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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윗의 일생(2) : 하나님의 눈에 든 소년 (삼상 16: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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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문수 목사 (신반포교회)

사람은 누구에게나 인정받고 칭찬받고 싶은 본능이 있습니다. 이런 것을 가리켜 심리학에서 ‘인정의 욕구’라고 부릅니다. 이런 욕구 때문에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노력할 수 있다면 분명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 자체에 너무 신경을 쓰다 보면 부작용도 생길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잘 보이려고 너무 신경을 쓰다보면 과장하게 되고, 외식과 위선에 빠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반응에 따라 일희일비(一喜一悲)하다 보면 인생이 아주 피곤해지고, 자신의 참 모습조차 상실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이 나쁠 건 없지만 대단한 것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 이전에 하나님에게 인정받는 게 진짜 중요한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인생의 모든 것을 속속들이 살피시고 감찰하시는 분입니다. 그분만이 우리 인생의 생사화복을 좌우하는 주관자시며 최종 심판자이십니다. 따라서 그분에게 잘 보이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그렇게만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정하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그리고 혹 우리에게 필요하면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기회도 주실 줄로 믿습니다.

다윗이 바로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소년 시절 이미 하나님께 인정받았고, 일평생 하나님께 인정받기 위해 최선을 다한 분입니다. 물론 그는 사람들에게도 인정받은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 앞에 인정받은 결과로 자연스럽게 주어진 것에 불과합니다. 하나님께 확실하게 인정받을 수 있다면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은 자연히 따라오고, 혹 인정받지 못한다 해도 큰 문제가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인정받은 소년 다윗을 만나게 됩니다. 그는 한 마디로 ‘하나님의 눈에 든 소년’이었습니다. 이것은 그의 일평생 신앙의 큰 주제였습니다. 다윗이 복되고 아름다운 인생을 살 수 있었던 비결이 바로 이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다윗의 이런 신앙을 본받아 하나님께 인정받고 하나님의 눈에 들어 복된 인생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사람들의 눈에도 띄지 않던 소년 다윗

우리가 다윗에 관해 살펴보면서 주의할 사항이 있습니다. 그를 지금의 모습으로 보면 안 됩니다. 당시의 상황 속에서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알고 있는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요, 그것도 신앙이 아주 좋은 성군입니다. 그밖에도 그를 소개하는 데 사용할 미사여구는 얼마든지 많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의 지금 모습을 보고 추앙하고 환호합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스타 중의 스타인 셈이죠. 그러나 다윗이 본래부터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그의 외모나 외적인 조건은 정말 별 볼 일이 없었습니다.

하나하나 따져 보십시오. 먼저 그의 집안은 어떻습니까? 아버지 이새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지극히 평범한 촌로(村老)였습니다. 그리고 그 집안은 천대받았을 겁니다. 그 집안의 족보를 보면 짐작이 됩니다. 나중에야 왕의 족보가 되고, 메시야의 족보가 됐지만, 당시로서는 내세울 게 없었습니다. 오히려 숨기고 싶었을지 모릅니다. 왜 그런가요? 마태복음 1장 보면 예수님의 족보가 나오는데, 거기에 다윗의 족보가 들어 있습니다. 마1:1,5~6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 ” 나중에 가서야 왕의 가문이 되고, 메시야의 가문이 됐지만 그 당시는 아닙니다. 다윗의 고조 할머니가 여리고의 기생 라합이었고, 증조 할머니는 모압 여인 룻이었습니다. 정통 유대인의 시각에서 보면 형편없는 집안입니다.

또 그가 살던 동네는 어땠습니까? 베들레헴입니다. 지금이야 물론 유명한 곳이죠. 다윗 왕의 고향이고, 예수님의 출생지라고 이스라엘을 방문하는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명소입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아주 작은 시골 마을에 불과했습니다.

다윗은 그 시골 구석의 별볼일 없는 집안의, 그것도 8남 2녀 중 막내입니다. 그렇다고 형들에 비해 잘 난 것도 별로 없습니다. 어디를 봐도 주목할 만한 데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를 주목하신 겁니다.

본문 보면 그 당시 제사장이요 선지자였던 사무엘이 등장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바도 그 마을을 방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사울 왕을 폐위하기로 작정하시고, 차기 왕을 미리 정해서 기름을 부으라고 지시하셨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직분을 맡길 때 하나님의 선택의 의미로 감람유를 머리에 붓는 의식을 거행했습니다. 사무엘은 그 명령을 받고 이새의 아들들 중에 차기 왕을 세우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아직 사울 왕이 시퍼렇게 살아 있었으므로 은밀하게 제사 의식을 거행하는 형식을 갖추고 이새의 아들들을 초대합니다. 그들은 요즘 식으로 말하면 목욕재계하고, 제일 좋은 정장을 차려 입고 모였을 겁니다. 그런데 다윗은 어떻게 됐습니까? 그 자리에 초대받지를 못했습니다. 아마 아버지가 아예 제쳐 놓았던 것 같습니다. 왜 그랬을까? 사정이야 있었겠죠. 소규모 농가였기에 따로 종들도 없었을 테고, 다들 제사에 참여하는 동안 누군가 들판의 양들을 돌봐야 했을 겁니다. 그러니까 제일 나이도 어리고, 형들에 비해 볼품도 없는 다윗에게 가서 양이나 돌보라고 했을 겁니다.

자기 아버지도 그랬으니 다른 사람들의 눈에 들지 못했던 것은 당연한지도 모릅니다. 예나 지금이나 세상은 다 이렇습니다. 인물을 평가할 때 외모나 외적 조건만 갖고 평가합니다. 나이, 외모, 학력, 재력, 경력, 지위, ... 이력서에 기록할 만한 것만 따집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런 조건에 하나도 부합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그를 뽑아주지 않았었더라면 그는 그냥 그렇게 소외된 채 양이나 치다가 인생을 마쳤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소년 시절 그 날 그 시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보고 기뻐하시고 차기 왕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그때부터 다윗의 인생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혹시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만한 외모나 조건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하나님에게 인정을 받을 수만 있다면 정말 괜찮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외적으로 잘 난 사람만 뽑아다 쓰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마음이 드는 사람을 사용하시고 축복하십니다. 고전1:26~29 말씀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사실 그렇습니다. 인간 차원에서 조건 따지고 외모 따지는 것이지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다 그게 그겁니다. 하나님이 높은 데서 내려다보면 그 사람이 그 사람입니다. 도토리 키 재기요, 개미 높이뛰기입니다. 그러므로 열심히 노력은 하시되 인간 조건 때문에 사람 들 앞에서 기죽지 마십시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의 눈에 든 소년 다윗

사무엘이 제사 자리에 모인 이새의 아들들을 만났습니다. 그랬더니 다들 번듯번듯하고 근사합니다. 특히 장남이 좋았습니다. 6절 보면 장남 엘리압을 본 사무엘의 반응이 어떻게 나타납니까? 한눈에 반했습니다. “그들이 오매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그 앞에 있도다 하였더니 ... ” 그런데 그 순간 하나님이 브레이크를 걸고 나섰습니다. 7절(상).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ꡓ충격적인 말씀입니다. 그리고는 이어서 하나님이 엘리압을 버리신 이유를 밝히셨습니다. 7절(하).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중심(中心)은 영혼, 마음, 인격 등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눈은 사람의 눈과 다릅니다. 감찰하시는 눈입니다. 잠16:2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감찰하시는 눈입니다.
불꽃 같은 눈입니다.(계1:14 참조)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의 전지성을 표현하는 비유법이죠. 사람은 겉모습만 보지만, 하나님은 마음 속 깊은 곳까지 속속들이 들여다 보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 눈으로 엘리압을 보니까 그의 중심이 훤하게 보입니다. 그 중심이 바르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엘리압의 마음씨가 아주 고약했습니다. 전쟁터에 불원천리하고 찾아온 막내 동생 다윗을 면박을 주는 모습을 보면 그의 인격이 어떤지 짐작이 갑니다.*삼상17:28 참조) 그는 외모가 잘 생기고 남자답고 터프한 사람인지 모르지만 거칠고 모진 인격의 소유자요 내면이 아름답지 못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를 거절하신 겁니다. 사무엘이 그 점에서 실수를 했습니다. 사실 그 전에 사울을 왕으로 세울 때 백성과 함께 실수했는데 반복할 뻔 한 것이죠.(삼상10:23~24 참조)

다행히 사무엘은 얼른 알아차리고 다음 사람을 봅니다. 둘째 아비나답을 보는데 그 역시 아닙니다. 세째 삼마, 역시 아닙니다. 일곱 명이 다 아닙니다. 사무엘은 이상해서 묻습니다. 더 이상 아들이 없는가? 궁색해진 이새는 들판에서 양을 치고 있는 다윗을 이야기합니다. 이새는 막내가 있지만 양을 치고 있을 뿐 아니라, 그가 어린 아이인데 합당하겠냐는 투로 말합니다. 11절. “ ... 아직 말째가 남았는데 그가 양을 지키나이다 ... ” 그러자 사무엘이 빨리 불러오도록 지시했고 마침내 다윗이 그 자리에 나타납니다.

급히 불려온 다윗의 모습은 어떠했을까요? 아마 초라한 행색의 목동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무엘의 눈이 열렸고 그를 바로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에게 기름을 부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2절. “이에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이 구절을 보면서 혹시 이상하게 여기실지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7절에서는 외모는 안 보고 중심을 보신다고 하더니 왜 외모의 특징만 설명하는지 궁금하실지 모릅니다. 그는 아직 15세 가량의 미소년으로서 왕의 외모하고는 안 어울립니다. 그러나 얼굴이 붉은 홍안이고 눈은 반짝 바짝 빛나고 아직 어린 티를 벗지 못한 미소년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외모만 언급한 게 아닙니다.

흔히 얼굴을 말할 때 두 가지 방향에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외모이고, 또 하나는 인상입니다. 외모는 겉모습으로 선천적인 겁니다. 바꿀 수 없죠. 요즘에는 성형도 하지만 그래도 원판을 완전히 뜯어 고칠 수 없습니다. 인상은 사실은 속 모습이 겉으로 반영된 것입니다. 상자 속에 전구를 넣으면 그 불빛이 은은히 비쳐 나오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많은 사람들을 대하다 보면 이런 경험을 하게 됩니다. 외모는 잘 생겼는데 인상은 별로 끌리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반면에 외모는 대충 생겼는데 인상은 왠지 끌리고 가까이 다가가고 싶고 오랫동안 함께 있고 싶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인상이 좋은 분들이죠. 다윗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외모가 출중한 것보다 인상이 좋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의 마음속에 있는 신앙과 인격의 반영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원리를 하나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의 평가 기준은 사람의 그것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외모 위주로 인물을 평가합니다. 신장, 생김새, 조건 등등 ... 이런 것들을 무조건 무가치하다고 말할 수는 없죠. 그러나 이런 것들은 일시적인 겁니다. 그 속에 영원하고 진정한 가치는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겁니다. 하나님은 그런 것보다 영원한 가치인 마음의 모습을 더욱 중시하십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서 그것을 본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비록 소년에 불과했지만 미리 왕으로 선택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날 이후 그는 여호와의 신(=성령)으로 감동됩니다.(13절) 성령 충만했다는 겁니다. 성령께서 그를 훈련하시고 마침내 위대한 성군으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정말 신경 쓸 것은 우리의 외적인 조건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 눈에 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다윗처럼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만 되면 인생이 저절로 풀리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일생을 책임져 주십니다. 연약한 것은 훈련해 주시고, 부족한 것은 채워 주셔서 승리의 인생으로 굳게 세워주실 줄로 믿습니다.

[3] 하나님의 눈에 든 사람들 : 마음을 가꾸는 크리스천

여러분, 우리가 다윗처럼 하나님의 눈에 들고 싶습니까? 그러면 마음을 가꾸시기 바랍니다. 밭을 일구는 농부처럼 정성스럽게 마음의 밭을 가꾸시기 바랍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조건 불리기와 외모 가꾸기에 열중입니다. 그 중에 외모 가꾸기는 너무하다 싶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미를 추구하는 본성을 주셨기에 아름다움을 가꾸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동가홍상(同價紅裳)이죠. 하지만 외모에 대한 관심이 너무 지나치다 보면 상대적으로 내면에 대한 무관심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겉도 아름답고, 속도 아름다우면 좋지만, 겉만 화려하고 속이 추하거나 비어 있으면 곤란하다는 겁니다.
마리 프랑스(유명한 체형관리업체)에서 아시야 6개국 여성들(20~59세)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했답니다. 그 결과 우리나라 여성의 78.7%가 불만족을 표시했다고 합니다. 단적으로 볼 수 있는 시대 현상입니다. 이렇게 외면에만 신경 쓰니 얼마나 그 내면이 공허하고 빈약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내면 가꾸는 데 열중하도록 권면하십니다. 벧전3:3~4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그런데 내면을 가꾸는 게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마음이 심히 부패했기 때문입니다.(렘17:9) 성경을 보면 곳곳에서 인간의 마음을 밭으로 비유하는데, 정말 밭과 비슷합니다. 그냥 놓아두면 그대로 보존되는 게 아닙니다. 어느새 잡초가 돋아나고 쓴 뿌리가 생기듯이, 흙이 굳어지듯이 마음이 엉망이 됩니다. 그러므로 열심히 마음을 가꾸어야 합니다. 호 10:12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의를 심고 긍휼을 거두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너희묵은 땅을 기경하라 마침내 여호와께서 임하사 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이를 위해 먼저 십자가 보혈을 의지함으로 마음을 깨끗이 함을 얻어야 합니다. 수양으로 되는 게 아니라 오직 십자가 대속의 은총으로만 우리 마음이 새로워집니다. 그리고 매일 말씀 앞에 마음을 비춰봄으로 영적인 잡초를 뽑아내고, 성령의 은혜를 간구함으로 완악한 마음이 부드러운 마음으로 변화돼야 합니다.

다윗은 늘 자신의 마음을 살피고 가꾸는 사람이었습니다. 소년 시절 이미 그 마음이 아름다워 하나님의 눈에 들었지만, 일생을 살면서 때때로 실수도 있었지만 꾸준히 마음의 밭 가꾸기에 힘썼습니다. 참회시인 시편 51편을 보면 그의 이런 영적 노력을 잘 엿볼 수 있습니다. 시51:5,7,16~17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 주는 제사를 즐겨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않으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아니하시나이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 하시리이다” 다윗은 자신이 모태에서부터 악한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깨ㅔ서 그의 마음을 정결케 해주시도록 부단히 기도했습니다. 늘 통회하는 마음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그것이 그가 성군으로 승리한 비결입니다.

유명한 링컨도 그랬습니다. 그는 한때 얼굴로 인해 콤플렉스가 있었던 사람입니다. 천신만고 끝에 대통령 후보가 됐는데 주변에서 야유합니다. 고릴라 같고 원숭이 같은 사람이 무슨 대통령이냐 이겁니다. 정말 그의 얼굴을 자세히 보면 그럴 만합니다. 지나치게 껑충한 키에 빼빼 마르고, 광대뼈는 툭 튀어나오고 ... 한 소녀가 그런 상황을 보고 속이 상했습니다. 그래서 편지를 써서 턱 수염을 기를 것을 제안했습니다. 그 편지를 받고 고민하던 링컨이 그때부터 트레이드마크 같은 턱수염을 기르게 되었다는 겁니다. 하지만 오늘날 그의 얼굴을 보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의 마음에는 늘 성령님이 계셨습니다. 마음을 가꾸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인상이 바뀐 겁니다. 인자하고, 그러면서도 위엄을 갖춘 인물이 된 겁니다. 미국인은 물론이고 세계인이 존경하는 모습으로 말입니다. 마음을 가꾼 그를 하나님이 귀히 보시고 연단해 주심으로 역사에 남는 위대한 대통령으로 만들어 주셨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약점이 있습니까? 외적인 조건이 초라합니까? 외모가 남보다 빠집니까? 그래도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눈에 들면 괜찮습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그리고 링컨을 비롯한 역사 상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십시오. 외적인 조건이 대단하고 외모가 뛰어나서 승리한 게 아닙니다. 믿음으로 정성스럽게 가꿔진 그 마음이 하나님의 눈에 들었던 것입니다. 부디 저와 여러분도 이런 사람이 남은 생애 하나님이 동행하시는 가운데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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