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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걸음을 인도하시는 여호와 (잠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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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박봉수 목사 (상도중앙교회)

아마도 누구 하나 예외 없이 바라는 것이 있다면 ‘잘 사는 것’일 것입니다. 기왕 한 번 사는 인생인데 잘 살아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잘 산다는 것의 의미가 시대에 따라 변해왔습니다. 우선 헐벗고 굶주리던 시대에 잘 산다는 것은 삶의 양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습니다. 1970년대 고 박정희 전대통령이 제창한 새마을 운동은 한 마디로 잘 살기 운동입니다. 이 운동의 주제가다시피한 노래가 바로 “잘 살아 보세”입니다. 그 노래 가사가 지금도 귀에 쟁쟁합니다. “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세” 여기서 말하는 잘 산다는 것은 한 마디로 돈을 많이 벌어보자는 것입니다. 돈 좀 많이 벌어서 잘 먹고 떵떵거리고 잘 살아보자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제 먹고 살만해 지면서 잘 산다는 것은 삶의 질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습니다. 1990년대 이후 삶의 질이라는 개념이 소개되었고,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well being이라는 개념이 널리 유포되고 있습니다. 이제 얼마나 배불리 먹느냐가 아니고 무엇을 먹느냐를 따지게 되었습니다. 유기농인지를 따지고, 자연 그대로 키운 농산물이라면 비싸도 아낌없이 삽니다. 요가를 배우고 아로마테라피를 찾고 테마 여행을 즐깁니다. 이제 좀 더 품위 있게 멋있게 잘 살아보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은 잘 산다는 것을 무엇이라 말씀할까요? 성경이 말씀하는 잘 산다는 것은 물론 삶의 양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 않습니다. 또한 삶의 질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이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삶의 분수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피조물답게 분수를 지키며 사는 것 이것이 잘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고,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며 사는 것 이것이 잘 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고,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하는 지 잘 알고 그대로 행하며 살 때 그 사람이 잘 사는 것이란 말씀입니다.

[리차드 버튼 경의 삶]이란 책을 보면 사람을 네 종류로 구분했습니다.
첫째, 아무것도 모르지만 자기가 모른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는 바보니까 가까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둘째, 아무것도 모르지만 자기가 모른다는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는 단순한 사람이니까 잘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셋째, 알고 있지만 자신이 알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는 자고 있으니까 깨우라는 것입니다.
넷째, 알고 있고 자신이 알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는 지혜로운 사람이니까 그를 따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잘 살려면 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분수를 정확하게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분수를 자키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럴 때 잘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잠언을 보면 잘 살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지혜라고 말씀합니다. 돈도 아니고, 권력도 아니고, 명예도 아니고 지혜가 있어야 잘 살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잘 살기 위한 지혜로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점입니다.

본문 9절을 보면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사람이 아무리 계획을 세운다고 해도 인생의 항로를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요즘 자동차에 GPS를 장착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GPS란 global positioning system이라 하여 위성 위치확인 시스템을 말합니다. 원래 이 GPS는 군사용으로 미 국방성이 개발한 것입니다. 고도 약 2만 키로 상공에 6개의 원궤도를 만들고 각 궤도에 4개씩 도합 24개의 인공위성을 띠웁니다. 이용자가 자기위치에서 가장 적당한 위치의 위성 4개를 선택해서 그것들로부터 시각 신호를 수신하여 자기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자기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를 정해 놓으면 그 목적지까지 최선의 항로를 안내해 줍니다. 차가 막히는 곳을 피해서 현재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길을 안내해 줍니다. 여기에 음성 안내까지 부착되어 있어서 소리로 순간순간 안내를 받게 됩니다. “30미터 전방에서 우회전 하세요, 50미터 앞에서부터 제한 속도가 달라집니다. 속도를 줄이세요 앞에 속도 측정 카메라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속도위반 스티카를 피하려고 이 GPS를 다는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에도 이 GPS처럼 우리의 갈 길을 인도하는 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 하늘에서 우리의 앞길을 정확히 내려다보시면서 우리의 갈 길을 안내해 주십니다. 그 안내를 받으며 인생을 사는 사람이 인생을 가장 잘 살 수 있습니다. 그 안내를 받으며 사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갈 길을 인도하시는 분이 계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가 갈 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인도를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여호와를 경외해야 합니다.

본문 6절을 보면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인하여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우선 우리가 여호와를 경외해야 여호와의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히브리어로 경외라는 말은 이르아(ha;ry)입니다. 이 말은 인간이 하나님을 향해 가지는 거룩한 두려움을 뜻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경외는 깊은 존경과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하나님을 공경하며 존중히 여기는 마음의 태도를 말합니다.

출 3:4-6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희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로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우매...” 하나님께서 모세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한 모세의 반응이 바로 두려워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두려움이 경외입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상상하거나 습관적으로 그럴 것이라 인정하는 정도로는 하나님을 경외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게 되면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그분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인생 행로에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임재해 계신다는 사실을 체험하면 그분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인생 한 복판에 지금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함께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여호와를 경외한다고 할 때 기억해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시 119:120입니다. “주를 두려워하므로 내 육체가 떨머...”시 2:11을 보면 “주를 두려워하며 섬기고 떨며 기뻐할지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그 분의 임재 앞에서 떤다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떤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카마르(rm's;)입니다. 이 말은 머리카락이 곤두선다는 뜻입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될 때 머리카락이 곤두서고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끼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 때가 바로 성경이 말씀하는 ‘떨며’의 상태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긴장하며 깨어있을 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놓치지 않고 볼 수 있습니다. 그분의 인도를 따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두려워 떠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여호와께 맡겨야 합니다.

본문 3절을 보면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우리가 여호와께 맡겨야 여호와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제가 처음 수영을 배울 때 정말 물이 두려웠습니다. 물에만 들어가면 머리를 곧바로 세우고 물을 먹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쳤습니다. 머리가 물 속에 잠기려 하면 발버둥을 쳤고, 그러자 점점 몸에 힘이 들어가서 물에 잠기더라구요

그 때 가르쳐주시는 분이 몸을 물에 맡기라고 하셨습니다.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어요. 그 분이 말씀하시기를 차라리 머리를 물 속에 쳐 박고 나 죽었소 하고 물에 몸을 내 던지라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그대로 해 보니 몸이 물 위에 뜨더라구요

이것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 내 인생을 맡기면 그분께서 내 인생을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얼마동안 개그우먼 이경실씨를 영적으로 지도한 일이 있습니다. 함께 만나 기도하고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이분이 말씀을 나누는 동안에 십일조를 하겠다고 결단을 하시더라구요. 연애인의 수입이라는 것이 한 번에 계약이 성사되면 액수가 만만치 않은데 그것에서 십일조를 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요. 기도하면서 정확하게 십일조를 했는데 정말 마음이 기쁘더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런데 십일조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용산의 주상복합 아파트 청약을 했는데 백대 일이 넘는 것이 당첨됐다는 것입니다. 프리미엄만도 몇 억이 넘는다나요... 물질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고 나니까 그 문제를 하나님께서 해결하시기 시작하시더라구 간증하시더라구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우리 인생의 문제를 내가 해결하려면 너무 힘이 들고 더 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다 맡기고 나면 하나님께서 그 문제를 해결하셔서 정말 형통케 됩니다.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우리 인생을 맡기라고 말씀하시면서 반대로 주님의 일은 우리에게 맡기십니다.

마 28:19-20을 보면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주님께서 주의 일을 우리에게 맡기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서로 바꾸자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일을 맡고, 우리의 일은 주님께서 맡아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주님께서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우리가 주님께서 맡겨주신 일을 감당하면 우리 일은 주님께서 책임지고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어제 박미선 집사님께서 우리 전도 축제에 다녀가셨습니다. 이 분 말씀이 지금까지 돈을 모으려고 아등바등 짠순이 소리를 들어가면 모으고 또 모았답니다. 그런데 잘 모아지지 않더랍니다. 아이가 아파서 쓰게 되고, 남편이 실패해서 없어지고, 이렇게 저렇게 사라지더랍니다. 그래서 얻은 결론이 이렇게 저렇게 없어질 바에게 주를 위해서 쓰자. 그래서 제게 중국선교에 써달라고 헌금도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인생을 주님께 맡기면 비로소 주님께서 우리 인생에 오셔서 일하기 시작하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 여호와를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본문 7절을 보면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우리가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면 주님께서 우리의 앞 길은 책임지시고 인도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행 13:22을 보면 다윗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가 기록되어있습니다.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나님께서 다윗을 기뻐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 다윗이 꿈꾸고 계획하는 것을 다 이루어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다윗이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해 드렸을까요? 다윗에 관한 성경 기록을 자세하게 살펴보았습니다. 사울과 다윗을 비교하여 기록한 곳을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사울을 살펴보겠습니다. 삼상 15:24을 보면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 사울은 어떤 일을 할 때 하나님께 묻지 않고 사람들의 의견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요즘 말로 여론 정치를 한 것입니다.

삼상 15:10을 보면 “내가 사울을 세워 왕 삼은 것을 후회하노니”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기뻐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이에 비해서 다윗은 대표적으로 삼하 2:1을 보면 “그 후에 다윗이 여호와께 물어 가로되 내가 유다 한 성으로 올라 가리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올라가라 다윗이 가로되 어디로 가리이까 가라사대 헤브론으로 갈찌니라...” 다윗은 어떤 일을 하기 전에 기도부터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기뻐하셔서 마음에 합한 자라 말씀하셨습니다.

그 다음에 삼하 3:1을 보면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오래매 다윗은 점점 강하여 가고 사울은 점점 약하여 가니라” 사울도 다윗도 다 하나님께서 왕으로 기름부어 세운 사람입니다. 그런데 누구는 점점 약하여 가고 누구는 점점 강하여 갔습니다.

그 차이가 무엇입니까? 기도입니다. 기도로 시작하는 사람 그 사람은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 주님께서 그 사람의 인생을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고 사람의 생각 사람의 의견을 따라 일하는 사람은 주님의 마음을 답답하게 해 드리고 주님께서 그 사람의 인생에서 손을 떼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매사에 기도로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의 행사를 주님께서 인도하시고 형통케 하실 것입니다. 어떤 분은 일이 터진 뒤에 기도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일단 일을 저질러 놓고 문제가 생기면 그 때 깨닫고 눈물 흘리며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그 기도가 무척 힘이 듭니다. 응답도 더딥니다. 주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도보다 앞서지 마시기 바랍니다. 매사에 여호와께 묻고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 말씀을 마음에 새기시기 바랍니다.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 나느니라”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우리 인생이 우리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자기가 계획세우고 꿈꾼다고 그대로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결재를 하셔야 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그분이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분을 경외하시기 바랍니다. 그분께 다 맡기시기 바랍니다. 그분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바랍니다. 그러면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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