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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정의달] 가정같은 교회, 교회같은 가정 (창 2: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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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주환 목사 (구로중앙교회)

하나님께서 이 땅에 만드신 천국의 두 지점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가정과 교회이다. 가정을 통해서 천국을 맛보게 하셨고, 교회를 통해서 천국,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게 하셨다.
불교를 말하면 큰 불상이 자리잡고 있는 대웅전을 연상하고, 회교를 말하면 둥근 지붕을 가진 모스크를 연상한다. 그러나 기독교는 십자가가 달린 뾰족탑이 있는 교회가 그 원형은 아니다. 교회의 원형은 가정이다. 예루살렘 교회는 마가의 집이었고, 에베소 교회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집이었고, 라오디게아 교회는 눔바의 집이었고, 골로새 교회는 빌레몬의 집이었다. 그리고 고린도 교회는 가이오의 집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기독교는 가정적인 종교이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하고, 예수님을 신랑이라고 하고 우리 모두를 예수님의 신부라고 한다. 성도들을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고 성도는 서로를 형제 자매라고 한다. 그리고 교회를 하나님의 집이라고 한다. 어느 신학자는 “하나님이 이 세상에 직접 만드신 기관은 교회와 가정밖에 없다”고 말하였다. 가정은 작은 교회이며 교회는 큰 가정입니다.
이같이 교회와 가정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교회와 가정은 깊은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면, 교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교회는 가정 같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후에 모든 것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말씀하셨다. 그러나 최초로 보기 싫은 것은 아담이 홀로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홀로있는 아담 곁에 하와를 만들어 주셨다.
여기에 교회의 요소가 있다. 교회는 “함께 하는” 가정의 의미가 담겨져 있다. 두 세사람이 모여 기도하는 것을 주님을 기뻐하신다.

요즈음에 사이버 교회가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컴퓨터의 사이버 상에서 위장된 아이디를 갖고서 만나는 것이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현대인들은 자기의 정체를 드러내기 싫어한다. 나의 이름이 무엇이며, 나의 직업이 무엇이며, 내가 어디에 살며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 이러한 것을 드러내 놓고 싶지 않아 한다. 이를 소위 익명성이라고 부른다. 또한 현대인들은 일상생활에서 편리함을 추구한다. 집에 앉아서 일상 생활의 모든 것을 온라인으로 처리하는 편리함에 익숙해 있다. 예배 마저도 편리하게 온라인으로 처리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재택 예배를 선호하게 된다. 헌금도 온라인으로 송금을 하든지 아니면 크레디트 카드로 보내서 예배를 해결하려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교회에 나오지 않고 홀로 집에서 예배드리려는 경향이 있다. 이를 소위 말해서 사이버 예배라 부른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함께 모이기를 원하신다. 가정의 시작은 홀로 있는 것이 보기 싫어서 함께 살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시작하셨다.
교회가 가정 같아야 한다는 의미는 그 속에 함께 모이기를 즐겨하라는 하나님의 생각이 담겨져 있다.
그 다음으로 가정을 창조하신 이유는 서로 돕기 위함이다. 교회는 어떤 곳인가? 서로 협력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함이다. 서로 협력해서 생명을 살리는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개미에 대해서 많은 연구를 했다. 이 세상에 지력으로 다른 생명을 압도하는 두 종류의 생명이 있는데 개미와 인간이다. 이들의 두뇌에는 차이가 있다. 개미는 뇌가 먼지만큼 작지만 인간의 두뇌는 양배추 만하다. 어떻게 작은 뇌가 지력으로 다른 동물을 지배할 수 있는가? 그들은 작은 뇌를 합하기 때문이다. 의사소통으로 결합하는 방법을 개미는 선택했다. 서로 힘을 합하여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게 하셨다.

여자들은 상대방 여자가 당황하고 있는지 아니면 가슴 아파하고 있는지 금방 알아본다. 반면 남자들은 여자의 눈물, 신경질, 여자로부터의 따귀 세례 등 구체적인 증거가 있어야만 여자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이건 왜 그럴까?
대부분의 포유류 암컷처럼, 여자는 남자보다 훨씬 우수한 감각적 기량을 갖추고 있다. 아이 양육자이고 둥지 수호자인 여자는 남들의 미묘한 분위기 변화와 태도 변화를 간취(看取)하는 능력이 필요했다. 소위 ‘여자의 직관’이라고 하는 것은 상대방의 모습이나 행동에서 사소한 변화를 파악하는 예민한 능력을 말한다. 둥지 수호자는 가족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자식들의 행동거지에서 고통, 배고픔, 부상, 공격심, 절망 등 사소한 변화를 읽어낼 수 있어야 했다. 먹이 추적자인 남자는 동굴에 붙어있는 시간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비언어 신호나 개인 간 텔레파시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펜실베니아 대학의 신경심리학 교수인 루벤 거는 두뇌 스캐닝 테스트를 통하여 남자의 두뇌는 휴식 상태에 있을 때 두뇌의 전기활동 중 70%가 정지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반면 여자의 두뇌는 휴식 중에도 90%가 활동을 계속했다. 이것은 여자들이 주변 환경으로부터 끊임없이 정보를 받아서 분석한다는 얘기가 된다. 여자는 자녀들의 친구, 희망, 꿈, 로맨스, 은밀한 공포, 그들의 생각, 그들의 감정, 그들이 꾸미고 있는 엉뚱한 장난 등을 훤히 알고 있다.
하나님께서 가정을 세우셔서 남자는 먹이 추적자로, 여자는 둥지 수호자로 세우셨다. 이렇게 서로 힘을 합하여 가정을 이루게 하셨다.
교회도 큰 가정이다. 교회는 함께 모여서 서로 협력하여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모습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우리 모습은 서로 달라도 무지개 색깔처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다음으로, 교회같은 가정이다. 교회는 어떤 곳인가?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또한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시다. 가정이 교회 같아야 한다는 말씀은 가정의 주인은 그리스도가 되셔야 한다는 말씀이다. 어떤 일을 판단할 때에 가장 마음 데로 판단하기 보다는 주님께 기도하고, 주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가정을 다스려야 한다.
가정에는 곧 주님이 거하시는 합당한 장소가 되어야 한다.

한 예술가의 소원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을 찾아가 물어보기로 하였다. 맨 처음 찾아간 사람은 종교인이었는데, “당신에게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그 종교인은 믿음이라고 대답하였다. 이번에는 한 숙녀에게 같은 질문을 했더니, 그녀는 사랑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어떤 군인은 세상에서 평화가 가장 아름답다고 말했다. 그는 ‘그렇다면 이 세 가지를 한 곳에 모을 수 있는 그림은 없을까?’ 고민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그가 집 초인종을 누르자, 아이들이 마중을 나와 “아빠!”를 외치며 그의 품에 안겼다. 그때 그는 자기 팔에 매달리는 꼬마들의 눈동자 속에서 아버지를 신뢰하는 믿음이 반짝거리고 있음을 보았다. 그리고 아이들 뒤에 나오며 “여보, 이제 오세요.”하는 아내의 눈동자에서는 자기를 향한 사랑이 가득 담겨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집안에는 진정한 평화가 감돌고 있었다.
가정은 하나님이 거하시기에 합당한 장소로 만들어야 한다. 왜냐면 가정은 교회 같아야 하기때문이다.

우리 가정 같은 교회를 만들어보자. 교회 같은 가정을 만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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