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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충성의 시금석 (계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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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익로 목사 (효민교회)

미국 몬타나주에서 농장을 경영하는 한 가정에서 예쁜 딸이 태어났습니다. 이웃집에서 이 아기의 출생을 축하하며 아기에게 선물을 했는데 뉴파운드 랜드 종자의 강아지였습니다. 아기와 강아지는 아주 좋은 친구가 되어 같이 자랐습니다. 어린 아기가 다섯 살 쯤 되었을 때 강아지는 다 자라서 몸집이 큰 개가 되었습니다.

하루는 농장 주인인 아버지가 시내로 물건을 구입하러 가면서 대문을 잠그지 않고 그냥 나갔습니다. 어린 딸은 놀다가 열린 문으로 밖을 나가게 되었습니다. 개도 자기의 어린 주인을 따라 함께 나갔습니다. 약 한 시간 후에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어린아이와 개가 없어진 것을 알고 정신없이 아기를 찾아다녔습니다.

몇 시간이 진난 후 아기를 찾게 되었습니다. 아기는 집에서 꽤 멀리 떨어진 산 속에서 찾았습니다. 아기를 보니 고단해서 그냥 스러져 잠들었는데 옷은 찢어지고 먼지가 묻은 얼굴에는 눈물자국이 있는 채로 잠이 들어 있었습니다. 개는 잠든 아기 곁에서 아기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개를 보니 몸에는 피가 많이 묻어 있었고 또 피를 흘리고 있었습니다. 틀림없이 싸웠던 것으로 여겨져 주위를 살펴보니 근처에 두 마리의 늑대가 죽어있었습니다. 이 개는 어린 주인을 살리려고 필사적으로 늑대 두 마리와 싸워 그 늑대를 죽였던 것입니다.

아기와 개를 집으로 데려왔는데 아기는 다치지 않았으나 개는 심한 중상을 입었습니다. 정성껏 치료를 했지만 그 개는 이튿날 죽고 말았습니다. 농장 주인은 그 개의 죽음을 참으로 슬퍼했습니다. 그들은 개를 위해 관을 주문하여 잘 매장했습니다. 그리고 개의 무덤 앞에 비석을 세우고 비문에 “oh, we loved him”(우리는 너를 정말로 사랑했다.)라고 썼습니다.

짐승이지만 충성된 개는 이처럼 주인의 사랑을 받을 뿐만 아니라,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에게 감동을 줍니다. 그러므로 충성하며 살아가는 것은 세상을 잘 사는 지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사랑하셔서 2004년 새해를 맞게 하셨고, 또한 우리들에게 여러 가지 직분을 주셨습니다. 직분을 주신 하나님은 본문에 말씀하시기를“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하셨습니다. 또 말씀하시기를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 4:2)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충성스러운 삶을 살아가도록 당부하셨으며, 충성된 사람에게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Ⅰ. 왜 하나님께 충성해야 할까요?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지음 받은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충성하는 것은 인간의 본분입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은 누구나 다 죄악으로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이로 인해 영원한 지옥의 형벌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우리 인간들을 구원하시고자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셨고,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담담하시고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를 믿는 자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이처럼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에베소서 1:5-6에 말씀하시기를“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물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의 마땅한 도리입니다.

미국의 흑백 갈등이 깊었을 때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기차에서 백인과 흑인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백인이 칼을 던져 흑인을 죽이려고 할 때 옆에 있던 백인 목사가 손을 들어 칼을 막아 주었습니다. 그 칼은 목사의 손에 꼽혔고 피가 낭자하게 흘렀습니다. 싸움은 멈췄고 흑인은 목사의 희생으로 생명을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고마움을 느낀 흑인은 일생동안 그 목사의 곁에서 자질구레한 일을 돕게 되었습니다. 종종 일에 싫증이 나면 흑인은 불평과 원망을 하곤 했습니다. 그때마다 목사는 칼 맞은 손을 그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면 흑인은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 손은 바로 자신의 생명을 구한 손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를 생각하면 주님의 영광을 위해 헌신하며 충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내가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충성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Ⅱ. 어떻게 충성해야 할까요?


1. 작은 일에 충성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충성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 하니라”(눅 16:10)하셨습니다. 흔히 생각하기를 작은 것은 시시하게 여기기 쉽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작은 것에 충성해야 큰 것에도 충성할 수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서 종으로 충성했더니 하나님은 그에게 애굽 총리대신의 직분을 맡기셨고 그는 그 자리에서 충성했습니다. 다윗은 목장에서 양치는 목자로 충성했습니다. 양치는 다윗의 충성스러운 모습에 대하여 성경에 기록하기를 “주의 종이 아비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에서 새끼를 움키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 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 죽였나이다.”(삼상 17:34-35)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작은 일에 충성하는 다윗에게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으로 세웠고, 다윗은 왕의 직분에 충성하므로 나라를 번창케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작은 일에 충성하는 사람에게 큰일을 맡기셨습니다.

평안북도 정주에서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는 성실한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비록 집안이 가난하여 머슴살이를 했지만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그는 매일같이 주인이 사용하는 요강을 깨끗이 닦아 놓곤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일을 성실히 감당하는 이 머슴의 자세를 유심히 지켜보던 주인은, 이 청년이 머슴살이를 하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 머슴의 학비를 담당하며 평양에 있는 숭실학교로 보내 공부를 하도록 했습니다. 그 청년은 숭실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오산학교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이 청년이 바로 산정현 교회 장로요, 민족주의자요, 독립운동가인 조만식 선생입니다. 그는 제자들이 인생의 성공비결을 물을 때면“여러분이 사회에 나가거든 요강을 닦는 사람이 되십시오.”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작은 일에 충성하는 것이 충성하는 방법입니다.


2. 어려울 때도 본분을 다하는 것이 충성입니다.

찬바람이 불며 얼어붙는 겨울이 와야 송죽의 절개를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전해지는 말에 “가정이 어려움에 처해야 어진 아내를 알 수 있으며, 나라가 어지러울 때 비로소 충신을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집니다. 평화로운 날은 모두가 충성된 성도 같아 보입니다. 모두가 착하고 진실해보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핍박을 받거나 어려운 시험이 들게 될 때 충성된 신자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습니다.

일제 치하 때, 함께 땀 흘려 교회를 세우고 함께 기도하던 같은 교회 성도였습니다. 그런데 일본의 박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어떤 성도는 순교를 각오하고 숨어 다니며 믿음을 지킵니다. 그러나 그때 어떤 교인은 일본경찰의 앞잡이가 되어 교회 대문에 함께 못을 박았습니다. 그리고 숨어있는 신자들의 위치를 일본경찰에게 밀고하므로 많은 성도들이 모진 고난을 겪어야 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가롯 유다의 행동이 이와 같습니다. 같은 제자였는데 로마군에게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안내하고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 수 있도록 입맞춤으로 신호를 보냈습니다.

이처럼 죽도록 충성함이란, 어려운 환경에 상관없이 맡은 일을 잘 감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 4:2)하셨습니다. 우리는 다 하나님의 것을 맡은 청지기입니다. 내게 재능이 있습니까? 지식이 있습니까? 재물이 있습니까? 시간과 건강이 있습니까?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청지기일 뿐입니다.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되 환경에 상관없이 충성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충성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3. 끝까지 충성해야 합니다.

잠깐 동안 충성하기란 쉽습니다. 며칠동안 충성하기란 쉽습니다. 혹은 몇 해 동안도 충성하기란 쉽습니다. 이처럼 얼마 언제까지 충성하느냐 하는 것이 충성의 시금석이 됩니다.

충성에 있어서 끝까지 충성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도중에 충성했다 할지라도 마지막에 변절하거나 배신하면 그 동안의 충성은 아무 의미가 없어지고 말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의 충성은 전혀 인정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그 예로, 예수님의 제자 가롯 유다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열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뽑을 때에는 남다른 충성심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에게 재정을 맡겼을 때에는 남다른 성실함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에게 재정을 맡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충성은 3년을 채우지 못하고 변절하여 예수님을 배신하고 했습니다. 아무도 가롯 유다의 이전에 행했던 충성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는 배신자의 대명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마지막 배신이 그가 쌓은 공적을 다 삼켜버리고 말았습니다. 충성은 끝까지 맡은 일을 잘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에 말씀하시기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하셨습니다. 즉 죽는 날까지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Ⅲ. 충성의 결과는 어떤 것일까요?


1. 내세의 영광된 상급이 있습니다.

본문에 말씀하시기를“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 하셨습니다. 이 면류관은 세상의 것처럼 쇠하지 않습니다. 영원한 영광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사도를 통해 말씀하시기를“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7-18)라고 했습니다. 충성하며 살아가는 것이 때로는 힘들고 어렵기도 하지만 이와 비교할 수 없는 하늘나라의 영광된 상급이 있습니다.

2. 이 세상에서 복을 받아 누리게 됩니다.
구원은 사람의 행함과 상관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를 믿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입니다. 그러나 세상에서의 상급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들이 행한 대로 받아 누리게 됩니다.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하셨습니다. 어떤 복을 주실까요?

1)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시편 101편 6절 말씀에“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거하게 하리니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가 나를 수종하리로다.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보다 더 큰 복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보다 더 큰 영광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은 삶의 승리자가 됩니다.

다윗의 성공의 근원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신 것입니다. 사무엘하 5장 10절 말씀에“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고 하셨습니다. 다윗은 보잘 것 없는 양치기 소년 목동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다윗을, 골리앗 장군이 감당치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다윗은 수많은 전쟁을 했으나 단 한번도 전쟁에 패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다윗이 통치한 이스라엘의 국력은 끝없이 뻗어나갔습니다.

2) 후손이 복을 받게 됩니다.
구약성경 느헤미야 9장 7절-8절에“옛적에 아브람을 택하시고 갈대아 우르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을 주시고 그 마음이 주 앞에서 충성됨을 보시고 더불어 언약을 세우사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의 땅을 그 씨에게 주리라”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충성을 보신 하나님은 그 후손에게 큰 복을 주셨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의 삶의 기회는 단1회뿐입니다. 하나님은 2004년이란 시간의 기회와 함께 여러 가지 직분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 고귀한 시간들을 우리는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본문에 말씀하시기를 “죽도록 충성하라”하셨습니다.

카나다 빅토리아 대학의 총장을 지낸바 있는 70 고령의“알 렉스 혼”씨가 해마다 여름방학이면 아마존 선교여행을 떠나는 배에 함께 승선을 했습니다. 노 교수의 건강을 염려한 제자들이 걱정을 하자 그는 말하기를“나는 낡아서 없어지기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닳아서 없어지는 삶을 살겠노라.”고 했습니다.

바울사도는 하나님을 향한 충성에 대해 맹세하기를“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고 했습니다.

우리도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충성해야 하겠습니다. 이로 인한 보람되고 복된 삶을 위해 충성해야 하겠습니다. 자녀들에게 물려줄 복된 유산을 위해 충성해야 하겠습니다. 충성하되 주님의 말씀처럼 변함없이 죽도록 충성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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