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 받습니다.(행 15:6-11)

  • 잡초 잡초
  • 358
  • 0

첨부 1


- 박충웅 목사 (대구문화교회)

오늘 이 말씀은 예루살렘 종교회의의 한 장면입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 교회에서 선교사로 안수 받습니다. 어려움을 무릅쓰고 설교했습니다. 그러나 몸이 지쳐 있었습니다. 그가운데 마음이 더 아픈일이 있었습니다. 안디옥 교회 안에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바울이 1차 전도 여행 중에 전한 내용이 있습니다. 인간은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죄를 범한 타락한 죄인입니다. 하나님께서 죄값으로 죽을 인간을 구원하실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그 아들 예수님을 인간의 죄를 위해 대신 십자가에 죽게 하신 것입니다. 그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그를 믿으면 죄 사함을 받습니다. 구원을 받습니다. 이것이 바울사도가 가르친 내용입니다. 이를 전해들은 예루살렘 사람들은 난리가 났습니다. 우리는 수천 년 모세의 율법을 지켜왔는데 바울이 율법을 무시했다는 것입니다. 믿음만 주장하는 바울의주장이 틀렸다는 것입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세계선교를 마치고 안디옥교회로 돌아 왔습니다. 그런데 안디옥교회가 술렁이고 있었습니다. 교인들이 바울을 맞는 태도가 이전과 달랐습니다. 이미 예루살렘의 유대주의자들이 안디옥교회에 와 있었습니다. 교인들에게 바람을 넣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를 믿어도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얻는다 했습니다. 예수를 믿어도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가 보낸 사람이었습니다.(갈 2:2) 그들은 안디옥에 와서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으로서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예수를 믿음으로만 구원 얻느냐?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 얻느냐? 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지금 교회 밖에서 유대인, 로마 사람들이 기독교를 핍박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외부 불신자 핍박도 무섭지요. 그러나 믿는 자 중 이런 잘못 가르치는 사람이 더 무섭습니다. 율법이 구원의 조건이 아닙니다.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 두 사람과 율법주의자들 사이에 심한 말이 오갔습니다. 언쟁과 변론이 일어났습니다. 할례 주장자들은 유대종교에 소위 높으신 분들이 벌 떼처럼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율법학자들입니다. 성경에 도를 통한 사람들입니다. 베드로 같은 무식한 고기잡이 출신의 지도자를 쉽게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할례 받았다. 예수님의 제자인 너희들도 할례를 받지 않았느냐. 이 주장에 유대인들이 동조했습니다. 그 세력은 대단했습니다. 단순한 논쟁이 아니었습니다. 대립되어 분열의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결국 할례를 주장하는 유대인 신자들과 무할례의 이방인 신자들로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사태는 이상한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이것을 안 안디옥교회는 바울과 바나바를 중심해서 예루살렘 교회에 보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각 교회를 방문했습니다.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고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때에 유대인들이 찬물을 끼얹은 꼴이었습니다. 그들은 바울 사도가 구원은 믿음으로 얻는다고 했습니다. 모세의 율법이나 할례는 구원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했습니다. 베니끼아 사마리아에 사는 사람들이 이 소식을 듣고 너무 기뻤습니다. 여러 교회가 유대인의 핍박에도 안심하고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정말 위대한 목회자 입니다. 복음의 씨만 뿌려놓고 뒤를 돌보지 않는 그런 분이 아니었습니다.

Ⅰ. 예루살렘 총회

바울 일행이 예루살렘에 도착했습니다. 그는 교회와 사도들과 장로들을 모았습니다. 할례 받지 아니한 이방인 교인도 구원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내려온 사람만 할례를 주장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바리새인들이 예수 믿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어도 자존심이 대단했습니다. 그들은 모세의 율법을 가진 긍지가 대단했습니다. 그들은 구원은 예수를 믿어도 반드시 남자는 할례를 받아야 된다고 했습니다. 율법은 사람을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길잡이일 뿐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할례와 율법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고집했습니다. 물론 바리새파 사람은 평생을 율법의 작은 부분까지 지키려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사람과 구별하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극단의 보수주의자였습니다. 다른 말로 분리주의자였습니다.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 받는다는 것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총회가 모인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유대인이 중심이었습니다. 그러니 그들의 주장이 강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잘 압니다. 그러나 이방인이 예수 믿은 사람은 성경지식이 유대인 보다 못합니다. 그러나 사도들의 가르침도 별로 효과가 없었습니다. 모세의 율법대로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 모세를 예수님과 동일시하는 꼴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유대민족 종교로 국한 시키려고 합니다. 그런 것이 아니지요. 예수님은 온 세계민족의 구세주이십니다. 그들은 아브라함도 할례를 받았다. 예수님도 할례를 받았다. 모든 유대인 남자가 다 할례를 받았다. 그러니 할례를 받아야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얼른 들어 보세요. 그럴 듯 하게 들립니다. 그래서 많은 토론을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하심이라.”(요 3:16)했습니다. 믿음으로만 구원 받습니다.

오늘 본문은 베드로의 말이 나옵니다. 베드로는 한참 등장되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 총회 이후에는 베드로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바울이 중심입니다. 활동무대도 예루살렘이 아닌 지중해 연안 도시로 옮겨집니다. 이제는 방방곡곡에 있는 장로들이 다 모였습니다. 가슴을 열고 토론했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변론하고 있습니다. (행 15:6-11)하나님은 이방인에게도 성령을 부어 주셨습니다. 이를 증거삼아 구원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처별이 없다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단순하고도 명쾌하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어떤 면에는 이런 문제는 공부 많이 한 바울사도가 말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복음에 관해서는 바울보다 뒤지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 광장에서 3천명,5천명 전도 받은 사람 보세요. 그는 위대한 신학자였습니다. 위대한 설교자였습니다. 또 부흥사였습니다. 그는 가장 가까이에서 예수님을 모셨습니다. 그 말씀을 3년이나 배웠습니다. 그는 수제자였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다음 교회를 세운 머릿돌이었습니다. 성령의 불을 집히신 분이었습니다. 그는 논리정연하게 말합니다. 왜 믿음으로만 구원 얻느냐에 대한 답입니다.

① 이방인 고넬료 백부장에게 성령이 임했습니다.

베드로 자신도 유대인입니다. 그도 처음에 예수님 말씀에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이방인 까지 구원 받는다는 것이..... 고넬료에게 말씀을 전한 사람이 바로 베드로였습니다. 그가 할례를 준 것이 아니었습니다. 복음을 전한 것뿐입니다. 하나님은 이방인에게 차별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이방인에게 할례를 강요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② 할례와 율법은 우리 조상들의 멍에였다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복종(사9:4)과 고역(신 28:48)을 기리 키는 말(멍에)이였습니다.


Ⅱ. 오직 믿음으로.

베드로와 야고보의 발언 중에 바울과 바나바가 보고를 했습니다. 그들이 1차 선교여행에서 된 일을 보고 했습니다. 이방인들이 예수를 믿고 성령 충만 했던 것을 보고했습니다. 이러니 베드로의 발언이 더 힘을 얻은 것 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야고보가 등장합니다. 그는 예루살렘 총회의 회장 격이었습니다. 그는 “형제들이여 내 말을 들으시오.”(행 15:13) 여기 야고보는 예수님의 동생입니다. 예수님의 제가 야고보도 순교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였습니다. 유대인들도 야고보는 자기편 이라고 신임할 만큼 유대 식 신자의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그는 “베드로의 주장이 맞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총회에서 결의를 했습니다. “할례와 율법은 구우언의 조건이 될 수 없다. 구원은 믿음으로만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를 문서로 해서 교회마다 보냈습니다. 더 이상 혼란이 없도록 말입니다.

우리 인생은 다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인생이란 무엇인가?(What is life?) 우리는 쓰레기 만두 때문에 속이 많이 상해 있습니다. 라면 스프 때문에도 실망했습니다. 대기업도 음식물을 이렇게까지 하면서 돈만 벌겠다고.... 의사, 간호사들이 또 진료를 거부하고.... 또 노조에서 여름투쟁을 한다고 합니다. 경제는 곤두박질치고 있습니다. 서민경제는 말이 아닙니다. 때에 교회가 이들에게 희망을 주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그리스 신화에 이런 것이 있답니다. 남편을 빼앗긴 마녀가 있었습니다. 마녀 메디아는 남편을 빼앗아간 신부에게 노란 독 가운을 선물했습니다. 그런데 이 가운을 입은 신부는 뼈의 관절이 뒤 틀립니다. 그러면서 서서히 죽어갔습니다. 복수심에 찬 간접살인이었습니다. 이렇듯 인간은 죄란 독약을 마시고 있습니다. 사탄이 주는 달콤한 사탕을 넙죽 받아서 먹었습니다. 그 안에 죽음의 독이 있는지도 모르고 말입니다. 하와와 아담이 그러했습니다. 하나님보다 사탄이 더 인간적인 대우를 해 준다고 믿었습니다. 사탄이 진정 자기편이라 생각했습니다. 그 말이 눈이 뜨였습니다. 그렇구나 하나님이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신 숨은 뜻이 여기 있었구나. 오해했습니다.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말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밀톤의 실낙원은 이렇습니다. 이 대 서사시는 인간의 거역 때문에 그가 살던 에덴을 잃어버립니다. 사탄은 하나님을 배반했습니다.

사탄은 인간을 자기 손 아래 넣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에덴을 잃은 실향민입니다. 우리는 죄 값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잊고 살 때가 있습니다. 사탄의 사탕발림의 말에 넘어가면 안 됩니다. “주일 한번 빠진다고 지옥 안 간다.” “성경 안 읽는다고 당장 불이 떨어지는 것 아니다.” “주일성수는 시대 형편에 적당하게 타협해야 한다.” “십일조 안 낸다고 망하지 않는다.” 등등으로 우리를 유혹합니다. 우리는 처음은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몇 번 거듭하면 “봐라 내가 아무 탈 없지 않느냐?” 합니다. 그러나 농약이 든 채소, 신경안정제를 먹인 소, 돼지, 닭고기를 먹으면 당장은 죽지 않습니다. 서서히 우리는 죽어갑니다. 이와 같습니다. 인간은 죽음을 선고 받았습니다. 이를 위해서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가 우리 죄 값을 다 치르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만 믿기만 하면 됩니다.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 받는 것이 아닙니다.

맺는 말 :

오늘은 예루살렘 총회에서 베드로의 발언을 말씀드린 것입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1차 선교여행에서 돌아왔습니다. 안디옥교회는 정말 뒤죽박죽이었습니다. 술렁이고 있었습니다. 교인들이 갈팡질팡 이었습니다. 그들이 전한 복음이 이상하게 되었습니다. 믿음으로만 구원 얻는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유대인으로서 예수 믿는 사람이 그게 아니라고 합니다. 믿어도 율법을 지켜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안디옥교회 까지 와서 흔들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가 예루살렘 교회에 갔습니다. 거기는 베드로와 사도들이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야고보가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많은 토론을 했습니다. 때에 베드로가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믿음으로만 구원 받는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 받은 은혜를 감사하며 늘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2004.6.20 -충웅-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