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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십니다! (호 1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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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원태 목사 (경향교회)

호세아서의 영감의 특생 중에 하나가 하나님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나타냄에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부부관계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남편이 되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내가 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또 하나는 부자관계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아비가 되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 관계성의 중심은 ‘사랑’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이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 자신을 계시하는 비유적 표현이고, 실제로는 하나님 자신은 사람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시라고 하였습니다.

Ⅰ. 하나님 자신의 존재론적 속성이 사람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1. 이것은 그의 자존성이 그러하다고 하였습니다.

출애굽기 3장 14절에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고 하였고 요한일서 1장 1절에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이라고 하였습니다. 무시무종의 세세성(世世性)입니다. 사람은 지음받은 유한의 피조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자신은 자기 존재의 필연성에 의하여 스스로 존재하십니다. 인간과 같이 외부의 그 무엇에 의존하여 존재함이 아닙니다. 그 사상에 있어서, 그 의지에 있어서, 그 능력과 계획에 있어서, 또 만물을 통치하심에 있어서 전혀 독존적 독립성을 띠고 존재하시는 분입니다.

2. 그의 본질적 속성이 그러하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요 4:24). 야고보서 1장 17절에는 빛들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을 말씀하실 때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고 하였습니다. 디모데전서 1장 17절에는 「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이라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장 18절에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분은 불변하신 분이십니다. 그의 존재하심이 불변하고, 그 목적하심이 불변하고, 그 분의 역사하심(행위)과 동기와 약속하심이 절대하십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십니다.

그 분은 무한하신 분이십니다.

① 그분의 완전하심이 무한합니다.

그 분이 소유하신 지식과 지혜, 선하심, 사랑, 의로우심, 거룩하심, 그분의 주권과 능력이 어떤 한도나 분량으로 재볼 수 없이 완전하고 무한하신 분이십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십니다.

② 그분은 시간과의 관계에서 무한하고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③ 또한 공간과의 관계에서 무한의 공간성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이른바 하나님의 편재, 곧 그는 계시지 않는 곳이 없이 모든 피조물과 전 창조 속에 초월하시며, 또 내재하시는 분이십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십니다.

Ⅱ.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자기 사랑이 사람의 것과 다르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호세아 선지자는 이 사실을 부자관계의 사랑으로 묘사하는 영감의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호세아 11장 1절에 「내 아들」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내 아들이라고 한 것은 출애굽 때 비로소 불러주신 이름이었습니다.

모세를 바로에게 보낼 때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출 4:22)고 바로에게 알려주라고 하였습니다. 바로에게 「내 아들을 놓아서 나를 섬기게 하라」(출 4:23)고 하였습니다. 네(바로)가 놓기를 거절하면 「내(하나님)가 네 아들 네 장자를 죽이리라 하셨다 하라」(출 4:23)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내 아들을 사랑하였다고 했습니다(호 11:1). 여기에 ‘사랑’(bh'a;)은 선택을 전제하는 사랑입니다. 그 사랑의 반대는 미움인데, 그것은 유기(내버림)를 뜻합니다. 말라기 1장 2절 하반절에서부터 3절 상반절에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으며」라고 하

였습니다.

그렇게도 아들을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마침내 자기 아들(이스라엘)을 ① 애굽에서 불러내었습니다(호 11:1). 출애굽의 구원을 가리킵니다. ② 내가 에브라임(이스라엘)에게 걸음을 가르쳤다고 하였습니다(호 11:3). ③ 내 팔로 안았다고 하였습니다(호 11:3). ④ 내가 저희를 고쳐주었다고 하였습니다(호 11:3). ⑤ 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저희를 이끌었다고 하였습니다(호 11:4). ⑥ 그 목에서 무거운 멍에를 벗겨주었다고 하였습니다(호 11:4). ⑦ 저희 앞에 먹을 것을 두었다고 하였습니다(호 11:4).

모두 다 출애굽 이후 40년 동안의 이스라엘 공동체 곧 광야교회에 베푸신 하나님의 기적인 구원과 인도와 보호와 양육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자기 아들인 이스라엘을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선지자들의 음성을 거절하고 하나님을 떠나 우상 앞에서 분향했다고 하였습니다(호 11:2). 하나님의 구원과 사랑과 보호를 알지 못하였다고 하였습니다(호 11:3) 저들은 다시 애굽 땅으로 돌아가기를 좋아했고(호 11:5), 앗수르 사람이 저희 임금이 될 줄도 몰랐다고 하였습니다(호 11:5). 저들은 계속해서 하나님을 배신하고, 배약하고, 배반하고, 배은했다고 하였습니다(호 11:6). 저들은 결심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아니하려 했다고 하였습니다(호 11:7).

그럴 때마다 아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자식을 향한 긍휼이 불타는 듯 하다고 하였습니다.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아서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호 11:8)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아들 이스라엘을 향한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의 뜨거움, 그 불타는 사랑의 상태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들 에브라임(이스라엘)을 향한 사랑의 뜨거움을 이렇게 토로하고 계십니다.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같이 두겠느냐…」(호 11:8)라고 하였습니다.

아들 이스라엘을 향한 아버지 하나님의 불타는 사랑의 실토입니다. 여기 ‘아드마’나 ‘스보임’은 ‘소돔과 고모라’가 하나님의 불심판을 받을 때 함께 심판받은 이웃 도시들을 가리킵니다(신 29:23, 창 19:24). 아들 이스라엘을 향한 아비된 하나님은 결코 저들을 놓을 수가 없고, 버릴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비록 아들 이스라엘이 연약하여 범죄하였을지라도, 나는 결코 맹렬한 진노를 발할 수가 없고, 그들을 멸할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바로 그 큰 이유는 호세아 11장 9절 하반절에 「…이는 내가 사람이 아니요 하나님임이라 나는 네 가운데 거하는 거룩한 자니 진노함으로 네게 임하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나는 네 가운데 거하는 거룩한 자니…」라는 말은 이스라엘을 향한 ‘언약의 하나님’을 상기시키는 말입니다.

바로 출애굽기 3장에서, 불타는 떨기나무 가운데서 모세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출 3:6)고 자신의 정체를 알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는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으로,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겠다고 하였습니다(출 3:7~8). 그 언약의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사랑했다는 사실입니다. 결코 사람이 아닌 하나님, 저희 가운데 거하시는 언약의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결코 에브라임(이스라엘)은 망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언약의 사랑이란 바로 선택의 사랑을 의미합니다. 자기 아들을 부르는 그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의 음성을 「사자처럼 소리를 발하시는」 분으로 말하고 있습니다(호 11:10). 자기 아들을 찾아 부르시는 사자 같은 사랑의 아버지의 음성을 듣는 이스라엘을, ‘새’ 같고, ‘비둘기’ 같다고 하였습니다. 자기 아들들을 찾고 부르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에 이스라엘은 서편에서, 앗수르에서, 애굽에서 새같이, 비둘기같이 떨며 날아올 것이라고 하였습니다(호 11:10~11). 그때에 「…내가 저희로 각 집에 머물게 하리라」(호 11:11)고 하였습니다.

이사야의 영감에도 「…내가 내 영광의 집을 영화롭게 하리라 저 구름같이, 비둘기가 그 보금자리로 날아오는 것같이 날아오는 자들이 누구뇨」(사 60:7~8)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구원받기로 작정된 하나님의 아들들이 저들을 부르시는 아버지의 음성을 듣고, 구원의 집으로 모여들 궁극적 하나님의 자기 사랑의 성취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십니다!

제가 이 설교를 준비하게 된 큰 이유는 저의 목회사역을 돌아보는 회상의 순간들마다, 문득문득 강하게 저의 마음을 두드려주는 음성이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다!’, ‘과연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과연 하나님은 만세의 왕이시다! 과연 하나님은 만왕의 왕이시다! 과연 하나님은 만주의 주이시다! 과연 예수만이 교회의 머리이시요, 과연 예수만이 교회의 몸이시다! 과연 하나님은 살아계신다! 과연 성령은 살아 움직이는 생명의 신이시다! 과연 영감의 계시인 성경만이 살아 움직이는 생명의 힘이시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존재하심과 창조하심과 통치와 섭리에 있어서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세주로 보내어 자기 백성을 저희 죄 가운데서 구원하심에 있어서 과연 그 분은 하나님이시었습니다. 누구든지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는 사실 앞에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교회를 세우시고 인도하심에 있어서 그 분만이 하나님이시요, 주이시었습니다. 지상 교회의 온갖 연약과 부족을 회개할 때 용서하심에 있어서, 그리고 회개하는 자들을 축복하심에 있어서 그는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이시었습니다.

하나님이 사자처럼 소리를 발하시면서 영생주시기로 작정된 자기의 아들들을 동서남북에서 부르실 때, 저들이 새같이 날아오고 비둘기같이 떨며 날아와 아버지께서 준비하신 각 집에 머물게 하시는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볼 때, 과연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고 하나님이시었습니다. 죄인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총과 죄에 대한 용서와 오래 참으심의 사랑을 체험할 때 과연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었습니다. 결코 하나님의 택자들을 아드마같이, 스보임같이 버려두지 않으시고, 끝까지 놓지 않고, 버리지 않고, 내버려두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불타는 사랑을 체험했을 때, 과연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아들(이스라엘)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그 아버지의 궁극적 구원의 사랑을 먹고, 옷 입고 살아가게 되었을 때(요 13:1), 그리고 넉넉히 이기게 하시는 승리의 축복을 받았을 때(롬 8:37), 과연 그 분은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이시었습니다.

확실하게 교회(자기 백성)의 최후 승리를 약속하고, 보장하고, 그 놀라운 승리의 비전을 받고, 우리에게 주어진 21세기의 개인과 교회의 장래(비전)를 확신할 때 ‘아! 그 분은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성취시키고 마실 것이다.’라고 생각되었습니다(계 17:14).

경향이 받은 21세기 세계선교의 비전은 우리가 살아남아야 될 수밖에 없는, 아니 우리가 축복을 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 경향교회의 주이시요, 왕이시요, 아버지이십니다. 사람이 아닌 하나님 그분, 우리 아버지가 되시는 그 분이 21세기에 우리 자신과 교회가 걸어가야 될 활로의 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믿음의 문, 구원의 문, 구령을 목적하는 전도와 선교의 문, 그리고 마침내 우리 각자가 이를 영생의 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사람이 아닌 하나님 아버지의 축복을 축원합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하나님만이 동일하십니다(히 13:8)!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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