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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함께 하는 삶 (갈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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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학현 목사 (예은교회)

성도는 하나님의 가족으로써 교회라고 하는 공동체를 통하여 가족 됨을 나타내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그냥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에 속한 성도를 원합니다. 교회에 속한 성도는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써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충성을 다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물론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들의 말을 순종합니다.

오늘은 구체적으로 교회 공동체에 속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실 때 함께 하라고 창조하셨습니다. 혼자 살도록 만드시지 않았기 때문에 혼자인 사람은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성도들을 볼 때 혼자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함께 해야 합니다. 삶을 공유해야 합니다. 건강한 교회가 어떤 교회입니까? 성도들이 서로 신앙적 삶을 공유하는 교회입니다. 우리교회는 성도들 모두가 자신의 삶을 다른 이들과 공유하는 교회가 되길 소원합니다. 그럼, 삶을 어떻게 나눌까요?

소 모임에 참여하십시오.

서로를 알기 위해서 가장 좋은 단위는 둘입니다. 남편과 아내, 둘이 서로를 알기에 가장 적합한 단위입니다. 효과적인 소그룹에 대하여 연구한 분들은 적어도 12명을 넘어서지 말아야 서로 삶을 나눌 수가 있다고 조언합니다.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과 좋은 관계를 가질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교회 내의 소그룹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입니다. [시133:1-3]은 이렇게 씁니다. “형제들이 함께 어울려 의좋게 사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다. 그것은 값진 기름을 아론의 머리에 부어 그의 수염과 옷깃으로 흘러내리는 것 같고 헤르몬산의 이슬이 시온산에 내리는 것 같다. 시온은 여호와께서 축복을 약속하신 곳이니 곧 영원히 사는 생명이라.”

전교인이 모이는 예배에만 참석해 가지고는 좋은 신앙인이 될 수 없습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은 될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가족으로 살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릴 하나님의 가족으로 살도록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가족인 형제자매로 살려면 서로를 알아야 합니다. 서로를 알려면 소그룹에 속하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속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셔야 합니다. 한나선교회, 마리아선교회, 요한선교회의 회원으로 회비도 내고 적극적으로 일에 동참해야 합니다. 일대일양육과 제자훈련에 참석해야 합니다. 우리교회에는 작지만 다른 교회보다 소그룹이 활성화되어 있습니다. 이 축복을 그냥 지나쳐버린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성도입니다. 주님도 소그룹에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마18:20]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가면을 벗으십시오.

사람은 하나님과는 달라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이는 절대로 알 수가 없습니다. 상대에 대하여 모르고는 그의 고통이나 기쁨에 동참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하여 솔직하게 말하는 사람에게 친구가 많습니다. 자신의 마음 문을 닫은 사람에게는 친구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성도의 진정한 교제는 상처를 나누고, 감정을 표현하며, 실패를 고백하고, 두려움과 의심과 약점을 그대로 드러낼 때 가능합니다. 그러나 많은 성도들이 가면을 쓰고 교회 다닌다는 걸 아십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이 솔직하고 진실하기를 원하시지 겉으로 그럴싸하게 보이길 원하시지 않습니다. 다윗의 고백입니다. [대상29:17]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마음을 감찰하시고 정직을 기뻐하시는 줄 내가 아나이다” 어떤 성도가 “나는 그리스도의 보혈을 믿는다.”라고 말하면 다른 사람들은 사실대로 믿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말만 듣지 않으십니다. 진정으로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한 것인지 따집니다.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교제하는 장소입니다. 그러기에 가면을 쓰고는 진정한 영적 친구를 사귈 수가 없습니다. 진정한 영적 친구가 없는 성도를 어떻게 성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가면과 가식과 거짓말과 체면치레는 안 됩니다. 세상의 사귐은 그런 것들로 가능한지 모르지만 주 안에서 갖는 성도들의 교제는 불가능합니다. [요일1:8]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죄는 가린다고 해서 가려지는 게 아닙니다. 스스로도 속고 남도 속이지 말고 진실과 정직으로 아름다운 교제를 이루어 가시기를 바랍니다.

고통을 나누십시오.

성도들 상호간에 나누는 교제의 가장 유익한 점은 바로 아픔을 나누는 것입니다. 성도는 서로 이 일을 합니다. 일방적으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만 그렇게 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몸인 지체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고전12:24). 그렇게 해야만 행복할 수 있습니다(고전12:25). 이런 면에서 목회자나 평신도의 구별이 없습니다. 목사는 일방적으로 성도들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존재가 아닙니다. 목사도 성도들에게서 아픔을 위로받아야 할 존재입니다. 교회에서는 서로가 자신의 고통을 다른 성도를 통하여 위로받아야 합니다.

본문을 말씀합니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남의 짐을 지게 하기 위해 주님은 교회를 허락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사명을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남의 짐을 지는 게 바로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로 흔히 가족의 유대관계를 표현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힘든 일, 어려운 일, 질병이 있을 때를 같이 한다는 말입니다. 성도들의 관계도 가족관계와 다르지 않습니다. 가족이 같은 핏줄을 나눈 사람들이듯, 성도들도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공유한 사람들입니다.

욥이 고통당할 때 친구들이 위로는커녕 정죄할 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욥6:14,15] “내가 이러한 절망 속에서 허덕일 때야말로, 친구가 필요한데, 친구라는 것들은 물이 흐르다가도 마르고 말랐다가도 흐르는 개울처럼 미덥지 못하고 배신감만 느끼게 하는구나.”(새번역) 여러분은 자신의 고통만 중요하지 다른 성도의 고통은 돌보지 않는 사람은 아닙니까. 모두 그런 사람들만 있다면 교회는 실은 필요가 없습니다. [약5:16]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다른 성도의 아픔이 무엇인지 알아보십시오. 그리고 진정한 위로와 사랑을 베푸십시오. 열심히 기도해 주십시오. 저와 여러분은 이를 위해 부름 받았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에는 관대하고 남의 실수에는 예리한 칼로 난도질하길 좋아합니다. 교회에서는 이게 반대로 적용되어야 합니다. 자신에게는 냉철하십시오. 남에게는 관대하십시오. 세상에서는 드러나는 죄라 할지라도 교회에서는 덮여져야 합니다. 서로에게 자비와 용서를 베풀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죗값으로 우리 자신을 죽여야만 할 죄인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대신 십자가를 지고 돌아가심으로 우리 죗값을 지불해 주셨습니다. 이 세상에 죽을죄보다 더 큰 죄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용서하지 못할 죄는 없습니다.

[고후2:7] “이제는 용서해 주고 위로해 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그는 슬픔과 절망으로 다시 일어서지도 못할지 모릅니다.”(현대어) 일으켜 세우는 게 성도의 일이지 짓누르고 밟는 게 성도의 일이 아닙니다. 용서 없이는 교제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과 교제할 수 있는 것은 주님께서 우릴 용서하셨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 모두는 불완전한 죄인들입니다. 나는 불완전하면서 상대가 완전하기를 원한다면 이는 강도입니다. 용서가 전제될 때 신뢰가 쌓입니다. 용서 없이 신실한 관계를 가질 수 없습니다. 용서는 과거를 잊는 것입니다. 상대가 용서를 구하든 안 하든 용서하고 과거를 잊는 게 성도가 해야 할 일입니다. 과거를 벗고 미래를 지향하는 이가 성도입니다. [골3:13]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용서도 주님의 명령입니다. 명령은 꼭 지켜야 그리스도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함께 도우며 살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성도가 함께 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소그룹에 꼭 참여해야만 합니다. 가식이 없는 진심어린 마음으로 상대를 대해야 합니다. 고통을 서로 나누고 함께 고민하며 걱정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용서하여야 합니다. 우리교회, 우리 성도들은 진정으로 주께서 원하시는 함께하는 삶의 주인공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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