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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화평케 하는 자의 복 (마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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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규 목사 (성덕중앙교회)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마 5:9)
Blessed are the peacemakers, for they will be called sons of God.(NIV)
makavrioi oiJ eijrhnopoioiv o{ti aujtoi; uiJoi; qeou' klhqhvsontai


화평의 필요성

  오늘은 팔복의 일곱 번째인 화평케 하는 자의 복입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오늘 말씀의 첫 번째 주제어는 “화평”입니다.  “和平”이란 말은 뒤집으면 “平和”입니다.  “화평케 하는 자”란 헬라어로 eijrhnopoiov"(에이레노포이오스)인데, 두 단어가 합쳐진 말입니다.  즉, “평화”란 의미의 eijrhvnh와 “만든다”는 의미의  poievw가 합쳐져서 된 말입니다. “화평케 하는 자”를 영어로는 “peacemaker”라는 단어로 번역합니다. 

eijrhvnh란 말은 우리말 성경에서 “화평”, “평안”(마10:13) 혹은 “평강”(요20:21)이란 말로도 번역됩니다.  화평이란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 것일까요?  국어 사전에 보면 “화평”이란 “마음이 평온함”, 또는 “나라 사이가 화목함”이라고 설명합니다.  화평의 辭典的 의미를 보면, 두 가지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마음에서 느끼는 평안입니다.  둘째는 외부적으로 분쟁이나 문제가 없는 無事한 상태입니다.  진정한 화평은 이 두 가지 조건이 다 갖춰져야 합니다.  삶에 큰 문제가 있는데도 마음만 평안한 것은 진정한 화평이 아닙니다.  반대로, 외부적으로 문제가 없는데도 마음이 불안한 것도 화평이 아닙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서 이러한 화평이 과연 존재할까요?  마음도 평안하고 삶의 문제도 없는 진정한 평화가 존재할까요?  결코 존재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평화는 오직 하나님께만 존재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eijrhnopoiov"(에이레노포이오스)라는 단어에 대해서, 필로란 학자는 오직 하나님만이 진정한 peacemaker라고 했습니다.  평화는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 없는 곳에는 평화도 없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사48:22,57:21)  악인이란 하나님 없는 자를 말합니다.  평화는 하나님의 성품이요 하나님 나라의 속성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14:17)

  그러면 왜 이 세상에 진정한 평화가 없을까요?  성경은 그 원인을 인간의 죄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인류 역사에서 진정으로 화평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아담이 타락하기 전까지의 원시 인류 역사 시대입니다.  그 때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그대로 만물이 평화로웠습니다.  그 당시의 화평을 다른 말로 설명한다면 “완전한 조화(harmony)의 상태”였습니다.  모든 피조물 사이에 어떤 긴장이나 대립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인간과 인간 사이가 화평했습니다.  인간과 자연물 사이가 화평했습니다.  자연물과 자연물 사이도 화평했습니다.  만물이 정상 作動 상태에 있었습니다.  어떤 피조물도 다른 피조물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태를 창세기 1장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좋았더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b/f(토오브)입니다.  우주 만물이 하나님의 의도대로 정상 상태에 있었습니다.  제대로 작동되고 있었고, 서로 조화로운 harmony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화평의 상태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화평의 상태가 일순간에 깨지고 말았습니다.  원인은 아담의 범죄입니다.  아담은 하나님을 배신하고 불순종했습니다.  그 결과 모든 조화가 깨졌습니다. 

  첫째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가 깨졌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을 피하여 숨었고, 하나님은 아담을 에덴에서 추방하셨습니다.  인간과 하나님 사이가 원수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복을 받아야 사는 것이 인생인데,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으니 평안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둘째로, 인간과 인간 사이가 깨졌습니다.  부부 사이가 소원해지고, 형제 사이가 나뉘어졌습니다.  가인은 친 동생 아벨을 시기하여 돌로 쳐 죽였습니다.  바벨탑 사건 이후로는 종족간의 갈등이 시작되었습니다.  각종의 분쟁과 전쟁, 살상들이 나타났습니다.  셋째로, 인간과 자연물 사이의 조화가 깨졌습니다.  인간은 자연계의 보호자가 되어야 하는데도, 오히려 자연계의 파괴자가 되었습니다.  자연 만물은 사람을 싫어하고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고대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롬8:19,22)  넷째로, 자연물과 자연물 사이에 평화가 깨졌습니다.  弱肉强食이나 適者生存의 법칙은 적어도 에덴동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법칙입니다.  에덴동산에서 모든 동물은 초식이었습니다.(창1:29-30)  육식의 시작은 인간의 타락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기상 이변이나 각종의 해충과 재앙들이 자연계에 피해를 주고 있습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서 생각해 봅시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는 화평이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 화평이 필요합니다.  자연 만물에게도 화평이 필요합니다. 


화평케 하는 자

  그러면 누가 화평케 할 수 있을까요?  그 출발점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인간은 이미 하나님과 회복 불능의 원수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그 누구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킬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화해자로 보내셨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화목제물”이라고 말씀합니다.  마치, 구약 시대에 양이 희생됨으로써 죄인들이 성소에 접근했던 것처럼, 예수님의 속죄를 통해서 죄인들이 하나님과 교제하게 된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롬3:23-26)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롬5:1,10-11)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하나님과의 모든 관계가 회복됩니다.  교제가 회복됩니다.  축복이 회복됩니다.  자녀로서의 특권이 회복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자는 두 번째 단계의 PEACEMAKER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말씀에 나오는 “화평케 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화평케 하는 책임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 사이에서 화평의 도구들이 되어야합니다.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롬12:18)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12:14)  우리는 두 가지 방법으로 사람들을 화목케 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줌으로써 화평케 할 수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화평이란 두 단계가 충족되어야만 이루어집니다.  첫째는 마음의 평안입니다.  둘째는 삶의 조건들이 평화로워야 합니다.  우선 첫 단계의 평안, 마음의 평안이 필요합니다.  마음의 평안은 아무도 줄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때에만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참 평안을 주려면 우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나게 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밖에서 인간적인 말과 행동으로는 참 평안을 줄 수 없습니다.  예수님 밖에는 평안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신을 중매쟁이에 비유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고후11:2)  처녀 총각만 중매하지 말고, 사람들을 예수님께 중매하세요!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생을 실천함으로써 화평케 할 수 있습니다.  평화는 공짜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사랑과 희생이 지불된 곳에 진정한 화해와 평화가 이루어집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버림을 받았습니다.  형들은 요셉을 시기하여 노예 상인에게 팔아버렸습니다.  그 바람에 요셉은 열일곱 살의 어린 나이에 온갖 고초를 다 겪었습니다.  요셉이 애굽에서 총리가 되었을 때에 요셉의 형들이 찾아왔습니다.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어서 먹을 것을 구하러 애굽에 온 것입니다.  만일 그 때에 요셉이 과거의 울분을 품고 형들에게 복수했다면 야곱 집안은 끝장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야곱 집안은 문제가 많은 집안입니다.  야곱은 부인이 네 명입니다.  열두 형제들은 네 배에서 나온 異服 형제들입니다.  어떤 계기에 다툼이 일어난다면 콩가루 집안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그 형제들을 다 용서했습니다.  깊은 사랑으로 그들을 영접했습니다.  모든 가족들을 애굽에 불러서 흉년 걱정 없이 잘 살도록 도와줬습니다.  그 결과 야곱 집안은 400년 후에 큰 민족으로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형제 우애가 있는 곳에 하나님의 축복도 있습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시133:1-3) 

  진정한 화평을 원하십니까?  가정의 화평을 원하세요?  그러면 다른 사람에게 기대하지 말고 먼저 내 자신이 화평의 도구가 되세요.  먼저 사랑하고, 먼저 희생하세요.  사랑과 희생 없는 평화는 없습니다.  정말 친구와의 평화를 원하십니까?  정말 이웃과의 평화를 원하세요?  그러면 남들에게 기대하지 말고 먼저 평화의 도구가 되세요.  먼저 사랑하고, 먼저 희생하세요.  그래야만 진정한 평화가 찾아옵니다.  사도 요한의 별명은 “보아너게” (Boanergev")입니다.  “우뢰의 아들”이란 뜻입니다.  불같은 성격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 듯 합니다.  요한 형제는 열심당원 출신이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요한의 형제 야고보는 열두 사도 가운데 가장 먼저 순교 당했습니다.  아마 불같은 성격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요한은 한 때 자신들을 따르지 않은 사람들에게 하늘에서 불이 내려 몽땅 태워버리자고 한 사람입니다.(눅9:54)  그러나 이런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에는 딴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랑의 사도”란 별명을 얻었습니다.  요한은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일4:10-11) 

  오늘 진정한 peacemaker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화평케 하는 자가 되려면 먼저 내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합니다.  그 다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해줘서, 먼저 하나님과 화해하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그 사람들의 화평을 위해서 사랑과 희생을 아끼지 마십시오.  그렇게 한다면 누구든지 화평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음

  화평케 하는 자가 받을 복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 복입니다.  “아들”이란 말 때문에 기분 나쁘신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들”이란 말(uiJoi)은 꼭 남자만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영문 성경에는 “아들”이란 말 대신 “children”(KJV)이란 말로 번역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들이냐 딸이냐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란 말씀입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습니다. 

  이 세상에서 본래부터 하나님의 아들이신 분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신분이나 능력이나 실제로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유일무이한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은 ORIGINAL PEACEMAKER입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을 따라서 화평케 만드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러줍니다.  예수님과 동등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아들은 아닙니다.  천국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하나님의 아들의 지위를 가진다는 뜻입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당연히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굳이 싸우는 사람들을 말리지 않아도 하나님 자녀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는다고 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만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인데, 또 무슨 화평케 하는 일을 해야만 한다는 뜻입니까?  그런 뜻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무조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이 신분은 영구불변입니다.  다만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라면 화평케 하는 일을 할 수 밖에 없다는 뜻이요, 그래서 남들에게 인정받는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다 PEACEMAKER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TROUBLE MAKER 역할을 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여전히 싸움 잘하고, 여전히 욕 잘하고, 여전히 이간질하고, 여전히 욕먹습니다.  이런 가운데서 누가 진정한 PEACEMAKER 역할을 한다면 그 사람은 참 信者로 남들에게 인정을 받습니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란 말은 수동태입니다.  내가 일컫는 게 아니라 남들이 일컬어주는 겁니다. “아, 저 사람은 정말로 하나님의 자녀답구나!”  바로 그 뜻입니다.  여러분!  나 혼자 예수 잘 믿어서 구원받은 것으로 만족하지 마세요.  정말 사람들 사이에서 진정한 PEACEMAKER 역할을 하세요.  그래서 남들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인정해 주는 신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남들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인정해주는 것이 무슨 복이 되겠습니까?  여기에는 두 가지 축복이 들어 있습니다.  첫째는 명예적 호칭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란 칭호는 가장 명예로운 칭호입니다.  서양 귀족들을 보면 爵位에 따라 여러 호칭이 있습니다.  자작, 남작, 공작 등등.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 칭호를 받습니다.  선생, 영감, 선배, 스승, 과장, 부장, 사장, 장관, 대통령... 칭호는 사회적인 명예입니다.  거기에 상응하는 대접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란 칭호는 구약 성경에서 가장 명예로운 칭호였습니다.  모세(신33:1), 사무엘(삼상9:6), 엘리야(왕상17:18,왕하1:10), 엘리사(왕하4:7),

  둘째는 특권적 호칭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자녀로써의 실제적인 능력이 주어집니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에게는 불의 능력이 주어졌습니다. “엘리야가 오십부장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면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너와 너의 오십 인을 사를지로다 하매 불이 곧 하늘에서 내려와서 저와 그 오십 인을 살랐더라”(왕하1:10)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는 선지 생도의 집에서 빈 그릇에 기름을 채우는 기적을 베풀었습니다.(왕하4:7)  수넴 여인에게는 아들을 잉태케 했고, 죽은 아이를 살려 줬습니다.(왕하4:16- 27), 사망의 독이 든 음식을 해독시켰고(왕하4:40), 나아만의 문둥병을 고쳐줬습니다.(왕하5:14)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껍데기 칭호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평안의 특권이 있습니다.  기쁨의 특권이 있습니다.  기적을 행하고, 병을 고치고, 귀신을 제어하는 특권이 있습니다.  영을 분별하는 특권이 있습니다.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약1:17)

  화평케 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참 평화가 없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떠날 때에 모든 평화가 사라졌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가 깨졌습니다.  인간과 인간 사이가 깨졌습니다.  인간과 자연물이 깨졌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이 오셔서 이 모든 분쟁과 갈등을 해소시키셨습니다.  예수님은 PEACEMAKER 이십니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PEACEMAKER의 직책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전해줌으로써 사람들을 하나님과 화해시키는 PEACEMAKER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사랑과 희생을 실천함으로 PEACEMAKER가 되어야 합니다.  PEACEMAKER에게는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받는 명예의 복입니다.  하나님 자녀로서 특권을 누리는 복입니다.  화평케 하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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