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하나님이 받기 원하시는 예배 (신 16:18 - 신 17:1)

  • 잡초 잡초
  • 386
  • 0

첨부 1


- 설교 이수영 목사 (새문안교회)

오늘 본문에서 보는 대로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주신 말씀은 크게 세 가지 명령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첫째 명령은 16:18에서 보듯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각 성에서 네 지파를 따라 재판장들과 지도자들을 둘 것이요 그들은 공의로 백성을 재판할 것이니라" 한 것입니다. 백성의 지도자들이 공의로 백성을 다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공의로 백성을 다스리기 위하여 어떻게 할 것인지는 이어지는 19절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명시되고 있습니다: "너는 재판을 굽게 하지 말며 사람을 외모로 보지 말며 또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지혜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인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 첫째는 "재판을 굽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공정한 재판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공정한 재판을 하기 위해서는 모든 백성의 평등함을 알고 불편부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뇌물을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뇌물은 지혜롭고 의롭게 재판해야 할 사람의 눈을 흐리게 하고 그들의 판결을 굽게 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20절에서는 따라서 지도자들은 오직 공의만을 좇을 것을 재촉구하며, 그것이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땅에서 하나님이 베푸시는 복을 누리며 살 수 있는 길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너는 마땅히 공의만을 따르라. 그리하면 네가 살겠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을 차지하리라."

오늘 본문에서의 하나님의 둘째 명령은 우상을 세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16:21-22의 말씀을 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쌓은 제단 곁에 어떤 나무로든지 아세라 상을 세우지 말며 자기를 위하여 주상을 세우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느니라." 옛날 가나안의 이방족속들은 그들의 제단 옆에 기둥형태의 나무로 된 아세라 신상이나 돌로 된 바알 신상을 세우곤 했습니다. 그 가나안 이방족속을 따라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쌓은 제단 곁에 어떤 나무로든지 아세라 상을 세우지 말며 자기를 위하여 주상을 세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미워하신다는 것입니다. 왜 그것을 미워하시겠습니까? 첫째로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부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는 그 어떤 형태로도 형상화 할 수 없는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기 때문입니다. 셋째로는 만유의 주인이시고 모든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의 결핍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 섬기고 의지해서는 부족하고 불안하다고 여기기에 다른 신을 또 자기 가까이 둠으로써 이익과 평안을 보장받으려는 속셈이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위하여 주상을 세우지 말라"한 말씀에 주목해야 합니다. 우상을 만드는 자들은 근본적으로 자기를 위하여 만드는 것입니다. 신을 위하여 하는 것이 아닙니다. 순전히 이기적인 욕심 때문에 우상을 만들어 세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심을 모르는 어리석은 자들이 우상을 만들어 세움으로써 신을 자기 가까이 두고 자기편을 삼으며 자기에게 유리하게 움직이게 만들고 자기에게 이익을 가져다주게 할 수 있으리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하나님께 크나큰 모독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말로만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며 마음으로는 딴 데다 한 눈을 파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갈려 두 주인을 섬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 속에 이방족속의 거짓 신에 대한 제사를 섞어 넣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 속에 우상숭배를 혼합시키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이방신 아니 거짓 신들과 동격에 놓거나 아니면 그것들보다 못하게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속이려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영적인 간음을 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의 하나님의 셋째 명령은 "온전하지 않은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17:1을 봅니다: "흠이나 악질이 있는 소와 양은 아무것도 네 하나님 여호와께 드리지 말지니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것이 됨이니라." 하나님께 흠이 있거나 병든 가축을 제물로 드리는 행위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과 사랑이 없는 것이고 하나님을 속이는 짓입니다. 그것은 예물을 드림으로써 겉으로는 경건한 척하는 위선에 불과하며, 속에는 재물을 아끼려는 욕심만 가득한 것일 뿐입니다. 하나님보다 자기를 더 사랑하고 재물을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것이 됨이니라" 한 것입니다. 온전하지 않은 제물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멸시하는 것이며 따라서 악한 행위입니다. 말1:6-9를 봅니다: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버지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제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여호와의 식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하기 때문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는 나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면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여 보라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으니 내가 너희 중 하나인들 받겠느냐?"

이상의 세 가지 명령 중 우상을 세우지 말라는 둘째 명령과 온전하지 않은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지 말라는 셋째 명령은 예배와 관계된 명령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공의로 백성을 재판하라는 첫째 명령은 예배와 관계된 명령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뒤의 두 명령이 신앙적인 성격의 명령이라면 첫째 명령은 사회적, 정치적 성격의 명령 같습니다. 이 사회적, 정치적 성격의 명령은 본문에서는 신앙과 예배에 관한 명령들의 앞에 있지만 보다 큰 틀에서 보면 사실은 예배에 관한 말씀들 사이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앞서는 말씀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이미 두 주간에 걸쳐서 본 대로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의 3대 명절인 유월절, 칠칠절, 초막절을 어떻게 지내기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거기서 우리는 택하심을 받은 백성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참된 예배공동체가 되는 길이 제시되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즉 참된 예배공동체를 말하는 앞 본문과 역시 예배에 관련해 언급하는 오늘 본문의 뒷부분 사이에 백성을 다스릴 재판장들과 지도자들의 공의의 문제를 거론하는 16:18-20의 말씀이 끼어있는 것입니다. 이 갑작스러운 주제의 변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겠습니까?

여기서 우리는 과연 이 갑작스러워 보이는 주제의 변이가 정말 변이인지를 되물어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배의 문제와 사회적, 정치적 공의의 문제가 과연 서로 아무 관계없는 별개의 문제인가 하는 것입니다. 앞선 본문의 주제였던 이스라엘의 세 명절을 지키는 일에 관한 하나님의 명령을 돌이켜보는 것이 우리의 문제해결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칠칠절을 정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곡물수확으로 인한 예물을 기꺼이 힘껏 드리라고 명령하신 목적 가운데 하나가 예물을 드리는 사람 혼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즐거워할 수 있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특히 자체 소득이 없는 레위인과 나그네, 고아, 과부 등 사회적으로 약하고 궁핍한 이들이 한 해의 수확과 그 즐거움을 함께 나눌 수 있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공동체는 사회적 평등과 공의를 지향하는 공동체였다는 것입니다. 칠칠절을 지킬 때 하나님께서 정하시는 한 성소에서 예물을 드리며 모든 사람과 더불어 즐거워하라 한 것도 이스라엘 백성의 땅에 거하는 모든 사람이 다 함께 그 땅에서의 모든 소출의 혜택을 나눌 수 있어야 함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공동체는 경제공동체, 행복공동체이어야 함을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무교절이나 초막절의 정신도 칠칠절의 정신과 같은 것이라 했습니다. 즉 모든 백성이 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각자가 힘껏 하나님을 섬기되, 하나님을 힘껏 섬기는 그 마음이 그 백성의 땅에 거하는 모든 사람들이 골고루 즐거워하며 행복하게 하는 일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오늘 본문에서의 첫 명령은 앞뒤의 말씀들과 긴히 연결되고 잘 조화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앞선 말씀에서 언급된 예배공동체의 사회적 정신을 이어받고 더 보완하는 내용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상 어떤 사회나 한 나라에서 모든 사람이 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단지 식량과 물질이 골고루 분배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그저 먹기만 하면 되는 동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법이 지켜지며, 그 법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되고, 모든 판결이 정의로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 누구든 외모로 판단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그 누구도 재산의 소유여부나 학연, 지연, 정실에 따라 권력과 명예와 특혜를 누리거나 또는 불이익을 당하지 않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기본적으로 평등함이 인정되는 사회이어야 합니다. 지도자들이 불편부당해야 합니다. 뇌물이 통하지 않는 사회이어야 합니다. 지도자들이 오직 공의만을 좇아 나라를 다스려야 합니다. 그래야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너는 마땅히 공의만을 따르라. 그리하면 네가 살겠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을 차지하리라" 하신 말씀이 바로 이것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러한 정의로운 공동체가 드리는 예배를 하나님께서는 기뻐 받으실 것임을 오늘 본문의 첫째 명령은 말하고자 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받기를 원하시는 예배가 어떤 예배인지를 말할 수 있다고 봅니다. 첫째는 사회적, 정치적 정의의 구현을 위하여 힘쓰는 하나님의 백성의 예배입니다. 정직하게 법을 지키고 정의롭게 살려고 힘쓰며 항상 정도를 걷는 이들이 드리는 예배를 하나님께서는 받기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지도자가 뇌물이나 불법정치자금을 받아 챙기며 온갖 불의를 저질러도 가만히 말 한마디 없이 앉아있거나 사회의 악을 외면하고 부정부패에 무관심한 백성이 드리는 예배는 아무리 웅장하고 아름다워 보여도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지 않으리라는 것입니다. 재판을 바르게 하고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으며 뇌물을 받지 않고 오직 공의만을 따르는 지도자, 달리 말하면 언제나 정직하고 늘 정의로우며 항상 정도를 걷는 지도자를 세우기를 힘쓰는 백성이 드리는 예배를 하나님께서는 받기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드려야할 예배는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영으로 드리는 예배란 결코 우리가 사는 이 불의하고 부패한 사회와 나라의 문제를 외면하며 드리는 예배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받기 원하시는 예배는 또한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아버지 되신 하나님만을 참 하나님으로 믿고 그만을 사랑하며 그만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그만을 의지하며 그에게 모든 영광을 돌리는 백성의 예배입니다. 두 주인을 섬기지 않은 이들의 예배입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한다 말하며 마음속에는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들을 가득 채우고 사는 자의 예배는 하나님께서 받으실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그 무엇보다도, 그 누구보다도, 나 자신보다도 더 사랑하는 마음이 드리는 예배를 하나님께서는 받기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받기 원하시는 예배는 끝으로 가장 좋은 것을 하나님께 드리기를 기뻐하는 심령들의 예배입니다. 먼저 하나님을 생각하고 언제나 힘껏 드리며 온전한 헌신을 원하는 이들의 예배입니다. 외관과 형식으로만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께서 먼저 아시고 가장 싫어하십니다.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경외심이 없이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께 열납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이들이 교만, 시기, 질투, 미움, 원한, 복수심, 이기심, 음란과 더러운 욕심 등으로 마음을 채우며, 비방과 험담과 욕설을 입에 담고 살아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흠투성이이며 영적으로 병든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을 가장 깨끗하고 완전한 상태로 하나님께 드리기를 갈망하는 이들의 예배를 하나님께서는 받으십니다.

정의로운 삶, 순전한 믿음, 흠이 없는 몸과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려지기를 원하는 갈망이 우리의 예배를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예배 되게 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께서 받기 원하시는 예배를 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