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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무엇이 보이느냐 (막 8: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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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병우 목사 (김천제일교회)

세상에 생존하는 대부분의 생명체들은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눈은 생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에 눈을 잃어버리면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게 됩니다. 만약 어떤 짐승이 눈을 잃었다면 그 짐승은 생명은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대부분의 생명은 눈의 의존하여 살아가기 때문에 사물을 본다는 것은 생존에 있어서 절대적인 요소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물을 보는 것은 사람의 눈과 짐승의 눈이 다를 것이 없습니다. 사람도 보고 짐승도 봅니다. 그러나 사람은 짐승이 보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사람의 눈은 적어도 두 가지 다른 세계를 봅니다. 하나는 물질 세계를 보고 다른 하나는 신령한 세계를 보는 것입니다. 산을 보고 땅을 보고 강을 보는 눈은 사람이나 짐승이나 동일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산을 보고 강을 보면서 그것을 만드신 하나님을 보는 존재는 사람밖에 없는 것입니다.

어느 세대나 영적인 것을 보며 사는 민족과 나라가 복을 받았습니다. 영적인 세계를 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세대는 아무리 경제적으로 많은 것을 소유하고 정치적으로 좋은 제도들을 만들었다고 해도 행복하게 살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인생을 만드실 때에 인생에게 주어진 목적 가운데 가장 귀한 목적이 바로 종교적 목적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인생은 종교적 목적을 잃으면 다 잃어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주님께서 벧세다 지방에서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을 고쳐 주셨다는 기사입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 한 사람을 마을 사람들이 주님께로 데려왔습니다. 그를 불쌍하게 여긴 마을 사람들이 예수님 앞에 데리고 와서 보게 해 주셨으면 하는 기대를 가졌던 것입니다. 이 사람은 육신의 눈도 없었고 영적인 눈도 역시 없었습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을 만남으로써 육신의 눈도 열렸고 영적 눈도 열려졌던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님이 한 소경의 눈을 여시는 방식을 통해서 신령한 눈을 열어주시는 교훈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1.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셨습니다.

오늘 말씀에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을 데리고 마을 밖으로 나가셨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주님은 장님의 손을 붙드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사 라고 했습니다. 장님의 입장에서는 다른 곳으로 움직이는 것이 힘든 일입니다. 그냥 사람들이 있는 그 자리에서 장님을 고쳐 주시는 것이 가장 편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구태여 그 소경의 손을 잡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신 것입니다.

주님은 언제나 사람에게 믿음을 확인하셨습니다. 이것은 믿음을 확인하시는 방법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장님은 이 분이 정말 나를 고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손을 잡고 주님을 따라 나섬으로써 그는 순종을 통해서 믿음을 주님께 보여드렸던 것입니다. 예수님 앞에 나와서 고침을 받았던 사람들을 보면 그들의 믿음을 주님께 보여 주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주님이 베드로를 만나실 때도,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실 때에도, 가나의 혼인 잔치 자리에서도 사람들에게 요구하시는 내용이 바로 주님을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고침을 받기 전에 먼저 주님의 손을 잡고 주님의 인도를 받도록 요구하셨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상황보다도 예수님을 더 신뢰하고 믿을 때에 주님은 그들에게 주님 되심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아람나라 나만 장군이 이스라엘에 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몸에 고칠 수 없었던 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많은 선물을 준비해 가지고 오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만 장군에게 요구하신 것은 믿음과 순종이었습니다. 나만 장군이 믿음과 순종을 보여 주기 전에는 하나님과 상관없는 사람이었지만 그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때 새 사람이 된 것입니다.

사람에게 언제나 우선되는 것은 우리의 욕심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며 그 분의 인도를 기꺼이 따라가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 이 순서를 수용하지 못합니다. 나를 고쳐 주시오면 내가 주님을 따라 가겠습니다. 나를 보게 해 주신다면 나는 주님을 어디든지 따라가겠습니다는 고백들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믿음은 언제나 먼저입니다. 성도에게는 믿음보다 우선되는 것은 없고 말씀보다 앞선 것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실 때부터 말씀이 우선이었습니다. 인생의 죄는 말씀보다 자기 생각을 앞세운 것을 말합니다. 말씀보다 인간의 명예가 앞서면 그것이 바벨탑이요 말씀이 상황보다 앞서면 그것이 바로 방주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보다 앞서지 못하게 했습니다. 말씀을 앞세워야 요단강도 건너고 여리고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2. 눈에 침을 바르시고 안수하셨습니다.

장님의 눈에 침을 바르시고 그에게 안수하셨습니다. 이것은 자신을 주님께 맡겼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이 자신을 어떻게 하시든지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를 말합니다.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과정은 자신을 주님께 온전히 맡기는 자세입니다. 내 몸이지만 이제 주님의 뜻대로 하십시오 하는 마음 가집니다. 주님은 자신을 주님께 맡기는 자를 치료하신 것입니다.

베드로가 물 위로 걸을 때에 그 순간 자신을 주님께 맡긴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75세 때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에 고향을 떠난 것도 하나님께 자신의 인생을 맡긴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떠나서 가나안 땅을 향하여 출발한 것도 민족의 미래를 하나님께 맡긴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는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인생의 불행은 언제나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는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입으로만 믿음을 고백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는 삶이 필요한 것입니다.

3. 무엇이 보이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이 그 장님을 향해서 무엇이 보이느냐 물었습니다. 이때 장님은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의 걸어가는 것을 보나이다 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이에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시매 저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만물을 밝히 보는지라 고 했습니다. 한 인생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드디어 암흑으로 뒤덮였던 세월을 청산하고 다른 사람과 만물을 보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중요한 교훈을 받게 되는 것은 그는 마을 밖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서 보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희미하게 보였지만 다시 말씀을 따라서 볼 때 밝히 보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맹인은 예수님을 말씀을 따라서 보게 되었다는 것이고 처음에는 희미하게 보았으나 차츰 밝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볼 때 인생은 누구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는 영적으로 아무 것도 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인생은 주님을 통해서 세상을 보게 되어 집니다. 주님의 말씀을 통해서 세상을 점점 보게 되어 집니다.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면 지금까지 자신은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살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인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세상을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까지 세상은 어둠 가운데 있었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리스도가 빛으로 와서 세상은 보게 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해서 세상을 보게 됩니다. 처음에는 희미하게 보이게 됩니다. 아마 성도들 가운데서는 아직까지도 말씀을 듣지만 희미하게 보이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계속해서 듣게 되면 밝게 보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것은 새로운 세계를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왜 예수를 믿느냐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보는 것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스데반은 예수 그리스도가 서 있는 하나님 나라를 보았기 때문에 그들을 위해서 기도했던 것입니다.
2004-06-20 06:5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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