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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의 교회 (마 16: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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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중표 목사 (한신교회)

사람이 행복하게 살려면 삶의 터전이 잘 갖추어져야 합니다. 첫째, 쉼터입니다. 사람들은 가정에서 쉼을 얻습니다. 지치고 피곤한 인생살이지만 가정에 돌아가면 평화를 누리고 안식을 얻습니다. 둘째, 배움터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좋은 배움터에서 많은 것을 배워 자신을 성장시킵니다. 어렸을 때는 유치원에서, 성장한 후에는 학교에서, 장성한 후에는 대학의 높은 학문까지 공부하면서 성장한다는 것은 큰 복입니다. 국내보다는 외국에 유학을 가서 유명한 석학들을 만나서 공부한다는 것은 더 큰 복입니다. 셋째, 일터입니다. 일생 동안 일터에서 자신의 일을 가지고 사는 것이 큰 복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의 삶의 터전은 일시적입니다. 나이가 들면 가정을 잃어버립니다. '가정을 잃는다'는 말은 나이가 들어서 홀로 남는 것을 말합니다. 떠나야 합니다. 언젠가는 쉼터도 떠나고, 배움터도 떠나고, 일터도 떠나야 합니다. 젊어서 잃어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가정에서 평화를 누리지 못하면 가정을 잃은 것이요, 어렸을 때 부모로부터 상처받고 자란 사람은 가정을 잃은 것입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 마지막 인생이 끝나는 날이 가까워올 때는 누구나 가정을 잃게 됩니다. 배움터도 많이 배우는 사람은 30, 40세까지도 배우지만 학교를 졸업하면 모든 배움은 끝납니다. 일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평생 일하라는 직장은 없습니다. 거의 60이 되면 직장을 잃어버립니다.

그런데 우리의 인생이 끝날 때까지 이 세 가지 삶의 터전을 이어가게 하는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내 인생이 끝나는 날까지 쉼터가 되어 주시며, 스승이 되어주시며, 보람된 사명을 부여하십니다. 우리에게 그 삶의 터전으로 주신 곳이 교회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축복하실 때 교회를 세워주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대답을 듣고 매우 흡족해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을 완벽하게 고백할 때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축복하셨습니다. "네가 복이 있도다." 그러면서 그 복의 터전을 말씀하십니다. "너는 베드로라 내가 네 위에 교회를 세우리라" 이 말은 다른말로 말하면 '교회를 세워서 네게 준다'는 것입니다.
복 가운데 최고의 복이 교회 만나는 복입니다. 교회 되는 복입니다. 가정의 복도 있어야 되고, 직장의 복도 있어야 되고, 학교의 복도 있어야 되지만 그 복 전체를 다 아울러서 함께 받을 수 있는 복된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저는 18살에 폐병이 들어서 살 길이 없었습니다. 의사는 세 가지 처방전을 내렸습니다. 첫째, 많은 영양을 섭취하십시오. 둘째, 휴양지를 찾아서 아주 편안한 데 가서 쉬십시오. 셋째, 비싼 약을 쓰십시오. 내게는 이 세 가지 중에 한 가지도 해결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때 한 친구가 "너는 살 길이 없다. 기왕에 죽을 것 예수 믿고 천당이나 가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 친구 따라 교회에 갔습니다. 첫날 교회에 갔는데 부흥사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 그때 당시에 폐병 든 나를 오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병이 전염될까봐 모두 나를 멀리했습니다. 갈 곳 없는 나에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음성은 하늘로부터 들려오는 위로의 음성이었습니다. 그날 밤에 은혜를 받고 6개월 동안 새벽마다 살려달라고 몸부림치며 눈물 뿌려 간구한 소원을 예수님께서 들으시고 나에게 생명의 양식이 되어주셨습니다. 나의 피난처가 되어주셨습니다. 휴양지가 되어주셨습니다. 생명의 약이 되어주셨습니다.

          나 이제 생명 있음은 주님의 은혜라
          저 사망 권세 이기니 큰 기쁨 넘치네

주님은 이 종에게 쉼터가 되어주셨고, 평생 배움터가 되어주셨고, 일터가 되어주셨습니다. 이 좋은 예수 만나 예수 안에서 이 교회가 나에게 주는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교회는 히브리어로 '카알'인데 '하나님의 백성들, 하나님의 총회'라는 뜻입니다.  '카알'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에클레시아'라는 말인데 이 말은 '자기 백성들, 자기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이 사람들이 바로 교회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이 반석이 뭡니까? 여기에 성서적 해석이 다양합니다.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베드로의 이름이 반석이라는 뜻입니다. 천주교에서는 반석을 베드로로 해석합니다. 그래서 베드로의 인격 위에 교회를 세워서 교황이 절대 주권을 갖는다고 말합니다. 개혁교회는 반석을 '베드로의 신앙고백'으로 해석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 위에 교회가 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이 고백을 하는 자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이 신앙고백 위에서 교회가 된 사람은 천국열쇠를 갖게 됩니다.

천국과 교회를 이렇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천국은 하나님께서 왕으로 다스리는 세계를 말하고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말합니다. 통치권의 관점에서 볼 때 천국이요, 사람의 관점에서 볼 때 교회입니다. 천국은 세계적인 관점이요, 교회는 한 사람 한 사람의 관점입니다. 그래서 복을 얘기할 때는 교회가 복을 받는 것입니다. 성도가 복을 받는 것입니다.

쉼터의 복

우리는 모두 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인생 나그네들입니다. 이 나그네들이 쉼을 얻는 곳이 교회입니다. 물론 가정에서 쉼을 얻지만 한계가 있습니다. 남편이 아내의 아픈 마음에 쉼을 줄 수 없습니다. 자녀가 부모에게서 쉼을 얻지 못합니다. 그래서 주일이면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면서 하늘의 안식을 얻는 것입니다.
예배는 영어로 'Worship'입니다. 'Worship'이라는 말은 'Worth'(최고)라는 말과 'Ship'(멤버쉽)이라는 말이 합해진 말입니다. 예배를 통해서 최고의 가치있는 분을 만난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 최고의 가치와 의미를 드린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배는 하나님께 최고의 가치를 드리는 것입니다.

세상은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수고가 옵니다. 나보다 잘나고, 똑똑하고, 잘 사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직장에 가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가중시킵니다. 그런데 교회에 오면 최고로 높은 분과 일대일로 서 있습니다. 실력으로, 학력으로, 외모로 만나지 아니하고 사랑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가정에 돌아올 때 부모를 그렇게 만나야 합니다. 공부로 만나서는 안됩니다. 부부가 만날 때도 일로 만나서는 안됩니다. 인격으로 만나야 합니다. 그때 쉼이 옵니다.
이천년 교회사에서 최고의 설교가 스펄젼은 열여섯 살 때부터 설교를 하기 시작하면서 교인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그것은 목사인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기도로 전수된 것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스펄젼이 성경을 읽을 때마다 용돈을 주었습니다. 찬송을 부를 때도 용돈을 주었습니다. 급기야는 찬송가를 다 외워서 더 이상 용돈을 줄 필요가 없을 정도까지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는 어렸을 때부터 남달랐는데 그는 설교 준비를 할 때 꼭 하나님 면전에서 했습니다. 그래서 설교준비 할 때는 아무도 만나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토요일날 설교 준비를 하는데 멀리서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사모가 목사님을 만날 수 없다고 하니까 그 친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종님이 왔다고 전해주시오." 사모님이 스펄젼 목사님에게 친구의 말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스펄젼 목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주인님을 직접 만나고 있다고 전해주시오."

다윗은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다"(시 84:10)고 했습니다. 이 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배움터의 복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 11:29).
예수님은 쉼을 얻으려면 당신에게 배우라고 초청하십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서는 끊임없이 배워 자신의 인격과 삶을 일생 동안 변화시키고 성장시킬 수 있는 무궁한 진리가 있습니다.
얼마전에 보스톤에 있는 하버드대학을 순례했는데 도서관을 순례하고 나오면서 도서관 앞에 있는 교회당에 가서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님, 이 종은 하버드도 못나왔고 외국유학도 못했습니다. 손자만이라도 이 대학을 나오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때 성령께서 이렇게 감동하셨습니다. "종아, 이 대학 못나온 것에 대하여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말아라. 이것은 사람이 세운 대학이다. 사람에게 배우는 것은 큰 것이 아니다. 나도 사람에게서 못배웠기 때문에 학력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배웠다. 종아, 나는 십자가에 죽는 하나님의 도를 배웠다.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한 것처럼 별세를 배워라."

위대한 공부는 국경을 넘어서 하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공부하는 것보다 외국에 가서 공부하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그런데 진짜 배움은 하늘 국경을 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세계를 넘는 별세공부입니다.

일터의 복

인생을 살아가면서 할 일 없는 것처럼 비참한 것이 없습니다. 늙었다고 할 일 없는 것이 아닙니다. 직장에서 물러났다고 일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위해서 일 하려고 하는 사람은 일생동안 일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면서도 강도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그의 일을 하셨습니다.

몸이 약하면 기도로 하면 됩니다. 물질이 없으면 몸으로 하면 됩니다. "목사님, 나 늙어서 일할 수 없습니다." 기도하십시오. 기도하면 됩니다. 기도할 수 없으면 우시면 됩니다. 할 수 없다는 말은 하지 마십시오. 그래서 우리는 어둠이 있는 곳에 빛을,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갈등이 있는 곳에 화해를,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베풀어 가는 삶으로 모든 일에 세상을 살리는 위대한 일꾼들이 되어야 합니다.

며칠 전에 남편 구원을 위해 기도하는 자매님이 저에게 눈물로 하소연을 해요. "목사님, 우리 남편이 이대로 안믿으면 지옥갈텐데 어떻게 해요."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도 지옥을 가시오. 부부는 한 몸이니까 남편이 지옥가면 아내도 지옥가야 됩니다. 안가면 아내가 아닙니다. 그러니 지옥을 따라가시오."  "목사님 저라도 천당가야 할 것 아닙니까"  "안됩니다. 남편 버리고 혼자 천당 가면 부부가 산 것이 아니고 남남이 산 것입니다. 남편 따라 지옥 가시렵니까 안가시렵니까"  "도저히 안되겠는데요. 혼자라도 천당 가야지"  "남편 따라 지옥에 가십시오. 그러면 주님께서 지옥에서 끌어올릴 것입니다." 이것이 살리고자 하는 믿음입니다.

성 프랜시스코는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여, 지옥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면서 제가 어찌 천국을 즐기겠습니까 주여, 저주받을 자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천국으로 보내시든지 아니시면 저를 지옥으로 보내 고통받는 자를 위로하게 하소서. 그리고 만일 그들의 고통을 덜어줄 수 없다면 나는 차라리 지옥에 남아 그들과 함께 고통을 나누겠습니다."
이것이 마지막 지옥까지 흔들어놓고자 하는, 이 세상을 살리고자 하는 성자의 마음이요, 그리스도인의 마음이요, 주님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최후의 일은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지옥에 빠져가는 수많은 생명을 건져서 하나님의 교회로, 하나님의 나라로 이끌어야 합니다. 이 중대한 일에 여러분이 참여되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복입니까 이 은혜를 모든 사람들과 함께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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