영생이 준비된 사람, 영생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영생은 어떻게 준비합니까? 바로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예수를 마음속에 구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요3:16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하심이니라”

요3:36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하나님의 생명)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그렇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영생을 얻습니다. 영생이 우리 속에 있는 사람들은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전 이화여대 총장 김활란 박사는 유언하기를 “나의 장례식에는 장송곡이 아니라 신나는 행진곡을 불러달라”고 유언했습니다. 자기의 죽음이 천국으로 입성하는 승리의 길이기 때문에 축하를 받고 싶고 환송을 받고 싶어서 그렇게 유언했습니다.
얼마나 담대하고 멋있는 인생을 산 사람입니까? 예수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 속에 영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4. 인생에는 크게 두 길이 있습니다.

성경은 인간의 길이 두가지가 있는데 복 있는 사람의 길과 멸망의 길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아무리 좋은 집에서 살고, 아무리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아무리 많은 명예를 갖고 있다고 해도 그 인격이 악하고, 습관적으로 죄를 짓고, 교만이 넘쳐흘러서 오만함을 나타내며, 자기 정욕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은 멸망의 길에 선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삶을 사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복 있는 사람은 이런 길을 거부합니다. 비록 세상의 모든 재물과 명예를 준다 해도 그것이 죄의 길을 가는 것이라면 이를 단호하게 거부합니다. 이것이 복된 길을 가는 가는 사람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길을 가고 있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엇인가 많이 가지면 행복할 줄로 믿고 있습니다. 돈이 많으면 행복해 질 줄 알고 돈을 많이 벌려고 땀을 흘립니다. 지식이 많으면 행복해 질 줄 알고 열심히 공부합니다. 명예가 많으면 행복해 질 줄 알고 자기 이름을 높이기 위해 노력합니다. 권력이 많으면 행복해 질 줄 알고 정치적 노력을 기울입니다.
정말 많이 가지면 행복할까요?

구약성경 전도서를 보면 솔로몬 왕이 말년에 자손들에게 남긴 교훈에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자기가 다 가져보니 이런 것들이 정말 행복하게 해 주지 못하더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소유가 행복의 조건이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길’이라고 했습니다. 행복의 길이요, 구원의 길이요, 천국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The way . . .
혹시 지금까지 바른 길을 가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까?

서울 가는 버스를 타고 부산으로 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갈 수 있는 방법은 다시 내려서 부산가는 버스를 바꿔 타면 부산으로 갈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멸망으로 가는 버스를 탔지만 이제 내가 가는 길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내려서 구원으로, 천국으로 가는 버스를 갈아타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천국으로 가는 길은 예수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지만 우리의 죄, 잘못, 우리의 모든 연약함을 다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삼 일만에 부활하셨고 승천하셨습니다. 지금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고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또 하나님을 보내 주셨는데 성령 하나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성령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분은 비록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지만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이 사실을 믿는 사람은 구원을 받습니다. 마음에 평안을 주십니다.

찬송가487장 “죄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걱정 근심 무거운 짐 우리 주께 맡기세- 주께 고함 없는 고로 복을 얻지 못하네 사람들이 어찌 하며 아뢸 줄을 모를까”

여러분 우리 함께 우리 인생의 바른 길 되시는 예수님을 찾고 그 길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원하십니까?
오늘 이 자리에 앉으신 여러분들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가 인생의 바른길이심을 믿고 그 분을 마음에 모시기로 결심하시는 분들은 손을 들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먼저 믿었던 사람들도 . . .기도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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