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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암 5: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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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강영구 목사 (창원할길교회)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일입니다. 노나라에 공무제라고 하는 관리가 살았는데 그는 한 고을의 수장으로 백성을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이웃 제나라 군사가 이 마을에 쳐들어 왔습니다. 공무제는 속히 마을 사람들을 성안으로 모이도록 했고 성문을 굳게 닫아 걸었습니다. 이 때가 마침 보리가 누렇게 익은 추수철이었는데 적이 쳐들어온다니까 보리추수도 하지 못한 채 성안에 고립이 되어버렸습니다. 백성들이 성안에서 밖의 누런 보리밭을 보니까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공무제에게 와서 이렇게 요청했습니다. "지금 저 밖의 보리들을 추수하게 해 주십시오. 적이 쳐들어온다니까 아무나 급하게 나가서 내 밭이든 남의 밭이든 가리지말고 속히 거둘수 있는 만큼 거두어 들이도록 하면 어떻겠습니까? 그러면 백성들이 좋아할 건데요. 다 못 거두어 들인 것들은 다 모조리 불질러버려서 적이 와도 먹지 못하게 해 버리지요."
그런데 공무제는 그럴 수 없다고 거절을 합니다. 거절 할 뿐 아니라 절대로 그렇게 해서는 안되니 백성들을 단단히 단속하라..고 했습니다.
이욱고 적들은 쳐들어왔고 그 보리들을 다 거두어 가 버렸습니다.

얼마후 전쟁이 끝났을 때 공무제는 적을 이롭게 했다는 죄로 기소가 되어서 심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왕이 묻습니다. "너는 어째서 적을 이롭게 해서 나라를 위태롭게 했느냐?"
그 때 공무제는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일년동안 땀흘려 지은 곡식이 저도 아깝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급하다고 해서, 전시니 비상시리고 해서 백성으로 하여금 남의 곡식 내 곡식 가리지 않고 마구 거두어들여 먹게 허용해 버린다면, 그렇게 무너진 정의를 회복하는데에는 수백년이 걸릴지도 모릅니다. 곡식을 불태우지 않은 것이 적을 잠시 이롭게했는지는 모르지만, 급하다고 해서 남의 것을 함부로 가져가거나 짓밟아도 좋다고 허용하는 것은 이 나라 백성들의 근본정의를 무너뜨리는 것이니 한번 무너진 정의는 이나라를 수백년동안 위태롭게 할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왕은 그를 벌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도리어 후한 상을 주었다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 무엇이 중요합니까? 곡식입니까? 정의입니까? 무엇을 지켜야 합니까? 보리가 누렇게 익은 밭입니까? 아니면 정의를 존중하는 백성의 마음입니까? 곡식을 적에게 빼앗기는 것은 잠시 적을 이롭게 할 뿐이지만 급하다는 이유로 무너뜨린 정의는 수백년동안 백성들의 삶 전체를 위태롭게 할 수 있는 무서운 것입니다.
정의를 사라진 사회, 급하다고 원칙이 무시되고, 법이 보류되고, 자기 이익을 위해서 정의를 눈 감아 버리는 것이 허용되는 사회라면 얼마나 불안하고 살벌해지겠습니까?
교통경찰들이 위반차량들을 단속하다보면 순순히 예, 내가 잘못했습니다...하고 인정하는 차들을 보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다들 이유가 있습니다. '급해서, 집에 아이가 아파서, 중요한 사업계약이 있어서...'

전에 어떤 분은 음주단속을 피하기 위해서 차에 늘 상주들이 쓰는 두건을 넣고 다녔다고 합니다. 그러면 경찰들도 상중이니까 그럴 수 있겠다..해서 그냥 봐주고 넘어가고 넘어가고 해서 재미를 톡톡히 보았는데 하루는 또 술을 먹고 가는데 단속이 있습니다. 당연하게 뒷자리에 있는 두건을 머리에 쓰고"아저씨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하고 갈려는데 "아저씨 뭐하는 겁니까? 이리 내려보세요" 하고 소리를 지르더랍니다. 이 경찰이 못 보았나 싶어서 그 머리에 쓴 두건을 가리키면서 "아저씨 아버님이 돌아가셨는데....내가 너무 슬퍼서...." 연기를 하는데 물끄러미 바라보던 경찰이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아저씨 민방위 완장 머리에 쓰고 지금 뭐 하는겁니까?"..........

보세요. 우리는 위기에 강합니다. 변칙에 능하기 때문입니다. 다 이유가 있습니다. 급해서, 바빠서, 누가 아파서....그래서 법을 어기고, 원칙을 위반하고, 정의에 잠시 눈을 감아도 얼마든지 용서받을 수 있고, 허용될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 사고가 결국은 교통사고 사망률 세계1위, 세계부패지수가 OECD 나라 중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조사한 100여개 나라 가운데서 헝가리, 그리스 아래 제50위를 달리게 하는 이유가 되었던 것입니다.
아이엠에프가 왜 오게 되었습니까? 기업에 정의와 윤리가 없이 그저 이익을 낸다고 하면 이중장부도 만들고, 멀쩡한 장부도 조작하고, 거짓말하고, 뇌물주고 받고....이러면서 그저 이윤, 이윤....성장 성장...이것만 외치며 나아왔기 때문 아닙니까?
요즘 정치 이야기는 하기도 싫습니다만은 왜 이 나라 정치가 계속 4류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까? 이익을 위해서 정의와 원칙을 너무 쉽게 폐기처분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이 법을 못 지키겠다..그러고, 선거때니까, 급하니까 차떼기로 돈을 실어오고, 기업에서 돈 받고 하는 것은 관행아니냐, 있을 수 있는 일 아니냐?....하고 강변하고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소위 '정당성의 원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는 정당성을 부여하고 싶어한다는 이야깁니다.
나는 급하니까....하면서 차를 몰고 중앙선을 넘어가 버립니다. 도둑이 남의 돈을 훔치면서도 '나는 가난하니까 이 정도는 해도 괜찮아,,...' / 부정을 저지르면서도 '나는 지금 어려우니까...이까짓 정도는...' 그러면서 부정을 저지릅니다.
미성년자를 고용하고, 불법영업을 하는 티켓다방 업주를 붙잡아서 경찰이 물었습니다. "당신도 자식 키우는 입장에서 이럴 수 있느냐?" 그랬더니 그 사람이 얼굴을 뻣뻣하게 들고 말하기를 "이게 내가 잘 먹고 잘 살려고 그런 줄 아느냐? 이게 다 자식들 공부시키고 키우기 위해서 한 짓이다"...그렇게 당당합니다.

여러분 보세요. 가난하면 남의 물건에 손을 대도 되는 겁니까? 자식을 위해서는 불법영업도, 미성년자 고용같은 더러운 짓을 얼마든지 해도 괜찮은 겁니까? 아무리 급해도 해서 될 것이 있고 안될 일이 있습니다. 아무리 가난해도 절대로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는겁니다. 그게 정의의 선입니다. 정직과 진실의 선입니다. 이게 무너지면 다 무너집니다. 별 것 아닌 것 같고, 조금만 눈 감으면 잘 될 것 같지만 결국 정의의 선을 넘어서는 순간 모든 것은 뒤틀리고 잘못된 길로 나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 같이 흘릴찌로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이 북왕국과 남왕국 유대로 나뉘어져있을 때 북쪽 이스라엘 왕국에서 일어난 일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당시 여로보암2세라고 하는 왕이 다스리고 있던 시대인데, 이 여로보암은 정치를 아주 수완있게 잘해서 나라가 아주 부강하게 되었습니다.  밖으로는 솔로몬시대의 넓은 왕국을 재건하고, 안으로는 최고의 번영을 구가하고 있던, 이스라엘의 번성기요 황금기와 같던 그런 때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이스라엘왕국의 번성을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모든 것이 잘되고 나라가 돈이 넘쳐나는 경제적 중흥기를 맞았지만은 하나님은 이 백성들을 아주 불쾌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나라에 정의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21절-23절

단단히 화가 나 계십니다. 관계를 아주 끊어버릴 것 같은 무서운 얼굴로 하나님은 지금 이스라엘을 바라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죄를 보라.
2장 6절
1)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궁핍한 자를 팔며....
--조그마한 이익을 위해서 정의를 팔아먹는 현실을 말한다...돈 돈 하면서 오로지 돈 벌어 잘 살겠다는 생각만 있지, 정직하게 돈을 벌겠다, 정의로운 방법으로 부를 이루어보겠다..는 정의에 대한 생각은 아예 없는겁니다.

2) 부자가 젊은 여인에게 다녀서 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며...
사람들은 욕망의 노예가 되어서 오로지 즐길 궁리만 하면서 지냅니다. 이것이 옳은 일인지, 잘못된 일인지 그걸 따져 묻지 않습니다. 오직 재미있고 즐거우면 기꺼이 그렇게 하며 사는겁니다.
얼마전 소위 왕따 동영상을 촬영해서 이웃학교에서 물의가 일어났었습니다. 그 때 왜 친구를 그렇게 때렸냐? 그렇게 친구가 그렇게 맞고 있는데도 그냥 보고만 있었냐?라고 묻자 아이들이 그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재밌잖아요. 재미로 그런 건데 왜 그러세요?"....
요즘 아이들에게서 이런 문제는 더 심각합니다. 옳고 그름을 더 이상 묻지 않습니다. 재미있냐 재미없냐? 하는 재미와 즐거움이 모든 가치 판단의 기준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3) 모든 단 옆에서 전당잡은 옷 위에 누우며, 저희가 신의 전에서 벌금으로 얻은 포도주를 마심이니라...
--하나님께 예배하러 온다고 오는데 그 걸치고 오는 옷이 가난한 사람들을 협박하고 착취해서 뺏은 옷이고, 포도주를 마시고 흥청망청 취하고 노는데, 그 돈은 약한 사람을 위협하고 함정에 빠뜨려서 벌금 거둔 것으로 사 들인 포도주..라는 말입니다.
한마디로 힘있는 자는 그 힘으로 가난하고 힘없는 자에게 횡포를 부리고, 권세있는 자는 그 권세를 가지고 정의를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이익을 위해 치부하는 일에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드리는 예배를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겠습니까? 이런 사람들이 자랑하는 부와 번영을 하나님이 고운 눈으로 기뻐하며 보고 계시겠느냐?는 말입니다.
하나님 말씀 하십니다. "내가 너희 절기를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 하나니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찌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네 노래 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찌어다. 네 비파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은 정의없는 번영을 인정하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은 정의를 외면한 채 드리는 사람의 기도를 듣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은 정의를 버리고 얻은 부로 드리는 제물과 제사를 돌아보지도 아니하십니다.

한국땅에 이렇게 교회가 많고 1200만의 신자가 있다고 자랑하고 새벽기도 철야기도때마다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든다고 선전하지만, 이 나라는 세계부패지수 최상위권의 나라입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겠습니까?
인터넷, IT분야에서 세계제일이라고 자랑하지만 그 발달한 인터넷으로 세계포르노사이트에 접속하는 접속률이 역시 세계 제1위라는 것을 여러분은 아십니까?
우리나라는 누구보다 높은 교육열을 자랑합니다만 박사학위 소지자가 인구당 세계에서 제일 많은 이 나라에서 한해동안 소비되는 술, 담배, 고급위스키 소비량 역시 세계에서 가장 많다는 것은 또 어떻게 설명해야 하겠습니까?
관광지고, 농어촌이고 심지어는 도시 한복판 학교 앞에까지 즐비하게 늘어선 희한한 간판 희한한 모양의 모텔, 여관, 호텔들을 보고서 저게 뭐냐?고 묻는 아이들의 질문앞에 할 말이 없어 허둥대는 것이 오늘 우리의 현실 아닙니까?

이런 우리가 소득 2만불이 되면 뭐하고, 십만불이 되어 더 잘살게 된 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잘 살면 잘 살수록 더 범죄하고 더 타락할 게 뻔한데 정의없는 번영, 정의를 외면하고서 거둔 성공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말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이런 이스라엘에게 마지막으로 촉구하십니다.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 같이 흘릴찌로다"
정의가 멈추어 버린 이 땅에 다시 정의가 물처럼 흐르게 하라는 것입니다. 정의를 버리고 얻은 번영을 더 이상 추구하지 말고, 이제부터라도 정의를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정직하게 벌고, 정의롭게 살기를 새로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것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계십니다.

성도 여러분, 이땅의 소망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있습니다. 아무리 잘못되고 부정을 저지르더라도 하나님 무서운 줄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앞에 잘못했다고 회개할 줄 아는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그래도 소망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심판을 선포하시기 전에 이스라엘백성에게 주신 마지막 경고입니다. 지금이라도 너희가 돌이켜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흐르게 하면 심판의 칼을 거두시겠다는 것입니다. 지금부터라도 정직을 구하고, 정의를 따라 살면 하나님의 진노가 사라지고 하나님의 부으시는 복으로 진정한 행복과 번성을 누리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자비요, 사랑입니다.

성도 여러분, 혼란한 이 땅에 무슨 소망이 있습니까? 소득 1만불만 되면 걱정없이 잘 살 줄 알았는데 그 소득 1만불에 도달해보니 어떻습니까? 걱정이 없습니까? 잘 살게 되었습니까? 이만하면 되었다고 싶습니까?
정부에서는 소득2만불이 목표라고 하는데, 이렇게 정의를 무시한 채 달려가는 소득2만불이 진짜 행복을 가져다 주겠습니까?

진정한 행복은 정의와 함께 누리는 행복입니다. 정직하게 번 돈이 진정한 보람을 주고, 정의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삶에 하나님 주시는 진정한 행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정의를 추구하며 살아야 합니다.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흐르게하며 살아야 합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복이 있습니다.

성도는 자기가 선 자리에서부터 정의를 이 혼탁한 세상 가운데로 흘러 보내야하는 사람입니다. 그게 성도의 삶의 주어진 사명입니다.
혼탁한 물이 어떻게 맑아지겠습니까? 맑고 깨끗한 물을 여러 곳에서 계속 흘러 보낼 때 그 아래의 물이 맑아지는 것입니다.
성도가 먼저 그 삶에서부터 정의를 추구하고 정의를 흘러 보낼 때 비로소 온 사회에 정의가 하수처럼 흐르게 되는 것입니다. 나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지난주간에 참 기분좋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경북 김천에 있는 한 설렁탕집 주인이 집사님이랍니다. 이 분이 그 동네에서 아주 유명한 설렁탕집을 운영하고 있는데 맛이 기가 막힌답니다. 그 집 맛이 그렇게 좋은 이유가 무엇이냐?고 사람들이 그 비결이 뭐냐고 물으니까 "저는 설렁탕을 끓일 때 예수님을 대접하는 마음으로 끓입니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참 멋지지 않습니까? 성도가 설렁탕집을 하는데 그 집 설렁탕은 예수님을 대접한다는 자세로 끓인 설렁탕입니다. 그러니 재료를 속이겠습니까? 적당히 끓여내겠습니까? 최고의 재료, 뼈도 제일 좋은 것 쓰고, 김치를 담가도 무 배추 고춧가루 마늘 생강 양념까지 모두다 제일 좋은 것만 쓰는겁니다. 그러니 맛이 좋을 수 밖에요/
그런데 어느날 뼈를 끓이는데 거래처에서 잘못된 뼈를 보냈는지 뽀얀 국물이 우러나는게 아니라 누런 국물이 나오더랍니다. 24시간 동안 끓여야 되는데 야단났다..싶어서 거래처에 전화를 하자 뼈가 바뀐 것 같다..고 죄송하다고 하더랍니다. 이제 와서 새로 뼈를 가져와도 그날에는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때 그 거래처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사장님 오늘 하루만 커피 프림을 타시지요...?" 대개 낮은 품질의 뼈를 사다가 프림을 섞어서 하얗게 만들어 내는 집들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이야기를 하더랍니다.
그 때 그 집사님이 어떻게 하셨겠습니까? 끓이던 설렁탕 국물을 죄다 내어버렸답니다. 그리고는 그날 문을 닫아 걸고 장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가게앞에 이런 글을 써 붙였습니다. "죄송합니다. 오늘은 설렁탕 재료가 좋지 않아서 장사를 못합니다.."
그 날이후로 그 설렁탕집은 소문을 들은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습니다. 그렇게 장사가 잘되어서 분점까지 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보세요. 그 분들은 장사 잘되라고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이 아닙니다. 에수님을 대접하겠다는 마음으로 설렁탕을 끓이다 보니까 거기에 커피프림을 도저히 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정의롭게, 정직한게 산다는게 별게 아닙니다. 이렇게 자기 삶에서 진실을 추구하고, 정의를 위해서는 손해봐도 좋다고 하는 자세로 정직하게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 이야기를 서울의 김동호 목사님이 하셨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많은 장사하는 교인들이 자극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너도 나도 정직하게 예수님 대접하는 마음으로 장사를 하겠다고 다짐을 하더랍니다.
여러분 보세요. 이렇게 한 사람의 정의가 다른 사람에게로 흘러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내 삶에서부터 정의를 만들고 그 정의가 나로부터 옆 사람에게로 또 다른 사람에게로 흘러가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성도의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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